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기도 》
살후 1:11~12
<첫번째 기도; 영접 기도>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시작하면서 ‘나’는 믿기 이전의 ‘나’가 아닙니다. 새로워졌습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거듭났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고 바라보는 세상은, 예수 안 믿고 바라보던 세상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따져보면, 참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우리가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첫 번째 기도”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 “영접기도!”
영접 기도, 우리 교회 주보 1면에 있습니다. 다 같이 한번 해 봅니다.
① 주님! 세상 법으로는 나도 의인이지만, 율법에 비춰보니 ② 내 지은 죄 수백 번 사형당해도 부족한 줄 깨달아 ③ “나는 죄인입니다!” 자복하고 ④ 예수 보혈로 나의 죄 사함 받고 ⑤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고 ⑥ 평생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⑦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수 믿기 시작하면서 영접기도를 하니, 우리의 첫 번째 기도는 영접기도입니다.
영접기도로써,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성령님이 인도자가 되십니다.
이렇게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나고, 두 번째 해야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 “예수 믿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묻고, 답을 구해야 합니다.
<두번째 기도; 사명기도>
영접기도로써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기도를 해야 합니다.
두 번째 기도는 ‘사명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로서 반드시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예수 믿은 사람들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에게 이러한 질문 기도를 하지 않고 엄배덤배 넘어갑니다.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반드시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영접기도 하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저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저는 고등학교 입학 직전에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 믿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기도는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응답을 구하는지 잘은 모르지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예수믿게 되었는데,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제가 받은 하나님의 응답은 “성경을 읽어라!”였습니다.
제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이렇게 응답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이해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 검색해가면서 읽었을 터이지만, 1972년이니까, 까마득합니다.
그렇다고 가르쳐 주는 이도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그냥 믿어~” 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 분위기는 성경에 대한 질문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믿어~”가 대세였습니다. 교회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교회에서 고등부 행사를 합니다. “그냥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되겠지…” 이렇게 믿었습니다.
제가 잘 믿었습니까, 잘 못 믿었습니까? ~ 잘 못 믿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버벅거리는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성경을 읽으라”라는 기도 응답을 받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1972년에 주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읽으라” 응답을 받았는데, 언제 제가 읽게됩니까?
30년이 지난 2002년,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작정하고 성경을 일독했습니다.
성경 중에 ‘오픈 성경’이 있었습니다. 해설이 많은 성경입니다.
매 페이지마다 아래 1/3은 해설입니다.
정확히 3개월 걸렸습니다. 본문과 해설을 한 글자도 놓지지 않고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으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나도 신학을 할 수 있을까?”
☞ 2004년,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 입학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甲의 기도 이야기>
저의 두 번째 사명기도 “예수 믿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이 기도에 하나님은 “성경을 읽으라” 몇 년이 걸렸습니까? ~ 30년이 걸렸습니다.
여러분은 두 번째 “사명 기도”를 하고 어떤 응답을 받으셨습니까?
그 응답대로 실천하고 계십니까?
오늘 주보에 ‘甲의 기도 이야기’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이것을 다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이 글을 읽고 “누구의 이야기냐?” 여기에 관심을 갖는 분이 계십니다.
언론사 기자들, 취재원은 생명처럼 보호합니다. 누구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 생활에 대하여 제가 주보에 올렸습니다.
甲은 부부갈등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도저히 살 수 없으니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은 안 된다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기도하고 받은 응답이니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울러 방법론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네가 아내에게 지고 살아라!”
그런데 甲은 아내에게 지고 사는 것이 죽기보다 어렵습니다.
甲의 신앙생활은 이때부터 아내를 이기지 않고, 아내에게 져 주기 위한 기도를 합니다.
아내에게 져 주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이때부터 甲은 어떤 것을 기도합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하면 됩니까?” “알았습니다. 이렇게 아내에게 져 주면서 삽니다!”
하나님께 늘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위로를 받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위로와 힘을 얻어서 아내에게 지고 사는 인생이 甲의 삶이 되었습니다.
갑의 신앙생활은 아내에게 져 주기 위한 삶을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불만스럽지요?
“하나님, 저는 평생 아내에게 지기 위한 기도만 해야 합니까?”
볼멘 소리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뭐라 하십니까?
“그 기도 말고 다른 것도 할 것이 있으면 하거라!” 그런데 다른 것 딱히 할 것이 없어요!
