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9(월)■
(사도행전 10장)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묵상/행 10:24-35)
◆ 나도 사람이라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25,26)
천사가 지시한 사람, 베드로가 들어오자 고넬료는 그에게 절했다. 아마도 천사가 지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를 압도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백부장이 일개 유대인에게 절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고넬료가 참으로 겸손한 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넬료가 절하자 베드로는 즉시 말린다.
"나도 사람이라"
이런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이런 대우를 받을 일이 별로 없어서 자신들도 베드로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역자들이 처음에는 겸손하게 시작했다가, 추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교만해진다. 사역 초기에는 칭찬하면 부끄러워하고 영광받는 것을 사양하다가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자기 영광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을 적대시하며, 아예 주님의 자리에 앉아서 왕노릇한다. 이쯤되면 배도자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라. 애초에 평범한 자에 불과한 나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었을 뿐이다.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어떤 죄도 저지를 기회가 없었다고 해서 그가 착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교만의 자리에 앉아있고,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교만의 씨가 우리 안에 있는 이상 우리는 겸손보다 교만에 익숙한 자들이다.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신적인 대우를 받은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구전에 의하면 베드로가 로마 항구에 나타나자 구름같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베드로의 얼굴을 한번 보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마지막 죽는 그 순간까지 교만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에게 무슨 비결이 있었을까?
베드로의 겸손은 율법적 의무감에서 노력한 결과물이 아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았다.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보았다(벧후 1:16). 주님의 섬김과 겸손을 체험한 자다. 베드로는 교만하려고 할 때마다 주님께서 씻기셨던 발이 간질 간질 했을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서 온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벧후 1:2,3).
다음은 베드로가 최후 서신서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우리는 겸손해야 함을 이론적으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겸손의 능력은 우리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에서 나오는 겸손은 자기 의에 불과하며 가면을 쓴 교만일 뿐이다.
진정한 겸손은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나온다.
주님께서 얼마나 겸손한 분이셨는가를 깨닫고 나면 더 이상 교만할 여지가 없어진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으로 오신 주님의 겸손을 믿음 안에서 체험하게 되면, 우리는 도저히 건방을 떨 수가 없다. 아무리 겸손해봤자 태양 앞에 반딧불 수준임을 알게 된다.
◆ 베드로의 깨달음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34,35)
베드로는 고넬료의 간증을 통해서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신약교회는 민족과 혈통을 초월한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이다.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이제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 나라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신약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신약교회, 곧 세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땅이라는 영역에 제한되지 않고 모든 민족, 모든 나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예표였고, 모델하우스였다. 이제 실체가 나타났고, 진짜 집이 지어졌다. 이제는 모델하우스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모든 나라에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
주 예수님, 주님의 얼굴 앞에서 평생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겸손과 주님의 선하심을 묵상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