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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세요?" - 유럽 대륙횡단기(47)
* 인터라켄 → Thun 23.7Km
* 튠 → Bern 27.8Km
※ 스위스 - 12일, 283.8Km ♣ 누계 - 총 127일, 3,424.9Km
확신하거니와 내가 만약 걷기의 동반자를
찾는다면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어떤 내밀함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 결과
나의 걷기는 분명 진부해져버리는 것이다.
- H. D. 소로 -
(부엔 까미노 - 산타아고로 가는 아홉 갈래 길 - 중에서)
스위스에 들어와 지금까지 '아름답다'란 단어를 몇번이나 썼을까?
거기다 앞으로도 같은 수식어를 얼마나 반복하게 될까?
세계인에게 익히 알려진 대로 스위스의 산천에 흠뻑 취해서 지나가고 있다.
며칠 동안 아름다운 나라 스위스의 본향(本鄕)을 지나는 중이다. 튠(Thun)에서 1박 베른에서 2박까지 사흘 째 기록이다.
스위스 동서횡단은 총 400 여Km니까 앞으로 130Km 정도 만남은 셈이다.
물론 제네바까지가 그렇다.
어제 기록은 인터라켄 이야기로 꼬박 한 회를 할애했다.
난데없이 일본 모험가에 빠져서 더욱 길었졌다. 여행기라면 그냥 간명하게 현지 소개 만하면 될 일이지 버릇인지 거듭 옆길로 빠진다. 한 도시의 기사를 1회분으로 다 채우기, 그게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이후 처음인가.
하기사 잘츠부르크에서도 모차르트와 클래식 음악 소개로 기사(33편)를 지루하게 만들긴 했다.
안 그래도 구구한 여행기가 자꾸만 본연을 벗어나니 스스로 부담이다.
인터라켄 서역을 지나 튠호에 접근하니 드넓은 대지에 담수어 대형 양식장이 나온다. 자장자리에 앉아 오늘 길을 점검했다. 직원들을 위해선지 테니스 코트도 보이고 주변이 깨끗해서 잠시 쉬었다 가기엔 안성맞춤이다. 주위가 정갈하면서도 무엔가 외로움이 감돈다. 어제의 메모도 살펴보고 간단한 요기와 물까지 더 챙겼다.
오늘 목적지는 호숫가를 따라 23Km에 이른다. 평소에 비하면 다소 쉬운 거리다. 튠 시내까지를 제해도 20 여Km를 내내 호반을 따라 이어질 모양이다.
암튼 스위스는 산속에 호수가 많다.
오늘 길을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잠시 가야 할 앞길을 바라본다. 진한 쪽빛 호수는 자꾸만 어서 와 부르는 듯하다.
날씨도 아름답고 호수도 아름답다.
혼자 호숫가를 하염없이 걸으니 오늘따라 갖가지 상념에 잠긴다.
걸으면서 생각에 빠지기는 잡념이라기 보다 걷는 행위의 일부다. 언제나 보행과 사유는 불가분 한몸이니까.
그게 머나먼 길인데도 나만의 독행(獨行)을 고집하고 여행 기록 역시도 영상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변水邊)이란 통상 여기처럼, 호수든 강변이든 심지어 해안이든 비주얼이야 판판이 빼어나지만 필자로서는 그저 무덤덤하다. 유년 시절 나름대로 선입감 때문이다.
누구보다 일찌기 한려수도의 바닷가에서 길들여진 눈빛이라 수변의 미학을 폄훼하는 교만일 테다.
아울러 스페인의 '북쪽길'에도 무관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가는 그 비주얼이 아름다울수록 또 아득하면 아득할수록 적막감을 불러온다. 건너편의 마을마저도 수평선 마저도 적요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자꾸만 나의 존재감은 잊혀지고 초현실적인 애련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물론 오늘 지나는 튠호 역시 그런 이미지가 강렬하다.
