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교회와 안상홍의 증인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안상홍의 증인들은 안식일과 함께 유월절까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은 죽은 교주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믿으며 그 부인 장길자까지 신격화하는 기독교를 빙자한 사이비집단이다.
특히 안상홍의 증인(하나님의 교회)은 성경을 완전히 왜곡시키고 사람을 하나님으로 믿는 사이비적인 이단이므로, 더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을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으므로, 지금부터 안식교가 말하는 안식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보자.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전도를 하면서 안식일에 대한 질문을 한다는 것에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십계명을 지켜야만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4계명인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접근을 한다.
안식교회에게 있어서 이 안식일의 준수는 구원 받는 자와 최후에 남은 자의 조건이 되어질만큼 중요한 구원의 조건이 되어진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인은 십계명을 지켜야만 하므로 4계명인 안식일도 지켜야 한다.
2. 일요일은 태양신을 숭배하던 날이므로 지키지 말아야 한다.
3. 제사적 율법은 폐하여졌지만 계명은 폐하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연구하여 보자.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십계명 중, 간음이나 살인을 하지 말거나 도둑질을 하지말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알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불신자도 간음과 살인,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가?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구원을 받는가? 우상을 섬기지 않는 불신자들도 많다.
물론 십계명이란 당연히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것이지만 "그것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십계명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면 유대교도 구원을 받는가?
안식일이 구원의 조건이라면 이스람교도 구원을 받는가?
구원의 조건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추가시킨다면 그곳은 이단이다.
이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율법과 계명에 관한 항목으로 다시 자세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던 것이다.(마22:40)
안식교회의 핵심교리는 "남은 교회"이다.
즉 안식일을 지키는 자신들만이 최후에 멸망당하지 않는 "남은 자손"이 된다는 것이다.
안식교의 가장 문제점은 주일을 지키는 자는 사단의 짐승의 숫자로 멸망당하는 자들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점이다. 일요일은 원래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독교가 태양신을 섬기는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면 태양신을 섬기는 것인가?
그렇다면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안식교는 Saturn 이라는 토지의 신을 섬기는 것인가?
1) 안식일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안식일을 어떻게 해야만 제대로 지키는 것일까?
십계명중 4계명을 잘 보면, 그 계명은 "무조건 쉬어야만 한다"는 것이며 "육축도, 종도, 손님까지도 일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 아들, 딸, 여종, 남종, 객, 육축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날 (출20:10)
# 처소에서조차 나오지 못하는 날(출16:29)
# 불도 피울 수 없는 날(출35:3)
# 스스로 괴롭게 하는 속죄의 날(레23:32)
# 번제등의 제사를 지내는 날(민28:10)
# 장사를 할 수 없는 날(느10:31)
# 성문을 닫으므로 성문 밖에 나갈 수 없음(느13:19)
# 오락을 하지 못함(사58:13)
# 짐을 지지 못하는 날(렘17:21-22)
즉 안식일은 쉬는 날이며, 안식일에 날짜를 맞추어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은 신구약 성경전체를 찾아 보아도 없다. 만일 구약대로 안식일에 예배를 드린다면 상당히 불편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의 주일은 "예배를 드리기 위한 날"이다. 다시 말하여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만든 날이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공식예배일로 지정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수요예배나 금요예배 혹은 새벽예배도 드린다. 시간적인 여유만 있다면 매일 드리면 어떠하겠는가? 우리 남선교회 연합속회예배는 금요일에 열리고, 소속남선교회 예배는 토요일에 열린다.
안식교의 문제는 바로 그것에 있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면 구원을 잃는다고 말하며 짐승의 숫자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단이 분명하다.
우리 교회의 신실한 성도는 주일에 근무를 하기 때문에 주일예배를 참석치 못한다. 그는 대신 수요예배를 드리며 주일에는 오후예배만을 참석한다.
안식교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구원을 잃는단 말인가?
하나님은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며 내면적인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신다. 하나님을 고작 날짜만 따지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라.
어느 날에 예배를 드리면 멸망하고, 어느 날에 예배를 드려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은 외식주의와 형식주의가 되어진다.
안식일 날짜 지키기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유대교와 이스람교들은 구원을 받았는가?
안식일과 유월절의 날짜를 그렇게 잘 지킨 유대인들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는다.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을 한 어떠한 죄인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원래 안식일이란 뜻은 헬라어, "솨바트"(멈추다)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불도 피울 수가 없었으며(출35:3) 짐도 들 수가 없었고(렘17:22. 느13:15) 정해진 거리 이상의 먼 거리를 갈 수 조차도 없었던 것이다.(행1:12)
안식일에 일을 하면 심지어 죽이기조차 하였던 것이다.(출31:15)
안식일을 성경대로 지키려면 안식교인들은 불도 피우면 안되므로 밥도 먹지말고, 먼 곳에 있는 교회에도 나가면 안되며 일도 하면 안된다. 또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살인을 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안식교회가 율법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라도 율법을 지키거나 행함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며, 우리의 구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받는 은총때문이다.(롬11:6. 갈2:16. 딤후1:9)
구약성경에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구절이 있는가?
