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상불사 불교대학 12강(종강) 강의 내용
질의 응답
무명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진 현재는 어떤 것인가?
과거인 무명과 행에 의해 있게 된 현재는 두 개의 성격을 가진다.
과거에 행한 업의 결과물인 현재와 미래에 결과물을 낳을 현재가 그것이다.
즉 현재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분석하면 과거적 요소와 현재적 요소는 분명히 구분된다.
12연기법으로 설명하면
(무명)과 (행)은 과거의 영역이고
과거의 업인 행이 만들어낸 (식)이 강력한 생의 욕구로 (명색)을 만들어내면서 현재의 삶이 시작된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과거의 업식인 이 '식'부터 현재에 속한다. 식이 만들어낸 명색에는 세상과 소통하는 (육입)이 생기고 '안,이,비,설,신,의'인 이 육입, 즉 6근은 세상의 인식대상인 6경, 즉, '색,성,향,미,촉,법'을 인식하는 (촉)이 있게 된다.
이 '촉'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즉 우리는 6개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즉 안계,이계,비계,설계,신계,의계가 그것이다. 이것을 일러 6계라한다.
그래서 6근이 청정하면 청정한 세상을 사는 것이다. 스님께서 축원을 하실 때 6근이 청정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깨끗하고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자! 이어서 촉이 있으면 느낌, 즉 (수)가 온다. 좋다, 나쁘다, 무덤덤하다 등으로. 여기서 우리가 인식해야하는 것은 이 '수', 즉 느낌은 과거의 인식에 의한 작용이라는 것이다.
이것까지는 우리의 의지적 작용이 작동될 여지가 없다. 즉 과거의 업식에 의한 필연적 현상이다. 그러니까 '식'에서 부터 '수'까지는 과거의 원인에 의해 생긴 현재의 결과물인 셈이다.
이어서 생기는 미래를 만드는 현재, 즉 미래의 씨앗인 현재에 대해 알아보자.
미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현재는 느낌인 '수'에 대해 반응하는 의지적 마음 작용인 (갈애)에서 부터 시작한다. 즉 '수'는 과거 업식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고 '갈애'부터는 미래의 결과를 만들 현재가 된다.
'수'와 '갈애' 사이가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경계다. 즉 '수'까지는 과거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 과거의 업식에서 만들어진 이 느낌, 즉 '수'를 미래로 계속 끌고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 순간, 즉 '수'와 '갈애'사이에 연기법의 핵심이 있다.
어떤 물건을 보았을 때 좋다라는 느낌, '수'가 왔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가지고 싶다'라는 '갈애'로 넘어가지않게하는 것이 번뇌를 만들지 않는 길이다. '가지고 싶다'라는 의지인 '갈애'를 허용하면 곧 바로 집착(취)을 하게되고 이어 업이 되는 행동(유)을 하게 된다. 어떤 물건을 보았는데 '좋다'라는 느낌이 왔는데 '가지고 싶다'라는 의지적 마음이 들자 그것에 대해 집착하고, 이 때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지고픈 강력한 집착에 의해 훔쳤다고 하자.
이 일련의 과정 '수'-> '갈애'-> '취-'> '유'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미욱한 우리로써는 한 개의 과정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이 불식간의 과정에서 '수'를 알아채고 '애'로의 연결을 차단한다는 것은 습관적인 행동을 내 의지의 행동으로 바꾸는 작업이며 내가 과거와 결별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정말 가슴 떨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순간이 바로 번뇌의 소멸, 열반으로 가는 지점이다.
'수'에서 '갈애'에 이어 집착을 하는 '취'를 거쳐 행동을 하는 '유'가 곧 업이다.
이 업은 받드시 과보를 받는다. 미래에 받게될 과보의 출발점은 그 '업'을 인식한 '식'인데 그래서 이 식을 '업식'이라고도 한
다.
자! 여기서 우리는 12연기여서 두 개의 '업'을 만나는데 과거의 '업'인 '행'과 현재의 '업'인 '유'가 그것이다.
과거의 업인 '행'에 의해 우리는 태어나서 현재 살아가고 있고{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
현재에 만들어진 업인 '유'에 의해 미래에 태어나서(생) 살아가는 것(노사){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이다. 현재나 미래나 살아가는 모습은 동일한 {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이다. 미래에도 '수'에서 '애'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지 않는 한 고단한 윤회의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면 12연기는 무명에서 출발하는데 그 이유는 현재 이 존재 자체에 있다. 과거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윤회의 수레바퀴 위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라는 것은 과거의 결과물이자 미래의 씨앗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다. 그렇다고 현재라는 시점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미래인가 했더니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 저만치 달려가버린다. 어디가 현재란 말인가. 이 현재를 잡아채는 것이 불교 수행의 묘미가 아닐까. 현대 나노기술로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부처님의 세분법이다. 일념을 무량겁으로 쪼개의 인식하시는 분이 부처님이시다. 무량원겁즉일념이라!
이것으로 12강의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이제 여러분은 불교대학을 수료하면서 3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불교 전체를 한 번 건드려보았습니다.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불교가 어렵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울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진리이고 우리는 진리 위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말로 설명하려니 어려운 것입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하나하나 공부해가시기 바랍니다. 불교 공부는 환희로움 그 자체입니다. 삶의 바른 부분을 알아가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배운 것을 자량으로 삼아 부디 열심히 공부해서 날마나 나아지는 삶, 빛나는 삶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간 근염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