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성경이야기 13>
나를 붙들지 말라
'놀리 메 탄게레(Noli me tangere)’
주간 첫날, 이른 아침 부활한 그리스도와 마리아 막달레나(이하, 막달레나로 표기)는 예수의 무덤 곁에서 조우한다. 그리스도는 ‘스승님!’ 이라고 부르며 다가오는 막달레나에게 ‘나를 붙들지 마라’며 피한다. 요한복음 20장 11-18절과 함께 이 장면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문헌은 13세기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펴낸 [마리아 막달레나의 기적]이라는 책인데, 여기서는 부활한 예수가 ‘놀리 메 탄게레(Noli me tangere)’라고 말하며 막달레나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대었는데, 그녀의 유골에는 예수가 손 댄 그 부분만이 썩지 않았다는 전설이 함께 전한다. 또 1279년 프로방스의 성 막시미누스 교회에서 발견된 그녀의 무덤은 13세기 이후 순례지로 각광을 받게 되며, 프로방스의 공작 앙주(Angou)가의 샤를르 드 살레르노(Charles de Salerno)가 나폴리 왕이 되어 이탈리아 남부까지 막달레나 신앙이 전파된다. 특히 13세기 탁발 수도사들은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복음 20: 18)라고 말한 막달레나를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이며, 그리스도를 만난 뒤 참회와 고행으로 여생을 보낸 신앙의 모범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소개하였다.
다가가는 막달레나, 피하려는 그리스도
놀리 메 탄게레가 이미지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막달레나에 대한 성인 공경이 시작되는 11세기경으로, 예수와 막달레나 뿐 아니라, 다른 여인들과 함께 등장한다. 오텅(Autun)의 성 라자로 대성당의 주두 조각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과도기 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화면 왼쪽 막달레나는 허리와 무릎을 굽히며 손을 아래로 뻗고 있고, 그리스도는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숙여 막달레나를 내려다보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자세이다. 그리스도 뒤로는 다른 마리아-성모의 이복 자매인 클레오파스의 마리아, 살로메의 마리아-들로 여겨지는 두 여인이 향유가 든 병을 들고 무덤으로 다가가고 있다. 여인들 우측, 빈 무덤에는 천사가 앉아있다. 즉 이 작품에는 요한복음을 근거로 한 놀리 메 탄게레와 다른 공관복음에서 전하는 무덤의 세 마리아라는 주제가 혼재되어 나타난 것이다.
[놀리 메 탄게레] 1130년 경 주두조각, 성 라자로 대성당, 오텅
[놀리 메 탄게레] 12세기 초 상아조각,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이제 12세기, 스페인 지역에서 제작된 상아 부조에는 막달레나와 그리스도만이 등장한다. 무릎을 굽힌 마리아는 적극적으로 손을 뻗어 그리스도에게 다가가고, 그리스도는 거절의 손사래와 함께 하체를 반대 방향으로 옮기고 있다. 이처럼 놀리 메 탄게레에서 예수께 다가가는 막달레나와 이를 피하려는 그리스도의 제스쳐는 이들의 감정을 들어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정원사로 표현된 그리스도
14세기 초, 두치오가 그린 놀리 메 탄게레는 비잔틴 전통에 충실하다. 황금빛 배경과 단조로운 바위산을 배경으로 막달레나는 초기부터 나타나는 자세인 굽힌 무릎과 뻗은 손으로 그려졌다. 한편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리스도는 나무 십자가를 들고 있는데, 십자가 상단에는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하는 깃발이 달려있다.
비슷한 시기인, 1304-6년 지오토가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채플에 프레스코로 제작한 놀리 메 탄게레에는 여러 새로움이 나타난다. 우선 화면을 반으로 나누면, 왼편에는 그리스도의 빈 무덤과 이를 지키고 있는 잠자는 로마 병사의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졌다. 화면 오른편에 막달레나와 그리스도가 등장한다. 막달레나는 그리스도를 잡으려는 전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고, 그리스도는 그녀로부터 멀어지려한다. 두치오의 작품에서 붉은 장옷과 푸른 토가를 걸쳤던 그리스도가 지오토의 작품에서는 하얀색 장의를 입고 있으며, 승리의 깃발과 함께 십자가 대신 호미를 들고 있다.
두치오 [놀리 메 탄게레] 1308~1311년 목판에 템페라, 시에나 대성당 박물관 소장
지오토 [놀리 메 탄게레] 1304~1306년 프레스코화, 스크로베니 예배당 (아레나 예배당)
14세기부터 놀리 메 탄게레에는 호미를 든 예수의 모습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막달레나가 부활한 그리스도를 처음에 알아보지 못하고, 정원사로 착각한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두치오의 작품이 막달레나-그리스도간의 심리 표현에 더 관심을 두었다면, 지오토의 놀리 메 탄게레는 부활사건의 연장선에서 다루고 있다.
