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밝게 더 기쁘게
지난 주일에는 고통이라는 주제로 강론을 했었습니다. 오늘은 더 나아가 죽음과 생명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늘 1독서인 지혜서는 사람의 종말에 대하여 지혜 문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지혜는 의인과 신앙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고, 악인과 믿지 않는 무리는 영원한 죽음을 면치 못함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1독서의 첫구절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만들지 않으셨다면 과연 죽음은 누가 만들었을까...
구약성경은 죽음의 보편성에 대해 자주 언급합니다. 모든 사람이 보게 될 죽음(시편 39,49), 온 세상이 가야 할 길(1열왕 2,2; 사무 14,14; 집회 8,7), 인간은 사라질 존재요 입김이며(시편 38,6.12; 49,13.21; 82,7; 89,43), 인생은 한갓 그림자요 하나의 숨결 허무일 따름(시편 39,5; 89,48; 90; 욥 14,1~12; 지혜 2,2)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죽음은 하느님의 뜻으로, 순순히 발아들여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구약의 죽음은 죄, 불순종에 대한 결과, 즉 벌로서 주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지혜 1,13),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지혜 2,23)하시지만 원죄로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고, 이렇게 벌로서 주어진 죽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가장 귀한 선물인 생명의 박탈이라는 처벌의 성격을 지닙니다.
이러한 죽음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보다 더 완전해지고 생명의 의미 또한 풍부해지게 됩니다.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께서 이 땅에 생명으로 사셨고 죽으셨습니다. 삶과 죽음에 동참하고 함께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써 죽음은 더 이상 어떠한 처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로서 인간의 품위는 격상되어 영원한 삶, 새로운 생명,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에 예수님께서 야이로 회당장의 딸에게 손을 잡으시면서 말씀하시지요. “탈리타 쿰!” 이 일어나라는 말씀으로 잠들어있는 여러분들의 신앙, 죽은 열정, 축 쳐진 의지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성사를 통하여, 신앙 체험을 통하여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연습, 훈련을 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죽고 주님으로 인하여 살아나 한껏 격상된 인간의 품위를 누리려 구원으로 향해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처지지 마십시오. 신앙생활, 마라톤입니다. 바오로처럼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우리 영신생활에는 방학 없고 휴가 없으며 중도하차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 예수님께, 성령께 노인일 수 없습니다. 핑계대는 노인이 아니라 주님으로 인하여 다시 일어나는 젊은이이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말씀, 저와 함께 크게 외쳐보겠습니다. “탈리타 쿰!”
첫댓글 "탈리타 쿰!"
“탈리타 쿰!”... 아멘...
주님으로인하여 다시 일어나는 젊은이여
탈리다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