아름다운 경치, 대저 서정(抒情)이란 현실의 거울쯤이다. 하므로 서정적인 감흥이란 어쩌면 우리같이 갈길 먼 나그네에겐 다소 무리한 유한(有閑)일 테다.
어서 오라 자꾸만 손짓하는 호수, 리버사이드나 시사이드에 사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자기 혼란, 외로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심지어 우울증의 가능성도 높다지 않던가.
과연 나는 누구인가 원초적인 의문이 삶에 관한 번민을 만드는 거다.
그러니 길 역시도 아름다울수록 '열린 마음'으로 겸손과 조심으로 보상 심리가 필요할 테다.
변명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오해를 부를지도 모른다.
부디 북쪽길을 선호하시는 한국인들은, 유럽인들이 자신의 집 문앞에서 출발해 내륙만 수천Km를 걸어오다가 산티아고도 통과하고 세상의 끝이라 믿어 온 피스테라(Finisterre)의 12Km 전에, 쎄(Cee)라는 어촌에서야 비로소 대서양 수평선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시면 좋겠다. 과연 그 누가 그 순간에 나그네의 감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찌 천방지축 유랑객의 노스탤지어 뿐이랴.
부디 까미노 블루로 속앓이에 시달리는 도반님들을 위하여~~
알고 보니 튠이란 도시는 인터라켄에 비해 인구가 무려 일곱 배나 많다.
스위스 알프스 산속에 이다지 큰 도시가 있었던가?
내일 입성할 수도 베른에 비해서도 세 배쯤이다. 거기다 베른의 광역도시권은 70만 명에 가깝단다. 아마 이웃 인터라켄과 베른의 명성에 가려져 실제보다 소도시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기사 이들 세 도시의 인구를 모두 합하면 근 100만이 넘는다니 가히 메트로폴리스(백만 도시)급이 산골에 존재하는 셈이다.
허나 튠에서 숙박 사연까지 펼친다면 오늘도 기사가 넘치겠다.
☞ 각 도시의 인구(2020년 기준)
* 인터라켄...5천6백
* 튠.................43만
* 베른...........16만
어제 튠에서 베른으로 오는 30 여Km 길은 아주 특별했다.
평소완 다르게 이곳 인근의 인구까지 소개했으니 금방 짐작이 되셨으리라. 시골 길이 의외로 붐빈다.
아레강을 왼편에 두고서 6번 도로를 따라가니 시종일관 비슷한 크기의 마을이 이어졌다.
유럽은 인구밀도가 한참 낮아서 날마다 사람 접촉이 드문 길만 지나오다가, 심심하면 나타나는 마을이 자못 신기하다. 마치 오스트리아의 블루덴츠(Bluden z)에서 국경 도시 펠트크릭(Feldkirch)로 가던 날(40편)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땐 해가 진 밤중이었지.
앞서 스위스의 반더벡(산책로) 네트웍을 소개했지만, 엊그제 지나온 브뤼크파스에서 베른 고지대로 이어지는 산길이 이 일대까지 늘어져 있단다. 그쪽도 스위스 알프스의 환상적인 모습을 한껏 즐길 수 있겠으나 갈길 바쁜 과객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아쉽지만 오늘은 튠에서 출발해 베른까지 계속되는 동네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자. ( )속에 숫자는 진행 방향 각 마을마다 거리다. 실제로 걸어보니 대충 30Km가 맞다.
튠→Steffiburg(2.6Km)→Kiesen(7.5Km)→Wichfrach(4Km)→Munsigen(3Km)→Rubigen(3.3Km)→Muri bei Bern(5.7Km)→베른(5Km).
도중에 6번 도로와 아레강은 바로 옆에서 또는 멀리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어제는 내내 호반이라 변화 없이 단순했으나 오늘은 연이어 나타나는 마을이 한편은 응원가요 지팡이와 다를 바 없다. 참으로 다행이다. 출발부터 크고 작은 마을이 계속되니 머나먼 길 나그네야 진정 행운이다. 언제든 간식이나 물을 보충할 수 있기에, 암튼 튠~베른 구간은 서바이벌 정신이란 무소용일 듯하다.
