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제목 : 마녀 위니(Winnie The Witch)
-그림작가 : 코키 폴은 1951년 짐바브웨에서 태어났습니다. 1987년에 <마녀위니>로 어린이 도서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주목받게 되지요. <꿈 많은 금붕어>, <마녀위니의 겨울나기>, <공룡>, <샌지와 빵집주인> 등 코믹한 주인공들이 펼치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인기를 모으는 작가랍니다. 시간이 나시면 <샌지와 빵집주인>도 읽어보세요. 정말 재밌어요.
-글 작가 : 밸러리 토머스는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고, 그림동화에 글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번 역 : 김중철은 성균관 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어린이 도서 연구회 전문 위원이면서, 어린이 책 출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판사 : 비룡소
출판년도 : 1996년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녀 위니는 숲 속 까만 집에서 눈동자만 연두색인 까만 고양이 윌버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양이 윌버가 까만 것이 늘 말썽이었지요. 의자도, 깔개도, 침대도, 이불도, 담요도, 목욕통까지 까만 집에 고양이 윌버가 눈을 뜨고 있으면 마녀 위니가 잘 볼 수 있지만, 고양이 윌버가 눈을 감고 잠을 자면 마녀 위니는 윌버를 전혀 볼 수가 없었답니다. 고양이 윌버에게 걸려 심하게 넘어진 어느 날 마녀 위니는 요술지팡이를 휘둘러 윌버를 연두색 고양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제 고양이 윌버가 집안 어디에 있어도 잘 볼 수 있었지요. 그러나 연두색이 된 고양이 윌버는 마녀 위니의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풀밭으로 내 보내지게 됩니다. 마녀 위니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다가 풀밭에 앉아 있는 연두색으로 변한 고양이 윌버에게 걸려 세번이나 공중제비를 돌고 장미 덤불 속에 처박히고 말고요. 마녀 위니는 화가나서 요술지팡이를 휘둘러 고양이 윌버를 알록달록한 고양이로 만들어 버리고 말죠. 고양이 윌버는 어디에 있어도 잘 보였지만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큰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서 숨게 됩니다. 고양이 윌버는 너무나 슬퍼했고, 마녀 위니는 고양이 윌버를 좋아했기 때문에 고양이 윌버가 슬퍼하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요술지팡이를 휘둘러 고양이 윌버를 까만 고양이로 만든 후, 다시 요술지팡이를 휘둘러 까만 집을 빨간 지붕에 빨간 문이 달린 노란 집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제 까만 고양이 윌버가 어디에 있든지 마녀 위니는 고양이 윌버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작품에 대한 저의 생각을 조금 말할까 합니다.
이 책은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깁니다. 그 중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사랑과 우정은 상대방을 나에게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위해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 변화에 가장 알맞은 대상인 마녀라는 환상의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상상의 공간 속에서 요술 봉 하나로 무엇이든 변화가 가능한 초자연적 세계를 만들어 내게 되지요. 무엇이든 변화시킬 수 있는 마녀 위니는 자신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고양이 윌버를 자기 편한 대로 변화시키지만, 고양이 윌버를 변화시켜서는 둘 다 행복해 질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마녀 위니는 자기가 가진 환경을 변화시킴으로 해서 고양이 윌버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행복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위와 같이 포괄적인 주제는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잘 이해 될 수 있지만 어린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먼저는 일차원적으로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염색하고, 우리에 가두는 등 인간의 편리에 따라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키워 나간다면 동물들이 더 행복해 하겠죠?(물론 저도 강아지 머리에 핀을 억지로 꽂아 주긴 하지만*^^*)
또한 이 책은 색깔에 대한 개념을 익혀 나갈 수 있습니다. 온통 검정색의 세상에서 고양이 윌버의 색깔변화와 후반부의 집 색깔의 변화를 통하여 어린이들은 색깔 감각을 익힐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주제로부터 출발하여 차츰 주제를 넓혀 나아가 어린이들이 동물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가족, 친구로 확대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구성은 기승전결의 흐름을 갖는 단선적인 구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까만 집에 사는 고양이 윌버조차 까만색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지요. 눈만 연두색인 윌버가 눈을 감고 잠을 자면 잘 보이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계단에서 심하게 넘어진 날 고양이 윌버의 색깔을 연두색으로 바꿨는데, 또 다시 풀밭에서 넘어져 고양이 윌버의 색깔을 알록달록하게 바꾸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색깔이 변하였지만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점에서 고양이 윌버는 슬퍼하지요. 밤에도 아침에도 내려오지 않는 고양이 윌버의 슬픔이 클라이막스입니다. 마녀위니는 고양이 윌버를 원래의 색으로 바꾸고 대신 집 색깔을 화려하게 바꿈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책의 묘미는 마지막 반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고양이 윌버의 색깔을 바꿔 오던 마녀위니였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고양이 윌버의 색깔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지막 마술을 통해 집 색깔을 바꾸게 된다는 데서 '아하!'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합니다. 이를 통해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 해결의 기회도 제공하게 되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이 책의 구성은 단선적인 형식를 갖고 있으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반전으로 독자의 즐거움을 더 해주는 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둘 뿐입니다. 마녀 위니는 요술 지팡이로 무엇이든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 존재는 어린이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을 대변하기도 하고, 어린이들이 되고 싶어 하는 상상 속의 인물로 무엇이나 가능하게 하는 마술을 부릴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지시하고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어른을 대변한다고 본다면 아이들은 마녀 위니의 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 윌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린이들이 되고 싶어하는 무엇이나 가능하게 하고 마술을 부리는 존재로 보면 고양이 윌버는 어린이들이 키우는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으로 볼 수도 있구요.
