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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개요
‘신명기’란 말은 ‘둘째 법’이라는 뜻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광야 제2세대에게 행한 긴 설교입니다. 길어도 너무 긴 설교입니다. 하지만 40년간의 광야여정을 요약하는 설교라면 이 정도 길이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의 고별설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는 광야 제1세대의 마지막 인물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멸망받아야 하는 광야 제1세대의 마지막 인물입니다. 그러니 모세의 이 장편설교는 40년간의 광야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언약문서라고 부를 수 있지만 특히 신명기는 언약체결문서를 그대로 본따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본서가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율법책’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서는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율법이 끊임없이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둘째, 본서는 ‘언약의 책’입니다. 본서의 구조를 살펴보면 고대의 주인 노릇을 하는 나라와 종 노릇을 하는 나라 사이에 맺어진 종주권(宗主權)언약의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셋째, 본서는 ‘언약갱신의 책’입니다. 본서는 시내산에서 맺었던 언약이 모압평지에서 갱신되고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넷째, 본서는 ‘언약계승의 책’입니다. 모세의 지도권이 여호수아에게로 넘어가므로 광야생활이 마무리됨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모압 평야에서 시내산에서 체결한 언약을 갱신하여 광야 제2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언약백성은 과거에 하나님께 베푸신 은혜를 돌아보고 믿음으로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신명기 1장
1:1-5은 서문입니다. 당시의 종주권 언약에서 서문에 언약을 체결하는 종주를 소개하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빌어와서 당신이 위대한 분임을 소개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나”( 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체결하고 언약문서를 받은 호렙(시내산)에서 요단강 건너 모압평지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11일밖에 걸리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40일 동안의 정탐, 불신앙적인 보고로 인해 광야를 40년간 방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정복할 것에 대한 예비적 성취로서 시혼과 옥을 쳐 부수게 하십니다. 모세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가나안 땅이 내려다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언약의 문서인 율법을 재차 전하고 있습니다.
1:6-4:49은 역사적인 서론입니다. 종주권언약에서 하듯이 언약의 당사자들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어떻게 행해 왔는지 상세하게 서술합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에서 유프라테스까지 가라고 하십니다(6-8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시면서 애굽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가 그의 후손이 살 땅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 15:18). 이렇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땅에 대한 약속이 곧 성취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모세는 시내산에 이르기 직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세웠던 사실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큰 민족을 이루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거니아”( 절). 씨에 대한 약속도 성취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모세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을 떠나 광야를 여행한 사실을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행하였던 그 광야는 ‘크고 두려운 광야’였습니다( 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살아갈 수 없는 땅을 행군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주저하고는 정탐군을 보내어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정탐군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두려워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소리칩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미워하여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려 하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하는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고, 사로잡혀 가게 될 것이라고 염려한 그들의 자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행로를 바꾸어 광야 길로 들어설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후회하면서 무기를 갖추고 가나안 산지로 올라갔지만 여지없이 패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절) 그들은 마치 믿는 것처럼 가나안을 치러 갑니다. 그들이 대패하고 통곡해도 소용없습니다. 불신을 만회하기 위해 무모한 헌신을 작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신명기 2장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로 회군하여 세일산 근처에서 38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이 38년은 심판과 정화의 세월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진 칠 곳을 일일이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십니다. 38년의 기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이 산을 두루 행한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절)고 명령하십니다.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은 에돔 족속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다투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에돔지역을 둘러서 지났고, 이제는 모압과 암몬 족속의 땅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절). 그들은 이스라엘의 육적인 형제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아낙 족속을 멸하고 그 땅을 에돔, 모압, 암몬 족속들에게 주셨습니다. 이 아낙 족속은 이전에 이스라엘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기를 거부하였던 바로 그 족속입니다. 에돔, 모압, 암몬은 이스라엘의 친척이기는 했지만 약속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만이 약속의 자녀이고, 그들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인데, 이것에 대한 예비적 성취로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사람 시혼을 쳐 부수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절). 아모리인들은 주전 2,000년전부터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이었습니다. 당시 시혼 왕은 아주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모세는 평화조약을 맺자고 제의했지만 시혼은 거부합니다.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고 그들의 땅을 조용히 지나가기만 해 달라고 해도 시혼은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어오고 참패합니다. 이스라엘은 시혼에 속한 모든 성읍과 가축과 사람들까지도 전멸시킵니다. 첫번째 싸움을 완전한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모든 가나안인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3장
시혼이 다스리고 있던 아논 강에서 얍복 강까지가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에 북부 길르앗과 바산 지역의 왕 옥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려고 나옵니다. 바산 왕 옥도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아마 그는 아낙 자손의 후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혼을 친 것같이 옥도 칠 것이라고 격려하십니다( 절).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역시 완전한 승리를 거둡니다.
