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가면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먼 산에 소국의 노랑이 흐드러진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와 교류를 한 건 불과 2년에 불과하였지만 병마와 싸우다 떠난 지 벌써 7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한 번씩 떠오르는 건 흔히 있는 일은 분명 아닙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이들이 그러합니다. 일본 여행 함께 갔던 얘기, 병마와 싸운 이야기, 그라면 이러했을 터인데 등,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뜬금없이 한 번씩 거론합니다. 제겐 20년 신장질환과 싸웠기에 피골이 상접했던 그의 주름살만 보이는 파안대소하는 모습, 이맘때면 집 앞으로 와서 소국 한 다발을 조용히 건네고 가던 뒷모습이 생각납니다. 그의 차 뒷좌석엔 아직 나누지 않은 소국다발이 가득했지요. 그래서, 그런 추억으로 소국이 활짝 피어 향이 번질 때면, 여행 가다가 먼 산의 소국군락을 보면 그가 떠오릅니다.
그가 떠난 지 2년쯤 지났을 때 그를 기리며 쓴 잡문 중 일부로 그에 대한 소회를 가름합니다. ‘20여년 투병 끝에 재작년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김 선생은 아직도 술자리에서 떠올리는 추억의 한 장면에 자주 등장을 합니다. 오랜 세월을 병마와 싸워오면서 적당한 체념 속에 서서히 자신의 삶을 정리해왔기에 담담하게 가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을이 오면 자연을 벗 삼아 노닐다 돌아오는 길, 지인을 생각하며 꺾은 소국을 한 다발 건네던 그 모습이 아직도 그립습니다. 세상 떠나기 얼마 전 자신의 책 몇 권을 건네주기에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하였지만 그의 부음을 듣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지천명도 되기 전에 세상을 벼렸지만 그는 천명을 알고 그 속에서 자신을 갈무리해 왔기에 오래도록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의 향기, 꽃의 향기... 향기 중 으뜸은 사람의 향기입니다. 짙지 않지만 그 은근함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그런... 요즘 사람 향기 맡기가 참 어려워졌습니다. 자신만 똑똑하고, 바르게 살고 있다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틀린 게 되어버립니다. 네 편, 내 편을 너무도 쉽게, 굳건하게 나누어 버리기에 다툼이 많아지고 진심을 나눌 이들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이 있지만, 나 아닌 누구도 관심 밖으로 몰아낼 수밖에 없어져버린,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벅찬 인생들이 많은 현실 속에서 인향은 그만큼 더 소중하다 생각됩니다. 나의 향기는 무엇일지, 나는 그들에게 무언가 좋은 기억을 남겨두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왔나가 그들을 통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가일층 노력해야겠습니다.
며칠 전 처음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9남매의 맏이이신 어머니께서 동생을 앞세우시고는 통곡을 하셨습니다. 외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던 분인데 말입니다. 장지에서 저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격하게 떨리는 어깨를 주체하지 못하였습니다. 외삼촌의 영정 사진 속 희미한 웃음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 돌 것 같습니다.
사람간의 관계를, 사람의 깊이를 측량하는 단위는 무엇이 있을까요? 누군가의 인생역정을 떠올리는 건, 기억 속의 그들이 향기로 다가오는 건 그들의 삶이 담박했기 때문 아닐까요?
자연은 때론 담박하게, 때론 화려하게, 잔잔하게 다가옵니다. 곁을 내줍니다. 떠난 이에 대한 생각으로 아린 가슴을 치유해주는 영구불멸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단양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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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사 느티나무길에서 가을의 정서를 새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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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강변도로,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에 매혹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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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철길숲에서 선후배들과 자연친화적인 공원숲의 전형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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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측량하는 새로운 단위(모셔온 글)========
삶을 표현 하는 더 좋은 측량법이 있다.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0분' 대신 '좋아하는 음악을 딱 세 곡 들을 정도의 거리', '이별의 아픔' 대신 '세 시간의 눈물, 이틀의 금식, 사흘의 불면 혹은 한 달의 우울'
새로 이사 간 집은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이어폰을 끼고 3분에서 4분 남짓한 노래 세 곡쯤 들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집 앞에 이르게 된다. '지하철역에서 10분 거리' 보다 '좋아하는 음악을 세 곡 들을 정도의 거리'라고 표현하니 그 측량법이 훨씬 정겹다.
아이의 키는 1미터가 아니라 내 갈비뼈가 시작되는 곳.
시험공부의 범위는 일곱 시간 자면 불가능, 네 시간 자면 가능.
체중은 희망 수치보다 5킬로 초과한 숫자.
월급은 만족스러움과 쓸쓸함 사이.
그리움의 눈금은 이따금, 자주, 나도 모르게,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한.
내 사랑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언제나 한 눈금 더.
이별의 측량법은 세 시간의 눈물, 이틀의 금식, 사흘의 불면, 한 달의 우울, 혹은 영원한 침묵.
측량법을 바꾸어보니 삶의 모든 것이 애틋해진다.
-----김미라의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중에서
첫댓글 오랫만입니다.
행복하게 잘지내시지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무소식이 희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