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많은 역사가들이 송파구 풍납동을 한성백제 왕성으로 추측하고있는데
아래 백제본기 내용을 보면
"고구려 사람들이 병사를 네 방면의 길로 나누어 협공" 했다고하는데
풍납동이 왕성이라면 세 방면이 아닌가해서요...
<백제 본기>
(서기 475년) 가을 9월, 고구려왕 거련이 병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한성을 포위하였다. 임금이 성문을 닫고 나가 싸우지 못하였다. 고구려 사람들이 병사를 네 방면의 길로 나누어 협공하고 또 바람을 이용해서 불을 질러 성문을 태우니, 사람들이 두려워 성 밖으로 나가 항복하려는 자도 있었다. 임금은 상황이 어렵게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났는데, 고구려 병사가 추격하여 임금을 살해하였다.
첫댓글 네방면, 세밤면 공격로를 기준으로 지명을 비정할 수 있을까요?
<삼국사기>백제본기 온조왕조 기록과 <통전/변방문/동이하> 고구려조 기록에 근거하자면 낙랑군 서쪽이며 요동군 남쪽일텐데. 아무래도 서울 풍납동은 커녕 경기.황해.한반도도 아닐 거라 봅니다.
개로왕은 온조백제가 아닙니다. 왜5왕중 "제"에 해당하며 일본에서 왕 노릇하다가 450년경 온조백제를 함락하여 왕이 된 자죠. 그래서 장수왕이 그를 죽이려 475년 남하하여 그 일족을 모두 죽이게 됩니다.
결국 일본에 있던 곤지의 아들인 "흥"과 "무"가 다시 동성왕과 무령왕이 되어 다시금 권력을 잡게 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