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온 단어, 뜻은 제대로 알고 써야
일본어를 알면 비로소 보이는 한국어-대단원(大團圓)
지난 13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다음날 신문기사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곳저곳에 “20대 총선,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는 기사 제목이 보인다.
대단원이라는 말은 흔히 쓰지만, 올바른 쓰임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몇 해 전 모 신문에 실린
기사이다. 대단원이라는 말을 제대로 알고 쓰자는 취지라 한다.
▲ [우리말 바루기] 대단원(大團圓)5개의 막으로 된 연극의 구성은 ‘발단→상승→절정→하강→결말’로 이루어진다. 이때 ‘결말’
은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연극이 끝나는 부분으로서 ‘대단원(大團圓)’이라고도 한다. 삶이나 스포츠도 때로는 연극 이상으로 굴곡이 많다. 그를
증명하듯 일상에서도 ‘대단원’이란 용어가 자주 쓰인다.“수년간에 걸친 할아버지의 간암 투병은 그렇게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2009년
프로야구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찬란한 우승 트로피는 KIA 타이거즈의 것이 됐다” “리먼, 메릴린치 등 금융시장의 공룡들을 무너뜨리면서 그간
계속돼 왔던 신용위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 듯하다” 등은 이 단어를 제대로 쓴 예다.
개중에는 ‘대단원’이란 단어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 표현들도 가끔 눈에 띈다. “오늘부터 열흘간 열리는 2009 ○○사과축제가
○○도립공원에서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제15회 미주체전을 시작하는 대단원의 막이 올랐다” 등이 그런 사례다. ‘대단원’은 ‘결말’인데 축제며
체육대회를 시작하자마자 끝내 버렸다는 얘기일까. 사족(蛇足)이 문장을 망친 경우다.
이 기사는 자신 있게 대단원의 올바른 쓰임새를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대단원은 일본식 한자어로,
일본식으로는 ‘大団円’이라고 쓰는데, 일본어 사전은 낱말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演劇や小説などの最後の場面。すべてがめでたく収まる結末についていう。
연극과 소설 등의 최후의 장면. 모든 일이 경사스럽게 원만히 해결되는 결말을 말함.
丸い円を意味する団円には、その形から「欠けることなく完全に終わる」という意味もある。
この意味から、「全てがめでたく収まる結末」を大団円と言うようになった。
主にフィクションの結末を表す言葉として、ハッピーエンドとほぼ同じ意味で用いられる。
둥근 원을 의미하는 団円에는, 그 모양으로부터 ‘부족한 것 없이 완전히 끝남’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러한 의미로부터 ‘모든 일이
경사스럽게 원만히 해결되는 결말’을 대단원이라 하게 되었다. 주로 픽션의 결말을 나타내는 말로서, 해피엔딩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에 반해, 한국어 사전(네이버 사전)을 보면 아래와 같이 낱말 풀이가 되어있다.
대단원(大團圓)
1. 대미(大尾)(어떤 일의 맨 마지막).
2. <문학> 연극이나 소설 따위에서,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끝을 내는 마지막 장면.
한국어 사전의 뜻풀이는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라는 단서를 달고는 있지만, 해피엔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한 풀이이다.
‘大団円’은 ‘매끄럽게 그려진 동그라미’라는 의미에서 출발하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매끄럽게 수습되고 끝을 맺는 결말’이라는
뜻으로 진화한 것이지만, 아쉽게도 한국의 국어사전으로는 이러한 본래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신문기사 등을 보면 종종 ‘비극적 결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는 표현이 보인다. 대단원의
본래의 뜻을 상기한다면, 전혀 맞지 않는 쓰임새다. 대단원을 단지 ‘결말’이라고만 인식하기에 벌어지는 웃지 못 할 실수이다. (사실 뜻을 모르니
실수라는 인식도 없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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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결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는 식의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네이버 화면
캡쳐 |
연극용어로 비극(悲劇)의 결말에 해당하는 단어는 대단원이 아니라 파국(破局)이다. 일본에서는 대단원과 파국이 상호 대비를
이루어 ‘~을 맞이하다(~を迎える)’는 동사를 공유하여 관용구를 형성한다. ‘대단원을 맞이하다’ vs ‘파국을 맞이하다’가 대구(對句)를 이루어
정형화된 문장으로 상황을 나누어 적재적소에 사용됨으로써 문장의 운치를 더하는 것이다.
어의(語義)를 정확히 안다면 ‘비극적 결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라는 코미디와 같은 표현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나, 국어사전을 보아도
제대로 된 설명이 없으니 잘못된 용례가 버젓이 사용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만큼 한국인의 언어생활에 일본어의 영향이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일본 유래의 표현은
의식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고, 사용자의 언어습관에 녹아들었다면 일본 것이라고 배척하기 보다는 우리 실정에 맞게 수용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을 배제하고 어느 것을 수용할 지를 판단하려면 먼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한국의 국어사전은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운 수준이다. 우리말인지 일본말인지 알지도 못하는 말들이 천지이고 그나마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없애자, 말자’의 주장부터 난무하는 ‘일본어(또는 일본식 표현) 잔재 청산’을 둘러싼 한국 내부의 논의는 미흡한 국어사전의
수준으로부터 비롯된 측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