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받는 것을 상징하는 표현 가운데 give and take 와 tit for tat라는 영어 식 성구가 생각납니다. 전자는 그래도 선의의 교환을 통한 유무상통의 인상을 풍기지만 후자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성격을 띈 끝없는 악의와 폭력의 도발로 인한 일촉즉발의 긴장 속 위기상황을 연상케 합니다.
Tit for Tat에 능한 싸움꾼들이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유능하다고 추켜세우는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목도하면서 참으로 어리석은 사회현상이라는 개인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수 가 없습니다. 어떤 호신술이건 블랙벨트급은 초심자가 싸움을 걸어와도 점잖은 제스처를 쓰면서 상황의 악화를 관리하며 뒷걸음질하며 싸움을 피하는 것이 정상적인 처신 이기 때문입니다. 유단자가 싸움이 겁이 나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싸움에 휘말리면 싸움자체는 이기겠지만 싸운 사람과 관계회복에 시간이 걸리고 이런저런 후유증이 생길 경우 뒷일을 잘 처리한다 해도 본전을 찾기가 어렵다는 선견지명(先見之明)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브랙벨트급은 호신술의 기량도 뛰어나지만 인격적인 면에서 성숙도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좌충우돌 하며 잘난 체하는 소인배와는 그 급과 격이 다른 법입니다.
경세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관자(管子) 목민(牧民)편에 의하면 “그러므로 (백성에게)주는 것이 도리어 받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라고 기록 되어있습니다(故知予之爲取子,政之寶也). 물론 여기서는 백성이 원하는 네 가지 즉 첫째, 백성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줘야 한다(佚樂). 둘째, 백성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주어야 한다(富貴). 셋째, 백성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해주어야 한다 (存安). 넷째, 백성을 잘 살도록 해주어야 한다(生育). 의 네 가지를 아낌없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노자 도덕경 36장에는 도의 관점에서 라이벌을 다루는 방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도 적에게 먼저 주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순수성 면에서는 앞에서 말한 통치자가 백성에게 주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차원입니다만.
“(상대방)을 폐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야 하고
뺏고자 한다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이 역설한 것이 바로 미묘한 도리라고 한다
거기서 벗어나고 싶으면 먼저 함께 해 주어야 하고
다 내 것으로 하고 싶으면
미끼를 던져서 가진다.”
큰 이익을 미끼로 내걸고 큰 고기를 잡는 방법은 장자(莊子) 외물(外物)편에 이를 뒷받침하는 일화가 나옵니다.
“임나라 공자(公子)가 커다란 낚시 바늘과 긁은 검은 줄을 만들어 오십 마리의 소를 미끼로 해서 화계산에 앉아 낚싯대를 동해에다 던져 놓고 매일 낚시를 했으나 일년이 되어도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이윽고 대어가 미끼를 물어 커다란 낚시 바늘을 끌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솟구쳐올라 등지느러미를 떨치니 흰 파도가 산더미 같고 바닷물은 출렁이며 그 소리는 귀신 같아 천리사방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임나라 공자는 이런 물고기를 잡아 갈라내서 포를 만들었다. 절강(浙江)에서 동쪽, 창오(倉梧)로부터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 물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뒤로 지껄이기 좋아하는 자들이 모두 놀라서 서로 이 이야기를 전했다. 대개 작은 낚싯대에 가는 줄을 달고 조그만 도랑에서 잔고기를 낚으려는 자는 도저히 대어를 낚기가 어려운 법이다.
쓸데없는 의견을 자랑스레 치장하면서 고명(高名)을 얻으려 한다면 큰 입신영달(立身榮達)은 까마득할 뿐이다. 이렇듯 임공자의 풍격(風格)을 듣지 못한 자라면 더불어 천하국가를 논하기에 까마득하다.”
또한 손자병법에는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깨닫는 이치를 다음과 같이 풀이해 놓았습니다.
“적을 잘 다루는 장수는 적을 유인한다. 적은 반드시 그 계략에 말려들게 마련이다. 무언가 이익을 주는 척하면 적은 예외 없이 이를 취하려 든다.”
상호주의를 표방하는 give and take에 대한 성경의 구절은 루카 복음 6장 37절-39절에 나와 있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또 성경에 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인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는 예수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그들의 의도는 순수 하다 기 보다는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예수님에게 과시하기 위해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떠나 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심판하는 권한은 죄 없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아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고 하십니다. 해당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8장 3절에사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성경구절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외부로 향하던 고발과 단죄의 시선을 내부로 방향을 돌리게 하는 상황전환을 이루게 하십니다. 인류의 큰 스승인 예수님께서 위선적 고소 고발의 악습을 누리며 분수를 모르고 설쳐 대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조용히 자기자리로 돌아가 신독(愼獨)의 시간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논어 제 7편 술이(術而) 제 3장에 보면 공자와 같은 성인도 타인에 대한 판단과 비판에 열을 올리기 보다 자신의 학문과 인격 도야에 필요한 지향점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시선을 내부로 고정시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논어 제7편 술이 (術而), 제3장에 나오는 공자의 네가지 개인적인 걱정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닦여지지 않음과 학문이 구명되지 않음과 의를 듣고도 행동이 거기로 옮겨갈 수 없음과 선하지 못한 것을 고칠수 없음은 나의 근심 이니라.”
