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행전 20:32~34에서 바울이 예수의 말씀을 드물게 인용한 부분을 말씀해 주셨어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에서 주는 것은 어떤 물건이나 음식뿐만 아니라 노동, 또는 자신의 시간도 포함된다고 하셨어요. 일상을 돌아보면 제가 주는 것보다 받고 있는 것들이 더 많구나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더 나눌 수 있을까 라는 방법적인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나눔의 체질화보다 먼저 이러한 나눔이 사회를 정화하고 평균케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어요. 주는 것은 함께 먹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에요.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자 하나 되는 과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외된 노동, 참노동...
유튜버들이 들인 노력에 비해 막대한 재화를 벌어 들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어요. 그것을 계속 즐겨 본다면(필요에 따라 볼 수도 있겠죠? ^^) 참노동으로부터 우리를 소외시키고 그러한 힘에 동참하는 셈이겠구나 싶었어요. 유튜브의 활성화는 모든 배움을 영상으로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어요. 저는 목공에 관심이 많은데 스승을 통해 배우는 게 아니라 일부분 영상으로 배우고 있어요(책과 병행). 관계가 아니라 정보로 지식을 습득하려는 세상의 힘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모든 일에 장단이 있어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처럼 영상을 통해 배운 지식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수련하는 것이 유익할 것 같아요.
#자립, 자치, 자족
인도의 예를 말씀해 주셨는데 자립, 자치,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종속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실력을 기르고 그것을 후대에 전할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올라왔어요. 나는 어린 시절을 콘크리트 와 세상의 기준에서 자랐지만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삶을 다시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스스로 돌보는 지식의 결여가 만드는 의존적인 삶으로부터 출애굽 하는 삶을 우리가 먼저 살아야 그들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예술에 대한 편견
예술에 대한 시각이 편협했음을 알게 되었어요. 음악, 미술 등의 범위로 한정해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잘해야 할 수 있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마음껏 표현하거나 시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흰 종이를 보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면 되는데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부터 올라왔어요. 세상이 말하는 예술의 습이 제게서 발견되었어요.
예술은 삶이구나. 변화 속의 안정, 안정 속의 변화처럼 역동하는 힘이란 생각이 들어요. 삶에 영역에서 고정된 부분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때론 무질서한 마음 정돈하여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 노동과 예술의 삶의 경계. 구분은 없는 거구나...
#수도원
갱신하기 위해 수도원을 찾게 되는데 정돈되어 있고, 간결하고 단순한 기운이라는 것에 공감했어요. 우리 교회의 공용공간도 이러한 뜻을 기억하고 만들어가야겠구나 싶었지요. 정돈, 간결, 단순 이 세 단어는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요. 제가 사는 공간에 정돈, 간결, 단순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만들어 가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소회
제게 이번 강좌는 관념적 지식 만을 습득하는 배움이 아니라 제 삶을 돌아보고 제 고정된 사고의 흐름과 습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머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돌아봐지는 배움이 진정 은혜구나 싶었습니다.
나눴듯이 '관계'라는 단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끊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신 하나님, 그리고 회복을 갈급하게 느꼈던 함께 배움을 시작했던 동무들. 지금의 만남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함께 밥 먹고 교제하면서 배운 바를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가며 작은 것에서 승리하는 흔적들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해요. 알다시피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요. 배운 바를 묻지 말고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보자고요~! ^^
다음 주 월요일 늦은 7시에 반가운 얼굴들 다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