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의 신비들
갈라 3,7-14; 루카 11,15-26 /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 2022.10.7.
오늘은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어서,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 신심의 신비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묵주기도가 생겨난 역사적 유래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황제숭배로 인한 박해가 극성을 부리던 로마시대에 신격화된 황제의 상에 경배하기를 거부한 그리스도 신자들에 대해서는 로마 당국이 원형경기장 안에 묶은 채 검투사의 칼부림감이나 굶주린 맹수의 먹잇감으로 내어주는 등 군중의 오락거리로 삼아 매우 야만적인 방식으로 죽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자들이 치명하면 남은 신자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서는 먼저 그의 핏방울이 떨어진 자국 마다 하나하나 장미꽃송이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한 송이를 바칠 때마다 죽어간 신자의 영혼을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를 생각하며 성모송을 바쳤고 그 영혼을 받아주시도록 예수님의 일생을 기억하여 주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지향으로 묵주기도가 신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고, 이를 뜻하는 별칭이 장미를 뜻하는 로사리오(rosario) 기도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박해가 종식된 후 중세와 근세에 들어서서는 묵주기도의 지향이 보편적으로 영성화되어서, 첫 순교자이신 예수님의 삶과 신앙을 본받고자 가톨릭 신자들은 성모송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생을 관상하도록 이끄는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들을 묵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신비들이 예수님 생애의 처음과 끝에 집중되어 있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즉위 24년을 맞아 빛의 신비를 추가하여 묵주기도를 바치자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2002.10.16.).
이제 우리는 묵주기도의 신비 지향과 교회의 전례 흐름을 일치시켜 바칠 필요가 있습니다. 전례력이 시작되는 대림시기부터 주님 세례 축일로 끝나는 성탄시기 동안에는 환희의 신비를 바치며 강생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연중시기가 시작되면 지향을 바꾸어서 빛의 신비를 바치며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이루어진 주요 사건들 속에서 진리와 사랑으로 빛을 비추어주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그러다가 사순시기가 시작되면 고통의 신비로 바꾸어 바치면서 십자가로 인한 구원에 대해 묵상하고, 부활시기 동안에는 영광의 신비를 바치며 부활 신앙을 심어주심으로써 이스라엘 유다인들 안에서 출현한 교회를 인류 구원의 도구로 승화시키신 신비로 옮겨갑니다.
그런데 성령 강림 대축일로 다시 연중시기가 재개되면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서 묵상해야 하는데, 빛의 신비 중 세 번째가 ‘하느님 나라의 복음선포’를 묵상하자는 권고로써 대단히 광범위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선포 활동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사회 구원과 해방을 향한 파스카 과업을 묵상합니다.
파스카의 신비 제1단은 성령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예수님을 보내신(루카 4,18-19) 신비를 묵상합니다. 제2단은 성령의 이끄심에 순명하시어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심을(루카 6,20-23) 묵상합니다. 제3단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도 육신의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과 정신적 장애나 소외감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치유의 기적을 베푸심으로써 위로와 자비의 복음을 선포하셨음을 묵상합니다. 제4단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도 마귀들려 고통받는 이들과 온갖 근심 걱정으로 시달리는 이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의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그들을 하느님 안에서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심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5단은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온 가난한 이들을 두고 기뻐하심(루카 10,21)을 묵상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도 성모 찬송으로 예수님에 의해 실현될 파스카 과업을 이미 잉태의 순간부터 의식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과연 탄생하시고 장성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며,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시는”(루카 1,51-53) 예수님의 파스카 활약을 가슴을 졸이면서 지켜보셨습니다. 이 파스카 과업을 수행해야 할 제자들이 사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성모 마리아는 중심이 되어 주셨는데, 그 하이라이트는 성령 강림 때였습니다(사도 1,14). 이때는 장소가 예루살렘이었지만, 68년과 70년에 독립전쟁이 일어나고 로마군이 진압하러 와서 이스라엘이 멸망하자 초대교회의 중심과 본산은 에페소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이때 에페소의 주교인 티모테오의 초청으로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에페소로 가서 로마제국의 박해가 극성을 부리는 상황을 다 지켜보셨고 요한이 세 통의 편지와 묵시록 그리고 복음서를 써서 초대교회 신자들을 격려하여 파스카 과업을 로마제국의 영토 안에서 이룩하는 과정을 다 지켜보시고 나서 승천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환희와 빛과 고통 그리고 영광의 신비는 물론 파스카의 신비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파스카 업적을 묵상함으로써 파스카 과업에 동참하고 계승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갈라 3,7 참조). 여러분의 영혼을 노리는 마귀들을(루카 11,15 참조) 이 신비 묵상이 모조리 쫓아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