알려지지 않은 카라임 유대인, 그러나 그들은 인류문명을 도약시켰다!
유대인의 역사를 추적하다보면 이들은 광범위한 지역으로 흩어져서 살고 있다는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나가라고 가갈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각국은 유대인들을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정주민족은 농사를 중요시 했고 북방 유목민들은 목축과 약탈을 중요시 했는데 이들은 비폭력적인 장사꾼들이 이었기 때문이다.
1. 잠재 되어있던 상인들의 소중한 가치
무슬림 상인과 함께 유대인들은 세계무역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세계사속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던중 세계최초의 패권국가 나타난다. 몽골제국이 세계통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세계 패권국가라고 말할수 있는 수준의 엄청난 영토를 확보한것이다.
2. 알바트로스는 큰 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높이날지 못한다.
이들은 유목민이었고 무슬림이나 유대인들과 문화적으로 가까웠다. 유대인들의 조상은 해상 무역과 약탈을 했지만 육지에 적응한 유대인들은 열심히 목축을 했다. 이들은 정주 농경민이라기 보다는 유목민이 가까웠다.
유목민들이 지정된 영토의 개념이 없던것처럼 유대인 역시 나라의 개념이 없었다. 차이점이라면 북방의 유목민들은 군사력을 바탕으로한 약탈의 비중이 컸고 유대인들은 장사의 비중이 컸다.
몽골제국은 거대한 영토를 통치하고 대부분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을 다스리기 위해 색목인을 이용했다. 색목인에는 무슬림, 유대인, 유럽인까지 포함 되어있었는데 이들이 실무를 주로 담당했다.
3. 동양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은이유
많은 사람들이 왜 동양에서는 과학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궁금해 한다. 과학혁명은 단순히 기술이 발전했다는 정도가 아니다. 인간 대신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어 냈다. 이제는 인간 대신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고 지구 생물 역사상 최초로 우주밖을 여행했다.
역사를 보면 인구는 국력인데 중국과 인도의 세계 인구 비율은 비교가 안될정도였다. 한국과 일본 역시 발전된 농사기술로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편이었다. 그러나 대항해 시대가 시작 되면서 동양의 기술이란 서구권의 기계 문명에 비해 너무나 뒤떨어진것 처럼 차이가 났다.
서세동점과 과학혁명과 관련해 그원인을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찾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오스만 투르크가 몰락하기 전까지 서구권은 동양권을 압도한적이 없었다.
4. 몽골제국의 통합기술혁명
몽골제국은 유라시아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 하면서 세계각국의 기술을 한자리에 모을수 있었다. 처음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열중했으나 통치하다 보니 문명에 큰 발전을 주는것이 기술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화약무기 개발과 실전 사용은 송나라에서 먼저 시작했지만 몽골제국은 세계최초로 주력군이 화약병기를 이용해 실전을 치뤘다. 은으로 된 시계 장치 등등 과학혁명 직전까지 기술수준을 고도로 발전 시켰다.
과학적 방법론 또한 이븐 알하이삼이 창시하여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가 연결되면서 흑사병으로 인해 몽골제국이 무너졌다. 진나라 보다는 더 오랜시간 통치 했지만 여전히 미숙했고 패권국가들의 선례가 되었다.
5. 몽골제국의 유산은 땅인가 소프트파워인가?
자 이제 몽골제국이 망했는데 그들이 완성한 통합기술혁명은 누가 계승했을까? 명나라는 자신들을 지배했던 유대인들을 때려잡느라 바빴고 몽골인들은 실무능력이 없었다. 심지어 글을 읽을줄 아는 몽골인도 많지 않았다.
무슬림 상인들과 유대인들은 통합된 기술의 요체를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금융관련 기술을 아는자들은 궁정유대인이 되어 자금을 관리했고 기술 유대인들은 각국의 왕을 위해 좋은 제품들을 뽑아내었다. 유럽에서는 번역작업을 활발히 하여 신지식을 전했다.
6. 카라임파 유대인
무슬림 상인들과 유대인들은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카라임파 유대인들은 몽골제국 시절 흑해 일대에서 제노바 상인들과 결탁하여 상업 활동을 했다. 이들은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연결고리 그자체였다.
이들을 바로 카라임 유대인이라고 하는데 편의상 카라임이라고도 부른다. 카라임 유대인들은 몽골제국이 멸망하고나서도 흑해 일대에서 교역을 했는데 오스만 투르크의 진출로 인해 점차 서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가 떠난것은 아니고 유대인들이 그래왔듯이 남을자들은 남았고 떠날자들은 떠났다. 다만 팍스 몽골리카나 시절과는 다르게 흑해 일대가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으로 편인 되었고 오스만투르크 상인들과 친하게 지낸 유대인들과 달리 이탈리아나 프랑드르 지역으로 넘어가 발트해나 북해, 지중해에서 또다른 길을 모색한 유대인들이 있었다.
7. 르네상스 운동과 카라임 유대인
한편 이탈리아 피렌체에 유대인가문인 발로리 가문이 정착하고 카라임 유대인들이 유입 되었다. 이들은 나라만 없었을뿐 많은 부를 쌓았다. 메디치 가문은 이들과 결탁하였고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난다.
기독교 세계에 갇혀 살았던 유럽인들은 카라임 유대인들을 통해 동방의 세계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할수 있었으며 그들의 마법을 경외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