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 사람이라
(삼하 12:1-6)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요즘 아이들이 버릇없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예절이든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버릇없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흔히 부모들은 자식들 기 살려준다고 ‘네가 최고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 아들딸이 제일 잘생겼고, 제일 똑똑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놀 때도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고,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고, 다른 친구를 무시하거나 자기 고집대로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합니다.
제일 잘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니까, 자기가 하는 일은 항상 옳은 줄 착각합니다. 최고라고 하니까, 뭘 해도 괜찮은 줄 착각합니다. 그렇게 버릇이 없어지고, 관계 맺기가 어려워지면서 사회생활이 힘들어집니다. 스스로 잘났다, 옳다고 믿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갈등이 생기고, 불화하고, 분열하게 됩니다.
부모는 자식들 기 살려주려고 한 말인데, 버릇 없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잘못을 하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많습니다. 부모가 거들고 나서서 ‘우리 자식이 무얼 잘못했느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버릇 없는 것이 아니라, 요즘 부모가 자식을 잘못 가르친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것입니다.
부모가 ‘우리 아들딸 최고다’라고 하면, 자식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날 무척 사랑하시는구나’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최고인 줄 착각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하면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덕담해준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이 좋다’고 칭찬하면, 믿음이 좋은 줄 알고 게을러지거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 한다면,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잘 쓰는 말이 ‘성도는 귀한 사람,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특별하고, 귀하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특별하다, 나는 귀하다, 그래서 대접 받아야 한다’고 착각한다면, 그의 신앙은 그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를 위해 가장 귀한 것으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착각하고, 오해하면, 버릇 없는 아이처럼 버릇 없는 인간, 교만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축복하고, 기뻐하신다고 해서 내가 옳다, 내가 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옳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허물이 많고, 실수를 해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면, 내가 옳은 줄로 오해하지 말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허물 많은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만해 보이고, 오만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말씀을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행동은 무엇이든지 신앙으로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방하고, 폭력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의 신앙은 옳을지 몰라도, 그의 행동은 결코 신앙적이지 않고, 잘못 믿은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잘못 믿는 사람도 많다는 말입니다. 잘못 믿게 되는 데는 말씀에 대한 오해와 착각 때문입니다. ‘특별하다’는 말을 오해하고, ‘예수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말을 오해한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어 구원 받았다’는 신앙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믿는 신앙으로 다른 사람을, 혹은 믿지 않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잘못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은 주로 스스로 잘 믿는다는 사람, 신앙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자기만 옳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우리가 보기에 흠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관한 비유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믿음을 자랑합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바친다’고 합니다. (눅 18:11-12) 세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슴을 치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누가 신앙생활 잘하고 있습니까? 바리새인이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두 사람 중에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돌아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한 말씀 하십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 바리새인이 세리와 비교하지 않고, 세리를 정죄하지 않았다면 칭찬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기를 높여 자기가 옳은 줄 알고 남을 판단하는 잘못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뜻이 ‘구별되었다’, ‘구별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하다는 말을 오해했기 때문에 잘못된 신앙이 된 것입니다.
특별하기는 한데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한다, 너를 불러 일꾼으로 삼았다, 너를 복 주어 자랑이 되게 하겠다고 하면, 교만한 생각을 하지 말고 ‘나 같은 사람을 불러 써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만 오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 왕도 오해를 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다윗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선택받은 종이었습니다.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웠으므로, 그가 하는 일은 항상 성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왕이 되었을 때, 나단 예언자를 보내 축복하십니다. 왕위를 굳건하게 하고, 자손들까지 왕위가 이어지도록 축복하시며, 나라를 부강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7장에 나오는 축복이라면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서야 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오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으니 내가 옳구나,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선하다’라고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신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게 됩니다.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를 불러 동침하게 됩니다. 다윗은 자기의 범죄를 숨기려고 우리아를 전쟁에 보내 전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밧세바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온갖 나쁜 짓을 다 했습니다. 11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가 옳은 줄 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 비유를 들려주게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이 나단의 비유입니다. 비유는 간단합니다. 한 마을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부자는 양과 소가 많고 가난한 사람은 새끼 양 한 마리를 자식처럼 기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부잣집에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을 대접할 양을 잡아야 하는데 자기 양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새끼 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듣고 다윗이 화를 내며 말합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5절)
다윗은 자기가 한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스스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왜? ‘자기는 하나님의 선택과 축복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축복이 다윗을 옳다고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을 옳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고발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7절) 다윗은 자기 자신을 저주한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대로 죽어야 합니다. 다윗이 죽는 대신 밧세바가 임신한 첫 아이가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으니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은혜를 다윗이 오해했기 때문에 교만해졌고, 죽음이라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어떤 일이든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옳기 때문은 아닙니다. 흠이 없고 죄가 없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별하고, 선택받았고,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받은 것은 옳고 선한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항상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성숙한 신앙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