어쨋거나 어제와 오늘 지나온 50 여Km는 세 도시의 인구 비례 만큼 출퇴근 교통량도 많다.
필자야 언제나 지방도 언저리 만따라 다니지만 여긴 고속도로와 기차까지도 지나간다.
스위스 일대는 선사시대부터 강가나 호숫가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많은 산지로 그만큼 고갯마을도 흔해졌다. 그런 중에 로마인들이 들어와 모양을 갖춘 정식의 마을과 도시로 발전시킨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디어 베른에 들어왔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베른 구경 좀 해보련다.
베른의 구경거리는 넷이다.
베른 지리학, 아레강, 유스호스텔, 아인슈타인 하우스 등 차례로 살펴보련다.
먼저 베른 소개에 앞서, 이번 길은 순례길도 관광길도 아닌지라 도시를 만나면 솔직히 비호감이다.
그렇지만 유럽은 도시마다 들어서는 순간 자연히 우열이 느껴진다. 도시란 원래 인위적인 공간이지만, 자연 친화적인 도시든 또 수천 수백년 동안 역사적인 도시든 막연히 서열이 보인다.
그런 시각에서 스위스의 베른은 아주 상위 등급이다.
베른의 위치는 스위스의 중앙이다. 아울러 베른주의 주도(州都)이자 스위스 연방국(CH)의 사실상 수도다.
이런 경우는 소위 행정수도라 부른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생활의 중심 도시는 베른이 아니라 취리히, 루체른, 제네바 등이다. 마치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 D.C.의 관계와 같다. 그러기에 우리의 KAL 직항 노선도 이곳 베른이 아니라 멀리 취리히에 있는 거다.
알고보니 스위스의 우리 교민들도 무슨 큰 기념행사 등을 주로 취리히에 모여서 치루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에 어찌하여 공항도 없을까?
그건 엉뚱하게도 시민들이 투표로 결정한 일이란다. 단지 비행기는 이착륙 소음이 지나치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사회간접 자본인지 무슨 공공시설 하나 세우려 해도 왕왕 공권력까지 동원되는 경우와 비해, 그들의 세련된 민주주의 문화가 부럽기 만하다. 민주주의 요체는 선거니까~~
베른은 500m 언덕 위에서 아레강이 U자 모양으로 휘돌아 흐른다.
아레강 루프 지대에 자리잡았기에 마치 아레강이라는 엄마가 베른이라는 아기를 품은 모습이다.
하므로 베른에서 길을 잃었다면 무조건 아레강에서 시작하면 된다.
엉뚱하지만, 필자 역시 1960년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왔을 때 길을 놓치면 무조건 서울역으로 가서 다시 시작했다.
중심가의 구시가지(Altsadt)는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뛰어난 10대 도시 중에 하나란다. 아레강이 감싼 구시가지는 중세풍으로 도시 자체가 매력적인 발군의 관광 상품이다. 스위스는 앞서 소개했듯이 명성 높은 도시가 여럿임에도 오직 베른만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다.
베른의 역사는 12세기말(1191년)에 성립된 도시란다. 관광 문화가 대세인 오늘에 고풍과 우아함이 자랑거리다.
특히 천문 시계탑은 베른의 상징이면서 12세기말~13세기초 동안 도시의 입구 역할을 했다.
시계탑 치트글로게(Zytglogge)는 독일어 베른 사투리지만 표준 독일어(Zeitglocke)도 시계탑이다. 아울러 구시가지의 15세기풍의 석조 아케이드, 16세기풍의 분수대들 역시 베른의 상징물이다.
구시지 Altsadt는 무려 6km나 이어지는 석조 아케이드가 차지했으니 베른의 올드 타운쯤이다. 독일어 Altsadt란 영어로는 각각 old와 street가 될테니 번역해도 역시 올드 타운인 거다.
다시 한마디로 정리하면 베른의 랜드마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그것들이 모두 구시가지의 시계탑, 석조 아케이드, 분수대, 이레강 등이다.
