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 물 좀 건네주오 "
김 묘순(수필가, 옥천문협이사, 훈민정음학원 원장님)
큰길가에 ‘용담댐 본댐공사’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며,
오래 전 댐이 생길 거라고 온 마을을 술렁이게 하던
그 일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포크레인과 발파작업을 알리는 확성기소리가 요란하다.
웬지 허전한 마음이 들어 ‘왜징이’라고 불렀던 곳까지 가 보았다.
산중턱에서는 큰 바위와 돌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내리고,
마치 온 산을 깨트릴 것 같은 폭음이 주변을 흔든다.
항상 내 곁에 큰 산같이 계실 것으로 믿었던 어머니.
지난겨울 어머니를 여읜 슬픔이,
허리가 잘려 나가는 저 산의 아픔과 함께 내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잘려진 산허리 사이로 보얀 먼지가 일고,
그 너머에서 내게 손짓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환영을 보았다.
어머니는 십 수년 동안 나룻배를 타고 이 용담댐 물을 건너 다니셨다.
마을 앞 동구밖에 있는 지서에 불이 환하게 밝혀지고
지서 안에서 지르는 고함소리가 우리집 사립문까지 우릴 때면
내 가슴은 저 폭파음보다 더 크게 울렸다.
한숨과 눈물로 밤을 지샌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 첫차로 싸움꾼 큰오빠의 면회를 떠나시는 것이다.
우리 마을은 행정구역상 전라북도에 속해 있지만,
법률상의 문제는 충남 금산의 지방법원지원에서
처리되었기 때문에 항상 그곳으로 가셨다.
10대 후반부터 사흘이 멀다하고 시작되는 큰 오빠의 싸움병,
30대 초반에야 겨우 막을 내렸으니,
십 수년을 미꾸라지 물꼬 드나들 듯
어머니는 금산으로 면회를 다니셔야 했다.
어느날 인기척에 눈을 뜬 나는 큰 밥솥에 돈 뭉치를
차곡차곡 챙기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어울이 주었던 여섯 마리의 소를 팔아 마련한 합의금을
안전하게 운반해 가기 위해서 어머니는 우박만한 눈물을
마루에 쏟아냈고 돈 뭉치는 밥솥에 쌓여만 갔다.
‘도둑질하다 잡히는 것보다 쌈질하다 잡히는게 나을 겨’라는
위안과 함께 어머니는 어둠을 가르고 새벽길을 늘 떠나셨다.
20여 리는 차로, 30여 리는 얼음발로 걸으시고,
이 물은 나룻배로 20원어치만큼 건너셨다.
그렇게 금산에 도착하면 당신의 끼니는 접어두고
자식에게 사식을 넣어주고 눈물바람으로 갔던 길 되짚어
막차로 겨우 집에 도착했다.
당신의 끼니는 모두 잊으신 채로,
어머니에게는 항상 시큼한 냄새가 났다.
어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바람을 타고 코를 자극하는
그 냄새가 어머니의 냄새인 줄만 알고 코를 벌름거리며
어머니의 젖가슴을 파고들던 시절,
모든 어머니의 냄새가 다 그럴거라 생각했던
나는 정말 바보였나 보다.
막차에서 내리는 어머니의 아무렇게나 채워진 단추와
힘없이 늘어진 어깨와 흩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소나무 껍질 같은 손안에는 항상
내게 줄 책이 한두 권씩 들려 있었다
서점에 있는 금산에 가신 길에 당신 끼니 대신 사 오신 책들이다.
나는 그 책 위에 그 날 밤 영락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러난 나는 한 번도 어머니께 고맙다고 말을 한 적이 없다.
무슨 일인지 안쓰럽고 목이 막혀 말을 못한 것은
어머니의 눈에서 금방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밤, 어머니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있노라면
나의 가슴에는 자꾸만 별이 뜨고 있었다.
한숨소리 섞어 당신의 얼굴을 내 볼에 대어도 눈도 뜨지 않았다.
아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나와 어머니의 얼굴사이에서
벌써 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얼마나 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으셨으면
모두 잠든 사이
나에게는 별이 뜨고 있는 이 시간에 강을 만드셨을까?
내 교과서는 새 것이었을 때가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는 밭 일을 해서 품삯을 받아
이웃 은실이 책을 사주기도 하고
승용이의 헌책을 얻어 오시기도 하였다
어찌된 일인지 은실이 책에 있는 ‘ㅇ(이응)’에는
모두 까만칠이 되어 있었다.
나는 책에 낙서를 했다고 지적을 당했다.
여러번 지적을 하시던 선생님께서는 교무실 복도에
책을 펴들고 끓어 앉아 있게도 하셨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말을 하지 않고
학교 앞 냇물에 가서 눈물자국을 지우려고
오랫동안 얼굴을 씻었을 뿐이었다.
특히 도덕과 사회 교과서는 개정이 자주 되다보니
아이들의 새 책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시원시원한 큰 목소리로 책을 잘 읽는다고
선생님께서는 매번 나에게 책을 읽히셨다.
책을 한참 읽다보면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웃어댔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
한여름 낮잠을 몰아냈다는 대가로 선생님은
아이들을 진정시켜 주었다.
그리고 개정된 교과서는 새것을 살 것을 권유하였는데,
나는 한 번도 어머니께 그 이야기를 전해준 적이 없었다.
그런날은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밭고랑에 앉아서 풀을 캐내며 별을 셀 뿐이었다.
어둠이 내려 풀이 안 보일 때까지 별을 세었다.
아주 여러번 되풀이하여 세어 보았다.
그 사이 어머니는 가슴으로 무엇을 세고 계셨을까?
스킨과 로션냄새를 알았을 때,
비로소, 나는 모든 어머니의 냄새가 시큼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어머니는 삼베 옷자락을 날리며
손짓을 하여 뱃사공을 불러 물을 건너
하늘에 별로 남으신 후였다.
몇 대의 트럭이 지나간다.
먼지 사이로 내 가슴속 어머니의 환영은
여전히 손을 흔들고 계신다.
‘사공, 물 좀 건네주오’
어머니가 언 발을 동동 구르며 사공을 부르던 나룻터도,
사공이 살던 오두막도 많은 사연을 진흙에 묻고
용담댐 깊숙이 묻히리라.
어머니,
다시는 한 많은 이승의 강물일랑 건너지 마세요.
어머니가 계신 그 곳의 별로 빛나세요.
어머니가 계신 그곳에 별이 되셨으리라
불효 딸은 믿고 있어요.
밤마다 나는 무수히 빛나는 별 중에
시큼한 엄마별을 찾아 오늘 밤도
또 별을 헤어 봅니다.
첫댓글 가슴을 울리는 정감어린 언어들, 절규하듯 외처 부르는 그 목소리가 가슴에 와 닿기에 제가 훔쳐 왔습니다...용서하십시요
법우님 이렇게 좋은글을 읽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친구들과 같이 읽겠습니다 .
훔치는것도 아주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