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7:3~10)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이스라엘의 기근 중에도 나병환자들은 소외를 당했다.
다른 곳에 분리되어 생활했다. 더욱 어려운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적의 진영인 아람 군대로 갈 생각을 한다.
하나님은 아람 군인들이 환청을 듣게 한다.
거대한 군대 소리가 들리니, 아람 군인들이 겁을 먹고 도망친다.
이스라엘의 나병환자들에게는 상상도 못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들은 아람 군대의 진영에서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귀중한 것을 챙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이스라엘의 왕궁에 전한다.
마치 희극을 보는 느낌이다.
거대하고 엄중한 아람의 군대가 이렇게 쉽게 와해될 줄이야.
여기서 사람의 한계와 하나님의 능력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람의 자기중심적 생각이
하나님의 능력조차 제한해서 예측하거나 인식하는 버릇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생각의 한계에 머무시는 분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의지하시면,
사람 속에서의 일은 오늘의 본문처럼, 아니 그보다 더 우습게
영향력을 행사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오늘 양정환 집사가 12시부터 마취를 시작으로
왼쪽 폐 전체를 제거하는 큰 수술을 한다.
사람에게는 너무나 무겁고 힘겹게 여겨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하시니, 어떤 결과이든
하나님을 따르려는 양정환 집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사하실 것이다.
단지 문제는,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는 그 가장 좋은 결과가
당장은 사람에게도 좋은 결과로 느껴질 수도 있고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혹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사람은 깊은 절망과 고통에 처하게 된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평안함이라는 진통제를 투여해 주실 것이다.
전혀 부작용이 없고, 좋은 결과임을 비로소 깨닫게 될 때까지
약효가 지속되는 평안의 진통제는 세상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저렇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품 안에서 견디고 버티고
최소한 튕겨 나가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인가 보다.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단지 존재하기만 했다는 기억 밖에 없는 삶의 과정.
비록 그렇게 졸렬함, 궁색함 일색의 과정으로 여겨지는 시간이라도,
지나고 보니 언젠가
예수님의 성품도 조금은 닮아져 있고,
무엇보다 영원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의 문 앞에 와 있으며,
또한 내가 지나왔던 굴곡 많은 세상도
시나브로 천국의 속성으로 변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그 날'이 분명 올 것이다.
"기독교인은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자신이 발견한 희망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존재다." -어윈 루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