요단강 동편 땅이었던 시혼과 옥의 영토는 원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모리 족속들이 멸절되고 난 후에 이 땅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돌아갑니다. 그들이 목초지가 풍성한 이 땅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모세는 그들의 요구를 정탐군 사건처럼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처자들을 남겨두고 다른 지파들이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일에 끝까지 참여하겠다고 합니다(민 35:25-27). 이에 이 요단강 동편 땅을 유업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의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절). 이스라엘은 하나여야 합니다. 다른 지파들이 약속의 땅을 완전히 정복해야 모두가 함께 안식할 수 있습니다.
광야 제1세대의 완전한 마무리는 모세의 지도권이 여호수아에게로 넘어갈 때 이루어집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합니다. 이것이 그의 평생 소원이었고, 이것을 위해 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을 지금까지 이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민 20:12).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할 마지막 일을 보이십니다. 여호수아를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절).
신명기 4장
본장은 언약문서의 축소판입니다. 역사적인 서론에 언약의 규정들이 나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본장에서는 계속적으로 시내산 언약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우선 본문은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본장에는 서문, 바알브올 역사의 요약,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 축복과 저주, 후손에게 전하라는 말씀, 언약의 증인들이 소개됩니다.
본장에서는 시내산 언약의 갱신이라는 측면이 강조됩니다. “네가 호렙 산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서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절).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 언약을 회상시키면서 그 언약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언약의 규정 중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이 강조됩니다. “여호와께서 호렙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절). 이 명령을 어기는 날에는 가나안 땅에서 멸망할 것이며, 심지어 열국 중에 흩어져서 포로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포로생활 중에 이스라엘이 겸손하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돌이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다시 한번 더 강조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상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불 가운데서 나타나셔서 주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이것을 잊으면 이스라엘은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증거로 하나님께서는 요단 동편에서 도피성을 허락하셨습니다(41-43절). 이어서 5장부터 소개되는 언약 규정에 대한 도입부 역할을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44-49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거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으니”( 절). 모압 평야에서 갱신된 언약은 출애굽 후에 시내산에서 맺었던 언약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언약을 갱신하십니다.
신명기 5장
5-26장은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언약의 규정들’에 대한 소개입니다. 우선 5장에서 십계명이 소개됩니다. 그 다음으로 6-11장은 1계명에 대한 상세한 묘사이고, 12-26장은 율법이 모든 삶에 적용되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우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규례와 법도는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렙산에 현현하셔서 이스라엘과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절).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과 본문에 기록된 십계명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정복이 눈 앞에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안식일에 대한 계명의 차이는 주목할 만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안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 주기에 의해 통제받았습니다. 신명기 5장으로 넘어와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안식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출애굽시키셨다는 안목이 첨가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절).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으로 계명을 주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계명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정규적으로 읽혀지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두 돌판에 계명을 새겨 주셨습니다( 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금 들으면 자기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큰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그 경외하는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에 순종할 때에 생명과 복과 장수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을 잘 듣고 지켜야 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신명기 6장
이제부터 언약의 규정들을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1계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봅시다. 우선 서론에서 전형적인 언약 문구로 권면하고 있습니다(1-3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고, 계명에 순종하는 자가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확언하십니다.