안식교회에게는 애석하게도 신약에는 단 한마디의 구절도 나와 있지 않는다.
만일 안식일의 준수가 "남은 교회"라는 조건이 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분명히 신약성경은 몇번이라도 강조하였어야만 한다.
오히려 성경은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갈4:16. 골2:16)
안식교인들은 당연하기 때문에 신약에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씀은 신약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가 있다.
안식교회에서는 예수님과 바울도 안식일을 지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님과 바울이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다"(눅4:16. 행17:2)는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즉 예수님과 바울도 율법과 규례대로 안식일이면 회당에 감으로서 안식일과 율법을 지켰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초신자들이 얼핏 들으면 미혹되기 쉽다
이 구절에서 "규례(헬라어: 에토)"는 "전례, 습관, 관습"이라는 해석이 올바른 번역이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과 바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습관이나 관습, 혹은 전례대로 회당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즉 그 목적은 "전도와 선교"때문이며, 그 회당에 그리스도인이 있었던 경우는 성경에 단 한번도 없었으며, 오직 유대인들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많은 유대인들을 동시에 만나기 위하여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며, 전도하기가 가장 쉬운 곳이기도 하였다.
예수님이나 바울의 경우, 안식일에 회당에 가는 것은 늘 해오던 습관적인 전도사역이었던 것이다.
그 "에토"라는 단어를 찾아보자.
마태복음2:15를 보면, 명절이 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에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안식교의 주장대로라면 본디오 빌라도마저 유대인의 율법을 지켰는가 보다.
사도행전17:2에서는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일 "에토"라는 단어가 율법의 규례를 말한다면, 바울은 "자기 자신의 율법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것이 되고 만다.
또한 마가복음10:1에서 예수님은 모여드는 무리들을 위하여 "다시 전례(에토)대로 무리를 가르치셨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전부터 자주 모여드는 무리들을 가르치셨던 전례대로 가르치셨음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즉 "에토"는 전의 예(전례)나 늘상 해오던 일, 습관, 관습등을 의미한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것은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함이었으며, 실제로 행18:4를 보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며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행17:2)
회당(헬라어: 쉬나고게)은 바벨론 포로기에 시작되었던 곳으로 율법을 가르키는 곳이지만, 성전을 대신 하는 장소개념이 결코 아니다. 그곳은 사법적인 형벌을 위한 곳(마10:17)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작은 집회를 갖는 작은 시골의 새마을회관과 같은 구심적인 장소개념이었다.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없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가 아니라 제사를 지냈으며, 회당은 제사를 지내는 곳도 결코 아니다.
또 예배란 십자가 사건 이후(성전의 휘장이 찢겨난 사건 이후부터) 기독교인에 의하여 드려진 것이다.
즉 유대인들이 제사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안식일에 회당에 모인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야만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당에 모였던 것이다
예수님과 바울은 늘상 해오던 전례대로 안식일이 되면 회당을 찾았는데, 유대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며 선교와 전도의 장소로 찾은 것이다.
예수님과 바울이 과연 안식일에 제사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회당에 찾았는지 묻고 싶다.
회당에서는 제사나 예배를 지내지 않는다. 그곳은 그리스도인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안식일은 이미 폐하여진 절기와 월삭과 날이다.
호세야2:11을 보면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라고 하나님이 안식일과 모든 구약의 명절을 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호세야 선지자를 통하여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라고 이미 말씀하셨으며,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변치 않으신 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다.
어떤 안식교인은 호세야는 북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경고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로마서는 로마사람들에게만 해당되며,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가
하나님을 거짓말하시는 분으로 만들지 말자.... 하나님은 분명히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였으며, 그 말씀 그대로 지금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의 명절을 지키지 않는다.
안식교와 같이 안식일만큼은 지켜야 한다든지, 안상홍의 집단들처럼 유월절까지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비성경적인 주장이 된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신약에 와서 안식일이란 문자적이며 숫자적인 일곱째 날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구약의 명절은 신약에서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정래일의 그림자다 된다. 예를 들면 구약의 유월절은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예표한다. 즉 유월절은 그림자였으며, 예수님이 그 실체가 된다.
구약의 칠칠절(맥추절)은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예표한다.
이미 이야기하였듯이 안식일은 예배를 드리는 날이 아니라, 손님, 종과 육축까지도 포함하는 무조건 쉬는 날이다. 어느 안식교인은 이 성경본문을 증거로 대면서 안식일에는 성회를 드리라고 했다고 주장한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23:3)
위 성경본문만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면 정말로 일곱째 날 안식일은 성회를 드리는 날로만 해석되어진다.