관자의 목민(牧民)편에서 공적인 관계에 있어 먼저 베푸는 것이 통치의 요체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비자(韓非子) 외저설 좌상에서 비록 사적인 관계에서도 먼저 베풀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다음과같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릇 일꾼을 사서 농사를 지을 경우 주인은 가산을 덜어 일꾼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삼베 화폐인 포폐(布幣)를 들고 가 질 좋은 동전화폐인 전폐(錢幣)를 구해 품삯을 준다. 이는 일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처럼 해야 밭을 깊이 갈고 제대로 김을 맬 수 있기 때문이다.’
일꾼은 힘을 다해 밭을 깊이 갈고 김을 맨다. 이는 주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처럼 해야 먹는 음식이 풍성하고, 손에 넣는 전폐의 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주인과 일꾼에게 서로 상대방에게 정성을 다하는 관계는 부자 지 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꾼이 하는 일에 공을 들이는 것은 모두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일을 하거나 베풀 때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먼 월 나라 사람일지라도 쉽게 친해진다. 정반대로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면 설령 부자지간 일지라도 서로 멀어지고 원망하게 된다.”
성경의 황금률과 논어 위령공 편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의 표현은 같은 취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황금률(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종신토록 지켜 행할 만한 말(논어 제15편 위령공 제 23장): “자공이 ‘한마디로 종신토록 지켜 행할 말 만한 말이 있읍니까’ 하고 물으니, 공자께서 ‘그것은 서(恕)이니라.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 것이 니라.’고 말씀하셨다.”
국민들은 한마디로 여당과 야당의 끝없는 정쟁에 환멸을 느낀 지 오래 이며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표심을 통하여 더 못마땅한 쪽에 따끔한 경고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예상했던 대로 오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투표일을 앞두고 실시된 지난 6-7일이틀간에 실시된 사전투표에서 투표율이 역대최고인 22.6%로 집계되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이는 강서구의 유권자 50만 603명중 11만3313명이 사전 투표에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역대 지방선거 중 가장 높은 사전 투표율은 2022년 6월1일 진행된 재 보궐 선거로 20.54%이었습니다. 기록을 깨는 사전 투표율을 놓고 여야가 서로 자당에 유리하다고 아전 인수격으로 입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각당에서도 자제적으로 여론조사를 하고 있으니 자기당 후보를 지역 유권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상대방 후보와 경쟁력면에서 우세인지 열세인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4월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여야가 허구한날 벌이는 지루한 정쟁을 그만두고 철저하게 민심을 돌보는 민생우선 정치를 펼쳐 나가게 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여당과 야당은 서로 상대방을 향한 손가락 질을 멈추고 시선을 각 당의 내부로 돌려 국민들에게 더 잘 봉사할 수 있도록 정당 내부의 개혁에 박차를 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로 잘 알려져 있는 관자(기원전 725년 – 645년)는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인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보필하여 제후국가운데 최강 대국을 만들었던 고대 중국의 신화적인 인물입니다. 관중은 춘추전국 시대 대 혼란속에서 난세를 극복하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용주의적대안을 모색하였습니다.
관자의 최고의 이념은 치(治)와 부강(富强)이었습니다. 오늘날 관중이 새롭게 부상하는 것은 그의 지도력이 우리시대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자라는 고전에서 들려주는 지혜의 소리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미증유의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방대한 고전에서 “주는 것이 도리어 받는 것임을 아는 것이 통치의 요체”라는 키워드를 골라서 그 의미를 중점적으로 되새김질해보았습니다.
이번기회에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서양의 여러 고전을 통하여 ‘주는 것이 도리어 받는 것’이라는 세상원리의 유효성을 제한된 지면에서 나름대로 재확인해 보았 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이제 자기위주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화합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사회통합에 이바지하는 지성의 힘을 아낌없이 발휘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성서와 동양의 여러 고전에 주제와 관련된 간단한 주석을 주마간산 (走馬看山)격으로 달면서 오늘 글을 마칩니다. 공자께서 논어 술이(述而)편에서 말씀하신 술이부작(述而不作)즉 ‘배운 것을 전할 뿐 창작하지는 않는다’라는 성구의 의미를 오늘 글을 쓰면서 체험으로 알 게 되여 기쁘게 생각합니다. 과외의 소득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