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만든 지도에는 수많은 국경선이 있다. 하지만 그 땅에 실제로 사는 동물들은 국경선과 상관없이 하늘과 땅, 바다를 오가고 있다. 동물들에게 이곳이 러시아 영토인지 카자흐스탄 영토인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강이 국경선인 곳에 흐름이 바뀌어서 섬이 생기거나 반대편 육지로 붙어서 양국의 영유권 분쟁이 생기도 한다. 45억 년 동안 수많은 생명의 명멸을 지켜본 지구 입장에서 국경선이라는 것은 있어 본 적도 없고 지금도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국경선(영토) 때문에 인류는 수만 명이 죽어간 전쟁을 매번 반복했다.
국가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의 상상 속에 존재할 뿐이다. 유발 하라리 작 사피엔스에서 상상의 질서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에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게 한다. 문명을 만든 인류 중 엘리트 그룹은 상상의 질서인 국가를 유지하고자 계급을 만들고 피지배계급에 대한 통치 논리를 개발된다. 종교를 만들어서 신의 이름을 빌리고 군주제를 유지하고자 관료를 키운다. 그 뒤 인류는 유럽에서 시작된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전까지는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퇴진을 시킨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피지배층들이 지배층의 퇴진은 물론 국가체재까지 변경시킬 수가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낡은 종교를 잠시 밀어두고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더욱 정교해진 상상의 질서가 계발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지배층은 피지배층에게 정교해진 상상의 질서를 끊임없이 교육한다.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 복잡해진 것 같지만 세세히 이해하지 말고 단순하게 보면 어떨까?
[독재자의 핸드북]이라는 책에서 지도자는 정치 지형을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눈다.
명목 선출인단, 실제 선출인단, 승리연합
명목 선출인단(대체가능집단)은 특정 지도자를 잠재적으로 지지할 사람의 집합이다.
실제 선출인단(유력집단)은 그들의 지지가 지도자에게 실제 영향력을 발휘할 집합이다.
승리연합(핵심집단)은 지도자가 권력자로서 반드시 지지를 받을 집합이다.
공평한 투표기회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명목 선출인단과 실제 선출인단은 거의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실제 선출인단은 투표장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모든 국민은 일단 명목 선출인단이다. 하지만 그들의 100% 투표 100% 찬성을 보면 지도자에게 실제적인 영향력은 없다고 봐도 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제 선출인단은 왕족의 원로들이다. 소련의 승리연합은 20여 명 되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는 실제 선출인단의 규모 때문에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는 국가의 자원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자 공공재를 늘린다. 하지만 독재국가는 실제 선출인단에게 충성심을 유지할 정도로 보상하면 된다. 그리고 승리연합에 부과 권력을 나누면 된다. 그래서 승리연합을 소수로 유지한다. 승리연합이 적을수록 통제권과 지출에 대한 재량권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재국가는 효과적인 공공정책을 투자를 못 하는 것이다. 승리연합이 국가의 부를 대부분 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안 하기도 한다. 자이르의 모부트는 30년 동안 도로건설은커녕 있는 도로도 방치를 했다. 그 도로로 국민이 독재자인 자신을 잡으러 올 수 있다는 이유였다.
출장이 많은 나는 요즘 차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역사 강의를 즐겨 듣고 있다. 세상만사 고려사 강의 중 김인호 교수가 독재자 광종의 통치술을 설명하면서 [독재자의 핸드북]라는 책을 인용하였다. 인상 깊은 내용이라 구하려고 했는데 품절된 책이었다. 하지만 뒤지면 나온다고 강남 중고서점까지 올라서 구해서 읽어보았다. 이 책은 독재자의 통치술을 10개로 나누어서 독재자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방법과 마지막은 독재자에게 저항을 어떻게 하는 가를 설명한다. 단순히 독재 권력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민주 국가나 주식회사에 대한 통치술도 이따금 설명하고 있다. 작가인 브루스 부레노는 뉴욕대학 교수이자 미국정부 안보자문위원으로 풍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책의 10개 주제에 맞춰서 풍부한 세계 각국의 정치가와 기업가의 통치술을 설명한다.
어느 나라든 정치가 바로 서야 국민이 행복한 법이다. 다른 모든 것이 훌륭해도 정치가 망가지면 모든 것이 같이 망가지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독재자의 핸드북]은 독재자의 통치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반면교사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보다 발전시키고 지켜야 하는지 이유를 찾게 되는 이야기다. 품절 되기는 좀 아쉬운 책이다.
(원래는 일본답사기를 계속 올릴려고 했는데 안 쓰기로 했습니다. 특히 4일차 오사카 박물관 쓸 내용이 요즘과 안 맞을 것 같아서 쭉 보류할까 합니다. 이 서평은 평소에 쓸려고 했는데 답사기 대신 오늘 썼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글 좀 쓰려고 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일본 답사기는 좀 천천히 쓰시는 것이 좋겠지요. 최근에 야만과 문명에 대해 글을 몇가지 읽었는데, 문명사회가 더 야만스럽다는 신야만주의라는 말을 하는 분이 있더군요. 문명사회에서 발전한 온갖 수식, 분장의 기술로, 자신들의 더러운 야만성에 명분을 덧씌워 문명인의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는 인간들이 있지요. 그들이 바로 독재자들입니다. 화려한 옷과 장식품으로 문명인다운 세련됨을 포장하지만, 내면은 잔인한 난폭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더러운 야만성을 꺼리낌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치지도자 만이 아닌, 사회 곳곳에 숨은 작은 독재자들의 야만성을 제어해줄 수 있는 민주사회가 되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