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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 5: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4년, 6월 30일. 어느 덧, 한 해의 절반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6개월이라는 많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뭔가 성취한 것은 없다고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오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은 6개월 동안, 연초에, 생각하고, 계획한 것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오랜만에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릴 때, 더위가 물러가고,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가 안 와도 걱정이지만, 비가 와도 걱정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가 안 오면 안 온다고 염려하고, 비가 오면 온다고 염려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염려와 걱정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인 듯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염려나 걱정없이,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주님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멀찌감치 거리를 두는 그런 어색한 관계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서, 친밀하게,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주님과 더불어, 잘 차려진 식탁에서,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염려는 멀리 멀리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염려와 걱정거리로 가득한 이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짐을 맡기고, 쉼과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무거운 짐들은 다 주님께 맡겨 버리고, 편안하게,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심으로,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시편 55:22절 말씀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여기서, “염려”와 “짐”은 악한 자들로부터 받는 핍박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걱정이나 고민거리들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벅찬 문제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를 부둥켜안고서, 밤새워 고민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고, 편안한 밤을 보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맡기라”라는 말씀은 “던지라”라는 뜻입니다. “던지라”는 말은 “쓸데없고, 해로운 것은 과감하게 내버리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염려와 짐” 같은 쓸데없고, 해로운 것을 주님께 맡겨 버리고 홀가분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아주 많으십니다. 관심만 많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서, 이것저것, 우리를 세심하게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와 짐을 모두 다 주님께 맡기고, 편안하게, 자유롭게, 행복하게,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 37:5절 말씀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히말리야 산맥에는 에베레스트 산을 비롯하여, 높고 험한 많은 봉우리들이 있습니다.
평소에, 아무리 훈련을 철저하게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높은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많은 장비가 필요한데, 그 무거운 장비들을 옮겨주는 사람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헬퍼(helper)라고 부릅니다. 우리말로는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 정상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훈련되어지고, 준비되어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실제로,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헬퍼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무거운 짐만 옮겨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함께 정상에 올라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헬퍼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리 훈련을 잘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산 정상에 올라갈 수 없다고 합니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계곡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합니다. 헬퍼가 아니면,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헬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야,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도,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인도하시고, 도와주는 헬퍼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헬퍼가 누구겠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분,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영원한 헬퍼가 되십니다.
우리의 염려와 짐을 대신 지고 가시는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헬퍼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짐들을 헬퍼이신 주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친히 인도하여 주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헬퍼이십니다. 우리의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헬퍼이신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길 때, 우리는 안전하고, 평안한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짐을 맡긴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짐을 맡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짐을 맡기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짐을 우리 스스로 지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무거운 짐을 우리 인생의 동반자이며, 안내자이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맘껏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찬송가 337장 1절 가사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게 되면, 견디다 못해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홀가분하게, 편안하게, 우리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시겠다고 하는데, 그 말씀을 믿고,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베레스트를 오르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짐을 헬퍼에게 맡기지 않고,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높은 산에 오른다고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맡겨야 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편하게 우리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31-3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예수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쓸데없고 불필요한 것들을 끌어안고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집 안에,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을 가득가득 쌓아놓고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것들에 애착을 가지지 말고, 과감하게 내버려야 합니다.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까워하기 때문입니다. “버리기에 아깝다”라는 마음이 강할 때, 버리지 못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버릴 때,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 개정판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염려와 걱정과 짐을 끌어안기 보다는 내버려야 합니다. 염려와 걱정 속에 잠을 못 이루는 밤이 아니라, 기도하느라 밤을 새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기 전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도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한 후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염려가 한 가득 있는 사람이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그 감옥 안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었기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기뻐기에,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했기에,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와 감사와 기쁨은 항상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맡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맡기고 싶어도 맡길 수 없습니다.
태산과 같은 문제라 할지라도, 주님을 믿고 맡기면, 우리의 짐은 가볍고 쉬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주님 앞에, 믿음으로,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합니다.
찬송가 369장입니다.
죄짐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모두 다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모두 다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여러분! 고통과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염려가 엄청나서 견딜 수 없을 때에, 우리는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와 같습니다. 바다에는 파도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 파도가 높으냐, 낮으냐? 그 파도가 강하냐, 약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바다에는 언제나 파도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파도를 넘고 나면,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옵니다. 그 파도의 물결이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에 우리는 절망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시편 42: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크든 작든간에, 사람들은 낙심과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시편 기자는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낙심과 불안이 밀려올 때,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우리의 낙심과 불안을 맡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께 맡겨야 하는 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님께 맡겨야 할 짐은 바로 “죄의 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짐 맡은 참 좋은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이사야 53:5-6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죄의 짐에 짓눌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죄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복음성가 가운데, 요게벳의 노래(모세의 어머니)라는 곡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 이 복음성가를 듣는데, 가사들이 귀에 확 들어왔습니다.
작은 갈대 상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네
어떤 맘이었을까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르고 흘러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보고 있는 아이와 입을 맞추고
상자를 덮고 강가에 띄우며 간절히 기도했겠지
정처 없이 강물에 흔들 흔들 흘러 내려가는 그 상자를 보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겠지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그가 널 구원하시리 그가 널 이끄시리라 그가 널 사용하시리 그가 너를 인도하시리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울 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처 없이, 강물에 흔들흔들 떠내려가는 그 갈대 상자를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그가 널 구원하시리 그가 널 이끄시리라 그가 널 사용하시리 그가 너를 인도하시리”
여러분!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내려가고 있는 우리를 보고 계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왜 그때, 베드로는 하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야만 했던 것일까?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고기를 잡은 그 순간, 하필, “나는 죄가 많다”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때 그 순간, 베드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외쳤던 사도 바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사람이,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몸부림쳤던 것일까? 그렇게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던 바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은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은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바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의 짐이 얼마나 크고 무거우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맡기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문제입니다.
더 이상 죄의 짐을 지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십자가 밑에 죄의 짐을 맡겨 버림으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주님께, 염려와 죄의 짐을 모두 다 맡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참된 평안과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고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오직 주님의 돌보심 가운데,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