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 이헌 조미경
아찔한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를 만나기 위해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승용차만 통행할 수 있는 다리를 따라 걸으니, 마치 조선시대 시대극 세트장을 꾸며 놓은듯 한 기와집, 초가집이 호기심 가득한 여행자들을 반겨 준다. 어느 집 안마당에는, 유월의 꽃 백합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고, 소박한 접시꽃이 뜨거운 햇살에도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으로, 마을의 3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영주 천의 물과 만나 태백산과 소백산을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돌며 흐르고 있어 육지 속의 섬마을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마을을 돌아 외나무다리가 있는 모래사장으로 발길을 옮겨 옛사람들이 건넜을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건너기 체험을 위해, 폭이 30센티미터인 나무로 만든 다리 위로 올랐다. 보기에는 튼튼하고 안정감 있어 보이는 외나무다리에 한발을 떼었을 뿐인데, 발아래에서는 강물 소리가 마치. 강물이 아이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듯이 붙드는 착각이 들었다. 모래사장이 펼쳐진 곳은 넘어져도 부드러운 모래가 몸을 보호할 것만 같았지만, 정작 강물이 흐르고 있는 외나무다리 위에서는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마치 바다에서 들려 오는 파도 소리처럼 크게 소름끼치게 들린다. 심호흡을 하고 한 발짝 떼어서 조금씩 전진 하려고, 발아래를 바라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치 물속에서 나의 다리를 끌어당기는 듯한 착각에 빠져 숨이 찬다. 강물은 언뜻 보기에는 유유히 흐르는 것 같았지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물살이 세서 무섭다.
실수로 발아래 강물로 빠질까 두려웠다. 그동안 무서운 일을 많이 겪은 터라 마음속으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150미터 외나무다리를 건너 육지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국 외나무다리 중간쯤 건너다,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함께 건너던 선생님들은 무섭지도 않은지 끝까지 완주한 모습을 보니 부러웠다. 동행한 선생님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질수록 나약한 어린애가 되었다. 끝까지 건너려 노력했다. 하지만 머리와 다리가 따로 노는 것인지 심장이 팔딱거리는 바람에 건너지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무섬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외나무다리 하나를 의지해 그동안 살아왔을까 생각했다.
무섬마을의 중심에는 350여 년간 마을을 강 건너편과 연결해준 외나무다리가 있다.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장 보러 가는 다리, 학교 가는 다리로 구분해 설치했던 3개의 외나무다리는 1979년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유일한 통로 역할을 했다. 길이 150m, 폭 30cm에 이르는 외나무다리는 폭이 좁아 긴 장대에 의지한 채 강을 건너야 한다. 과거에는 장마철이면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떠내려가기 때문에 매년 새로운 외나무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새로 설치된 콘크리트 다리로 인해 사라졌던 외나무다리는 2005년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현재는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1개만이 외나무다리의 전통을 이어 나가면서 매년 10월 주최되는 '외나무다리 축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과거 무섬마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인 17세기 중반이다. 반남박씨인 박수(朴燧)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후 조선 영조 때 예안김씨인 김대(金臺)가 들어오게 되면서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현재 약 48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가옥 중 38동이 전통 가옥이고, 16동은 조선 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무섬마을에 들러 꼭 둘러보아야 할 전통 가옥들은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인 ‘해우당(민속문화재)’, 반남박씨의 입향조인 박수가 1666년에 지은 집으로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인 ‘만죽재(민속문화재)’, 19세기 초반에 김휘걸의 호를 따서 지은 집인 ‘만운고택(민속자료)’, 실학자 박규수의 글씨가 남아 있는 ‘박재연 고택’, ‘김위진 가옥(문화재자료)’, ‘김정규 가옥(문화재자료)’, ‘김규진 가옥(문화재자료)’, ‘박덕우 가옥(문화재자료)’, ‘박천립 가옥(문화재자료)’의 9점으로 이들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춘 무섬마을의 가옥들은 전통 주거 및 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육지속 외나무 다리는 부드러운 모래 사장이 펼쳐져 있는 강위에 걸터 있는데, 발밑에서 느껴지는 모래의 포근함이 좋았다.
어린시절 여름이면 냇가에서 모래성을 쌓던 철부지 천둥벌거숭이 시절이 생각났다. 부드러운 모래로 집을 쌓았다 부수는 일을 반복하던 아이는, 이제 물이 무서운 여인이 되었다. 물살이 세어서 감히 도전하지 못할 정도도 아닌데,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위험을 무릅쓰는 어떠한 간큰 여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결국 낙오자가 되었다. 150미터의 다리를 건너면 푸른 초록이 향긋함을 뽐내는 소나무와 여름이면 넓은 이파리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활엽수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만지고 냄새를 맡으며
무섬마을의 특색을 담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는 후기담이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 무섬마을을 두 눈에 모두 담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저벅저벅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옛것을 버리고, 자꾸 새것만 추구하는 세상에 비록 낡고 오래되어 쓸모없이 버려진 것이라 해도, 잘 만들어 홍보하고 보존하면, 흥미와 볼거리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 체험으로 사람들이 육지 속 섬을 설레는 기분을 느끼며 다녀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앞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볼거리 읽을거리를 개발하고 발췌한다면, 후대에 남겨 길이 보존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참고 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