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 제주 그곳에서 빛난다
저-조연주
190책명-제주 그대로 빛난다.hwp
출- 황금부엉이
독정-2018.2.9.토
ㆍ무언가를 꼭 남겨야 하는 여행보다는 덜어내는 여행을 하려고. 중요한 것은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누리는 것인데 너무 모르고 살았다. 우리 인생도 덜어내고 단순하게 만들수록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
ㆍ목장갑을 끼고 쓰레기만 치우고 있는 내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쓰레기와 함께 사장님도 버리고 싶었다.
ㆍ나만 알고 싶은 곳이었는데 점차 알려지면서 괜히 불안해졌다. 변할까봐. 그러면 내가 실망할까봐. 진짜 별 걱정이다.
ㆍ다짐은 맨날 해도 돌아서면 잊는다는 게 함정
ㆍ제주 인심- 예약할 때 미리 돈을 받지 않고 후불로 뗘날 때 돈을 받는다. 그마저도 달라는 말도 안 한다. 도망가면 어쩌려고 저렇게까지 천하태평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인께 전화해서 돈을 두고 가겠다고 한다. 아주 여유 있게 그렇게 하라며 잘 쉬었냐고 물었다. 제주 사람들의 이런 여유로움, 정말 닮고 싶다.
ㆍ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물통도 채우고 다시 걷는다.
ㆍ주말에 연인을 만나듯 제주를 만나러 떠나곤 했다. 그 공기를 마시고 오면 마음이 편해졌다. 아름다운 풍경 덕에 마음의 크기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았다.
ㆍ종달리는 종처럼 생긴 산, 지미봉 밑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마을 북동쪽에 165m의 지미봉이 우뚝 솟아 있다. 종달의 한자 뜻이 ‘마침내 다다랐다’는 뜻이고 지미의 한자 뜻은 ‘땅끝’이다. 그러고 보니 종달리는 동쪽마을 끝에 있다.
ㆍ“문을 왜요? 아, 도둑 들까봐? 가져갈 것도 없어요. 필요한 거 있음 그냥 주죠. 뭐 얼른 타세요.” 나만 불안한 걸까. 사장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관심도 없다.
ㆍ바다를 보며 음식을 먹으면 더 맛있다. 바다와 함께 하는 식사는 모두 성공이었다.
ㆍ<빈집에 편지 써두기>
짐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는 거 보니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편지를 남기고 왔다. 혹시 매물로 내놓을 생각이 있으시면 연락을 부탁한다고. 이렇게 시작된 편지를 빈집이 보일 때마다 쓰게 됐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직접 뭔가 해보고 싶었다.
ㆍ물로 대신하고 홍차를 포기하려는 순간
“그냥 드세요. 500원인데요. 뭐.”
“아니에요. 그래도 장사하시는 건데 어떻게 그래요.”
“다음에 만나게 되면 주세요.”
그냥 믿어주는 제주사람들을 보면 모든 일에 의심이 많은 나는 한없이 부끄럽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을 한가득 안고 살았을까.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엇이든 의심하기 전에 믿어주면 믿어주는 만큼 내가 행복해진다.
어릴 때 자주 먹었던 쌕쌕이라는 귤 음료수를 내게 고맙다고 준다. 이게 아직도 판매되고 있다니 신기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심한 내가 모르는 사람을 걱정하고 도움을 주다니. 어차피 도움은 주고받는 것이다. 이래서 여행지는 스승이자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ㆍ우리가 놀고 들어온 시간에 비가 온 것. 그 덕분에 우리 밭 채소들이 말라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또 한 번 들뜨고 기뻐했다. 나는 감정을 느낄 기력도 없었다.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고 바다를 바라보며 쉬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편안하다.
“딸, 아빠가 오늘 왜 이렇게 눈에 확 튀는 색 옷 입었는지 알아? 공항이나 제주나 사람이 엄청 많잖아. 혹시나 잃어버리면 네가 아빠를 쉽게 찾으라고 일부러 이렇게 입고 다녔어.”
그러고빈 항상 앞장서서 걷던 아빠가 제주에 와서는 내 뒤만 따라다녔다. 어릴 땐 내가 그렇게 아빠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이젠 내가 보호자가 됐다.
