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초청받아 염불하는 일
타인의 청을 받고 염불을 닦는 데에는 세 가지 이익이 있다.
첫째, 자신의 수행이 용맹해진다.
둘째, 단월(시주)을 도와 염불을 하려는 마음을 내게 한다.
셋째 대중의 이익을 성취해준다.
공덕에는 체와 용 두 가지가 있다. 체는 본인에게 남고, 용은 타인에게 베풀 수 있다.
묘락대사께서 말씀하기를, “선법의 체를 타인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이는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를 해석하는 글이다.
趣他請,修念佛者,有三種利益:
一、自行勇猛也,
二、助檀那願念也,
三、爲能成衆利益也。
功德有體用之二:體留自,用施他。
妙樂大師云:以善法體,不可與人。
此是釋「願以此功德」之文也。
우리가 신도들의 초청을 받고 염불하러 가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여기에 세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수행이 용맹해진다’: 남이 당신에게 염불을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당신은 용맹스럽게 염불을 하게 됩니다. 예컨대 그날 돼지를 잡던 노인이 왕생하려 할 때 우리가 염불을 해주러 갔었는데, 다들 얼마나 정성스럽고 간절하고 용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특히 점심시간에 귀신이 왔을 때입니다(귀신들이 왔을 때, 어깨에 메고 있던 칼은 문짝만큼 넓었고 엄청나게 큰 자물쇠에다 기다란 쇠사슬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점심 때 공양시간이 돼서 저와 스님 몇 분이 먼저 집을 나섰습니다. 이때 그 노인은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에서 우리는 배웅하러 나오려 했었지요. 정신없는 사이에 문밖을 나와서 우리를 배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 앞에서 어떤 귀신이 쇠사슬을 들고 그를 묶으려 하는데, 수많은 귀신들이 새까맣게 모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서둘러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스님에게(광스님은 아직 방안에 남아서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큰일 났어요! 염불을 좀 빨리 해주세요, 느리게 하면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염불을 하니까 귀신들은 바깥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들어오질 못했습니다. 그녀가 한 마디 한 마디 이어서 빠른 속도로 염불하자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서 빠른 속도로 염불하였습니다. 제가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들어보니 ‘무슨 염불을 이렇게 빠르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광스님이 말하기를, “그녀 자신이 이렇게 염불하자고 요구한 거예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머리를 꽉 껴안고 있는 것을 본 저는, 보자마자 바로 업장이 나타나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인경을 받아서 빠른 속도로 쳤습니다. 그녀의 딸과 사위도 모두 꿇어앉아서 박자에 맞춰 염불하였습니다. 나중에 그녀가 말하기를, “스님께서 인경을 치고 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한 마디 한 마디씩 틈새 없이 염불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함께 조념을 하던 마선홍(인명)도 “아! 저도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방금 그 시간동안 염불을 가장 잘 한 것 같아요! 염불을 하고 난 후에도 머릿속엔 온통 부처님 명호뿐이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염불을 하는데 전혀 빈틈없이 질서정연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수행이 용맹해진다’는 것입니다.
‘둘째, 단월(시주)을 도와 염불을 하려는 마음을 내게 한다’: 우리가 염불을 할 때 그녀 주변의 사람들, 그녀의 아들·며느리·딸·사위, 그리고 그녀의 친속과 그녀 주변의 신도들도 모두 염불하기를 발원합니다.
‘셋째, 대중의 이익을 성취해준다’: 수많은 중생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곁에 있는 그런 염불하지 않는 사람들, 구경나온 사람들, 희한한 일을 보러 온 사람들, 또는 병문안을 온 사람들, 그들이 우리가 안에서 염불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선근을 심게 됩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이런 곳은 여러분들이 기회를 잘 포착해서 되도록 참가해야 합니다. 특히 임종조념의 경우, 저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실습기회니까요! 우리는 죽은 척 꾸미려 해도 꾸밀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몸이 건강한데 당신이 ‘저도 실습을 해보고 싶어요’라고 할 순 없잖아요!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 ‘내가 죽을 때도 이런 모습일거야’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몹시 고통스럽고 몹시 아쉬워하며, 두 눈엔 눈빛이 흐리고 온몸이 아픈 등등, 너무나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이고! 내가 죽을 땐 이 사람처럼 죽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당신이 그들처럼 죽지 않으려면 지금 그들처럼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가 살았을 때 돼지를 잡고 업을 짓고 욕을 하며 염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은 염불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다보면 당신은 경각심이 생기게 되고 무상감이 생기게 되며 죄악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중생들에 대해 연민심과 동정심이 생기게 되고, 아미타부처님에 대해 의지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며, 당신의 자비심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은 생동감이 넘치는 아주 좋은 교육과정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에게 절을 해야 합니다. 그는 당신의 선지식이니까요.
