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5월19일(토)맑음
10:00 템플 스테이 명상 프로그램 진행하다. 침묵과 평온을 모토로 하면서. 부동거사, 송계거사, 아미화, 문인, 하림, 현정, 여수보살 참석하다. 오후에 해성, 명성, 초록보살 참석하여 선학산 전망대까지 포행하다. 저녁예불 전에 연등을 달고 불을 밝히다. 저녁 정진하다. 명성, 해성, 아미화, 현정은 집으로 돌아가다.
2018년5월20일(일)맑음
새벽4시 기상하여 예불 드리고 명상하다. 아침 공양하고 커피 한잔 나누다. 명상 소감을 듣다. 송계거사, 몸을 조복 받아 장애를 돌파하다. 부동거사, 소진되었던 정진력 회복하다. 나는 학생들이 침묵을 지키기로 했던 약속을 잊어버리고 잡담을 나누어 정진분위기를 해쳤다고 경책했다. 오전 정진 10:00에 마무리하고 회향기도로 프로그램 정리하다. 모두 돌아가고 아미화와 문인은 남아서 청소하다.
마을 경로당에서 할아버지 두 분이 찾아와 연등 값으로 보시하다. 오후에 할머니 여러분이 경로당에서 놀다가 귀가하는 길에 선원에 들러 구경하고 가시다. 밤에 연등을 밝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무얼 바라는가? 욕계 세상에서 바랄 것이 있기나 한가?
욕계중생이 경험하길 바라는 모든 것이 욕의 표현일 뿐인데, 욕을 뛰어넘은 것을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
기억되는 과거가 사라지고 기대하는 미래도 없어질 때 나는 무엇인가?
내가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오래 살기로 결정할까?
80세, 90세, 100세, 아니면 120세, 혹은 200세를 선택한다고 치자, 그러면 거기에 합당하고도 자명한 이유와 동기가 있어야 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를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이 세상에 어떤 것(진리, 신, 초월적 실재, 과학기술)이 있어 너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거라 믿는다는 것은 너무 순진하지 않은가? 그런 것이 가능할 거라 믿었던 시절이 그립다. 마치 지외르지 루카치(Gyorgy Lukacs,1885~1971)가 말했듯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소설의 미학’의 첫머리) 나의 질문에 답해줄 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최소한 그건 내가 밝혀낸 사실이다. 그리고 나의 질문에 답해줄 자는 바로 나라는 것이다. 왜? 내가 물은 질문이기에 나 자신만이 자신에게 자명하게 느껴지는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답이 아무리 정답에 가까울지라도 그건 근사치일 뿐이니 다만 참고로 할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참고일 뿐이니, 결국 내가 답이다. 나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질문의 답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삶이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건 자신만이 아는 일이다. 나는 무슨 질문에 대한 답을 살고 있는 것일까?
2018년5월21일(월)맑음
오전부터 아미화, 문정, 현정 와서 초파일에 쓰일 음식을 준비하다. 노란 색 천위에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회 안내 플래카드를 그려서 펜스에 매달다. 아미화보살 큰 길에서 선원으로 올라오는 긴 계단을 쓸다. 문아보살 법당장엄용 큰 화분을 보내오고, 연등을 달다. 꽃집사람들이 와서 관욕과 불단을 장엄하다. 향인보살 초파일법회용 법문을 프린트해오다. 저녁 강의하고 나서, 연등에 불을 밝혀 내걸다. 초파일 맞을 모든 준비가 끝났다.
2018년5월22일(화)맑음
오늘은 불기2562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10:30 봉축법회를 하다. 모친과 고등학교 은사님도 오시다. 시흥에서 오신 카페 회원도 계셨다. 독경과 불공, 법문과 회향문 낭독하고 법회를 마무리하다. 모두 함께 점심 공양하다. 차를 마시고 선학산 전망대까지 포행하다. 저녁에 점등하고 위빠사나 수행하다. 연등을 거두어들이다. 집에 가지고 갈 사람은 몇 개씩 가져가게 하다. 하루를 마치고 나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잦은 발걸음으로 부산했던 도량을 촉촉이 적셔준다. 비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하루일과를 마치고 자리를 정리하고 앉으니 평화스러워. 비여,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조선시대에도 연등을 밝혔다. 서거정의 한시를 보면 초파일 밤 한양풍경을 상상해볼 수 있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지은 한도십영(漢都十詠,한양의 열 가지 풍경을 읊다) 가운데 종가관등(鍾街觀燈, 종로거리 관등놀이)이란 게 있다.