우선 미래의 빛에 비추어서 제1계명이 설명됩니다(4-15절). 이제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맺은 언약이 성취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름다운 땅 가나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절)고 권면합니다. 소위 말하는 ‘쉐마(들으라) 본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는 자녀들에게도 해당되며, 또한 그 언약관계는 모든 생활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7-8절).
이제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제1계명이 설명됩니다(16-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런 시험이 가나안 땅에서도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말씀에 유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절).
모세는 후손이 받아야 하는 교훈으로 돌아갑니다(20-25절). 후손들이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과 의미를 묻는다면 제1계명에 근거하여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에 행하셔서 이스라엘을 자유인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택과 신실하심이 계명의 기초입니다. 언약 백성의 의로움은 다른 것이 아닌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절).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건전한 교제를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7장
본장은 출애굽기 23:20-33의 반복이요 상술입니다. 본장에서는 가나안 정복과 제1계명의 관계를 논합니다. 노아의 예언, 즉 가나안이 저주를 받고 셈이 복 받을 것이라는 예언이 곧 성취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는 약속도 곧 성취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맺어서는 안됩니다(1-6절). 가나안 족속들에게 아들도, 딸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도 안됩니다. 그들을 진멸해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절). 그들과 언약을 맺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그들과 혼인하지 말고, 이방 우상과 단을 헐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7-16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절). 하나님은 언약으로 인해 주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시며 동시에 주님을 미워하는 이들에게 보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 파라오의 손에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애굽은 곡식의 풍성함뿐만 아니라 수많은 질병으로도 유명했지만 이스라엘은 애굽의 그 어떤 질병에서도 놓여났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제1계명에 유의하기만 하면 가나안 족속들을 다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17-26절).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왕벌을 보내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을 위해 그들을 조금씩 쫓아내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절). 그들을 급하게 쫓아내면 그 땅이 황폐하고, 그 결과 들짐승이 번성하여 이스라엘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듯이 그들이 섬기던 우상도 쫓아내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올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다른 그 무엇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예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8장
이제 제1계명이 어떻게 무시될 수 있는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자만’에 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하게 될 가나안 땅은 문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땅입니다. 심지어, 철광석도 풍부한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서 배부르고 소유가 풍부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풍요롭게 하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목적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절).
이런 풍요의 시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는 커녕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 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풍요를 누린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절).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교만은 급기야 우상을 섬기는 곳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럼 그 결과가 어떨까요? 간단합니다. 멸망뿐입니다.
어떻게 이런 교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광야 생활을 늘 회상하는 데에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절). 광야생활은 시험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의지하지 않는지 시험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극기훈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40년 광야 생활이 이스라엘에게 주는 교훈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절).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에 바로 이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은 떡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마 4:3-4).
신명기 9장
이스라엘이 제1계명을 무시할 수 있는 둘째 가능성은 ‘자기 의’에 빠질 때입니다. 이스라엘은 곧 가나안을 점령할 것입니다. 정탐군들의 보고처럼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벌벌 떨고 두려워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 나아가사 가나안 족속들을 파하시고 엎드러지게 하셨습니다( 절).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의에 빠져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절). 이런 생각은 제1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자기를 하나님보다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봅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우선 가나안 족속들의 악함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 절). 모세는 그 구체적인 예로 언약이 체결될 당시에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한 사실을 언급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밤낮 40일 동안 머물면서 언약의 두 돌판을 받아 가지고 내려왔지만 백성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맺은 바로 그 장소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한 상태이니 언약의 돌판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립니다( 절). 화가 나서 돌판을 깨뜨린 것도 있겠지만 이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깨어졌다는 곳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도 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멸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다시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다시금 밤낮 40일을 보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 다시금 광야여정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토해 내었던 지명들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일을 언급하면서 결론처럼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 절).
