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너무 좋은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었을 때 가슴 설레였던, 너무 흥분해서 큰 소리 치고 싶었던 그런 기억 없으세요?
전 가끔 그런 적이 있었지요. 지금도 그러니까요.
학창시절 혼자 세상의 짐이란 짐은 모두 끌어안고 살았던 적이 있었어요. 어찌보면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세상으로부터 벽을 쌓고 살았던 시절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항상 가슴이 답답했던 모양이에요. 마음의 응어리를 분출하지 못하고 혼자 차곡차곡 쌓아가기만 했으니까요.
학창시절 다른 친구들은 그 많은 스트레스를 수다로 푸는 반면 저는 거의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에 매달렸었죠. 특히 드라마나 영화에. 토요일이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밥을 먹으면서 KBS2에서 했던 영화를 보았지요. 저녁이 되면 MBC에서 하는 영화, 일요일에는 밤 10시에 시작하는 명화극장을. 왜 그리 영화나 드라마에 매달렸는지……. 그때 보았던 영화들이 디어헌터, 원스 어폰더 타임 인 어메리카, 대부, 라스트 콘서트, 애수, 등 참 많은 영화들을 보았었지요. 그 당시에는 그 영화들이 그렇게 유명한 영화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내가 보고 너무 좋아 가슴 설레고 흥분되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꼭 나만이 이 좋은 영화를 보고 인정하는 사람처럼 자만심도 있었어요. 다 커서 보니 참 유명한 영화였더군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좋아했던 영화였구요.
어제는 13년전에 보았던 '추억'이라는 영화를 명화극장에서 보았습니다. 바브라스트라이샌드의 강인한 성격이 너무 맘에 들었던 영화였지요. 다시 보는 내내 가슴이 떨리더군요. 꼭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이랄 까요? 그런 기분 느껴보신 적 있으세요.
세상에 대한 증오심에 가득차 있었던 그 시절,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를 너무 뼈저리게 알아버린 그 어린 시절, 세상은 온통 거짓과 부패만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아이들을 싫어하고 마음의 거리를 두고, 그런 아이들의 엄마라는 사람들이 화장품 냄새 풀풀 내며 학교를 자주 들락거릴수록 선생님들의 손이 자주 그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에 그들을 증오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항상 혼자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절이었지요. 당신은 그런 적 없으세요?
없으시다구요. 그럴 거예요. 제가 무척 특이했던 아이였거든요. 그때는 왜그리 여자로 태어난 내가 미웠는지 모르겠어요. 그때만 그런게 아니였지요. 항상 그랬어요. 여자로 태어난 게 너무 싫었어요. 치마를 입어야하는 것도. 가슴이 답답할 때 여행이라고 다니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여자라는 존재가 싫었어요. 항상 참고 살아야 하는 그런 여성이 싫었지요. 그래서 더 남자같이 하고 다녔어요. 그래서 절 남자로 생각하고 좋아했던 아이도 있었으니까요. 아, 지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영화 이야기하다가 다른 길로 빠졌군요. 아니, 이 영화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보았던 그 영화 속에 케이티는 저였어요.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그렇게 용기 있는 여자, 그렇게 씩씩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 영화를 보면서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보다 케이티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더 많이 가졌으니까요.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들마다 느끼는 게 다르다고 하잖아요. 전 그 영화하면 생각나는 게 여전히 케이티의 그 당당한 모습이었어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핵폭탄 저지라는 전단지를 나누어주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떠오를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본 '추억'은 그게 아니었어요. 아니 영화는 그대로인데 제가 변한 거겠지요. 영화는 그대로인데…….
영화속 여자 주인공이 세월만큼 성숙해지는 것처럼 저도 어느새 그만큼 성숙해졌더군요.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옳다고 했던 진실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미해지고, 진실만 믿고 그게 전부라고 믿고 있는 순진한 몇 몇의 젊음이들의 죽음으로도 세상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는 듯, 계속 돌아가고 있다는 것. 영화 속의 케이트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견고한 신념으로, 지혜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었다면 저는 그 신념조차 흔들리는 뿌리 약한 나무처럼 얕은 지식 속에서 헤매고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있더군요. 머릿속만 비판하는 아니 허무주의에 더 가까이 변한 내 자신이 보이더군요.
케이트의 대학생활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지요. 공부하느라, 아르바이트하느라, 그리고 학생 운동하느라, 항상 바빴지요. 그래서 그녀는 부르주아적인 친구들을 싫어했지요. 놀기만 하고, 찻집에서 수다나 떨고 있고, 연애나 하고 있고, 사회적인 이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들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지요. 어쩌면 그녀의 콤플렉스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전 그렇게 강한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부모님한테 손 벌리 않고 제 스스로 돈을 벌어서 학비를 대고 싶었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강한 모습이고 싶었지요. 그래서 편하게 공부 만하고, 옷단장하고 얼굴 치장하는 아이들이 싫었어요. 집에서 모든 것을 다 해주니 고민할 것 없는 표정을 하는 그네들이 싫었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전 그들을 무척 부러워했더군요. 나도 그렇게 대접받고 싶은 생각. 누구로부터, 아니 모든 것이 주어져 있어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하러 가고 아르바이트 갔다오면 지친 몸을 이끌고 자취방에 들어오면 왜 그리 눈물이 나왔던지…….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지친 내 몸만큼이나 마음도 너무 지쳐있었지요. 모든게 싫었던 시절이었어요. 어두운 동굴같이 깜깜하기만 한, 내 키정도의 높이인 이 동굴같은 자취방이 지긋지긋했지요.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아침이 되고,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세상에는 나라는 존재는 없었지요. 한번도 올라오신 적이 없었던 부모님, 이해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던 나. 매주 반찬을 가지려 집을 향해 기차를 타고 오르고 내렸던 기억, 기차 안에서 반찬 냄새가 날까 조마조마 했던 그 시절. 그 속에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지요. 아니, 설령 사랑이 있었더라도 제가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너무 지쳐있었으니까요.