장안성중백만가 長安城中百萬家,
일야연등명이하 一夜燃燈明以霞;
삼천세계산호수 三千世界珊瑚樹,
이십사교부용화 二十四橋芙蓉花.
서울 성안 집집마다
밤새 켜놓은 등불이 노을처럼 환하구나,
삼천대천세계가 오직 산호나무 일색이요
스물 네 개의 다리 모두 연꽃으로 가득하다.
동가서시백여주 東街西市白如晝,
아동광주질어유 兒童狂走疾於狖;
성두난간난미수 星斗欄干爛未收,
황금루전최효루 黃金樓前催曉漏.
동쪽거리와 서쪽시장이 모두 대낮같고
아이들 뛰는 것이 검은 원숭이보다 더 빠르구나,
난간에 북두성이 걸리도록 등불을 거두지 않아
황금누각 앞 새벽 물시계를 재촉하도다.
2018년5월23일(수)맑음
밤새 비 뿌리더니 아침에 쾌청해졌다. 지우스님에게서 문안 전화 오다. 일광스님에게 문안전화하다. 창문을 열고 통풍을 시키다. 시야가 넓어지니 하늘 색 하늘을 배경으로 보이는 풍경이 선명해진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 선택이 가능할 때가 오면,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 꼭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얼마나 오래 살기로 작정할까?
자기의 수명은 자기가 결정해야한다. 부처님께서 당신의 수명을 80 세로 정하셨듯이.
무턱대고 오래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다. 자기 삶에 의미가 있어야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살만한 가치가 있어야 사는 것이다. 그냥 사는 것은 죽지 않아 꿈틀거릴 뿐이니, 다만 생존하는 것만으로 산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이란 존재가 이 세상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이 세상의 누군가가 당신이 함께해주길 바랄 때까지 당신은 살아있어도 된다. 그러나 당신의 삶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타인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면 당신은 떠나야할 때를 놓쳤음을 깨달으라. 사람들에게 덕이 되는 삶을 살라. 그렇지 않고 빚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즉시 떠나라. 아무도 너의 부재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한 개가 있던 곳에서 사라졌다 해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듯, 광대무변한 세상에서 너 하나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살만큼 살았다는 느낌이 오면 그냥 즉시 떠나라. 소리 없이 흔적 없이 가라.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머물고 떠나는 여행객이 배낭을 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나듯 정든 곳을 떠나라. 구름같이 머물다 바람처럼 사라지라. 새같이 날다가 소나기처럼 떨어지라. 바위같이 쉬다가 폭포처럼 쏟아져라.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을 끝낸다. 그것이 끝 길이다.
2018년5월24일(목)맑음
요가와 기공체조하다. 점심 공양하고 청소하다. 연등을 모두 정리하다. 빨래하여 말리다.
2018년5월26일(토)맑음
아침에 버스타고 대구 가다. 관오사 모임. 십지경 강좌 제2강. 오래간만에 만나는 스님들 얼굴 보니 반갑다. 비구니 스님들 세 분도 충청도 서산에서 오셨다. 오후 2시에 시작하다. 먼저 빠알리 예경문을 합송하고, 참회 의식을 행하다. 등현스님의 강의를 경청하다. 중간에 차를 마시고 다시 2부 강의하다. 6시에 마치고 질문 응답을 한 시간 진행하다. 7시20분쯤에 마치다. 차 한 잔 나누고 헤어지다. 진주로 돌아오다. 모든 것이 반짝이는 한 순간이다. 한 순간의 반짝임! 法界법계가 電光石火전광석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