모세가 40일 동안 하나님 앞에 엎드린 이유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간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은 주의 언약( 절)과 온 세상에 나타나야 할 주의 영광( 절)에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다면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은 언약이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는 세상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무능하고 잔인한 분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이 ‘주님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안심되는지요.
신명기 10장
드디어 하나님께서 두 돌판을 다시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 돌판을 보관할 궤짝도 만들라고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오르자 하나님께서는 처음 돌판에 쓰셨던 것을 이 둘째 돌판에도 똑같이 기록해 주십니다. 모세가 감격적으로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절). 그것이 바로 언약의 열 가지 말씀인 십계명입니다. 모세는 그 돌판을 하나님께서 제작하라고 하신 바로 그 궤에 보관합니다. 이 궤가 바로 지성소에 있는 궤, 즉 언약궤입니다.
광야여정이 오래 계속되었고, 마침내 대제사장 아론이 죽어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직을 이어받습니다. 레위지파는 제사장을 도와 성소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들의 일을 언약궤를 메는 일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절). 이것만이 아니라 레위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축복하는 일도 합니다. 이렇게 모세의 중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 진군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앞세우셨습니다. “일어나서 백성보다 먼저 길을 떠나라.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절).
제1계명에 대한 해설의 결론 부분입니다. 우선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이 질문에 이어 바로 답이 제시됩니다. 이스라엘은 만민 중에서 선택받았기 때문에 온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신 것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기에 언약 백성의 증표인 성기 표피를 잘라내는 할례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절). 하나님께서는 고아, 과부,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표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대한 민족으로 만드신 이유입니다.
신명기 11장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광야 제2세대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출애굽의 그 놀라운 역사를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주의 백성을 이끌어 내신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절).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넌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이들은 광야생활 끝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력을 조롱하고 무시하던 다단과 아비람의 무리들을 멸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절).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현재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과거를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더욱 더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할 이유는 가나안 땅의 지리적인 성격 때문입니다. 애굽에는 거대한 나일강이 있습니다.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란으로 인해 풍부한 토사가 흘러들어 물 대기만 잘 하면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그런 강이 없었고 우리가 잘 아는 요단강은 계곡 아래로 흐르는 아주 작은 강에 불과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했습니다( 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쉐마 본문이 다시 언급됩니다(13-21절). 이스라엘이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기만 하면 가나안 땅에 햇빛과 비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비를 내려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 주시기에 다른 신을 섬기면 하늘이 닫힐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대대로 가나안 땅에서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방 족속들이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절).
마지막으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합니다. 축복과 저주가 이스라엘 자손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좌우됩니다. 그들에게 복 주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저주가, 순종하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그 땅의 중심부에서 축복과 저주가 재가될 것입니다. 그 곳은 다름 아닌 그리심산과 에발산입니다. 종주권 언약에서 통치하는 왕이 죽기 직전과 후계자가 즉위한 바로 후에 언약을 계승하는 예식을 시행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 12장
12:1-16:17은 의식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제목에 해당하는 12:1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가나안의 모든 제단을 헐고 신상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아무 곳에서나 제사를 드려서는 안됩니다. 가나안의 모든 우상들은 자연을 신격화한 것이고, 그 우상들은 어떤 특별한 장소를 통해 역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방 제단들과 신상들이 있었던 곳에서 제사를 드려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제사 드릴 곳을 선택하여 주시겠다고 합니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절).
