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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 않는 기복주의 신앙 | ||||
변질된 복음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붙들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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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사랑과 은혜로 여러분을 초청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렇게도 빨리 하나님을 떠나서 ‘하늘나라로 간다’는 다른 길을 따라 가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보여준 그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갈 1:6~7 이하 현대어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시지 않았던 다른 길, 곧 나그네 정신을 따르지 않고 기복주의로 가는 길이 변질된 것이다.
로마서 8장 17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께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분의 재산을 분깃으로 나누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 아들의 영광을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면 그분의 고난에도 함께 동참하는 게 마땅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예수를 기복주의로 믿으면 어려운 일이 없어지고,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찬송가 355장 3절의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를 원작자이신 고 이호운 목사님의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제 마음대로 개사하여 "멸시 천대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셨으니"로 바꾸어 부른다.
고난을 통하여 예수께서 영적인 기쁨의 기회를 주시려 하지만, 기복주의 신자는 임하는 고난 을 "사탄"으로 규정짓고 "물러가라" 소리쳐 기도하여 예수는 사탄의 신세가 되어 슬퍼하시며 쫓겨 가신다. 우리는 고난이 오면 올수록 나에게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이 고난을 통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어떠한 비밀을 깨닫게 하시려는가를 물어보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사도들, 선지자, 교사들, 초대 교회 성도들을 주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여 즐거운 영적 세계로 부르신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 들어가 찬송을 부를 때 손과 발에 차여진 착고가 풀렸다. 초대 교회를 이룬다고 하면서도 신자들과 교회의 생활은 예수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 즉 넓은 길을 가고 있다.
주님과 함께 당하는 고난을 저주라고 한다면 저주 중의 최고의 저주는 예수요, 그 다음은 사도들이요, 바울이요, 선지자들, 초대 교회 성도들의 순이었다.
그렇다면 ‘변질된 다른 것’, 개역 성경에서 말한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 개역 성경에서 말하는 ‘다른 복음’이라는 말은 번역이 명쾌하지 않다. 복음은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정당하다. 다른 복음이라는 말은 복음 외에 또 다른 복음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필자는 ‘다른 복음’이라는 표현 보다는 "변질된 다른 것"이라 부르려 한다. 복음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자체로, 예수의 삶은 나그네 정신이었다. 그러면 변질된 다른 것은 무엇인가? 단언하건데 변질된 다른 것은 "기복 신앙"이다.
가인은 인류 최초로 기복의 원조로 보아도 된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다고 했다. 제물을 드리는 것은 제사를 말한다. 땅의 것을 가지고 제물을 드렸다는 말은 땅에 대한 꿈을 꾸고 기원을 드리는 제사라는 말이다. 가인은 땅의 꿈을 이루어 달라고 기원한 것이다. 땅에 정착하려는 마음을 말한다. 아벨은 양의 새끼로 제물을 바쳤다고 했다. 땅에 대한 꿈을 꾸지 않고 하늘의 소산으로 드렸다는 말이다. 하늘의 꿈 나그네 정신을 이루어 달라고 기원한 것이다.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죽으려고 사는 삶을 산다는 말이다. 아벨 대신 주신 셋은 땅에 꿈을 두지 않고 양치면 서 아벨처럼 살았다. 땅에 정착하지 않고 나그네로 살아갔다.
아담은 두 아들에게 에덴에서 쫓겨난 후 두 아들들에게 '나는 실패하였으나 너희는 실패하지 말고 에덴으로 돌아가라'고 소원하고, 하늘나라 가는 방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땅이 더 좋았다. 오늘 우리가 노래방에 가서 한 번 신나게 놀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말씀 공부는 지루하고 몸이 뒤틀린다. 바울은 "하늘나라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다른 길 즉 변질된 다른 것'은 없다"(갈 1:6)고 하였다.
