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밥상을 차릴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어떻게 하면 많은 양질의 단백질을 챙겨드릴까
하는 고민으로 귀결한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은 줄고 소화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단백질, 그것도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한단다.
그러면서도 칼로리는 적게.
대신 맛이 아주아주 좋아야 한다.
역시나 나이가 들수록 입맛이 무뎌지며
단순한 맛에 더 끌린다고 한다.
더욱이 아버지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땀을 흘리며
농삿일을 하신다.
여름에 밖에서 일을 많이 하고 땀을 흘리고 나면
밥맛이 좋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몸이 힘들면 입맛도 없고 밥알은 모래알 씹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밥상은
고단백 저칼로리의 저염식의 겁나게 맛있는 음식으로
채워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날마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한다.
가끔 음식을 남기시면 마음이 안좋기도 하지만
한 그릇 말끔히 비워내시는 아버지를 보면
그 빈그릇 설겆이하는 손에 고마움이 담긴다.
아버지 밥상엔 언제나 고기 반찬이 올라간다.
돼지고기 수육이나 소고기불고기, 오징어볶음
닭도리탕이나 고등어조림이 주로 오른다.
계란말이나 장조림도 가끔 차려드리고
한 번씩은 삼겹살이나 한우 등심을 구워드린다.
그리고 그렇게 기름짐으로 반찬에 힘을 주는 날에는
꼭 김치국을 끓인다.
연기가 살짝 날 만큼 달궈진 오막한 냄비에
마른 멸치를 넣고 굽는다.
그래서 구수함이 멸치 비린내를 모두 밀어낼 때 즈음
건표고와 다시마를 넣고 우린 물을 붓는다.
가장자리부터 차르르 하며 떨궈지는 물방울과 수증기에
남은 비린내를 날려 보내고 한참을 끓여 육수를 낸다.
다시마와 멸치는 건져내고 물에 불은 표고는
그 나름의 식감을 기대하며 바글바글 끓는 육수 속에 남기고
김치냉장고 맨 밑의 김장김치를 꺼낸다.
한 쪽을 세로로 잘라 세등분을 해서 그 중 한 덩이를 쓰는데
그렇게 끓이면 아버지가 두 번 드실 수 있는 양이 된다.
이 김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담그신 김치인데
오늘 보니 여섯 쪽이 남았더라.
그럼 18번을 더 끓일 양일 될테고 아버지는 36번의
김치국을 더 드실 수 있다.
어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잘게도 아니고 그렇다고 큼직막도 아닌
아버지가 떴을 때, 국물과 함께 자연스레 수저에
담겨질 수 있을 크기로 잘라 육수에 넣고 오래 끓인다.
중간에 물을 한 번쯤 보충하고
집앞 텃밭에 터덜터덜 걸어나가 보면
아무렇게나 자란 파가 한창이다.
마트에서 파는 파에서는 절대 허락될 수 없는 강한 향을 움켜진
조금은 질긴 파를 한 뿌리 뽑아서
걸어들어온 길을 되짚어 나오며 걸음걸음마다
따듬어 버려지는 파의 겁껍질을 밟으며
그 매운 향에 가끔 눈물을 찍어내기도 하면서
마당 한 켠에 외롭게 우뚝 선 수도에서 씻어내어
어슷어슷 썰고 그 잘린 틈사이로 삐져나오는 진액까지를
모두 남김없이 한 소끔 끓여낸 김치국에 얹는다.
오래 묵은 곰삭은 김치의 향과
뭉근하게 퍼지는 육수의 간질간질한 맛에
아린 향을 감추고 단맛을 풀어내는 파의 향까지를 담아
한 대접, 그 기름진 반찬들 사이 독야청청
김치국은 언제나 상석을 차지한다.
이마에 땀을 닦으시고 대충 손을 씻으시고
물을 한 모금, 별 것도 없는 테레비를 또 한 번 쳐다보고
아버지는 버릇처럼 첫수저로 김치국을 드신다.
그 다음 밥을 한 수저 뜨시고 또 다시 김치국을 드시고
거 고기 좀 잡숴요. 밥만 드시지 말고...
나의 잔소리에 그제서야 고기 한 점을 드신다.
천천히 또 한 번씩 테레비를 보시고 그러다 또 웃다가
밥 좀 더 드릴까?
손사레치며 남은 밥을 국에 말아 마지막 두어 수저로
마무리 하신다.
아버지는 김치국을 참 좋아하신다.
나는 요리할 때, 간을 보지 않는다.
나름 시그니쳐 요리는 간을 보지 않아도
간을 맞출 수 있다.
요즘의 가정주부들 보다 요리를 더 자주 하는 나는
그 정도의 실력은 갖추었다고 자부한다.
한 가지, 이 김치국만은 꼭 한 수저 먹어본다.
간을 보기 위함이라기 보단 이 맛을 지켜내고 싶어서이다.
어머니의 김치가 다 떨어지면
빚어내지 못할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끓일 때마다 이 맛을 잊지 않으려고
꼭 먹어본다. 기억하려 참 많이 애쓴다.
내 혀에 내 머리에 그리고 내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맛이다.
엄마의 김치.
엄마가 나에게 남겨준 김치.
국물을 한 수저 뜰 때마다 사실은 참 많이 슬프다.
김첨지가 마누라에게 그토록 먹여주려했던 설렁탕도
나의 김치국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먼 길 가는 사람 녹진한 그 한 수저를 떠 먹여 보냈어야 했는데…
오늘은 연극보러 간다고 아내에게 아버지 저녁상을 오롯히 맡긴 채 김칫국을 끓이지도 않았는데 맘이 좀 저린다.
첫댓글 항상 정성어린 감상평 감사합니다~ 이번 공연도 재미있게 보셨길 기도합니다~ 다음 공연때도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