중요한 것은 마녀 위니가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힘을 가진 존재가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고양이 윌버)에게 자신의 기분대로 폭력을 행사 할 수도 있고,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마녀 위니는 사랑의 대상이 되어 고양이 윌버를 위하여 기꺼이 배려해주는 것에서 어린이들은 사랑과 소속감의 욕구와 자기 존중과 타인에 대한 인정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마녀 위니가 살고 있는 집이 나타내는 색깔의 변화는 아주 중요합니다. 마녀 위니는 까만 집에 살면서 까만 침대에서 생활하고 까만 커피를 마시며 자신 밖에 몰라 자신을 위해 고양이 윌버를 마음대로 변화시키며 살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녀의 주변 색깔은 까만색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등장인물 자신의 마음의 색깔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녀 위니가 고양이 윌버를 위해 주변의 색깔을 변화시킬 때 그녀의 집과 모든 것의 색깔이 변화하지요. 그것은 마녀 위니의 마음이 밝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양이 윌버는 무기력한 존재로 보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른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양이 윌버를 보면서 독자인 어린이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배려해 주는 마녀 위니의 모습을 통하여 위로를 받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는 까만색으로 나타나지만 어린이 자신이 가진 컴플렉스까지도 있는 그대로 수용되기 원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 스러워 보이자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 모습은 어린이들이 자기 방에 들어가거나 이불속에 들어가는 모습과 아주 흡사하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타나는 고양의 윌버의 모습은 너무나 수동적입니다. 어린이들이 고양이 윌버를 동일시 하는 점에 있어서 고양이 윌버가 조금 더 능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길 바랍니다. 단지 힘이 있는 어른에 의해서만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힘으로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모습을 함께 넣어 준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답니다.(이런 이야기를 바꾸는군요*^^*)
언어 표현력을 보면 전체적으로 볼 때 언어의 반복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한 장면에서 설명을 할 때에 앞장과 뒷장을 연결하여 비슷한 문장으로 구성하여 어린이들이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 윌버가 두 눈을 뜨고 의자에 앉아 있으면, 마녀 위니는 윌버를 볼 수 있었어요. 어쨌든 윌버의 두눈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고양이 윌버가 두 눈을 감고 잠을 자면, 마녀 위니는 윌버를 전혀 볼 수 없었어요.~~'와 '고양이 윌버가 두 눈을 뜨고 깔개 위에 앉아 있으면, 마녀 위니는 윌버를 볼 수 있었어요. 어쨌든 윌버의 두 눈은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고양이 윌버가 두 눈을 감고 잠을 자면, 마녀 위니는 윌버를 전혀 볼 수 없었어요.'로 비교하여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집의 색깔을 설명하는 첫 장면과 바뀐 집의 색깔을 설명하는 마지막 장면을 대칭적으로, 반복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어린이들이 이 두 가지를 비교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의 특징적인 언어 표현은 마녀가 등장하기 때문에 주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하고 외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질 것 같이 친숙한 주문이기 때문이지요.
마녀 위니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수들을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걸려서 넘어지고, 넘어져서 화내고, 그렇지만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배려로 자기 자신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어린이들이 마녀 위니와 동일시하여 실수하고 덜렁거리기는 하지만 요술 지팡이로 요술을 부리고 또 그 요술로 인해 사랑하는 친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데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고양이 윌버와 동일시 한다면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 주는 데서 어린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녀 위니는 누가 보면 적합할까요? 마녀위니는 마술 세계라는 초현실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아중심성이 어느 정도 벗어나기 시작하는 연령이 되어야 내용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한 글씨가 작고, 반복성이 적다는 이 책의 특성으로 볼 때 이 책은 만 4세에서 6세의 어린이가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녀 위니 안에는 각각의 문화를 대변하는 선입견과 편견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인종과 성에 대한 것도 뚜렷하지 않고, 사회 문화적 배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등장인물이 마녀 위니와 고양이 윌버 그리고 지나가는 새들이고, 사는 곳 조차 모호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뭐라 말을 못하겠습니다.
혹시 그림작가가 보시면 평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녀 위니에 대하여 조금?(아니 많이^^) 적어 봤습니다.
마녀 위니는 요즘처럼 자녀 수가 적어 이기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고 생각해 보는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데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