화장터와 병원, 임종을 앞둔 환자의 병상 앞은 가장 좋은 실습기회이므로, 놓쳐서는 안 되고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당신이 죽음을 두려워해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땅히 많이 보고 많이 알아둬야 합니다. 많이 보다 보면 당신에게 지혜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만일 자주 조념에 참가한다면, 임종하는 사람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그의 마음속에 어떤 응어리를 풀어줘야 하는지, 우리는 어떠한 언어로 그를 타일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이 있게 되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경각심이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자주 참가해야 합니다.
‘공덕에는 체와 용 두 가지가 있다. 체는 본인에게 남고, 용은 타인에게 베풀 수 있다’: 이것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염불도 많이 하지 않았는데 그 공덕을 전부 남에게 준다면 저에게 남는 게 없잖아요”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삼만 번 염불을 하고 나서 “원컨대 이 만 번의 염불을 저의 아버님께 회향하고, 만 번의 염불은 제 어머님께 회향하고, 남은 만 번의 염불은 제가 갖겠습니다……”라고 회향합니다. 이것은 이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체는 본인에게 남고, 용은 타인에게 베푼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염불한 삼만 번 공덕의 체는 모두 당신한테 남아있고, 공덕의 용은 남들에게 베풀어줄 수 있습니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여기서 전단향을 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전단향을 태우면 향기가 진동하게 되겠지요. 본체는 이곳에 남지만 향기는 멀리 퍼져나가게 됩니다. 당신은 상관없잖아요! 향은 여전히 당신이 있는 곳에 있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퍼지게 됩니다. 이것을 ‘체는 본인에게 남는다’고 말합니다. ‘용’이란 전단향의 쓰임새인데 다른 사람이 있는 곳까지 퍼지게 됩니다.
이는 마치 등을 켜는 것과 같은데, 당신이 방안에서 밝은 등 하나를 켜면 등은 당신이 있는 이곳에 있지만 빛은 바깥까지 비추게 됩니다. “아! 이 등은 남을 비춰서는 안 돼! 남을 비추면 내 등이 작아질 테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등은 그대로 남아있으니까요. 빛은 남에게 주더라도 체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염불한 공덕의 체는 우리 마음속에 있어서 남에게 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남에게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있기에 손실되지 않습니다. 이 기능을 당신이 회향하지 않으면 남들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치 이 문과 같아서 우리가 방안에서 등을 켰으나, 당신이 문을 열지 않으면 바깥에서 길을 걷는 사람들은 여전히 어두운 길을 걸어야 합니다. 당신이 문을 열어야만 남들도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안에서 염불할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의 문과 같습니다. 우리가 회향을 하면 문이 열리면서 빛이 바깥으로 나가게 됩니다. 당신의 아버지에게 회향하면, 불광은 당신의 아버지가 계시는 유명계를 비추어 당신의 아버지가 불광을 얻게 되고 이익을 얻게 됩니다. 이것을 ‘용’이라 부릅니다. 당신의 이 용은, 당신이 한 사람에게 회향하든 열 사람에게 회향하든 당신의 체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에게 회향하면 나에게 남는 게 없지 않을까……’ 여전히 매우 많습니다.
묘락대사(妙樂: 형계 담연대사)께서 말씀하기를,
“선법의 체를 타인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妙樂大師云:以善法體,不可與人。
선법의 체는 우리의 본성 속에 남아 있으므로 결코 남에게 줄 수 없습니다.
이는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를 해석하는 글이다.
此是釋「願以此功德」之文也。
이는 선도대사의 회향게인 ‘원이차공덕, 평등시일체’를 해석한 것입니다. 어떻게 남에게 베풀까요? 우리가 염불할 때, 한 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위없는 공덕을 우리의 마음속으로 거두어들이게 되고, ‘평등시일체’는 그 공덕의 용이므로 중생들이 그 이익을 얻게 됩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풍경마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