※ 베른의 공식 언어는 독일어, 실제 사용 언어는 독특 한 사투리 베른 독일어(고지 독일어)지만 대부분 시민은 두 언어도 사용한다.
베른(Bern)이란 지명 어원은 불확실해서 여러 해석이 있다.
① 이탈리아의 베로나(Verona)를 모방했다는 주장.
②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켈트족 기원의 브린(Bryn)이란 지명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정.
③ 민속 어원에 기초한 지역 전설에 따르면, 베른의 창시자인 체링겐(Zähringen) 공작 베르히돌트(Berchtold) 5세가 사냥 중에 만난 첫 동물이 곰 비슷해서 지은 이름이란 설까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구시가지의 뉘데크 다리(Nydeggbrucke) 건너 장미 공원 아래는 곰 공원까지 있다. 아울러 베른시의 곰 문장 역시 13세기(1220년대)부터 전해 온단다.
다만 곰 공원은 그런대로 재미 있으나 바로 위에 장미 공원은 디테일 면에서 다소 미비한 게 아쉬었다.
베른의 도시 산책은 어떨지 작정하고서 골목길 투어라도 해보고 싶어도 지나가는 나그네가 과욕은 금물이다.
베른에서 한국 나그네를 진정 경악하게 만든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아레강이다. 강변에 물놀이 인파가 경이적이다.
한여름 해수욕장을 완전 방불한다. 도심 한복판에 웬 비키니 수영복 군상이 즐비하다.
남여노소 모두 나와 8월 하순에 가는 여름을 즐기는 모양이다. 마치 찌는듯 한여름에 우리 도시의 만원 풀장을 빼닮았다. 심지어 필자는 너무나 신기해서 구경삼아 인파 속을 요리조리 지나는 중에 그들에게서 튀기는 물방울로 옷이 젖을 정도였다.
강물이 도심을 관통하는 만큼 강위에 다리도 여럿이다. 피서객들은 수영보다 하루종일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는 물놀이를 더 즐긴다. 그닥 넓지야 않으나 물길을 가득 채워 - 거대한 물결처럼 - 빠른 속도로 흘러내리는 아레강에 끊임없이 뛰어들었다를 반복한다. 물론 남여노소 구별이 없다.
그들은 하류로 한참 떠내려가다가 다시 한참을 되돌아 뛰어와 점핑을 반복한다.
만약에 서울의 청계천이 저렇다면 무슨 문화가 생길까?
암튼 베른의 자랑은 여유 만점 자연이다. 그러기에 베른을 지나간 어느 여행자는 그랬나 보다.
'베른은 도시의 중심을 자연에 내주었다.'
이야기의 맥락이 갑자기 옆길로 나가지만 과연 베른은 걷기까지 좋은 도시일지, 단지 스치듯 지나치는 나그네가 판단하기엔 자못 난해하다. 다만 우리 같은 유랑객은 - 위에서 지적했듯이 - 도시를 만나면 일단 스트레스에 빠진다.
우선 복잡한 도시를 관통하려면 꼬불꼬불 난해한 길 찾기를 거듭해야 할뿐더러, 무엇보다 무한한 자연을 마음대로 즐기다가 갑자기 인위적인 공간에선 숨이 탁 막힌다.
그럼에도, 아레강 스켓치를 자세히 전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아레강이 숙소 유스호스텔 바로 앞으로 지나기 때문이다.
한편, 하루 내내 저리도 변함없이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물론 라인강에 합류한다.
베른의 중심을 휘돌아 지난 아레강은 베른 주 오버란트의 산지 속을 계속해서 돌고 돌아 북류한다. 도중에 크고 작은 호수도 둘이나 통과하면서 구비구비 흘러서 170 여Km 거리에 코블네츠Koblnez)란 동네에 이르면 결국 독일과 국경에서 라인강을 만난다. 그러므로 전날 인터라켄도 지나온 아레강은 깊은 산속 멀고먼 라인강의 최 상류에 하나의 지류쯤인 거다.
