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5. 열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40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기도 모옥희 집사(549)
성경말씀 로마서 15:1~13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My Way 4 내가 가야 할 길 4
찬송 533 내 맘에 주여 소망되소서.
광고 새 가족 – 오현숙 집사
여러분의 기도에 힘입어 이도재 집사님 원대병원 중환자실서 좋아지고 있습니다.
팀장 월례 회의 : 3월 3일 오후 6시, 방금숙, 박이순, 이명자 팀장, 김명숙 간호사,
강성자 총무, 모옥희 주임, 박영수 집사, 원장님 참석하에 즐거웠습니다.
목사님 서울 출장(3/3 월, 방송국 스튜디오 공사, 서울 금천구 KCC빌딩 10층)
찬송 276 하나님의 진리 등대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사진을 보내주신) 손이랑 보니 부기가 좀 빠진 것 같네요.
나날이 호전되니 다행입니다.
목사님도 편찮으신데 아버님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두를 위해 부족하지만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해서 눈물이 납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 인내와 목사님 외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입니다.
늘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지난 금요일 목사님이 중환자실 심방을 가서
우리 이도재 집사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리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이도재 집사님도 지그시 눈을 감으시고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보내온 이도재 집사님 대전 따님의 편지입니다.
이렇게 심청이 못지않은 효녀 따님이 계시니
우리 이도재 집사님께서 반드시 좋아져서 곧 퇴원하실 겁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고 있는 우리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1절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절,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절,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절,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절,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절,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절,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절, 이방인들도 그 긍휼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절,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절,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절,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자의 삶은
이렇게 살자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절,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목사님은 우리 이도재 집사님과 몇 해 동안 함께 살면서
목사님도 우리 이도재 집사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노魯나라 양혜왕이 맹자에게
전쟁에서 진 치욕을 어떻게 하면 씻을 수 있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맹자가 말하기를
인자한 정치를 해서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줄이고,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게 하고,
장정들에게는 효성과 우애와 충성과 신용을 가르쳐
부형과 윗사람을 섬기게 한다면,
몽둥이를 들고서도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견고한 군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진나라와 초라 나라는
백성들이 일할 시기에 노동력을 빼앗아 전쟁을 치르게 하니
결국 농사를 짓지 못해서
부모는 추위에 떨며 굶주리고, 형제와 처자는 흩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의 백성이 도탄塗炭에 빠져 있을 때
왕께서 가서 정벌한다면 누가 감히 대적하겠습니까?
그래서 나온 말이 인자무적仁者無敵입니다.
진실로 어진 정치를 베풀면서 백성을 자신의 몸처럼 여기는 군주에게는
자연히 백성들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반대하는 세력이 없고,
비록 전쟁이 일어나도 인심이 떠나지 않아 총칼로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자무적仁者無敵은
어진 사람은 널리 사람을 사랑하므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온화溫和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덕을 베풀기 때문에 존경尊敬을 받습니다.
바로 우리 이도재 집사님이 이런 사람입니다.
폐농흉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랬는데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를 않고 허허허 웃으며 사셨습니다.
응급실에 누워서조차도 아파 죽겠다는 말보다도
내가 여기에 왜 와 있느냐?
묻는데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자식을 둔 부모로서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아들이 전주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이었습니다.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제 가슴이 이상해요.
공명이 되는 것 같아요.
여니 때 같으면 한 귀로 들으며 좀 있으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그때는 아빠인 제 가슴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전주 박일주 내과로 갈 테니 그리로 와라.
그리고 달려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박일주 원장께서 기흉이니
의사 소견서 가지고 곧바로 예수병원으로 가보라 했습니다.
지체하면 급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병원 응급실로 정신없이 달려갔습니다.
응급실 의사께 의사 소견서를 주었더니
응급실 구석 침대에 눕히고 곧바로 가슴에 구멍을 냈습니다.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때 아빠인 제 가슴에 대신 구멍을 내주고 싶었습니다.
이때 체휼體恤이란 말을 처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69편 19절입니다.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20절,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21절,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22절,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이래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내 이웃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입니다.
내 아버지여,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희생과 자기 부인의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참으로 거룩 거룩합니다.
우리 인생이 어찌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십자가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라도
우리 가슴에 달고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십자가 금목걸이가 장식일 뿐이라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3절을 다시 읽어 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친구, 가족, 동료들에게 던져지는 비방을
우리가
그리고 내가
대신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친구 한 명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결국, 성숙하지 못한 삶 속에서
저질적 비방, 불신 등은 예수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요양원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논산에서 이정숙 전도사, 김순례 권사가 요양보호사 일을 하겠다고 오셨습니다.
이 두 분은 10년의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요양원에 계시던 어르신이 소천하셨는데
우리 이정숙 전도사께서 능수능란하게 옷을 갈아입히고
그냥 일상인 것처럼 웃으며 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머지 선생님들은 그 죽음을 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목사님도 오랜 시간이 흘러 흘러 지내고 보니
우리 이정숙 전도사님처럼
죽음이란 것이 슬픈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싶어 꺼낸 말입니다.
그때 함께 오신 김순례 권사님은 재혼을 하고 살았습니다.
거기에 또 다란 젊은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젊은 남자가 우리 요양원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그 젊은 남자를 오빠라고 속이면서
서울로 함께 가겠다고 하기에
목사님이 눈치를 채고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어코 그 젊은 남자를 따라서 서울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 남자가 다단계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김순례 권사도 그 젊은 남자와 함께 다단계에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까먹으니 젊은 남자에게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자녀들로부터까지 엄마로 인정을 못 받고 허둥지둥 살다가
우울증이 심화되었습니다.
거의 병신처럼 되어 멍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이정숙 전도사께서 목사님께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죽게 생긴 김순례 권사를 살려 주시라고.
불쌍해 죽겠다고.
그래서 논산 어느 식당에서 우리는 함께 만나서 점심을 했습니다.
정말 목사님이 처음 대했던 김순례 권사님이 아니었습니다.
바보천치처럼 멍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점심을 마치고 당장 목사님 집으로 갑시다.
데리고 왔습니다.
목사님 아들이 군대 간 사이에 빈방 있어서 그 방에서 살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벽마다 교회에 함께 다니고
거의 1개월여를 함께 지내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지극정성 사랑을 드렸더니 거의 정상이 되어서
다시 요양보호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얼마 있으니 또 다른 남자를 데려와서는
목사님 우리 결혼할 테니 예배를 드려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무라며 남자 때문에 패가 망신당하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느냐?
그런데도 그 남자 따라서 가버렸습니다.
배은망덕하게도 지금까지도 전화 한 통 없습니다.
목사님께 이런 분들이 한 두 분이겠습니까?
이번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 박영숙 집사님이 물 한 방울 못 마시고
소 대변도 못 보아 자살하고 싶다고 전화가 왔을 때
목사님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서
손 붙들고 이 병원 저 병원 모시고 다니며 지극정성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식사도 잘하고 소 대변도 잘 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딸 따라서 제주도 여행 간다고 통고하고 갔습니다.
물론 잠시 여행 삼아 간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보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너무나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목사님 은혜에 고마워하는 것보다는
언제 내가 죽을 지경이었는가? 하는 듯싶어 밉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수도 없지만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말 그대로 살신성인殺身成仁입니다.
내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룬다.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공자가 한 말이지만
이를 실천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세상을 사랑하신 분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봅니다.
Who am I?
나는 누구일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