얼마 있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 저곳 옮겨다니는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하여 농경문화를 일굴 것입니다. 그들은 넓은 가나안 땅 곳곳에 펴져 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곳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과 아울러 각 성이나 가정에서 생축을 잡아 잔치를 벌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잔치를 벌일 때는 모든 이웃과 노비, 그리고 레위인들과 함께 기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제한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는 피를 결단코 먹지 말아야 합니다( 절).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거듭 반복합니다. 다른 하나의 제한사항은 십일조와 희생제사의 예물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 보관했다가 이웃과 함께 즐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나안 정복 시기 동안에 혼합주의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심지어 자기 자녀들을 불살라 신들에게 바치는 극단적인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런 우상숭배에 빠져 들어서는 안됩니다. 가나안 족속은 우상을 만들어 섬겨 복 받으려고 했지만 도리어 그것이 올무가 되고 그것으로 인해 멸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살 땅을 연구할 수 있되 새로운 환경에 접어드니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따르겠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절). 그것은 멸망하는 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표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절).
신명기 13장
우상숭배의 위험은 이방인들의 제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 자체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거짓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이스라엘을 타락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1-5절). 그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할지라도 그들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다고 해서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방 신들이야말로 능력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당과 다를 바 없는 그들을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지 시험하려는 목적입니다( 절).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미혹하는 이들을 두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지 시험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좀 더 교묘합니다. 가까운 친족들이 타락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6-11절). 이것이 더 심각한 것은 비밀리에 타락이 급속도로 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가족주의의 문제입니다. 가족이라는 인정에 끌려서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가까운 친족이 유혹한다 할지라도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덮고 지나가서도 안됩니다. 오히려 증인이 되어 무리 앞에서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합니다. “너는 용서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절).
셋째는 타락을 부추겨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경우입니다. 한 성읍 전체가 타락에 빠진 경우입니다(12-18절). 유력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 어떤 불량한 사람이 일어나 성읍 모든 주민을 유혹해서 그 성읍 전체가 우상숭배에 물든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성읍 거민을 모두 칼날로 죽이고, 모든 생축과 탈취물들을 불살라야 합니다. 그 성읍에 있는 물건은 무엇이라도 손대지 말아야 합니다. 나중에 여리고를 점령한 후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그 성읍에 물건에 손을 댄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수 7:25).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에 물든 것은 그 무엇이든지 아끼지 말고 다 없애라고 하십니다.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너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 절).
신명기 14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뿐만 아니라 잘못된 이방 풍속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이방인 중에서 구별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절).
첫째,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애도관습을 따라서는 안됩니다(1-3절). 이방인들은 종종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피부의 일부를 칼로 베었습니다. 이것은 죽은 자와 하나됨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와 접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불러가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들은 전쟁포로나 종들이 종종 그랬던 이마 위의 털을 밀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유인이었기에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이스라엘은 음식의 정함과 부정함을 주의해야 합니다(4-21절). 레위기에서 이미 길게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절). 짐승 중에서는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것만 먹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 중에서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만 먹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죽은 것은 먹을 수 없었습니다. 맹수와 맹금류가 제외된 것은 하나님께서 무자비함을 금하신다는 것과 그것들이 사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의 결과인 죽음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셋째, 이스라엘은 생명을 연장하려는 이방마술에 빠져서는 안됩니다(22-29절). 이방인들은 종종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았는데 이것은 생명의 연장을 바라는 마술행위였습니다( 절). 이방인들은 추수가 끝난 후에 즐거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를 걱정하면서 그런 마술을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해마다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레위인을 위한 양식이기도 하고, 그 일부는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먹고 마시고 감사할 수 있는 용도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표시였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면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저축한 십일조를 3년에 한번씩 내어서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과 더불어 즐거워해야 합니다. 3년 단위로 드리는 십일조는 해마다 드리는 십일조와 다른 용도였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풍성함을 보장하시니 이스라엘은 두려움 대신에 즐거워하면서 함께 나누고,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신명기 15장
14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웃을 살피고 돌아보아야 할 것을 언급했는데 본장에서는 이웃사랑을 더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를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매 7년 끝에 면제하라”(1절).