사실은 이레강은 미학만 부러운 게 아니었다.
스위스에서 부럽다면 어찌 이곳 베른 뿐일까?
유럽은 알프스를 발원지로 하는 주변의 모든 강마다 일년 내내 수위에 큰 변함이 없다.
특히 알프스 주변에서 모든 하천의 유출량 변동은 - 동아시아처럼 불규칙적으로 내리는 비가 아니라 - 대부분 빙하의 융설수인지라 연중 변함이 미미하다. 반면에 쌀농사로 먹고 사는 우리는 언제나 하늘을 쳐다봐야 만했다. 오직 내리는 비가 우리를 울리고 웃게 만들었다. 기나긴 세월에 끊임없는 홍수와 가뭄의 연례행사, 그게 우리네 감성까지 지배했다.
하지만 유럽은 아니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흘러가는 유럽의 하천들, 어찌 아니 부러울까?
어쨋거나 이상은 수도 베른과 아레강을 한꺼번에 묶어서 소개한 셈이다.
베른의 유스호스텔 자체는 물론 구경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관광 상품 아니겠나.
베른의 유스호텔 정보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지금에야 그닥 요긴하진 않을 테다. 하므로 구닥다리 정보란 자칫 혼란 만가중되리라. 게다가 2018년 4월에 리모델링으로 재오픈까지 했다니 변화가 많았겠다.
하지만 설마 주소야 그대로겠테지.
Weihergasse 4, 3005 Bern, Swiss
유스호스텔은 구시가지에서 가까워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데'라 시가지를 벗어나 비스듬이 내려가면 금방 나온다. 그리고 또 숙소에서 나와 모퉁이를 한 바퀴 만돌면 바로 아레강이다.
이는 베른의 지형 자체가 아레강으로 둘러쌓인 반도 모습인데다, 그 중심이 구시가지라 어느 쪽이든 아레강에서 지근 거리다.
스위스의 유스호스텔마다 숙박비 등이 경이적인 물가에 비해 매우 저렴해 크나큰 매력이긴 하다. 다만 도시마다 흔치 않은 게 유감이다. 해서 유스호스텔은 이곳 베른 말고도 제네바에서도 딱 두 번 이용해 봤기에 더 상세한 정보는 제네바로 미루는 게 좋겠다.
아무러나 스위스의 유스호스텔은 그닥 여유가 많치 않은 여행자를 위해 매력 만점이다.
아인슈타인의 집(Einstein Haus)은 크람가(Kamstrasse) 49번지에 있었다.
그리고 거긴 박물관으로 변해 있었다.
구시가지의 중심가 시계탑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아파트형 집이다.
전술한 베른의 올드타운에 명물 석조아케드에 포함된다.
물론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기에 지나는 나그네도 방문할 수 있다.
알베르트 어인슈타인은 베른 시내 곳곳을 옮겨 다녔지만 1903~1905년까지 이곳에 거주 공간을 임대해 부인 밀레바, 아들 한스 알버트와 함께 살았다. 1902년 부터 그는 7년간 베른의 결혼 생활에서 2남1녀를 두었다.
혹시 아시는가?
아인슈타인이 독일 태생 유태인이란 걸, 게다가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역시도 유태인이라는 걸~~
위인이 살던 2층 공간은 당시의 책상과 여타 가구들, 문서, 사진들, 심지어 사용하던 담배파이프까지 그대로 현대적인 전시 감각으로 진열되어 있다. 그가 살던 환경과 삶의 흔적에서, 과연 이곳에서 인류의 스승이요 위대한 물리학자가 그렇게 중요한 과학적 업적을 발전시켰구나, 또한 이렇게 살았구나 엄숙한 인상을 준다.
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1905년 6월 이 공간에서 탄생되었고 이어서 일반 상대성 이론 역시도 베른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컨셉이야 달라도 딱 한 달 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 생가 방문 때완 또다른 감동이다.
