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말씀(2023년 1.8) 말씀 / 욥기 5:1-11 내가 바라볼 하나님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8-9) 본문은 엘리바스가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 주는 조언입니다. 그는 욥에게 한탄과 원망의 말을 그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했습니다. 엘리바스가 한 말은 다 옳은 말이지만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는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바스의 말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간구하는 자에게 어떤 은혜를 주시는지 자세히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알고2023년 더욱 의미있는 해를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절에서 엘리바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하나님은 분명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겠고 하셨습니다(렘33:3). 그런데 왜 부르짖어도 응답할 자가 없다고 합니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있는 불신이나 분노 때문입니다. 분노의 문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심각합니다. 살다보면 때로, 일이 꼬이고 풀리지 않을 때, 속았을 때, 오해를 받을 때, 평상시 자녀가 말을 안 들을 때 분노가 솟아오릅니다. 온유한 입에서 욕이 나오고 손이 올라가려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노는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2절을 보면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한다고 하였습니다. 3-5절을 계속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미련한 자의 뿌리박는 것을 보고 그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그 자식들은 평안한 데서 멀리 떠나고 성문에서 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그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분노가 이렇게 해롭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미국의 엘마 케이츠라는 사람은 사람의 호흡하는 숨을 유리관을 통하여 액체공기로 냉각시킨 결과 약간의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몹시 화를 내고 있을 때에는 그 침전물의 색깔이 갈색으로 나타났고, 고통과 비애를 느낄 때는 회색, 잘못을 후회할 때는 분홍색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특별히 몹시 분노했을 때 생긴 갈색 침전물을 물에 녹여 쥐에다 주사를 해보니 몇 분 후 그 쥐들이 죽고 말았다는 끔찍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분노가 나쁜데도 불구하고 계속 터트립니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고난이 없을 수 없습니다(창 8:22). 고난도 삶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고난의 인생은 잠간 타오르다가 꺼져버리는 불티와같이 잠시 잠깐입니다. 스캇펙은 인생은 고해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더 이상 고난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인생을 안다면 우리는 분노보다 대신 무엇을 해야할까요?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엘리바스는 자신같으면 이럴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탁하는 삶을 살겠다고 합니다. 분노하면 잠깐은 시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더 큰 고난이 따릅니다. 짧은 고난의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을 하나님께 아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9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9).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분 이십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주관하시며 다스리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생각을 사람이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시는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택한 자녀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알고, 이 하나님을 의탁하며 산다면 우리는 고난의 인생, 불티같은 짧은 인생을 분노 대신 감사하며 사랑하며 축복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1절로 말씀하십니다.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느리라.” 첫째,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의 목마름을 풍족히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와 사막으로 이루어진 땅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비가 오지 않는 지역입니다. 땅은 항상 메말라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도 스스로 자라지 못합니다. 유대지방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수도관이 지나가게 하여 매일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서는 물이 없어도 자라는 대추나무나 그 외에 몇 가지 나무밖에 없습니다. 물이 없으면 사람도 짐승도 식물도 살아가기가 매우 힙이듭니다. 특히 물이 없는 사막지역은 석유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지역 이었습니다. 중동 지방에서는 전쟁도 물 때문에 일어납니다. 물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틴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당장에 물을 먼저 끊어버립니다. 마른 땅에 사는 사람들과 물이 없는 밭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 없이 메마르게 살아가는 인생들을 상징합니다. 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농부들은 추수의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이런 인생을 오래 살다보면 피폐해집니다. 갈증을 채우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더러운 물을 마시기도 하고 배탈과 질명에 걸리기도 합니다. 영혼이 갈한 인생은 정신적 방황으로 음란과 정욕,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음이 악해지고 점점 분노가 일어납니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잘 사는 것 같은데도 끊임없이 노사 분쟁이 일어나고 여당 야당 두 개밖에 없는데도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을 계속합니다. 해외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땅을 빼앗는다고 기득권을 찾이한다고 인생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탁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사 58:11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막지역이 척박한 것은 땅이 나빠서가 아니라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수박이 생산 되는 곳이 있습니다. 예상외로 중국 사막 지역에 심은 수박이라고 합니다. 사막에 물을 대니까 정말 질 좋은 수박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문제는 땅에 있지 않고 물에 있습니다. 호수들은 물이 가득하다가도 어느 날 가뭄이 들면 메마른 땅으로 변해 버립니다. 물이 사라지면 물고기들은 떼죽음을 당하고 각종 동물들은 물을 찾아 떠남으로 대 이동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메기들은 물이 말라도 강바닥을 떠날 수 없습니다. 메기들은 강바닥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갑니다. 진흙 속에서 수년 동안 자기 살을 파먹으면서 오직 한 가지 비를 기다립니다.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그래서 메기는 반드시 비가 온다는 것을 믿고 인내의 세월을 보냅니다. 