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 36주기 기독교 선언문
기억의 씨를 뿌려라, 평화의 꽃을 보리니
“ 하나님의 자녀이면 평화의 열매를 맺는다.”(마태복음 5장 9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요한복음 12장 24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명박정권을 지나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땅에 떨어졌고 불통과 독단의 유신시대로 회귀하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정치권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났고 언론은 신 유신독재의 주구로 전락되었다. 온 국민이 반대하던 4대강 사업은 단군 이래 가장 많은 공사비를 투입하고도 최악의 생태계 파탄사업이 되었다. 거기에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불의한 정권이며,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정권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세월호 참사 2년이 지났지만 그 진상 규명을 원하는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열망은 철저히 거부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8년 동안 대한민국엔 국민이 없었다.
1919년 3월, 우리 선조들은 일제를 넘어 인류공영과 자유민주주의를 천명하며 자주독립 국가를 선언하였다. 실로 그 대가는 참혹하였지만 그 정신은 오롯이 남아 조국 광복의 기반이 되었고 1960년 4월 혁명을 불러왔으며 이승만 친미 독재정권을 심판하고 자주적 민주주의를 세웠다. 하지만 박정희 군부는 민중이 스스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독재정권을 세워 권력에 저항하는 자들을 죽이고 옥에 가두고 고문하였다.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온 국민은 노동자 아닌 노예가 되어 산업화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리고 1980년 5월, 신군부에 의한 광주학살이 자행되었다. 박정희의 피살로, 군사 독재정권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정치의 봄을 고대하였던 국민의 여망은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의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신 군부의 잔인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광주 시민군들은 의연히 일어나 대처하였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가 장열하게 최후를 맞았다. 진압군인들의 총과 칼에 국민 28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언론과 교통이 통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항쟁의 소식은 외국 기자들과 소문을 타고 전국에 퍼졌고 전두환 독재 타도의 깃발을 들게 하였다.
광주항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광주항쟁은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과 민중의 의지를 대내외에 드러내었고 반민주, 군사독재의 야만성을 세계에 폭로함으로써 군사독재체제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들의 항쟁의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광주항쟁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이 한 지역을 넘어 전국적 저항과 연대로 이어지게 하였으며 국가를 넘어 필리핀, 타이,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일어난 여러 민주화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성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증언한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그가 지으신 만물 안에 있으니 사람도 하나님의 신성을 담고 있는 거룩한 존재이다. 어떤 생명도 한부로 할 수 없는 이유이다.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빛깔을 갖고 제 숨을 평화롭게 쉴 수 있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에 광주항쟁이 있다. 광주항쟁의 정신과 희생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아버지 목사의 설교를 듣고 ‘민주주의가 부른다’며 나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고등학교 학생의 숭고한 신앙과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가 죽는 것이 진정 행복했다며 죽음을 맞은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광주항쟁은 민족의 해방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민중이 주인임을 만천하에 천명한 진정한 시민혁명이었다. 그 때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부자도 아닌 국민임을 확실히 알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신 냉전체제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전쟁으로 몰고 있다. 사드 배치 등 신무기 수입은 북한을 넘어 중국을 자극하고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겨 동아시아 평화를 깨뜨리고 있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하늘의 도우심이 있었고 국민들의 위대한 선택이 있었다. 지난 4,13 총선의 결과는 놀라운 선거 혁명이었다.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반민주적 불통사회를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죽음을 딛고 민주주의의 희망은 피어나고, 진실을 위한 희생이 평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 기독인들은 광주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민중정권을 태동시켜, 민주공화국 건설에 참여하고자 한다. 이 일에 여기 묻힌 오월의 영령들과 저 푸른 신록을 증인으로 세운다.
2016년 5월 15일,
36주기, 광주항쟁현장예배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