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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만부교사건관련해서 태조의 실수 - 이런방식으로 나갔서야
선구자 추천 0 조회 56 24.05.07 23:04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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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5.08 05:38

    첫댓글 왕건의 만부교 사건을 외교전략적 실수라고 보시지만 그러나 당시 상황을 현재의 단편적인 관점으로 보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수밖에 없지요 발해 유민들은 장기적인 고려의 북진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계층일수밖에 없고 그리고 고려 건국의 중심 세력인
    고구려계 패서 호족들은 이들 발해 유민들을 주 세력기반으로 삼을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들의 인심을 얻지 않고서는 고려 국가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려울수밖에 없지요 북진 정책도 큰 장애에 부딪칠수밖에 없는 법이고

    그리고 거란은 발해 유민들에게 조국을 멸망시킨 철천지 원수 같은 존재들이라 왕건이 거란에게 친화적인 태도를 보였다가는 발해 유민들이 실망해서 고려 왕조에 반란 같은 것으로 반기를 들수도 있는 상황이고 심하면 고국 본토에 있는 정안국으로 갈수도 있는 상황을 초래할수도 있는 법입니다

    왕건으로서는 불확실한 외교적인 이익보다 확실한 국가적인 이익인 발해 유민들 흡수와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만부교 같은 조치가 필요할수밖에 없지요

  • 작성자 24.05.08 21:28

    거란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꼭 그렇게 만부교사건같이 직설적으로 거란을 적대시하는 것이 실수였다는 것입니다. 다순히 친화적이다 적대적이다라는 이분법으로 볼것이 아니라 당당히 요구할것 주장하는 자강외교를 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 24.05.09 00:05

    고려 당시의 중세 외교는 지금의 현대외교처럼 다양한 논의와 절차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와 권력층들의 즉홍적인
    심리로 결정되는 이분법적 성격이 지배적일수밖에 없기 때문에 외교에서 적대적인 강경조치는 그 나라를 대표해온 사신들에게 표출해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 법입니다 만부교 사건도 그런 성격하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수밖에 없는 법이고

    고려와 거란과의 외교 접촉은 후삼국 통일 이전인 922년이 처음이라 19년후에 벌어진 만부교 사건 당시 거란 사신의
    방문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당당히 요구가 수반되는 자강외교라는게 무슨 기준의 자강외교일까요
    자강 외교도 당시 국제적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서 하는 것이지 무턱대로 한다고 효과를 보는게 아니지요
    만부교 사건 당시 왕건으로서는 후삼국을 통일한지 6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라 통일된 신라 백제 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발해 멸망시킨 거란과 외교한다면 신라 백제 유민들에게 고려가
    거란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어 이들이 거란과 유착하여 자국 회복을 꾀할 위험성을 초래되기 떄문에
    그래서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만부교 외교를 취할수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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