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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계몽주의 +20세기 예술)개요와 비판대상
2- 1) 중세 이후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문화 및 이들의 후속현상- 이성 중심, 주체 중심, 법칙 중심의 사상적 경향
-(포스모더니즘이 비판하는 대상) 탈이성, 탈주체, 탈법칙을 제창하는 포스트구조주의와 더불어 전체주의의 폭력을 비판
2-2) 20세기 예술사조로 사용되는 지역적 개념-예술과 문화의 고급화, 엘리트화를 담고 있는 개념
-(포스모더니즘이 비판하는 대상) 엘리트주의가 갖고 있는 반인간성, 차별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
포스터모더니즘 개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속이면서 부정이다. 리얼리즘의 재현 미학을 부정하지만, 동시에 모더니즘의 비대중적 엘리트 취향에 반대한다. 포스트모던 영화는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포스트모던 영화 미학은 감각적 이미지의 콜라주, 상호 텍스트성, 혼성모방, 스펙터클을 추구한다. 포스트모던 영화의 미학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상업 영화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창조성과 유토피아의 잠재성을 갖는다.
1. 포스트모더니즘 개념과 역사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속이면서 부정이다. 리얼리즘의 재현 미학을 부정하지만, 동시에 모더니즘의 비대중적 엘리트 취향에 반대한다. 포스트모던 영화는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포스트모던 영화 미학은 감각적 이미지의 콜라주, 상호 텍스트성, 혼성모방, 스펙터클을 추구한다. 포스트모던 영화의 미학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상업 영화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창조성과 유토피아의 잠재성을 갖는다.
1. 포스트모더니즘 개념과 역사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역사연구』에서 19세기 말 이후 서구 근대 문명의 위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최초로 사용했다(Toynbee, 1965). 이 용어는 1960년대 이후 건축 분야에서 가장 먼저 대중화된다. 기능성과 실용성을 우선하는 모던 건축에 대한 반발로 포스트모던 건축의 흐름이 생겨났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모더니즘의 직선적 단순미를 벗어 버린다. 장식과 치장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을 혼합하는 경향을 보여 준다(Jencks, 1986).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 음악, 미술, 패션 등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로 확산된다. 포스트모던 예술은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는 미국과 영국의 팝아티스트들에 의해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제기된다(Bordwell, 2008).
1979년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유럽의 전후 복구가 완료되는 1950년대 말 이후 현대자본주의의 산업적 변형을 배경으로 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지칭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Lyotard, 1984).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라고 규정한다(Jameson, 1984). 포스트모더니즘은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의 탈역사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또한,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초국적 자본주의의 '시공간 압축(Time-space compression)'의 논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역사 이데올로기와 상통한다고 본다(Harvey, 1990).
하비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68혁명 이후 1970년대 자본주의 위기를 정치경제적 배경으로 한다(Harvey, 1990). 포스트모더니즘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 레이거노믹스에 따른 포스트포디즘과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산업 사회에서 정보 사회로, 국가 자본주의에서 글로벌 자본주의로, 제조업 자본주의에서 금융 자본주의로 현대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반영한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이 리얼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반면, 196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다. 모더니즘이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의 진보에 기반을 둔 사상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냉소적이고 탈역사적인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다. 모더니즘이 아방가르드의 예술 실험에 몰두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대중예술에 기반을 둔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은 TV, 비디오, 케이블, 뉴미디어 등 대중 매체의 시대가 도래한 것과 연관이 있다.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다(Kognisberg, 1997). 포스트모더니즘은 논리적 인쇄 문화에서 감각적 영상 문화로 사회문화의 변화를 반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시공간 압축성, 즉흥성, 순간성, 파편성의 이데올로기다. 이에 대해 일찌기 프랑스 상황주의자 기 드보르(Guy Debord)는 '스펙터클의 사회'가 도래했음을 선언했다(Debord, 1983). 스펙터클의 사회는 직접적 삶과 재현 대신에 이미지와 복제물이 지배하는 포스트모던 사회다.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계급 적대성의 새로운 형태(new forms of class antagonism)'에 대해 주목한다(Negri, 1988). 그에 따르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계급 적대성은 사라지거나 탈역사화 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공장을 넘어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된다. 네그리는 포스트모던 자본주의 '제국(Empire)'에 맞서는 사회적 노동자 '다중(Multitude)'의 세계적 차원의 시민권 확보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Negri, 2001).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뿌리는 포스트구조주의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질 들뢰즈(Gilles Deleuze) 등 일련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수천년 동안 서양 철학을 지배해 온 절대적 진리와 합리주의 사상을 거부한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거대 서사를 해체하고 미시성의 담론을 제시한다. 또한 그들은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자크 라캉(Jacques Lacan),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등의 구조주의 철학이 지닌 근본적 한계를 극복한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와 체계로 환원될 수 없는 주체와 차이의 영역, 세계의 다원적 질서를 복원한다.
이런 맥락에서 데리다는 차이와 지연의 개념을 통해 언어의 절대적 의미를 해체한다(Derrida, 1976). 리오타르는 거대 서사가 설득력을 지닐 수 없는 현대적 풍경을 직시한다. 또한 푸코의 패놉티콘(Panopticon)은 사회의 모든 영역을 감시하는 권력의 미시정치학을 전개한다(Foucault, 1979). 보드리야르는 복제물이 실재를 지배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허무주의를 포착한다(Baudrillard, 1983). 반면, 들뢰즈는 포스트모던 사회가 지닌 해방적 잠재력에 주목한다. 그는 현실을 넘어서는 가상 이미지의 창조성과 주체의 역동성을 이론화한다(Deleuze, 1987).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은 모더니즘 미학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부정이다.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리얼리즘의 객관적 재현 미학에 반대한다.