첫째, 매 7년마다 이웃의 빚을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1-11절). ‘면제년’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가난한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에서 멀어질 때에 가난이 오게 됩니다. 만약 어떤 가난한 형제가 돈을 꾸어 달라고 하면 넉넉히 빌려 주어야 합니다. 면제년이 가까웠다고 인식한 마음으로 꾸어주기를 싫어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이방인에게는 원금과 빚을 갚으라고 독촉할 수 있지만 같은 유대인들에게는 이자를 받으면 안될 뿐만 아니라, 면제년에는 모든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 말씀 때문에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에게 핍박받았을 때에 돈놀이를 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땅 위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을 것이기에 언제든지 우리 손을 펴야 합니다( 절).
둘째, 매 7년마다 돈으로 산 종을 풀어주어야 합니다(12-18절).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자기 몸을 판 경우에 돈을 주고 산 사람은 7년째에 후히 주어서 돌려보내어야 합니다. 빈 손으로 내보내면 다시 자기 몸을 팔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이 주인을 떠나기를 싫어하면 귀에 송곳을 뚫어 영원히 종으로 살겠다는 표시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종을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할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절).
셋째, 소와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19-23절). 유월절이 보여주듯이 이스라엘의 모든 첫 태는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첫 새끼는 하나님 것이니 부리거나 털을 깎아 이익을 취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첫 새끼가 흠이 있는 짐승이라면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성 중에서 잡아 정한 자나 부정한 자가 다같이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절).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가축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임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함께 누리는 삶입니다.
신명기 16:1-17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마다 지킬 유명한 세 절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우선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장소’라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 , , 절) 절기를 지키라고 하십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택하신 성소에 가서 이 절기들을 지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은 이 세 절기 동안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보여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일치를 위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세 절기가 애굽의 종살이하던 생활을 기억나게 하는 절기라는 사실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급히 나온 것을 기념하기에 1주일동안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평생 종살이하던 애굽생활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절). 이런 기억이 있어야 배교하지 않습니다. 1년의 첫 추수를 기념하는 칠칠절도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지켜야 합니다( 절). 떠돌이 유목민들이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된 것은 출애굽을 주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1년의 추수를 마무리한 것을 기념하는 수장절도 출애굽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셋째로 주목할 만한 것은 매 절기마다 감사의 고백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주시고 그 땅이 내는 곡식과 산물로 인해 풍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해야 합니다. 그 감사에 즐김과 헌신이 덧붙여집니다.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절). 하나님께서는 주시고 우리는 감사합니다.
신명기 16:18-17:20
16:18-18:22까지는 특별한 직분들, 그 직분들의 직무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직분자의 위치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 직분들이란 다름아닌 재판장,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우선 재판관의 직무를 언급합니다(16:18-17:13). 재판관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해야 합니다.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16: 절). 공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재판관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뇌물입니다. 우상숭배하는 죄악은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우상 앞에 제물을 바치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다른 신들에게 가서 예배하거나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부추기면 자세히 조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관련자들을 소환하여 심문하고 돌로 쳐 죽어야 합니다. 재판할 때는 반드시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증인이 먼저 그 사람에 손을 댄 후에 모든 백성이 손을 댑니다. 그리고는 돌로 쳐 죽입니다. 이 재판에는 종교적인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 관한 것까지 다 포함합니다. 다툼, 구타, 살인으로 인해 고소가 들어오면 심문하고 판결해야 하는데 어려운 사안이면 성소로 올라가서 제사장과 재판장에게 물어야 합니다(17: 절). 제사장에게 가는 것이 최종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최종심의 결정에 굴복하지 않으면 사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법정을 모독했기 때문이고, 이것은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재판의 목표는 공의입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공의가 더렵혀져서는 안됩니다.
