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두 아들을 오라고 불렀다. 어쩌다 보니 큰아들은 김제에, 둘째는 서울에 우리 부부는 경주에 살고 있어 영락없는 이산가족이다. 명절을 빼면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기도 힘들다. 나도 일을 하고 있어 솔직히 매일 자식 생각할 겨를이 없으면서, 애들에게만 부모를 찾지 않는다고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벌써 이러니 장가라도 가면 아예 남처럼 살겠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어 해 바뀌기 전에 네 식구가 한 번 뭉쳐보자고 경주로 내려오라고 했다. 둘째는 그래도 거의 매일 안부를 물어 올 정도로 곰살맞은 데가 있다. 얼마 전에는 내가 통화 중에 자식 얼굴도 못 보고 산다고 넋두리를 했더니, "엄마, 나 지금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거 있지." 하며 계집애처럼 애교를 떨어서 나를 웃게 하였다. 그런데 큰 애는 어찌 된 건지 날로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어려서 저도 아직 젖병을 떼지 못한 아기인데 동생을 본 것이 안쓰러워 온종일 큰 애를 업고 다닌 때도 있었다. 몸도 약해 꼭 병아리 같은 것이 마음은 여리고 착해 부모 말씀을 거스르는 법이 없어 기특하면서도 측은하기도 했다. 어느 날, 뭐가 속상한지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더니 미안했던지 금방 "엄마, 바람에 방문이 닫혀서 그랬어요." 하며 변명을 하던 생각이 난다. 나도 나지만, 남편의 자식에 대한 애정은 유별나다고 소문이 날 정도여서 유치원 때부터 애들이 하는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가 하면 나 몰래 애들 담임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큰아들이 대학 문턱에서 4수까지 하게 되니까 부모에게 실망과 걱정을 끼친 것이 죄송스러워 오히려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졌던 게 아닌가 싶다. 이제 나이도 서른 중반이니 그럴 때도 되었지만, 어찌나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센지 부모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남편은 여전히 어릴 적 자식으로만 생각해 자신이 도와주고 돌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래서 종종 큰아들과 감정이 부딪혀 괴로워하는 것이다. 자식의 인생을 대신이라도 살아줄 것처럼 병적으로 집착하는 남편과 그럴수록 더 거부 반응을 보이는 큰 아들 사이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지 못해 나로서도 그동안 마음 고생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이러다 정말 아들과 등지고 살게 되는 건 아닌지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큰 애가 제 아빠가 좋아하는 통영 굴을 보내오는가 하면, 아빠 건강 챙겨드리라며 고가의 보약을 보내는 등 제 딴에는 아빠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애를 쓰는 걸 보니 아들이 어릴 적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걸 알겠다. 식구가 모여 같이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얘기를 나누니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은 풀린 것 같다. 내놓고 말은 안 해도 남편도 큰 애도 한 발자국 물러서는 분위기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있는데, 남편이 인제 그만 자식을 믿고 좀 마음 편하게 풀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큰 애도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제 생각과 다르다고 무조건 욕심이라 치부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서로 오해하는 일 없도록 가족은 자주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한다. 다음 날, 애들이 각자 제 차로 출발하려 할 때 그냥 보내기 섭섭한 마음에 기름값이나 하라고 돈을 내미니 둘째 아들은 좋다고 하며 덥석 받는데, 큰 애는 어차피 엄마한테 용돈으로 다시 돌려드릴 건데 뭘 그러냐며 웃으면서 굳이 마다하는 것이다. 돈을 들고 실랑이를 하는 게 민망한지 둘째는 그러다가 떨어뜨리면 자기가 주워가겠다고 농담을 한다. 받았다 돌려주는 한이 있어도 엄마의 마음을 좀 받아주면 안 되나. 같은 배에서 나와도 어쩌면 저렇게 다를까. 남편마저 큰 애가 자라면서 점점 제 외삼촌을 닮아가는 게 아무래도 외탁을 한 것 같다고 한다. 그러면 큰아들이 자존심 세고 고지식한 게 다 나를 닮았다는 말인가. 문득 나도 우리 부모에게 모진 자식이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가슴 한끝이 아려오며 눈물이 핑 돈다. 모든 게 자업자득인가 보다.
첫댓글 엄마도 아들도 잘 살고 계시네요. 더 잘 살아보려고 그러시는 게지요. 잘 읽었습니다.
자식들을 자주 못 보면서 지낸다는 것은 공통된 현실인가봅니다.
결혼을 시켜도 늘 자식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