그 시절 전 겉으로는 너무 강한 것처럼 보였지요.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너무 강해서 접근하기 힘들다고. 아니요, 아마 제가 그런 척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속은 너무나 곪아 썩어서 비뚤어져 있었고, 비비 꼬여있었지요. 아마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사랑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주는 것도 서툴렀지만 사랑에 한없이 약한 존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예전에 제 모습을 영화속 케이트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강해 보였지만 사랑에서만은 약했지요. 남자의 부드러운 말과 그 사람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려했고 간절히 그를 원했지요. 쉽게 넘어오지 않을 것 같지만 그녀는 그만큼 사랑을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처럼 말이지요. 누군가 그녀를 알아주기를 바라듯이 말이지요. 그게 너무 슬펐습니다. 저를 보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지금의 나는 그녀, 케이트보다 그 남자, 허블에 더 가까이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미국이다. 미국처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여긴다', 그 남자가 지은 소설의 첫 대목이었지요. 그 두 문장이 그 남자를 간결하면서도 가장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어쩌면 허블처럼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고, 점점 나의 생각을 배제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시절, 너무 외롭고 힘들 때면 갔던 그 길이 생각나는군요. 기숙사로 가는 길에 있었던 일렬로 서 있던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늘 밑을 걸으면 참 좋았지요. 나무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신발을 벗고 발을 올리고 팔을 펼치고 머리를 젖히고 눈을 감지요. 한참만에 눈을 뜨면 그 나무 잎들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보이고 넉넉한 나무들이 나를 감싸주었던 시간. 그 시간만큼은 세상이 나를 비추고 있는 듯 했어요.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 곳이 그립습니다. 힘들었던 대학시절의 유일한 낙원이었으니까요. 저의 그 힘들었던 대학시절도 추억으로 남아있네요.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던 케이트와 허블처럼 그렇게 애틋한 마음을 지닌 채 담담한 태도를 지닐 수 있는 그런 추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시절은 나에게 추억이었던 모양입니다.
첫댓글^^ 경험이 잔잔히 펼쳐지며 유난히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오며 시작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 아프고 슬프게 다가오는 글이군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여동생이 속없는 오빠라고 욕하던 것처럼, 님의 힘겹고도 열심히 산 인생이 존경스럽고 또 부끄럽게 하네요. 추억이라는 영화를 아마도
보지 않았나 봅니다. 하지만 케이트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 것 같습니다. 님이 유명해지면 이 글을 내 인생의 영화로 잡지에 기고해도 좋을 가슴으로 다가오는 글입니다. 난 전남대 인문대앞 벤치를 좋아했지요. 덩굴나무(?)가 그늘지게했던 그 벤치. 님의 글을 읽으며 님의 심정 깊이 전해져왔습니다. 어떤 분인지 한번
첫댓글 ^^ 경험이 잔잔히 펼쳐지며 유난히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오며 시작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 아프고 슬프게 다가오는 글이군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여동생이 속없는 오빠라고 욕하던 것처럼, 님의 힘겹고도 열심히 산 인생이 존경스럽고 또 부끄럽게 하네요. 추억이라는 영화를 아마도
보지 않았나 봅니다. 하지만 케이트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 것 같습니다. 님이 유명해지면 이 글을 내 인생의 영화로 잡지에 기고해도 좋을 가슴으로 다가오는 글입니다. 난 전남대 인문대앞 벤치를 좋아했지요. 덩굴나무(?)가 그늘지게했던 그 벤치. 님의 글을 읽으며 님의 심정 깊이 전해져왔습니다. 어떤 분인지 한번
만나뵙고 싶네요. 전화목소리만이라도. 열심히 치열히 살았던 인생, 보람을 꼭 얻으리라 믿습니다. 님의 행복과 사랑을 기원드려요. 편안한 주말 되시길 빕니다. 자주 뵙기를 소망하며....
우연히 '추억'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생각을 놓치기 싫어 바로 적었던 글이었습니다. 쓰다보니 옛날 생각이,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것들이 제 자신도 모르게 술술 나와 거침없이 적었던 글이었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좋은 말도 감사드립니다.
카페는 여전히 지리멸렬이지만 그래도 좋은 분들이 조금씩 늘어남에 조그만 보람을 얻고 있습니다. 좋은 여자분들은 많은데 남자분들이 좀 부족하군요. 활기차고 재밌는 카페로 만들어봐야 할텐데... 노력해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