그러나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엘리트 취향과 비대중성에 반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충주의(eclecticism)와 다원주의(pluralism)의 미학을 보여 준다. 엘리트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장르, 스타일, 관습의 경계를 허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잡종성(hybridization)과 복합성(complexity)의 미학을 제시한다. 그것은 중심과 주변의 혼재, 패러디(parody),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혼성모방(pastiche), 나열과 병치(juxtaposition), 콜라주(collage) 등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르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란 언제나 새로운 반복일 뿐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Kundera, 1985)으로 가상 이미지의 표면 유희를 추구할 따름이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와 뉴미디어의 본격 등장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새롭게 부각시킨다(Darley, 1993). 디지털 복제와 인터넷 네트워크의 발달은 가상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시대를 연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의 가상공간을 창출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컴퓨터 합성과 가상 이미지에 기초한 디지털 영상 문화의 새로운 키워드로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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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60년대 프랑스와 미국에서 기존의 지배구조에 대해 비판했던 문화운동으로, 이른바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 인권운동과 연계되어 나타난 사조
본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1946년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Toynbee)가 『역사 연구(A Study of History)』 제3권에서 19세기 유럽의 합리주의가 붕괴하면서 전개된 시대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지만, 이미 1930년대부터 유럽의 문명비판가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말뜻 그대로 ‘모더니즘’을 ‘포스트(post)’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모더니즘을 한편에서는 이어 가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해체하고 넘어간다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모더니즘의 어떤 면을 이어 가고, 어떤 면을 해체하고 넘어가려는 것인가? 이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 모더니즘은 20세기 예술사조로 사용되는 지역적 개념이기도 하면서,2) 동시에 중세 이후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문화 및 이들의 후속현상을 가리키는 보다 광범위한 개념이기도 하다.
1)전자의 모더니즘은 예술과 문화의 고급화, 엘리트화를 담고 있는 개념이라면, 2) 후자의 모더니즘은 이성 중심, 주체 중심, 법칙 중심의 사상적 경향을 담고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전자의 모더니즘에서는 특정 계층 중심의 예술과 문화가 지배하는 현상이 자리하고 있었고, 후자의 모더니즘에서는 도구화된 이성, 절대화된 주체, 개성을 말살하는 법칙이 초래하는 전체주의적 현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이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출현한 것이다.
이 사조는 전자와 관련해서는 문예의 대중화를 통해 엘리트주의가 갖고 있는 반인간성, 차별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후자와 관련해서는 탈이성, 탈주체, 탈법칙을 제창하는 포스트구조주의(post-structuralism)와 더불어 전체주의의 폭력을 비판하였다.
한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전체주의, 중심주의, 이성주의의 폭력을 고발하고, 이를 모두 해체하여 새로운 해방의 문화를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다.
사실 모던과 포스트모던에 대한 핵심 논쟁은 하버마스(Habermas)와 리오타르(Lyotard)의 논쟁에서 본격화되었다.
하버마스는 1980년 아도르노상 수상 강연문인 ‘모던, 미완의 기획(Die Moderne-ein unvollendetes Projekt)’에서 모던을 완전히 폐기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모던을 바로 잡아 비판적으로 계승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는 모던의 이상적 조건을 과학적인 명제적 진리성(wahrheit), 도덕적 · 법적 정당성(richtigkeit), 예술적 진실성(authentizität)의 균형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1982년에 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내놓은 리오타르는 「질문에 대한 답변: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Réponse à la question: qu’est-ce que le postmoderne?)」라는 글에서 하버마스와 달리 모던에 내재되어 있는 전체주의적 폭력을 고발하고 모더니즘의 해체를 선포하였다.
그러나 프랑크(Frank)의 주장처럼 이들은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완전히 양자택일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모던 안에 포스트모던적인 요소가 일정 부분 내재되어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른바 모던의 분화구에는 개체성, 자율성을 강조하는 잠재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완전히 부정하고 해체하는 면도 존재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인간해방을 위한 긍정적인 요소는 계승한다는 면도 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저자 중심, 백인 중심, 이성 중심 등 중심주의가 낳은 폭력성에 대한 고발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들 중심의 해체에 대해 강하게 주장을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보다는 독자를, 이성보다는 감성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가령 리오타르의 경우, 모든 차이를 지워 버리고 하나로 통일하는 동일성의 위험을 벗어나고자 충돌, 불가 공약성, 분쟁, 표류 등의 개념을 강조하였으며, 데리다(Derrida)도 저자의 지배를 받지 않는 텍스트에 대한 강조와 동일성의 폭력을 거부하는 해체(déconstruction), 차연(différance)에 대하여 부단히 강조하였다. 또한 들뢰즈(Deleuze)는 절단과 유목을, 푸코는 광기를 중시하였다.
이들은 근대 계몽주의가 낳은 이성주의 폭력을 해체하기 위해, 그것의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몸과 무의식에 대한 강조, 나아가 욕망에 대한 긍정을 주장하였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의식, 주체, 중심이 형성하는 전체주의적 폭력에 대한 전면적 거부를 선포하면서 반이성, 무의식, 탈주체, 탈중심을 표방한다. 아울러 이를 위해 차이, 충돌, 차연, 표류, 유목 등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은 모더니즘 안에 자라난 거대 담론의 폭력을 넘어서 인간의 해방이라는 꿈을 기획하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포스트모더니즘은 신을 죽인 근대 휴머니즘적 인간을 다시 한 번 죽여 새로운 인간, 이른바 포스트-휴먼을 희망하고 있다.
이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당연히 주체와 타자를 가르고, 이성과 감성을 가르고, 의식과 무의식을 가르는 이원론에 대한 거부이자, 동시에 이들 사이의 차이를 존중하는 생태학주의나 페미니즘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오히려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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