막달레나의 상징 : 풀어헤친 머리, 향유병, 동굴
1440년경 프라 안젤리코가 산 마르코 수도원의 프레스코로 그린 놀리 메 탄게레에서 그리스도는 긴 삽을 어깨에 메고 있다. 예수는 눈이 부시게 흰 옷을 입고 마치 춤을 추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막달레나와 거리를 유지한다. 화면 왼편, 막달레나 뒤편에는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파서 만든 빈 동굴 입구가 보이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빈 무덤을 표현한 것이다. 동시에 막달레나가 죽기 전까지 기도와 고행으로 말년을 보냈던 동굴을 상징한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막달레나는 예수의 승천 이후, 남프랑스로 건너와 많은 이를 개종시키고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30년 동안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즉 이 동굴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막달레나의 고행을 상징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프라 안젤리코 [놀리 메 탄게레] 1437~1446년경 프레스코화, 산 마르코미술관 소장
브레히트 뒤러 [놀리 메 탄게레] 1510년경 목판화, 12.7cmx9.7cm, 대영 박물관, 영국
마가복음에서는 막달레나를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주신 여자’(마가복음 16:9)로 묘사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을 종합하면,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다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치유되었고, 그를 따르며 시중을 들다가 십자가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았고, 부활한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대면한 인물이다. 그런데 교황 그리고리오 1세는 루카 복음에 등장하는 ‘죄 많은 여인’과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나사로의 누이를 막달레나와 일치시키는 교회의 공식입장을 밝혔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죄 많은 여인’은 예수님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기에, 15세기부터 이미지로 그려진 막달레나는 감정이 격렬하고 몸짓이 크며 화려한 옷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으로 그려진다. 앞서 두치오나 지오토가 그린 막달레나의 모습은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두건을 쓰고 있는 정숙한 모습이라면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막달레나는 금발을 풀어헤친 모습이며 분홍색 옷을 입고 있다.
또 1511년 뒤러가 제작한 목판화에 등장한 두 인물은 매우 새롭다. 그리스도는 모자를 쓰고 긴 삽을 어개에 맨 정원사의 모습으로 막달레나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마리아 막달레나의 기적]에 나오는 장면이다. 또 막달레나는 왼손을 향유병에 올려놓고 있다.
마치 연인처럼, 티치아노의 [놀리 메 탄게레]
막달레나가 신앙인의 모범으로 교회에서 인기가 있었던 만큼 화가들에게는 그녀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놀리 메 탄게레는 매력적인 주제였다. 그리스도와 막달레나의 조우를 목가적인 풍경에서 관능적으로 표현한 것은 티치아노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로인클로스만을 걸치고, 시신을 수습했던 아마포를 망토처럼 목에 두르고 왼손에 호미를 들고 나타났다. 마리아는 거의 땅에 엎드린 것처럼 몸을 굽히고 그리스도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녀의 손길을 벗어나려는 듯 뒤로 빼고 있지만, 시선은 막달레나를 부드럽게 응시한다. 두 사람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는 앞선 작품들에 비해 한층 가깝게 묘사되었다. 마치 연인처럼. 오른쪽 발등에 못자국이 없다면 그리스도는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젊은 남성처럼 보인다.
티치아노 [놀리 메 탄게레] 1512년경 캔버스에 유채, 91cmx109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한편 막달레나는 그녀는 황금빛 머리를 풀어 헤치고, 왼손에 작은 향유병을 들고 있다. 넓고 주름이 풍부한 소맷자락의 흰 상의와 풍성한 붉은 치마는 코르티잔(Courtesan)으로 불렸던 당시 베네치아의 고급 매춘부의 옷차림이다. 베네치아에서는 1509년 사치 금지법이 발효되어 매춘부를 제외하고는 옷감이 적게 드는 일자 소매가 유행했다. 즉 티치아노는 당시 매춘부가 입었던 옷을 막달레나에게 적용함으로써 그녀의 관능미를 강조하는 동시에 ‘죄 많은 여인’으로 그리고 있다. 한편 화면을 비스듬히 가르는 떡갈나무는 단단한 나무의 특성으로 강한 신앙심과 함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이다. 또 그리스도 뒤, 중경에 그려진 양떼들은 선한 목자인 그리스도를 연상시킨다. 이렇듯 떡갈나무를 기준으로 화면 왼편은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공간이고, 오른쪽의 언덕위의 집, 언덕길을 내려오는 개와 사람은 막달레나가 속한 세속의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티치아노는 등장인물의 섬세한 감정만큼 목가적인 배경이 갖는 상징성도 치밀하게 표현하였다.
글 : 정은진 / 문학박사, 서양미술사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