그러나 다음 이어지는 성경본문을 추가하여 보자.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
하니라.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
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
도 하지 말지니라(레23:4-8)
위 성경본문은 안식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절기, 즉 무교절기를 말하는 것이다.
더욱이 첫날에도 성회를 드리고 일곱째 날에도 성화로 드리라는 것이며, 그런 식의 해석이라면 안식일뿐 아니라 일요일에도 성회를 드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방법은 쉬어야만 하는 것이다.
2) 안식일의 참의미
예수님은 안식일이 지켜야만 하며 쉬어야만 하는 날이 아님을 이미 말씀하셨다.
그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은 비난하였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며(마12:2. 막3:4)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요5:17)
안식일의 참의미는 미래적이며 종말적인 "참안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4:9)라고 기록하였으며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히4:11)라고 말하였다.
안식일이란 장래일의 그림자이며, 미래적이고 종말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아있는 "참안식"의 예표일 뿐이다.
유월절의 실체는 어린양이신 예수님가 된다. 즉 유월절은 장래일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며, 실체적인 몸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으며, 예수를 믿는다면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
안식일의 주장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의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 하노라"(갈4:10-11)
성경본문이 말하는 것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지 말라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을 지킨다면 바울이 그동안 성도들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자면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지금 안식일을 지키는 안식교회를 향하여 과연 바울은 무엇이라고 비평을 할까?
지금도 혼합 율법주의자를 "갈라디안주의"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하는데, 갈라디아교회에는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유대주의적 혼합율법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날과 달과 절기를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들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를 믿기는 믿었으므로 그들을 혼합율법주의자라고 한다.
안식교회는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 구약의 음식물에 대한 규제를 지켜야만 한다는 둥....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고 하는 사람들로서, 오늘날의 갈라디안주의자인 것이다.
구원의 조건은 당연히 믿음이다.
즉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며,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안식교는 예수를 믿음이란 것 외에 구원과 멸망의 조건으로서 "안식일 지킴"을 추가시킨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예수를 믿는 믿음 외에 또 하나의 다른 조건을 하나 추가시키는 것이 된다. 그러한 주장이 다른 복음이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에 대해서 뒤에 안식교의 명백한 교리에 대해서 증거를 올리겠다)
더군다나 안식교는 신약의 "안식후 첫날"이 주일이 아니라 토요일이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몇몇 신약에서 표현되는 "안식후 첫날"의 예배를 주일이 아닌 것으로 변질시키기 위함이다. (예: 행20:7의 안식후 첫날의 예배)
즉 유대인들은 토요일 일몰까지를 안식일로 지켰으니 토요일 일몰 후부터 "안식후 첫날"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본인은 안식교의 두 목사와의 토론에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였다.
안식후 첫날은 분명히 주일(일요일)이며 첫 유형교회가 시작된 오순절도 주일이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도 주일이었다.
주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는 날이며, 구약의 율법적 안식일과 같이 아무 것도 하지않고 무조건 쉬어야만 하는 날이 아닌 것이다.
성경에서 "안식후 첫날"은 언제나 주일(일요일)을 가르킨다.
이 안식후 첫날이 토요일 일몰후를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눅24:13-27)
그들이 엠마오에 거의 이르었을 때에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운 일몰직전"이었다.(눅24:29)
두 제자는 예수님에게 식사를 권하였고, 그들은 식탁에 앉아 주님의 축사까지 받았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을 때에 이미 예수님은 없었고,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을 때가 바로 요한복음20:19의 "안식후 첫날"이며 누가복음24:36과 동일한 사건이 되어진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25리(10Km) 길이었으며(눅24:13) 경사가 심한 오르막 길이다.
보통걸음으로는 약 3시간이 넘어 걸린다. 이미 날이 기울어갔을 때에 그들은 목적지인 엠마오에 아직 도착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눅24:28 가까이 가매...)
그 시간에 이미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던 일몰직전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엠마오의 집에 도착하고, 식사준비를 하였고, 음식까지 먹었으며 축사를 받기까지 하였던 시간을 감안하여 본다면, 경사진 오르막 길을 25리를 아무리 뛰어갔다고 하더라도, 일몰직전에서부터 3시간은 충분히 경과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20:19의 "안식후 첫날"은 분명히 일요일 일몰 후인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의 일몰 후가 분명하므로, 안식교회의 주장대로라면 그날은 안식후 둘째날이 되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안식후 첫날이 토요일 일몰후라면 예수님이 토요일에 부활하신 것이 되어진다.
성경으로 볼때에 분명히 일요일 일몰 후이었음에도 안식후 첫째날이라고 불리웠던 것이다.