둘째로 왕의 직무입니다(17:14-20).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신정통치를 대행하기 했기에 타국인 중에서 선택해서는 안되고, 오직 같은 형제 중에 한 사람으로 왕을 삼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이방 왕들과는 달리 국방력(말)이나 외교력(정략결혼)이나 경제력(은금)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을 대표하여 그들을 늘 말씀 앞에 불러모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율법서를 늘 들고 다니면서 그 율법대로 행해야 합니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17: 절).
신명기 18장
셋째로 제사장의 직무를 소개합니다(1-8절). 제사장과 레위인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유업이 되셨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희생제사를 드리고 남은 고기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십일조가 그들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영구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절). 그런데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에 모든 레위인들이 성소에 모여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흩어져 살았습니다. 만일 흩어져 살던 레위인들이 성소에 이르면 성소에 상주하는 레위인처럼 섬기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음식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 앞에 선 그 형제 모든 레위인과 일반으로 섬길 수 있나니”( 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결코 몇몇 레위인들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레위인들의 직무를 소개하다가 이방인들의 죄된 풍습을 따르지 말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하는 것과 관련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제단에 바치려는 행태, 점쟁이를 불러 점치게 하거나 혼령을 불러내는 행태 등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합니다( 절).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께 들으면 됩니다. 미래를 알려준다고 하는 이들에게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로 선지자의 직무를 소개합니다(9-22절).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들을 통해 들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에 계시된 말씀 외에 더 많은 계시를 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신탁을 받는다고 하는 이방 풍습이며 인신제사, 복술, 진언, 신접, 초혼 등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실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중보자 역할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절).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 하나는 집합적인 의미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선지자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마지막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거짓선지자인지, 참 선지자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말한 것이 이루어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절). 참된 예언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신명기 19장
이스라엘은 공의를 시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의에 대한 문제가 다시 거론됩니다. 우선 공의와 관련하여 도피성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1-13절). 도피성에 대한 언급이 이미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도피성은 요단강 동편의 도피성들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차지한 후 세울 요단강 서편의 세 도피성에 대한 언급입니다.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복수하려는 이를 피해 급히 도망할 수 있도록 가나안 땅을 세 등분하여 도로를 잘 닦은 후 도피성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절). 반면 이웃을 미워하여 살인한 사람의 경우에는 도피성으로 도망쳐 왔다 하더라도 끌어내어 보복하려는 이의 손에 넘겨주어 죽여야 했습니다. 그래야 약속의 땅이 피 흘린 죄악을 씻을 수 있습니다. 피는 피로 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살인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해집니다.
둘째로 땅의 경계표와 관련된 공의입니다(14절).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에서는 최초의 거주자들이 정한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이유는 그 땅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유업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욕망으로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소유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수고하여 얻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탐욕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셋째로 증인들과 관련된 공의입니다(15-21절). 위증의 문제를 다시 다룹니다. 당시 사회는 평판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평판이 나쁘면 매장되고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위증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에 증인들은 오늘날의 법정에 비유한다면 검사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증인들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두 세 증인이 동의해야만 사건을 확증할 수 있었습니다( 절). 반면에 위증하면 자기가 손해를 입히려고 한 것만큼 정확하게 동일한 보응을 받아야 했습니다( 절).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함부로 위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아야 합니다. 무자비한 복수를 감행해서는 안되고, 남에게 입힌 손해만큼 자신도 그대로 손해를 보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정당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20장
본장은 전쟁과 관련된 공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수행할 전쟁은 거룩한 전쟁, 즉 성전(聖戰)입니다(1-4절). 지금도 이슬람에는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여 자기들이 성전, 즉 지하드를 수행한다고 말하면서 살인을 무자비하게 저지릅니다. 이것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숫자가 적어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숫자로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절).
