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장길산"
장길산, 그는 조선 왕조 숙종 때 이름을 떨친 의적이었다. 작가가 광대 출신인 의적을 주인공으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직업적 특성이 당시의 사회상을 폭넓게 그려내려는 작가의 의도와 맞아떨어진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특히 하층민들의 삶의 애환을 구석구석 드러내는 데에는 넓은 지역을 떠돌며 연희를 베푸는 것으로 업을 삼는 광대의 시각만큼 편리한 것은 없었으리라.
"장길산"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작품의 주된 역할을 하는 인물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여러 계층과 신분에 속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못지 않은 중요한 역할들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이 삶을 영위했던 시대는 두 차례에 걸친 전란과 양반 계급 내부의 분쟁, 문란해진 정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하층민들에 대한 양반 관료들의 무자비한 착취와 억압, 그리고 민중들의 생존 투쟁으로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전을 버리고 도주하는 노비들과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산에 들어가 '녹림당'을 이루는 무리들이 늘어간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장길산"의 1부 역시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파려간 남편을 찾아 만삭이 된 몸으로 도주하는 한 여비에 대한 묘사에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진행은 하층민들의 피해·보복·도주, 그들의 집단화와 의식화, 탐관오리와 악덕 부호들에 대한 징치와 굶주리는 백성들에 대한 구휼의 과정을 거치면서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역모를 위한 공동 전선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서사적 구조를 이루는 네 개의 부에 포함되지 않는 두 가지 전설이 이 소설의 첫머리와 끝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장산곶 매'라는 황해도 지방의 전설과 전라도 능주땅에 전해 오는 '천불동 전설'이다. 이 방대한 규모의 대하소설이 전설로써 수미를 장식하고 있는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 보인다.
전설에는 장구한 세월 동안 민중들의 의식 밑바닥에 켜켜이 쌓인 염원이 깃들여 있다. 말하자면 이러한 삶의 정서들이 언어적 질서를 부여받음으로써 전설이라는 보편적인 실체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이 소설 앞머리의 '장산곶 매' 전설을 한 마리의 매로 상징되는 민중 장수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작품 전체에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끝부분에 놓인 '천길동 전설'은 이 소설에 펼쳐진 다채로운 사건들의 의미를 미륵사상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통합하면서 대미를 장식하는 기능을 해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표지로서 발목에 묶어 준끈 때문에 장산곶 매는 구렁이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전설에서 우리는 억눌린 자들에 대한 연대 의식 때문에 목숨을 불사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운명을 강하게 감지하면서 이 소설을 읽어 나가게 된다. 이 장엄한 비극성은 시대적 운명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북성이나 산지니와 같은 천민들의 행동에 되풀이되는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용천 세계, 즉 미륵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게 되는 세상을 꿈꾸면서 투쟁하고 죽어 가는 것이다. 이들의 저항은 일차적으로 현세에서의 해방을 지향한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마주친 좌절 속에서 미륵 세상은 언젠가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기도 한다.
보잘것없는 천민인 산지니가 자기 처지의 억울함을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위한 투쟁의 결과로 마주치게 된 죽음의 장면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산지니는 한낮의 네거리에서 공개 처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의 뇌리에 하나의 깨달음이 번개처럼 스쳐간다. "미륵은 언제가 오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넋 가운데 시시때때로 찾아들어 이렇게 잠깐 당신을 현신시키고는 넘어진 내 고깃덩이를 넘어 다른 넋으로 찾아간다. 미륵은 내게 왔다. 미륵은 언제나 이 자리에 있다."
황석영은 1부에서는 풍열 스님, 2부에서는 운부 대사의 입을 통하여 세상 개조를 위한 사상으로서의 미륵 사상을 보여 주었고, 3부에서는 산지니의 죽음을 통해 그것의 체현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4부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시 사회에 폭넓게 자리잡은 미륵 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억눌린 자들과 처지에 공감하는 지식인들까지 포함한 공동 전선이 이루어지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아들 내부에 존재하는 방법상의 편차와 산재하는 세력들 사이의 투쟁 시차 때문에 봉기는 무산되고 만다. 사상적 편차의 핵심은 '진인'을 내세워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려는 생각과 상층부만 다른 양반으로 바뀌게 되는 한 민중들의 질곡은 해결될 수 없다는 근본주의적인 생각 사이에 존재하다. 작가의 시각은 후자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상의 서술은 이 소설의 전체적 구조와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 미륵 사상의 의미를 간단히 살펴본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생명감은 주로 당시 민중의 심층 의식 또는 집단무의식에 대한 풍요로운 재현에서 비롯된다.
사실적인 묘사의 사이사이에 설화, 민담, 잡가, 민요, 무당의 사설, 그리고 옛사람들의 생활 기록 등을 통해 그 새대 사람들의 정서와 사고 방식,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전라도 땅에서 반란을 일으킨 노비들이 하룻밤 사이에 자신들의 모습을 닮은 천불과 천탑을 세움으로써 그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이루려 했다는 '천불동 전설'은 이 소설을 미학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더없이 적절해 보인다.
이 전설에 담긴 핵심적이 뜻은 운주사라는 절 이름에 대한 늙은 노비의 해설로 집약되고 있다. 미륵님 세상은 배. 그것을 뜨게 하는 물은 그들과 같은 천민을 포함한 만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가슴 깊이 품고 있는 꿈의 실현은 결국 기약학 수 없는 미래의 시점으로 옮겨지고 있지만, 작가는 그들을 대신하여 마지막 문장 속에 강렬한 희망을 심어 놓고 있다.
"티끌처럼 수많은 생령들의 뜻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