드디어 비가 오고, 강바닥에 물이 차고, 메기는 생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이 척박한 땅에 비를 내리시고 메마른 밭에 물을 대주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메기처럼 하나님의 축복의 물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의 단비가 이 땅에 충만히 임할 때, 이 땅에는 각종 꽃들과 풀들이 피어나고 생명들이 깃들고 알찬 곡식들이 자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재들이 일어서며, 사람 살만한 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키우면서도 겪어보지 않았습ㄴ까? 이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해서 철이들까? 지내놓고 보면 하나님이 물을 주고 가꾸신 것을 봅니다. 다은이 민우 어느 새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앞으로도 더욱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로 키워가실 것을 믿습니다. 뿐만아니라 화목한 가정도 아름다운 교회도 그렇습니다. 단지 우주교회 꿈만 꾼다고 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생명수 물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교회가 우주적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도하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성전에 모여 기도에 힘쓴 제자들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단비가 내리면 은혜가 메마른 심령에 평화가 넘치고, 사랑이 메마른 가정에 은혜가 넘치고, 침체된 교회에 생명이 흘러넘치고, 마른 뼈 같은 캠퍼스에 생기가 흘러넘치고, 불안한 국가 국민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아멘 둘째, 낮은 자를 높이 드시는 하나님 11절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사람이 분노하는 이유 중에 또 하나는 낮은 자가 되어 당하는 무시와 설움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 앞에 살면 우리는 낮은 자의 위치에서 살기가 어렵습니다. 높은 자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시기심이 일어나고 비교의식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낮은 자의 설음을 당하고 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설움을 당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솟아 오릅니다. 그러나 더 근본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된 자를 나중 되게 하시고 나중 된 자를 먼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안에는 낮은 자가 없습니다. 존귀한 자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신 자들을 사람이 끌어내릴 수 없고 하나님이 낮추신 자를 사람이 높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높고 낮아짐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습니다. 이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는 사람과 비교하며 살지 않습니다.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오히려 낮은 자의 자리로 내려가서 세상을 섬기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높아지려거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종이 되어 낮아질 때 하나님 앞에서는 결과 높은 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높이시는데 자존감이 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왕이시면서 섬기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만유의 주로 높이셨습니다(빌 2:5-11). 이 예수님의 섬김의 본을 받으며 살게 되면 분노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세상을 섬기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가장 위대한 사도였지만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한 자로다.”(고전15:9) 나중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엡3:8). 그의 생애가 끝 날 무렵에는 더 낮아졌습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이런 바울은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면서 그를 로마의 죄수로 끌고 가는 무리들에게 조차도 분노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에게는 그것이 로마에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분노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를 높이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슬픈 자에게 흥기를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또 한 가지 축복을 주십니다. 11b절을 보십시오.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느니라.”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 주십니다. ‘흥기’는 현대 언어로 듣기 쉽지 않은 언어입니다. 흥기란 흥겨운 기운을 말합니다. 기쁨도 하나의 기운입니다. 마음에서 기쁨의 기운이 일어나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뛸 수 있습니다. 마음에 흥기도 없는데 춤을 추라고 하면 절대로 춤을 출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분노하는 이유 또 하나는 마음이 즐거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뿐 일이 생기고 슬픈 일이 생기고, 힘든 일이 생기니 화가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술을 먹습니다. 그런 기분은 순간입니다. 또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든 삶을 살아갑니까? 하나님은 우리 심령, 마음 깊은 곳에 흥기를 불러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그것도 일생 동안 흥기를 일으켜 주셔서 즐겁게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은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습니다. 매일 뉴스들을 보면 슬프고 기분이 나쁜 소식이 더 많습니다. 세상을 보면서 즐거워하려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이런 세상에서 누구나 마음에 근심과 슬픔과 번뇌가 따릅니다. 이런 세상 어떻게 화내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즐겁게 살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로 이런 세상에서 기뻐 춤을 추게 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망과 근심에서 흥기를 일으키시는 놀라운 분 이십니다. 슬픈 자에게 기쁨을, 재에 화관을 씌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흥기를 불러일으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제 기도해보십시오. 기도하는 중에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새벽마다 말씀을 잘 들어보십시오. 들을 때 기쁨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어도 마음 깊은 곳에 흥기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인생에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꿀 송이 보다 달다고 하였습니다.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크고 기이한 일들을 셀 수 없이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 들으십니다. 우리의 호흡과 숨소리까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른 땅에 단비를 내려주시고 물꼬를 열어주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낮은 우리를 높이시고 슬픈 우리에게 흥기를 일으켜 주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시 107:30은 말합니다.“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인생의 소원을 이루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히려 크고 작은 행사를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뢰하고, 여호와께 우리의 행사를 맡기면 여호와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 바다해 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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