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마주치는 모든 것을 깨달음의 연료로 사용하라
어떻게 해야
‘우리’와 분리된 ‘그들’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와 ‘그들’이 하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온 세상이 재앙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고난을 통해 보리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라
오늘의 경구는, ‘온 세상이 재앙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고난을 통해 보리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라’이다.
보리(bodhi)란 깨달음을 말한다. 로종의 기본적인 지침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원치 않는 상황들을 깨달음의 연료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로종의 가르침이 주는 소중한 선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방해물이나 장애로 여기지 말고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힘든 세상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딱 들어맞는 경구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로종이니 통렌이니 하는 명상도 필요없을 것이다.
이렇게 용기와 자비심을 키우며 보리심을 일깨우는 데 온 마음을 다해 수행하는 이들을 보살 혹은 깨어난 전사라고 한다.
위 경구의 핵심은 그 무엇도 전사나 보살이 되는 길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살의 길에서 평온함도 경험하지만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릴 때는 기분이 좋다. 창밖에 내리는 아름다운 눈을 보며, 또 바닥에 부딪쳐 반사되는 빛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 감사함 같은 것도 느낀다. 그러다 화재 경보음이 울리거나 혼란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한다. 이 모두가 우리가 수행할 수 있는 기회이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수행에 방해되는 일이란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이 제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수행 중에 마음이 틀어지거나 혼란스러워질 때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대개는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소중한 명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끄럽게 떠들며 으스대는 여자에 대해 “저 여자, 내 신성한 공간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고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말이다.
위 경구는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보는 힘을 기르는 것도 보리심을 일깨우는 일부라는 핵심을 전한다. 때로 사람들은 로종의 가르침에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자신의 이면에 있는 감정과 연결하라는 의미를,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해를 입혔어도 그걸 말하면 안 된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나 정직하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본다는 것은 당신이 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부처의 고귀한 가르침 중 첫 번째는 ‘인생은 고(苦)’라는 것이다. 고통은 인간 경험의 일부로서 확실히 존재한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내가 타인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고, 타인이 나에게 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것을 아는 것이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보는 것이다.
까다로운 문제이긴 하다. 자신이 해를 입었음을 명확하게 보는 것과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상대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피해를 입은 지금 상황에서 상대와 어떻게 의사소통해야 할까?
서로에게 입힌 피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상대가 자신의 지혜와 다정함, 유머감각을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무작정 상대를 비난하고 미워하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큰 도전이다.
어떻게 해야 서로를 도울 수 있을까? 방법은, 미워하는 사람이나 어쩔 줄 모르겠는 자신의 느낌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연습을 통해 다른 모든 존재가 느끼는 감정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때, ‘우리’와 분리된 ‘그들’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와 ‘그들’은 하나로 존재한다.
예전에는 자녀를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부모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느끼는 분노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느 날, 6개월 된 아들 녀석이 고함을 치고 울면서 죽을 엎었다. 2년 6개월 된 딸아이는 나를 잡아 끌더니 식탁 위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넘어뜨렸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엄마들이 자기 자식을 때리는구나. 그 심정을 충분히 알겠어. 내가 아이를 때리지 않는 건 그런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인 거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실컷 패주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그렇다고 통렌 명상을 할 때, 큰 혼란에 빠져 있는 상대에게 뭔가 베푸는 듯한 태도로 임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당신 안의 자비심을 일으키는 수행임을 기억해야 한다.
화, 질투심, 외로움 같은 것이 어떤 느낌인지 당신도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폭언을 내뱉었던 것은 당신이 무척이나 외롭기 때문이었고, 누군가를 욕했던 것도 그 사람이 당신을 알아주고 좋아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면(당신도 경험해봤기 때문에) 상대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보다 자신이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입장을 바꿔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 인간은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알수록 타인에 대한 이해도 그만큼 깊어질 수 있다.
세상이 재앙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원하지 않는 상황을 깨달음의 길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 한 가지 방법이 무조건적 보리심(보리심의 절대적 측면)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명상기법은 보리심의 상대적 측면을 일깨우는 것이다. 무조건적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힘들고 참기 힘든 일을 통해서도 자기 안의 여린 부분과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무척 많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살면서 수시로 화를 내지만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7BAD33598F5F1130)
첫댓글 고난을 수행의 약으로 보리심의 약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