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3(화)■
(사도행전 9장)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묵상/행 9:10-22)
◆ 다메섹 아나니야
"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10)
사울에게 나타나셨던 주님께서 이제는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에게 지시하신다. 그러자 아나니아는 즉시 순종한다. 이 사건에서 몇 가지를 배운다.
하나는 주님의 통치다.
주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통치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땅에 기반하지 않고 순종하는 사람들에 기반하여 서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런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통치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 나라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 속해있는가?
또 하나는 아나니아의 순종이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제자로서 즉시 주님의 지시를 따랐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신다. 이렇게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
그리고 주님과 아나니아와의 친밀함이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나타나심에 놀라지 않았다. 아나니아에게 있어서 주님과의 교제는 너무나 익숙해보인다. 주님의 지시에 자신의 의문을 말씀드렸고, 주님께서는 거기에 답하셨다. 이런 친밀한 교제가 가능한 것이 바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다.
◆ 구원받은 바울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17)
그렇게 예수님을 극렬하게 반대하던 사울이 회개하고 순순히 세례를 받았다. 통쾌한 일이다. 나는 '이기적 유전자'를 쓴 철저한 무신론자이며 반기독교도인 리차드 도슨같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얼마나 통쾌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울이 구원받은 시점은 언제일까?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삼일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있었을 때?
그의 눈에 비늘이 떨어질 때?
아나니아게 안수받았을 때?
그가 세례를 받았을 때?
아마도 사울에게 언제 구원받았느냐고 질문하면, 그는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순간부터 세례받을때까지의 과정을 이야기 할 것이다. 음수에서 양수로 가려면 반드시 0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통과시점이 언제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음수였는데, 지금은 양수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자전거를 언제 타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에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지만, 이제는 잘 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지 그 시간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자전거 탈 수 있다는 사실이 부인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우리들 대부분은 구원받은 정확한 순간은 모른다. 그러나 구원받은 과정은 알고 있다. 사도 바울처럼 3일간의 과정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매우 긴 기간일 수 있다.
구원받은 언제 받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주님을 주님으로 믿고 있으며 그에게 순종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과거에 아무리 대단한 구원의 경험을 했다고 해도 지금 현재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따르고 있지 않다면 그의 구원은 헛것이다.
◆ 바울의 증거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나자 즉시로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전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20)이시며 그리스도(22)이시다. 바울이 회심하자마자 전한 진리가 이 두 가지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두 가지는 교회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기본적인 진리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한다. 설사,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한다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그들은 우리도 잘만하면 예수님과 동등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럴싸하다. 심지어 그들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단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양자됨을 얻었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되심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분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시며,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고 이것을 전하라.
주님,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시며, 우리를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며 경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