‘甲의 기도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어떤 기도에 대해 응답을 받았으면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또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영접기도 후 “사명 기도”에서 응답받은 것으로 평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삶을 살아내기 위한 샘물>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단발성으로 합니다.
“주여 삼창 합시다!” 해 놓고 와글와글 목청을 돋우고 “땡”하고 합심기도를 마칩니다.
그리고 언제 기도했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그렇게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연속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돌로 깎아놓은 돌부처도 아니고, 나무로 깎아 세운 길거리의 장승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와 대화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질문하면 언제라도 대답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질문하고 받은 응답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진정한 신자(信者)입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가고, “멈추어라” 하면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가라” “멈추어라” 이 말씀을 어떻게 듣습니까?
기도함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甲의 기도 이야기’에서 甲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가 녹록치 않습니다.
이때 다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너무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굽이굽이, 순간순간, 이렇게 또 기도하여 응답을 받고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3개월간 기도원을 찾아갔습니다.
그 기도원은 농삿일로 자급자족하면서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어떤 자매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3개월간이나 물었을까요?
자기 맘에 점 찍은 자매가 있는데, 하나님이 반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설득 당하실 분입니까?
3개월간 농삿일 하면서 기도한 끝에, 하나님이 추천하는 자매와 결혼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와 같이 결혼하는 사람이 주전 8세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너는 이 사람과 결혼하거라” 이 음성을 지금도 들을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신앙생활,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세번째 기도; 중보 기도>
첫째 영접기도, 둘재 사명 기도, 세 번째는 ‘중보기도’입니다.
목사님들이 “이 형제가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중보기도는 자신이 아닌 이웃을 위한 기도입니다.
중보기도는 자기의 뜻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하는 기도입니다.
☞ “하나님, 내가 어떤 기도를 해야할까요?” 하나님께 묻고 응답받아서 하는 기도!
“영접기도- 사명기도 - 중보기도”
_ 우리교회 교육관, 비가 샙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_ 하나님이 아내에게 응답하여 자기 선배에게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_ 후원금이 공사비에 못 미쳐 방수 공사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_ 그런데 얼마 전, 5백 만원을 다시 헌금해왔습니다.
_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헌금, 어디에 써야 되겠습니까?’
_ 공사에 한참 못 미치지만,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공사하라!”
_ 공사를 하고 보니, 너무 좋습니다. 너무나 행복합니다.
_ 저의 은퇴 이후의 온고을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은 저에게 기도하라 하십니다.
☞ 사도바울! 그는 철저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자기 자신’은 버렸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기도 응답대로 살았습니다.
(11~12절)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왜 데살로가 교회 성도를 위해 기도합니까? ~ 하나님이 그 기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를 위해 기도하라 하십니다. 왜요?
“하나님이 너희를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신다!”
“하나님이 너희로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이 너희를 통하여 영광받고자 하신다!”
☞ 영접기도, 사명기도, 중보기도, 꼭 기억하고 그대로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기도는 예수 안 믿는 사람도 많이 합니다.
이슬람교에도 기도가 있고, 불교에도 기도가 있고, 힌두교에도 기도가 있습니다.
점쟁이들도 기도를 합니다. 점쟁이들은 특히 목욕재개한 다음에 기도합니다.
이들의 기도와 기독교인의 기도는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혼돈합니다.
성경밖의 기도와 성경의 기도의 차이점을 알지 못하고 기도합니다.
자기 생각에 ‘이렇게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되면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좋은 게 좋잖아?” 하면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왜 나빠?” 하면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기도는 내가 보기에 좋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흔한 기도와 기독교인의 기도가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대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안목에 좋은대로 평생 기도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교인들’ 무척 많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회마당만 밟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세 살백이 어린아이가 모닥불이 좋게 보인다고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어른들이 못 가게 가로막고 붙잡아서 되돌립니다. 그러나 모닥불만 보면 기어갑니다.
평생 모닥불을 향해 기어가면서, 모닥불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 많습니다.
☞ 하나님 보시기에 저나 여러분이나 세 살 백이 애들입니다.
☞ 내 눈에 좋은 것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끝까지 거부하십니다.
☞ 내 눈에 좋은 대로 기도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눈에 좋은 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 첫 번째 영접기도,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 두 번째 사명기도,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확인했습니다.
☞ 세 번째 중보기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도제목을 확인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도하거라” 받은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응답을 오늘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는 성도가 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