또 바울은 "우리가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설교하는 자는 누구라도, 그것이 나든지 또는 다른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설령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갈 1:8)고 하였다. 예수의 정신과 생애를 전하는 것이 복음이다. 예수를 이용하여 세상의 것들을 누리고 즐기려는 기복 정신은 다른 것을 전하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이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기복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 삼 일간 물이 없었다. 만일 우리에게 삼 일간 물이 없다면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에 항의 할 것이다. 이스라엘 진중에 난리가 났다. 물을 왜 안 주시는 이유를 찾아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마 6장에서 기도를 가르치셨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는 자는 이방인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기복을 구하면 이방인이요 가인의 후손이라는 말씀이다. 하늘 것을 구하면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의 후예다. 예수의 정신, 예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나그네 정신이다. 이것을 변질 시킨 것이 기복정신이다. 맛을 잃은 소금이 되었다.
마가복음 6장 31절~37절을 읽어 보시기 바란다. 31절에 "사람들이 몰려와 먹을 겨를이 없다"고 했다. 32-33절에서는 "사람들이 열심이 있다. 예수가 어디로 가시는지 계획을 먼저 다 알고 있다"고 했다. 34절에서 "여러 가지 하늘나라의 비밀을 가르치셨다"고 했다. 35-37절에서 "그들이 굶주리고 배고픈 상태를 보시고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고 했다.
오늘은 예수를 믿었다 하면 먹을 것부터 구하고 있다. 예수를 이용하여 이 세상의 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마가복음 6장 31절~37절을 보아서 하늘나라의 것을 먼저 가르치면 먹을 것, 세상의 것은 저절로 온다는 것을 보이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을 다 생각하고 계신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광야를 나올 때 하나님은 12우물을 준비하고 계셨다. 3일을 참지 못하고 인간의 본성이 드러났다. 사실 3일 동안 다른 것은 안 먹어도 물을 안 먹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를 따라 다니던 군중들은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예수보다 더 바빴다.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으나, 먹을 것부터 먹이기 전에 하늘나라의 진리를 먼저 가르치신 후 먹을 것을 주었다.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한다. 기적과 이적만 보지 말고 그 전후를,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사건을 보아야 한다. 전후의 사건을 보지 않고 지나는 현실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사건 후 예수를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고 하였다. 군중들은 먹을 것 입을 것을 줄 때는 따라다녔으나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차원으로 올리셔서 전하시면 공관 복음의 차원 즉 기적과 이적을 베푸시고 먹을 것을 주실 때는 따랐으나, 한 단계 더 올려 요한 복음 차원에서 영생의 차원 즉 예수의 피와 살을 마시고 먹음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는 그 말씀이 어렵다고 모두들 떠나갔다. (요6:66) 갈라디아서 2장 4절을 읽어 보기 바란다. 여기서 "몰래 스며들어 온자들", "가만히 들어온 자들"은 바울이 복음을 잘 전해 놓으면 유대인들이 몰래 스며들어와 율법(기복)을 지켜야 구원이 보존된다고 꼬이므로 갈라디아 교인들의 귀가 솔깃해진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5절에는 "그러나 우리는 단 한 순간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할례를 받고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여러분을 혼란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우리도 이와 같은 입장에 놓여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믿고 율법의 노예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몸을 빌어서 그 아들을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율법의 노예가 되어 있던 우리를 사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지신 모든 것은 우리들 자녀의 것입니다."(갈 4:3~7)
초등학문(율법)의 노예 노릇을 했던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자유의 몸이 되었다. 기복주의의 정신은 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경쟁 관계에서 상대를 넘어뜨리고자 한다. 시기와 질투로 뭉쳐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이 없다. 주보의 헌금 명단에 많이 낸 사람으로 나오면 어깨가 올라가고, 남을 쉽게 짓밟고 무시하고 상석에 앉기를 좋아하고, 남보다 좋은 차를 타고 과시하려 하고, 남보다 더 비싼 명품 의상 걸쳐야 의기양양해지고 인간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유대교권과 같은 세력들이었다. 오늘에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기복신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변질된 다른 것, 즉 율법주의와 기복주의를 전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는 무서운 말이다.
정기호 목사 / 기독교 대한감리회 은퇴 목사, ‘희망의복음선교회’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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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