※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를 밝힌 이론으로 공식 〈E=mc2〉도 매우 유명하다.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진공에서 빛의 속도)
☞ 이상 아인슈타인의 이론 관련 부분은 '네이버 지식백과' 재구성.
그의 이론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란 전제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유를 바꾸어 놓는 계기를 불러왔고 결과적으로도 핵무기 개발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여생을 프린스턴 대학에서 보냈다.
관리인인지 50대 후반의 중후한 아주머니가 안내를 맡는다.
먼저 안내를 따라 위인의 업적 다큐멘터리부터 감상했다. 마침 머물고 있던 중에는 관람자가 아무도 없어서 위인의 옛 모습을 혼자 조용히 느낄 수 있었다.
안내인에게 혼자 걸어서 대륙횡단 중이라 했더니 짐짓 놀란 표정으로 방명록을 내놓는다.
순간 세기적(世紀的)인 위인의 기념관에서 사설을 남발하는 처사는 지나친 경박과 교만이 아닐까 망설여졌다.
결국 거기에 단 두 문장을 남겼다. 둘 다 아래위 겹으로다 한글과 영어로,
'인류의 스승 거처를 방문하니 크나큰 영광입니다'
'지평선을 넘은 사람은 마을을 보았고 수평선을 넘은 사람은 세계를 보았다.'
물론 아래는 헝가리 지평선을 지날 때 어느 마을 초입에서 이미 밝힌 내용이다.
매우 친절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정스런 직원 총각이 사인을 거듭 조르기에 마지못해 남긴 말이다.
위인의 기념관에서 자꾸만 몇 달씩이나 머나먼 행보가 회상되니 큰 행운이다. 물론 비교 대상이야 아니지만 시간을 내어 방문한 보람이 충만하다.
귀족풍 관리인 여사의 세련된 인상도 기나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베른에서는 작정하고 소개하고픈 한인 밥집이 있다.
맛집이라면 여덟 달 동안 대륙횡단 길에서 오로지 두 식당이 기억에 남는다. 공교롭게도 둘 다 스위스다.
하나는 이곳 베른의 〈욱타운〉 둘은 제네바의 〈서울의 집〉이다.
욱타운(Wok Town)은 배른역을 나서자마자 ㄱ자로 돌면 낮은 빌딩 1층 내부에 먹자코너에 있다.
점심 시간인데도 인근에 서양인 직장인들이 줄을 선다. 물론 주인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빠서 도저히 말을 섞을 수도 없다. 이는 나중에 제네바의 〈서울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부인인지 돌솥비빔밥 식대를 계산하는 중에 우리말로 살짝 묻는다.
"한국인이세요?"
그나저나 내일은 일찍부터 오던 길을 또다시 나서야 한다.
목표는 이곳 베른에서 30 여Km 거리에 프리브르(Fribourg)란 동네다.
혹시 눈치 빠른 독자분께서는 벌써 짐작이 가셨으리라. 오늘 기록 말미에 굳이 내일의 여정을 덧붙이는 이유를,
프리브르란 지명은 독일어 발음이면 프라이부르크로 불러야 한다. 그러니 거긴 프랑어 권역 아닐까?
그렇다. 프리브르란 동네는 스위스 안에서 언어의 경계선쯤이다. 이제 독일어권이 끝나고 프랑스어권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다. 하므로 일대는 다르게는 언어국경이라 불린다.
가이북은, 첫까미노 때 만해도 필자 역시 신주 단지처럼 모시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길찾기라면 필자 만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물론 숙소 정보야 별도의 차원이지만~~
매일 아침 출발 때마다 메모지에다 목적지의 지명을 또박또박 적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디민다.
제아무리 외국어가 유창해도 숨가쁘게 걷는 중에는 발음이 헷갈리기 마련이라 이런 요령이 가장 효과적이더라.
아울러 거기서 부터는 길이 헷갈릴 때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묻기를 '야콥스벡'이 아니라 '콩포스텔'로 말해야 한다.
