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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지원사 권리를 찾아서(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연재> 14. 5년 만에 취업을 하고 받은 첫 월급
코난 추천 0 조회 104 14.11.06 12: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전신마비장애인 보험설계사

 

 2003년 12월 26일, 교통사고로 전신마비장애인이 된지 5년 만에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으로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일이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외롭고, 답답한 방 안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2003년 12월, 삼성화재 이천사업소 사무실

 

26일 정식으로 보험설계사가 되자마자 명함을 만들어 처음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명함을 주었다. 내가 보험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가 중도장애인이라 어느 정도 인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동창, 군대 동기, 회사 동료, 친척 동생 그리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만난 선.후배들이 있어서 처음 시작한 한 달은 인맥 위주로 영업을 했다.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일을 시작하고 명함을 전하자 주변 사람도 소개하며 흔쾌히 도와주었다.

 

2004년, 이천라이프지 1월호 기사

 

전신마비장애인은 여러 가지 합병증과 단점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추위와 더위에 민감한 것이었다. 경수 4번의 손상으로 인해 어깨 아래로 내려가는 신경이 끊겨 더울 때는 땀이 안나 체온이 올라서 쉽게 일사병에 걸리고, 추울 때는 반대로 추위를 빨리 타서 한 겨울이나 한 여름에 오랜 시간동안 밖을 돌아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겨울에 눈이 많이 오거나 강추위 날씨에는 밖에 나와 영업을 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5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하다 보니 의욕이 앞서 추운 줄도 몰랐고, 아침 일찍부터 나와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명함을 돌리고 늦은 저녁이 돼서야 들어오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려서 인지 아침부터 늦게까지 오래 앉아 있어서 그만 엉덩이에 있는 꼬리뼈 주변이 까맣게 변해 욕창이 생기고 말았다. 이 상태로 계속 돌아다니면 욕창이 더 커지고 심해질 수 있었다. 척수장애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합병증 중에 하나가 욕창인데 신경이 끊긴 부위 아래로는 바늘로 찔러도 감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서 오래 앉아 있으면 눌린 부위에 피가 통하지 않아 욕창이 생긴다. 욕창이 생기면 바로 누워서 욕창이 나을 때까지 치료를 한 후에 다시 휠체어를 타야 한다. 그런데 치료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휠체어를 타면 욕창이 피부 깊숙이 번져 수술을 하거나 염증이 심해져 사망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일을 쉬고 침대에 누워서 욕창을 치료 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욕창이 초기이고 심하지 않아 일주일 동안 누워서 치료를 받으니 완치가 되었다. 그래서 “너무 욕심 부려서 계약을 많이 해 실적을 올리는 것보다. 실적을 조금 못하더라도 오래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자제 해야만 했다. 

 

2004년1월12일, MBC뉴스 함께 사는 세상

 

전신마비장애인으로 보험설계사를 시작 하면서 비장애인보다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예상을 했다. 그러나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어려움이 많았다. 추위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지만 눈이 많이 오거나 비가 많이 오면 휠체어를 타고 내려기가 불편해 일하기 힘들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보다 계단으로 되어 있는 건물이 많아 영업에 제한도 있었고, 주말에는 활동보조를 도와주는 형이 쉬어서 집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리해서 오래 앉아 있으면 또 다시 욕창이 생길 수가 있어 정해진 시간 안에 집중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비장애인 보험설계사들 보다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 실적을 올리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첫 월급,

 

그런 과정을 거치며 2004년 1월 25일, 드디어 첫 월급을 받게 되었다. 활동보조를 도와주는 형과 함께 은행에 가서 통장을 확인해 보니 첫 월급으로 140만원 조금 넘게 들어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5년 만에 직장을 구하고, 한 달동안 열심히 일해서 받은 첫 월급,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갚진 돈이었다.

 

그렇게 통장을 확인하고 바로 100만원을 인출해 한 달동안 활동보조인으로 나를 도와준 형에게 월급으로 드렸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한 달동안 어렵게 일해서 활동보조 비용으로 쓰고 나면 남는 것도 별로 없는데 차라리 집에 누워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물어보면 “일주일만 아무것도 안하고 방 안에 누워 지내면 제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2004년 1월 18일, 에이블뉴스 기사

 

비록 한 달동안 열심히 일해서 활동보조 비용으로 쓰고나면 남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나는 그 대신 매일 밖을 나가서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기에 그보다 갚진 것은 없었다. 

 

그래서 가끔 해가 맑은 날이면 차창 안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한 조각을 몸으로 느끼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한 조각을 눈에 담으면 그것 만으로도 나는 행복했고,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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