성경에서는 안식후 첫째날 여인들이 예수님 무덤에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주일(일요일)이며 토요일 일몰후를 안식후 첫째날이라고 표현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즉 바울이 설교를 하였던 행20:7의 안식후 첫날은 주일(일요일)이며, 연보를 하였던 매주일 첫날도 역시 주일(일요일)인 것이다.(고전16:2)
또 우리는 초대교회의 문헌을 통하여서도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주일(일요일)에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이그나티우스(110-117년경 순교)의 서신이 아직 남아있는데 그 서신을 보면 "더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에 속한 날(계1:10)을 지킴으로서...."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저스틴(AD100-163)의 제1변증서에는 "주일이라고 불리는 날에, 도시나 시골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곳에 함께 모여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사도들의 기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낭독자가 낭독을 마치면, 사회자가 가르치며 이러한 말씀을 본받아 살기를 권한다. 그리고 사회자가 같은 방법으로 자기 능력에 따라 기도와 감사를 드리고 회중들은 아멘으로 화답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폴리니와 트라얀 황제간의 교환서신(AD111년)에서도 "약속한 날에 그들은 날이 밝기 전에 모임을 갖고 신에게 하듯이 그리스도에게 교대로 찬송을 부르며 서약으로 서로 결속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초대교회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에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3) 안식일은 율법주의의 소산이다
안식교회의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의 날짜계산은 유대주의적 사고방식(유대력)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형식적인 율법적인 소산이 된다.
율법이란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곧 유대주의적 율법론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율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과 역활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가정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의 교인들에게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3:24)이라고 서신을 보내고 있었다.
즉 율법은 "무엇을 하면 안된다"는 금지조항으로써 죽이는 것이며, 믿음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새 생명으로 살리는" 은혜인 것이다.
율법으로는 아무리 의인이라도 죽을 수밖에 없지만, 은혜로서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를 믿는다면 그 죄값을 청산함으로서 살 수 있다.
율법이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며, 그것을 지킴과 행함으로는 구원을 얻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율법이란 죄를 깨닫게 하고, 알게 하기위한 기능으로서 더욱 강화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율법은 폐하여 지지 않는 것이며(마5:17) 더욱 굳게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이란 죄를 알게 하며 믿음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며, 그것을 지킴이나 행함으로 구원을 얻지는 못하는 것이다.
또 안식교가 주장하듯이 예수님도 안식일을 지키셨다는 주장과 아울러, 예수님도 율법을 지키셨다는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를 밝히려고 한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셨는가? 예수님은 하나님도 일하시므로 나도 일한다고 하셨다.
그러한 주장은 예수님마저 율법주의자로 만들어버리는 행위가 된다.
만일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구약적 율법을 그대로 지키셨다면, 예수님은 간음을 한 여인을 반드시 돌로 쳐 죽였어야만 한다.
분명히 구약의 율법으로는 간음을 한 여인은 반드시 죽여야만 하였기 때문이다.(레20:10)
즉 율법을 지키려면 여인을 죽이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된다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리라"고 하였으며 그 여인을 용서하셨다.
율법은 죄를 정죄하는 것이므로 범죄한 자를 벌하여야만 하지만,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눅5:32)
만일 예수님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셨다면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반드시 살리면 안되는 것이며, 무조건 쉬고 일을 하면 안되는 안식일에는 병을 고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신명기22장21절에는 창기를 돌로 쳐죽여서 악을 제거하여야만 하였으며, 잠언29장3절은 창기를 사귀지 말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창기와 세리같은 죄인들과 항상 함께 지냈다.
이것도 유대인의 율법을 기준으로 한다면 분명히 율법을 어긴 것이다.
또 안식일에 짐을 들 수가 없음에도 병고침을 받은 자에게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한 일도 있었다.
예수님이 새로 주신 계명은 "사랑"이다.(마22:37-40)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을 죽여야만 하지만, 예수님의 새 계명에 의하면 사랑이 되어진다.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 되어진다.(롬13:10)
안식일이란 하나님이 인간의 휴식을 배려한 사랑의 개념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으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그것은 종말적이고 최후적인 참안식, 주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의미하며 그것이 바로 구원을 의미한다.
땅의 안식년은 그 땅을 한해동안 쉬게함으로서 더욱 생산량을 늘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인간을 위한 사랑의 배려이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안식일이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막2:27)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다.(마12:8)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서 예수 안에서 참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4) 안식교의 율법주의
안식교회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음식물에 대한 교리에 대하여서는 신약 성경말씀은 안식교회의 주장에 전혀 반대가 되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롬14:2. 딤전4:1-3. 히13:9)
더욱이 비늘이 없는 생선등 구약적인 금지사항의 음식물은 먹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구약적인 율법주의적 교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엄연한 증거이다.
