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첫인상이 정말 시원했다.
미국생활이 사십년이라고 하니 한국정서가 크게 없을것 같았지만
막상 만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니 전혀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텍사스에서 치과를 개업한 치과 원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별로 나이가 들어보이지 않은 고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문제는 새에 관한 지독한 공포증이라고 했다.
어딜 가나 날아다니는 새를 만나게 되고
휘익 날개짓을 하며 날으는 새가 그녀 가까이만 오면 그녀는 거의 실신을 하거나
소리를 질러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때로는 바깥 출입이 몹시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다.
새에 대한 공포는 비단 장식용으로 만든 가짜새까지도 공포스럽다는 것이다.
가끔씩 새가 자신을 물어뜯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새를 떠 올릴 때마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가진 새에 대한 기억은 히치코크 감독의 영화 '새'였다.
그 영화를 보며 식은땀을 흘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생각보다 참 많다.
어떤 사람은 '개'에 대해서
또 어떤 사람은 '뱀'이나 '개구리' 혹은 '나비'나 '닭' '나방'과 같은 곤충이나
동물류 뿐만 아니라 특정 식물이나 꽃에 대해 공포를 갖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공포심은 도저히 인지적으로 설명하거나
논리적으로 따져서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 먹히질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오는 동안 경험하게 된 무수한 직. 간접적인 경험들이
우리들의 뇌속에, 혹은 마음 속에 어떻게 왜곡되고 일반화 되고, 또는 부분적으로
삭제된 기억으로 존재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생각이상으로 고통을 주는
심리적 문제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뚜렷한 기억도 안 나는 일이지만 언제부턴가 새가 두렵고 무서웠으며
'새'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자신이 특별히 새를 두려워함을 확인했다고 한다.
언젠가 메뚜기 공포증을 호소하는 내담자를 상담 했던 기억이 떠 오르기도 했다.
다행히 그녀는 의사였지만 최면감수성이 높아서 트랜스 상태에 깊이 몰입했다.
그녀에게 언제부터, 왜, 어떤 이유로 새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는지를 않고
깊은 트랜스에 빠진 그녀에게 새에 대한 강한 긍정적 이미지를 편집해서 인식시켰다.
그녀는 새와 자신이 좋아하는 '카라'꽃의 이미지를 함께 떠 올릴 수 있도록
내면의 심리적 프로그램을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몹시 즐거워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새에 대한 공포의 기억에서 벗어난 그녀를 위해
다시 한번 시간선치료 기법들을 통해 쾌적한 내적경험을 유도했다.
상담기법에 대해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음이 조금은 안타깝다.
그것을 길게 설명하기에도 한계가 있고,
이러한 상담기법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분들에게는 낯선 이야기가 될 수 있어
흥미를 가지기 어려울 수도 있기에 조금 아쉽다.
결국 그녀는 두시간 동안의 즐거운 심리치료 기법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녀는 환한 모습으로 굳은 악수를 나누며 기분 좋게 작별을 했는데
며칠 후 전화가 왔다. 기적처럼 즐거운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어 고맙다고....
그녀는 이제 새가 두렵지 않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새가 아침마다 자신의 집 정원에서 꿀을 찾아 노래하는
흐밍버드의 날개짓 소리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그 경험을 이틀째 나누고 확인전화를 준 것이다.
이렇듯 마음의 세계는 복잡한 듯 하지만 간단하고
간단한 듯 하지만 몹시 복잡다단하다.
기분 좋은 봄날의 추억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