ㆍ비양도가 조용한 이유 중 하나는 자동차가 없기 때문이다. 섬 둘레가 3km 정도밖에 안 되어 자동차가 필요 없다. 생각에 잠겨 조용히 걷기에 최적 장소.
ㆍ투명하게 부서지는 햇살과 뺨을 간질이는 제주의 바람, 푸르게 높아가는 하늘, 초록이 짙어지는 잎사귀까지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ㆍ해녀분들을 직접 보니 저 숨비소리가 얼마나 많은 인내 뒤에 뱉어지는지를 하나라도 더 건져서 가족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존의 숨소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흡이 아닐까. 해녀들이 물질하는 시기에는 해산물도 판매하는데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구상에서 가장 진취적인 여성이라는 해녀들의 삶을 보여주는 옇화 다큐멘터리 <물숨>- 살기 위해 숨을 멈춰야만 하는 여인들의 진짜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그녀들의 삶은 물빛보다 더 빛나고 위해하다. 해녀에게 바다는 삶의 무대이자 무덤이다. 바다는 사람이 위로해줄 수 없는 삶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준다. 그런 바다 속에서 눈물을 삼키고 웃음을 던지던 해녀들의 삶이야말로 제주의 역사이자 정신. 해녀는 제주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유난히 하도리에서 만나는 해녀들의 모습이 정겹고 좋다.
“살아 보니까 별 거 없어요. 그냥 내 옆에 내 사람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게 돼요. 그게 거의 인생 전부예요.
ㆍ일본어인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꾼 ‘오덕후’의 줄임말 ‘덕후’ -오타쿠는 1970년대 일본에서의 신조어로 원래 집이나 댁(당신의 높임말)의 뜻이지만 집 안에만 틀어박혀 취미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어떤 분야에 몰두해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 의미로로 쓰인다. TV나 잡지에 소개되는 덕후들을 보면 게임, 만화, 캐릭터 분야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자신만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몰두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여유가 있어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 자신을 잘 정의하고 있어야 자신의 한계도 알게 되고 자존감도 생기며 휘둘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덕후가 더 창의적. 자존심 높다. 자신이 무섯 좋아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살마들은 의욕이 없고. 틀에 박힌 생활을 하게 된다.
ㆍ제주도에서 땅을 구해 집을 짓고 싶다는 로망- 가격이 비싼 건 둘째 차고 습기 때문에 빨래도 잘 안 마르고 집안 물건도 쉽게 녹이 쓴다는 단점이 있다.
ㆍ제주의 푸른 에너지로 가득 채워지고 가을 햇살 머금은 바다가 반작거린다. 왜 밖에 나오면 배가 고플까. 아담한 집들이 모여 길을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왠지 나다운 여행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땡 잡았다. 주민들의 연령대는 조금 높아 보였고 마을은 한산했다. 코발트불루 바다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검은 현무암의 조화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다. 나의 주특기, 혼자 바다 보며 앉아 있기를 했다. ‘오는정 김방’이 함께해줘서 배고프지 않았다. 집집마다 키우는 진돗개들은 다행이 묶여 있었고, 심심했는지 누가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돌담 위로 고개를 내밀곤 한다. 나무와 돌담으로 이어진 마을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
ㆍ동네 사람 낮은 듯 들어와 밥을 먹으라 하시는데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다. 제주 자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건강한 밥상이었다.
ㆍ존재만으로 고마운 것들이 있다. 사라지지 않고 같은 자리에 변치 않는 모습으로 있는 것들. 보기만 해도 좋다. 제주에서만큼은 세상의 온도와 상관없이 내 마음의 온도는 항상 따뜻하다. 늘 새상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장소에 있는 듯.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나인 체로 지낼 수 있었던 시간들이, 이력서 한 줄 더 채우려고 살던 시간보다 훨씬 편안했고 행복했다.
<바람에 실려 보낸 이야기>
김영갑
자갈밭에 씨 뿌리고 거두어도 늘 배고픔에 시달여야 했던
제주 사람들의 생명력을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무자맥질하는 해녀들의 강한 생명력을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헤아릴 수 없다.
ㆍ왜 그렇게 걱정하고 있니?-무사 경 조들암시니?(제주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