안식교는 이에 대하여 토론을 하면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는 "단지 건강상의 이유로 육식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답변을 회피하는데, 안식교의 교리는 분명히 육식을 하지 않도록 되어있다. 더군다나 돼지고기뿐 아니라 쇠고기같은 육식조차 먹지 못하는 것이다.
육식을 너무 자주 하면 건강에 좋지 못한 것은 맞지만, 안식교회에서는 간혹 육식을 먹어도 좋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과연 안식교회에서 레위기 11장의 구약적 음식물 금지사항을 "먹어도 좋다"고 하며 "다만 건강상의 이유로 자제하라는 권면"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쇠고기까지 먹지 못하는 규정은 어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가?
안식교의 여선지자인 엘렌화잇은 "하나님의 백성이 육식에 대항하여 굳게 서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내게 계시되었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말하고 있다
채식교리는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반성경적인 황당한 교리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맞아서 거짓말하는 자들
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4:1-4)
즉 식물을 폐하라라는 말과 혼인을 금하는 주장은 곧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자들이라는 성경말씀이다.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
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리라."(히13:9)
이 성경말씀도 식물에 대한 행함을 "다른 교훈"이라고 하고 있다.
과연 성경과 정반대의 견해를 주장하는 여선지자와 참성경말씀은 어떠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진리가 되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는 가짜 선지자이며, 성경대로 보면 그녀는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 다른 교훈이 되어지고 있다. 또 엘렌화잇은 자신이 십계명 중에 제 4계명이 빛나는 광채에 휩싸여 있음을 계시로 보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쪽으로 치우친 편견적인 성경관을 갖고 있다.
안식교가 구약성경의 율법적인 견지에서 성경을 그대로 따르기 위하여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유월절과 무교절도 지켜야만 하며, 칠칠절과 나팔절, 초막절같은 다른 명절과 절기도 함께 지켜야만 할 것이다.
또 안식교는 레위기23장을 예로 들며 안식일을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레위기23:5-6절과 같이 유월절과 무교절도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만 할 것이다.
또한 속죄일에 스스로 괴롭게하지 않는 자는 그 백성 중에 끊어져야만 할 것이다.(레23:29)
성전에 등잔불을 켜는 것도 영원한 규례이며(레24:3)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곡식과 떡을 먹지 말아야 하는 것도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가 되어야만 한다.(레23:14)
우리는 안식일과 같은 절기나 월삭과 날을 지킴으로 최후의 "남는 교회"가 되지 않는다.
구원의 조건은 단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의 은총이 된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추가시키면 이단이 되며 다른 복음이 되어진다.
안식교회는 왜 신약이 기쁜 소식이 되는지 이제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유대주의적이며 구약적인 율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단 한명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
과연 성경은 율법의 지킴으로 의인이 될 수 있다고 하고 있을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5) 계명과 십계명
과연 안식교회가 주장하는 계시록12:17을 자세히 살펴 보자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안식교회는 하나님의 계명, 즉 십계명(정확히 말하자면 4계명을 포함)을 지키는 자가 "남은 자손"이 되어진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4계명인 안식일 준수를 하는 안식교회만이 최후의 "남은 교회"가 된다는 주장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모든 성경까지 밝힐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며 단지 계시록에서만 살펴 보기로 하자
과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라는 남은 자손의 조건이, "십계명과 예수의 증거"만을 의미할까? 다음 성경을 읽어 보자.
계시록 1:2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계시록 1:9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계시록 6:9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
계시록 12:1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
계시록 20:4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
계시록 12:17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즉 안식교가 주장하는 계시록12:17의 "하나님의 계명"이란 "십계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광역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자신들의 교리만을 옳다고 증거하기 위하여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인용하고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며, 이단들은 주로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성경해석을 한다.
어느 교회의 도그마, 즉 교리는 성경에서부터 유래되며 시작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성경을 교리에 맞추어 단편적으로 인용되어지면 안되는 것이다.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여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곧 십계명으로만 해석되어지며, 그 십계명은 곧 안식일을 지키라는 4계명으로 다시 둔갑하여, 안식교회만이 남은 교회가 된다는 결론이 되어지는지 참으로 웃음만이 나올 뿐이다.
5) 안식일에 대한 이단적인 주장
안식교회의 주장대로라면, 안식일을 지키는 안식교회만이 남은 자가 되며,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기존교회는 사단의 인을 받은 짐승의 숫자가 되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안식교회는 일반교회를 전도할 때에 분명히 그러한 주장을 하고 다니며 기존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과 멸망의 조건은 바로 안식일의 준수가 되는 것이다.
아래는 안식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직접 인용하여온 자료이다.
<성서기초교리 32과/ 배도한 교회의 죄와 최후운명>
4. 하나님의 자비의 음성
" ......... 안식일이 없는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차이가 없다............사단은 오랫동안
이 안식일 계명을 파괴함으로서 하나님의 종교를 사람이 만든 일반종교와 차이
가 없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였다."
