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조선 기독교의 출발점
“국태공”(國太公)으로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인 “이하응”(李昰應, 1820~1898년)의 실각후 고종(26대왕,1852~1919년)은 “쇄국양이정책”(鎖國壤夷政策)을 포기하고 문호를 개방하였습니다. 조선은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체결(1878년)되고 1882년에는 조미조약, 조영조약, 조독조약, 1886년에는 26명의 선교사 중 12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조불조약이 체결됨으로서 조선에서의 종교활동은 정부의 억압과 탄압에서 개인적 선택으로 이양되었습니다. 1816년, “한문성경”을 전달한 영국 해군 대령 “바실 홀”(Basil Hall) 이후 선교사로는 최초로 1832년, 네덜란드 선교회 소속의 “칼 귀츨라프”(Karl F.A.Gutzllaff)가 충청도 서해안 고대도에서 “주기도문”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1) 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aff, 1803~1851)
1832년 충청도 서해안 고대도를 방문한 네덜란드 선교회 소속의 “칼 귀츨라프”(Karl F.A.Gutzllaff)선교사는 1개월 동안의 사역 기간 중 고대도 관리와 지역 주민들과 접촉하면서 한문성경을 대량으로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주기도문”을 기록한 한글성경번역을 하여 주민들에게 보급하였고, 그와 함께 쪽복음서와 전도문서를 나누어 주며 “모든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라고 소개하였습니다.
“한국의 위클리프”라는 칭호를 얻은 귀츨라프는 1803년 7월8일, 독일 프로이센 프리츠에서 경건한 기독교 가정의 독자로 출생하였습니다. 1821년 독일최초의 선교사 양성학교인 “베를린 선교학교”(Missionsschule in Berlin)를 졸업하고 1823년 베를린대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중병으로 학업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귀츨라프는 네덜란드 선교회 선교사로 지원하여 독립선교사로 활동하였습니다. 탁월한 어학능력을 가진 귀츨라프는 아랍어와 터키어, 중국어와 태국어와 조선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과 싱가포르와 태국 방콕과 중국 주요도시와 일본의 도서들을 거쳐 1832년 7월17일, 범선 “로드 애머스트호”(Lord Amherst)의 통역관 자격으로 승선한 귀츨라프는 조선 몽금포 몽금도(대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후 외연도와 녹도와 불모도를 경유하여 고대도에 도착하였으며 귀츨라프는 이곳을 중심으로 1개월 동안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그러나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에 대하여 신기해 할 뿐 그가 전하는 복음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귀츨라프는 고대도에서 홍주목사 “이민회”(李敏會)의 서생인 “양씨”(楊氏)로부터 조선어를 배우고 주기도문을 한문과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였습니다. 1832년11월, 중국선교의 아버지이며 당대 최고의 존경받는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로 부터 받은 중국어 성경 “신천성서”를 가져와 가르치고, “중국의 보고”(The Chinese Repository)라는 무크지에 “한글에 대한 소견”(Remarks on the Corean Language)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최초로 한글을 유럽에 소개하였습니다.
한편 귀츨라프는 빈곤계층의 주민들에게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 주며 한반도 감자 전래의 최초의 기록이 되었고, 더 나아가 야생 포도재배와 과즙제조법을 가르쳐 주민들의 삶과 경제를 회복 하였습니다. 또한 의약품 무료보급을 통해 독감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는 60명의 노인환자들에게 감기약을 처방해 치유하도록 하여 서해안 지역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귀츨라프는 홍주목사를 통하여 순조에게 통상요구서와 성경전서 2권을 선물로 보냈으나 순조는 성경과 통상요구서를 반환하며 통상조약을 거부하였습니다.
8월17일, 귀츨라프는 로드 애머스트호를 따라 제주도에 도착했는데 귀츨라프는 이곳을 일본과 만주와 중국을 연결하는 선교본부로서 매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834년, 모리슨 선교사 사망 이후 1851년 8월9일, 48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사망하기 까지 25년의 선교사역 기간 동안 극동아시아 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귀츨라프는 동양의 헤밀턴이라고 불리우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선교의 열망을 기대하며 한반도에 복음의 씨앗이 자라나 많은 열매가 맺힐 것을 기원하였습니다.
첫댓글 1832년..
"모든 인류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