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2014.10.12.) - ♣14.10.22
한 주부가 집 화초에 물을 뿌리던 분무기를 찾으니 없었다. 찾다가 보니, 4살
된 아들이 2살 된 동생에게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있었다. 엄마가 놀라, 아들
에게 왜 그랬느냐? 물으니 동생이 빨리 자라라고 그랬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오랜 삶을 살다보니, 순진하고도 착한 마음은 없어졌고 경쟁의식과 세상적인
요령의 고집스런 분별력만 남은 것같다. 어릴 적 그 마음이 그리워지곤 한다.
1970년 7월 7일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대구에서 고학으로 고등학교
3학년을 공부하면서,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로 서울 다녀온 사람의 신비
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경부 고속도로로 인해, 나라에 큰 지각변동이 생겼다.
나도 출세를 해서 서울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하면서, 가끔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서 대구에 내려오곤 했다. 참으로 신비하고 좋은 세상이었다.
그후 운전을 배워서 경부고속도로로 해서 조치원 처갓집으로 차를 몰고 달릴
때는 더욱 신비로웠고, 내 자신이 대단한 큰 인물이나 된 것 같이 우쭐되었다.
그런데 점차 국내선 비행기를 많이 이용하고, 고속철도 KTX 열차가 생기면서
고속도로는 서민 用처럼 되었다. 새로운 고속도로 특히 청원-상주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선산”IC가 생기고 부터는, 나도 경부고속도와 멀어졌다.
목요일은 한글날(공휴일), 금요일은 가정실습, 토요일 일요일은 공휴일이라고
외손자 현성이가 수요일 오후 선산에 왔다. 그리고 주일 오후, 청주 고속철도
KTX 오송역에서 딸을 만나서 현성이를 보냈다. 조치원에서 청주로 가는 길이
정체되어서 청주IC 대신 청원IC로 진입했지만 청원에서 청원분기점으로 가는
고속도로도 정체되었다. 결국 대전 쪽으로 차를 돌려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오랜만에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니 마치 고향 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그전에
그토록 선망했던 그 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車라디오를 트니, 대전
극동방송에서 은혜로운 교회 성가대 찬양을 들려주었다. 감동의 눈물이 글썽
이었다. 이것도 오늘 외손자 현성이 때문에 생긴 감동이니, 그의 선물 이었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45년 된, 영동 터널을 통과해서, 밤늦게 선산으로 왔다.
♣.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잠언.12:28)
◆.사진- ①.②.③.④.⑤.⑥.⑦.⑧.⑨.⑩- 선주문학회 문학기행(*부산~)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