<성서기초교리 20과/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
3. 하나님의 인과 안식일
"고전8:5 이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도 많다. 여호와란 이름을 가지고도 누가 누구임
을 알수 없다. 오직 네째 계명만이 하나님을 인증시키는 표(인)가 된다."
안식일에 대한 교리에서 안식교가 이단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일반 기독교에 대해서 다른 종교와 같다고 주장하며, 사단이 만든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오직 안식일 계명만이 하나님을 인증시키는 표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예수를 믿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래 안식교의 주장(성서기초교리중의 내용)을 보자....
<참교회의 특색>
결론: 우리는 참교회에 속해야겠다. 참교회란 수나 부나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계명을 지키며 <예언의 신의 말씀>을 순종
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명중에 저버린 하나님의 안식일을 회복
하는 일을 해야한다.
윗문장에서 "예언의 신"은 안식교의 선지자라고 하는 엘렌화잇이다.
안식교는 엘렌화잇을 "대언의 영"이라고도 한다.
즉 이들이 말하는 참교회란 무엇인가?
예수님이나 성경말씀이 아니라 "계명을 지키며 예언의 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태까지 공부하였다시피 안식일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어떤 구절도 성경에는 없다.
그런데 안식교가 왜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까? 엘렌화잇의 말씀에 순종하여야만 참교회에 속하여지기 때문이다.
6) 율법과 계명의 차이점
물론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십계명은 지켜야만 한다.
안식교인들은 율법은 폐하여졌으나, 계명, 특히 십계명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럴듯하게 성경을 인용하면서, 율법과 계명을 서로 다르게 구별하려고 한다.
그들이 십계명을 지켜야만 한다고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곧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며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 준수는 구원의 조건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과연 율법은 폐하여졌지만 계명은 폐하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며, 성경에서 율법과 계명은 서로 다르게 구별되어지는가?
그렇다면 다음 성경구절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십계명이란 돌판에 기록된 것을 말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
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
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
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
데 있느니라"(고후3:7-11)
이 구절에 보면 분명히 돌에 기록된 것은 "죽게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또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율법은 분명히 돌에 새기지 않았으며 십계명이 돌에 새겨졌다.
안식교의 주장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자면, 십계명은 죽게하는 것이며 없어질 것이 된다.
물론 십계명이 없어졌으므로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돌의 직분과 영의 직분을 구별하고 있다.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의도는 돌의 직분과 영의 직분을 대조시킴으로 인하여, 영의 직분을 진정한 영광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의문"은 헬라어로 "그람마"이다
즉 돌에 써서 새긴 의문이란 "죽게하는 것"이며, 분명히 십계명을 지칭하고 있다.
물론 계명이란 단어는 구약의 모든 없어질 율법과 계명을 포함하는 규례들을 말하며, 구별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또 다른 증거로 에베소서의 구절을 보자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2:15)
본문에서 "의문"이란 헬라어로 "도그마"라고 기록되어있다.
즉 고후3장의 의문(그람마)도 죽게하는 것이고 없어질 것이며, 엡2장의 의문(도그마)에 속한 계명(엔톨레)도 폐하여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하신 것이다.
골로새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
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2:14-16)
본문의 의문은 엡2:15에서 폐하여졌다고 하는 "도그마"이다.
에베소서 본문은 의문(도그마)이 도말되고 제하여졌다고 하면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율법과 절기나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는 일들에 대해서 폄론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골로새서 2장의 본문에 의하면 의문(도그마)이 도말하고 제하여 버려졌으니, 더 이상 그러한 일로 폄론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안식교 목사는 그람마와 도그마는 다르며, 종이에 쓴 제사적인 율법(도그마)은 폐하여졌지만, 돌에 쓴 십계명(그람마)은 폐하여지지 않았다고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앞서 처음 인용한 고후3:7-11의 의문(그람마)은 분명히 "죽게 하는 것"이며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안식교의 자가당착적인 주장은 결국 4계명인 안식일을 지켜야한다는 주장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골로새서 2장14-16절에서는 도그마는 분명히 도말되고 제하여졌다고 기록되어있다.
게다가 앞서 예를 들었던 고후3:7-11의 그람마도 없어질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으며, 아래의 로마서2장27-28의 기록을 보면, 의문(그람마)이란 십계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할례를 하여야 한다는 십계명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그람마)
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
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그람마)에 있지 아니한 것
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2:27-29)
또 의문(그람마)은 묵은 것이며, 우리는 그동안 얽매였던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
이요 의문(그람마)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7:6)
십계명은 폐하여지지 않았으므로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사람들은 성경을 자세히 보라.