단지, 구글지도를 검색해 보니 업다운이 좀 심한 루트가 많아 보이니 진작부터 부담이다.
☞ 부 기~~~
♧♧ 베로나Verona)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중세풍 도시로 인구 26만 명의 시내는 아디제강이 지나간다.
하지만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으로 유명한 바로 그 동네다.
매년 여름에 오피라 축제로도 유명하다. 아울러 BC. 30년 경에 건설둰 원형경기장(arena di Verona)에서 베르디를 비롯한 유명 작곡가들의 오페라가 공연되는데, 거대한 석조 원형 경기장에서 행해지는 오페라 아이다는 특히 장관이다.
이 도시가 우리와 관련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과 벨기에 팀이 1차전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 나무위키에서 재구성
♧♧ 켈트족(Celt)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에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고에서 켈트란 민족이 잠시 지나가듯 거론되었다.
핼로윈(Halloween) 때문이었다. 축제는 고대 켈트족이 사윈(Samhain)이란 죽음의 신을 받들어 제사를 지낸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베른시의 지명 유래와 관련해 그 켈트족을 한 번 살펴본다.
켈트족은 원래 유럽의 터줏대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원거주지는 다뉴브강 상류 지역이 본거지였다. 현재의 독일 바이에른 지방과 오스트리아의 티롤 지방 등 광범위했다.
그 외에도 이베리아 반도, 영국 제도 ,나아가 동유럽과 소아시아 등 유럽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BC 1,000년경부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던 중에 기원 직전후에 로마 카이사르 장군의 갈리리아 정쟁으로 결정타를 맞고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다.
그들은 영혼의 윤회를 믿는 드루이드교를 신봉하고 인도.유럽계의 켈트어를 사용했다.
사윈이란 신(악령)을 받들어 음식을 차려 놓고서 제사를 지냈으나, 한편 악령이 무서워 자신들도 호신을 위해 귀신처럼 이상한 복장으로 분장을 하던 관습에서 나중에 점차 핼러윈 복장 문화로 이어졌다.
켈트인은 BC 5세기까지 약 1,000년에 걸쳐 켈트 문화를 형성해 갔지만, 전술한 바 로마와 게르만인의 진출로 인해 점점 서쪽으로 쫒겨나, 현재는 직계 자손의 소수가 스코틀란드, 아일란드와 웨일즈, 프랑스 서부 노르망디의 몽생미셸 수도원이 있는 브레타뉴 반도 등지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이 켈트란 그리스어의 켈타이(Keltai)에서 유래했는데 '언덕에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아주 오랜 옛 유럽의 역사에서, 지중해 연안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은 숲이 울창하였고 그곳에 바로 켈트족이란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아울러 유럽 전역을 거의 석권했던 켈트인들은 굉장히 넓은 지역을 그들의 언어권으로 만들었다.
나라 이름으로 발전한 경우는 드물지만 오늘날 각지의 자연 지명에는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를테면 켈트어로 '산'이라는 말은 몇 가지가 있는데, 알프스라 할 때의 alp는 '높은 바위 산'을 뜻하고 pen 또는 ben도 이와 동의어로 '돌출된 곳'을 의미하는 말이다.
알프스 산맥은 물론이고 아페니노산맥(이탈리아)과 페나인산맥(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생쟝에서 스페인의 순례길로 들어서는 피레네 산맥들의 어원은 대부분 이와 같이 켈트어서 비롯된 지명들이다.
한때 브리튼섬 전역은 이 켈트족의 영역이었고, 로마 제국은 영국을 브리타니아라고 불렀다. 브리타니아의 Brits-은 원래 켈트 계열의 용어였으나, 점차 앵글로색슨 계열의 영국이 대영(Great Britain)이라 불리게 되면서, 오늘날에는 켈트어원은 거의 의식되지 않고 오히려 북아일랜드 구교도들에 의해 영국인(잉글랜드인을 중심으로 한)에 대한 경멸적 표현으로 쓰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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