아래 성경구절에서 엔톨레(계명)은 제사와 의식적인 율법이 아니라, 십계명이 분명하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엔톨레)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롬13:9)
"네가 계명(엔톨레)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
하라 하였느니라"(눅18:20)
즉 본문에서 엔톨레라는 단어는 분명히 십계명을 의미한다.
물론 성경은 계명과 율법을 다른 단어로 엄격히 구별하지 않는다.
즉 제사적이며 의식적인 율법은 폐하여졌지만, 계명은 폐하여지지 않았다는 안식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만일 율법과 계명을 달리 구별한다면, 그 계명(엔톨레)이 사망에 이르는 것이며, 폐하여졌다는 분명한 성경적인 기록은 무엇인가?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엔톨레)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롬7:10)
다음 구절은 도그마와 엔텔로가 모두 폐하여졌다고 기록되어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도그마)에 속한 계명의 율법(엔텔로)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2:15)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엔톨레)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
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엣 계명
(엔톨레)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히7:16-18)
율법과 계명은 달리 엄격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법규를 의미한다.
아래 출애굽기는 돌판에 기록된 것이 계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두 일컬어 율법과 계명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출24:12)
또한 아래 구절은 모두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등을 율법이라고 한가지 의미로 언급하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지라"(왕상2:3)
"저희가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는도다"(왕하17:34)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너희가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
며"(왕하17:37)
신약에서도 율법과 계명은 엄격하게 단어상으로 구별되어지지 않는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마22:36)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미22:40)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
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
과 온 백성에게 뿌려"(히9:19)
다음 성경본문을 보자.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
으니"(엡2:15)
그렇다면 계명이 폐하여졌으니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경은 계명을 지키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계명이나 율법의 지킴같은 행위로서는 구원의 의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계명이 폐하여진 것이라고 하고 있을까? 그리스도의 육체로 폐하여진 것을 말한다.
살인과 간음을 하지 말아야만 구원을 받는가? 그렇다면 타종교도 불신자도 구원을 받는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인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것, 즉 살리는 것이 곧 복음이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
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
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롬7:12-13)
율법과 계명은 의롭고 선한 것이다. 그것들은 죄가 죄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계명과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다든지, 쓸모없는 것이므로 폐하여진 것은 아니다.
다만 살리는 법이 아니라 금지사항을 알려주는 죽이는 것이며, 율법이나 계명의 지킴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명과 율법은 왜 필요한가? 왜 일점일획이라도 폐하여지지 않았다고 예수님은 말하고 있을까?
율법과 계명은 지킴으로 인하여 구원의 의를 주지는 않지만, 죄를 깨닫게 하여주므로 죄를 짓지 않게 하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죄를 깨닫게 하고 드러나게 하여주는 율법과 계명,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믿음으로서 살려주는 의가 바로 복음인 것이다. 율법은 믿음으로 안내하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갈라디아의 교인들에게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3:24)이라고 서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사단에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유1:9)라고 한 것이 천사장 예수란 것이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1:9)
예수님이 마귀와 다투어 변론하면서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사용하지 못하였단 말인가? 성경은 천사장 미가엘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천사란 말인가?
언젠가 교회와 신앙의 홈페이지에 안식교인들의 토론게시판이 있었다.
그곳에 많은 안식교인이 글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본인은 위에서 언급한 두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하여 보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은 미가엘”이라고 대답하였으며, “모세는 부활하였다”고 분명히 주장하였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 점이 더욱 이상하였다.
예수님의 이름이 어떻게 천사장이었던 미가엘이 될 수 있는가?
안식교는 삼위일체 신론에서 큰 이상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또 안식교는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천사장이 되며 그 이름이 미가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참으로 놀랍다.
여호와의 증인의 교주였던 럿셀은 안식교인이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도 지옥을 부정한다든지, 율법주의적이라는 점이 안식교의 교리와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천사장이라고 한다. 하나님보다 열등한 피조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식교의 공식적인 교리가 예수님을 천사장 미가엘이라고 한다면,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는 안식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본인과 토론하였던 그 당시 안식교인들은 예수의 이름이 미가엘이라는 것에 대해서 단 한명도 성경적으로 증명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교인들은 분명히 예수가 천사장 미가엘이라고 믿고 있었다.
안식교인들의 교리가 성경에 근거를 두었다기 보다는 엘렌화잇의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히1:5)
예수가 천사장이라면 다음 성경본문에서 <주>와 <천사장>은 동일존재란 말인가? 그렇다면 주님이 혼자 스스로 호령과 소리와 나팔을 친히 부르면서 강림하시는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2) 모세의 부활
몇 년전 안식교 목사와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후 영혼의 존재라는 소제목이었다.
사람은 살아서 영혼과 육체가 전인적이지만, 죽으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진다.
그래서 영혼은 하나님 곁으로 가며(전12:7. 창35:18, 눅8:55) 사후 영혼은 의식적인 자각을 하면서 새 육체의 부활을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안식교에서는 영혼의 존재가 부정되어지며 소위 영혼수면설이라고 하는 견해를 갖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악인이나 의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음부에서(무덤)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잠을 자고 있는 것과 같이 수면상태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안식교의 이와 같은 주장은 부자와 나사로, 십자가의 강도에게 하신 말씀등 많은 성경적인 모순(약2:26.눅24:39.계6:9.눅12:20.눅24:36.행7:59.히12:23)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토론 중에 “그렇다면 변화산의 모세와 엘리야는 무엇인가?”를 물은 적이 있었다.
모세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는데, 영혼이 시체와 함께 잠을 자고 있다면, 변화산에서 보여준 모세는 과연 무엇인가를 물은 것이다.
이때에 안식교의 목사는 “모세는 부활한 것”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이단적인 주장이 분명한데, 왜냐하면 안식교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보다 모세가 먼저 부활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만 하여도 그 토론은 그 안식교 목사의 개인적인 실수인 것으로만 알았으므로, 몇번 동안 그에 대해서 추궁하다가 토론의 본론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엘렌화잇의 책자에서 그것을 다시 확인한 것이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보자....
만일 예수가 부활의 첫열매가 아니라 모세가 첫 부활이었다면 다음 성경구절들은 모두 오류와 모순이 되어버리며, 우리의 부활은 예수의 부활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부활을 본받게 되어진다.
그러나 각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
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는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1:18)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
하시리라함이니라 하니라.(행26:23)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우리의 부활의 첫 모델은 예수이시다. 그런데 안식교의 주장대로라면 모세가 부활을 대표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아니라, 모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되어버린다.
모세는 이미 죽었다. 그의 영혼도 하나님 곁에서 부활을 기다릴 뿐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
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았도다.(고전15:21)
만일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예수가 천사장 미가엘이라는 안식교의 주장은 전혀 성경에 없는 이단적인 교리이다.
또 모세가 예수보다 먼저 부활하였다는 주장도 부활의 개념을 이상하게 만드는 아주 위험한 이단적인 주장이 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교는 이러한 주장을 교리화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안식교가 성경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엘렌화잇의 개인적인 주장을 교리로 추종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어지기 때문이다.
3) 거짓 선지자 엘렌화잇의 황당한 주장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안식교의 선지자라고 하는 엘렌화잇의 개인적인 견해가 곧 교리가 되어진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어진다.
그렇다면 한가지 실례를 더 들어보자....
#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아담이 그의 창조주의 손에서 나올 때에 그는 준수한 키와 균형진 아름다운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현재 지구상에 사는 사람보다 키가 두 배 이상이나 컸고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살아남는 이들, 22쪽)
엘렌화잇은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성경구절을 단지 외형상의 형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지구상의 사람보다 키가 두배 이상 컸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만화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르는 안식교도 문제이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엘렌화잇은 절대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될 수 없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어느 안식교인은 삼육학교에 가보면 지금보다 두배 가량 큰 사람의 발자국 화석 사진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식교인들에게는 그저 아무리 황당한 주장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엘렌화잇의 주장이라면 진리가 되어지는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정의가 되어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며(골1:15)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시고(히1;3) 하나님의 형상(고후4:4)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셨던 예수님은 지구상의 인류보다 키가 두배 이상 컸는가?
그런데 성경은 장래에 “우리의 낮은 몸이 그의 영광된 몸의 형체와 같이”(빌3:21) 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마침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고전15:49)라고 하였으며,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9)고 하였는데, 그러한 성경본문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키가 두배가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었던 엘렌화잇이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면 누가 거짓 선지자인가?
또 바울은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다”(골3:10))라고 하였는데 그 말도 키가 두배 가량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야말로 기가 막힐 일이다....
4) 기타
사단이 뱀의 모양을 하고 에덴동산으로 들어왔다. 뱀은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동물이었으며 공중으로 날아다닐 때엔 번쩍거리는 황금처럼 찬란한 광채를 발하였다. 뱀은 땅위를 기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이곳 저곳으로 날아다니며 사람처럼 과일을 먹었다. 사단이 뱀에게 들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자리잡고 그 나무의 과실을 한가로이 먹고 있었다(살아남는 이들, 33쪽)
이러한 주장이 바로 엘렌화잇의 주장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고져 이것을 올렸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뱀이 날개를 갖고 하나님이 계신 에덴으로 날아 들어왔고, 하나님의 명령도 없이 뱀이 마음대로 선악과 과실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여러분들은 생각하는가? 이것에 대해서 무슨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한가?
첫댓글 하나님께서 십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하시고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예수님에 말씀을 거역할수 있습니까??? 인간이 마음대로 거룩한 언약을 해석하지 맙시다...
옳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