군사동원은 어떻게 할까요?(4-9절) 우선적으로 강제 징집을 하지만 사실 자발적인 동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집 낙성식을 하지 못한 사람들, 포도원을 만들고 수확을 못한 사람들, 약혼한 후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두려워하는 자들은 다 면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돌려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약적인 삶을 즐길 특권이 있다는 말입니다. 믿는 자들은 염세적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군사행동에 대해 알아봅시다(10-20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유업으로 주신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들과 싸울 때는 그들에게 평화를 공포하지 말고 바로 진멸해야 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들을 진멸하기를 원하셨고, 그들이 남아 있다면 그들을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 교회의 영역 안에서는 어떠한 악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 바깥의 족속들과 싸울 때는 우선 평화를 공포한 후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쳐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선적으로 세상에 전파되고 난 다음에 세상의 반응에 따라 심판이 좌우될 것을 보여줍니다.
전쟁도구를 만드는 문제를 언급합니다. 나무를 찍어내서 잘라서 전쟁기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목의 경우에는 벌목하여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절). 그것들은 이스라엘의 식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과목이 자라 식물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사소한 문제까지 신경을 쓰십니다.
신명기 21장
본장에서는 공의와 관련된 다양한 규례들이 언급됩니다. 원인불명의 피살시체가 들에서 발견되었을 경우(1-9절)에는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이 아직까지 멍에를 메어본 적이 없는 암송아지를 잡습니다. 물이 항상 흐르는 골짜기로 가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습니다. 이 암송아지는 희생제사용이 아닙니다. 그 암송아지는 누군지 모를 살인자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제사장도 그 곳으로 가서 이 사안에 대해 판결합니다. 그 성읍의 모든 장로들이 그 암송아지 위에서 손을 씻고는 자신들의 결백을 아룁니다( 절). 그들은 다른 성읍 사람들을 포함하여 주의 백성의 죄를 씻어달라고 구합니다. 살인자를 적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살인죄를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피 흘린 죄는 반드시 피로 갚아야 합니다.
포로로 잡아온 여인을 아내로 삼을 수 있습니다(10-14절). 그녀의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고 포로의 의복을 벗기고 포로복을 벗기고는 그녀를 아내로 삼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그녀를 버리고자 할 경우에는 돈을 받고 팔아서는 안됩니다. 자유인으로 살도록 풀어주어야 합니다( 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누구에게든지 정당한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둔 경우를 말씀합니다(15-17절). 하나님의 백성은 두 아내를 둘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완악함으로 인해 두 아내를 두었을 때를 가정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두 사람 중 누구를 좋아하든지 먼저 태어난 아이를 장자로 삼아야 합니다. 장자는 두 몫을 받기 때문에 그 장자에게 두 몫을 주어야 합니다( 절). 자기의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아비됨의 권위를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식들의 경우를 언급합니다(18-21절). 이때에는 공개적으로 그 죄를 밝히고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손을 데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절). 부모의 권위는 사회와 국가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을 죄를 범한 사람의 경우(22-23절)에는 그를 죽여 나무에 달아 하나님의 저주를 분명하게 나타내어야 합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절).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바로 이 말씀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합니다(갈 3:13).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신명기 22장
정의의 문제를 계속 거론합니다. 본장에서는 일상의 삶 속에서의 정의를 다룹니다. 우선 이스라엘은 사랑의 원리하에서 이웃과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1-4절). 이웃의 소나 양이 길을 잃은 경우를 말합니다. 못 본 체하지 말고 끌어다가 돌려주든지, 거리가 멀다면 잘 보호해 주고 있다가 돌려주어야 합니다( 절). 이웃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든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소가 넘어졌다면 함께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의 소유를 최대한 보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매일의 삶에 있어서 소위 문화명령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5-12절). 남녀의 독특한 차이를 무시해서는 안되며, 곤충을 통제하는 새의 중요성 때문에 어미새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건축할 때도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부주의하다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절). 종자를 섞어 뿌리면 거룩하다고 인정되기 때문에(성소와 제사장의 소유가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합니다. 다른 가축을 섞어 멍에를 지우면 약한 쪽이 힘들기 때문에 가축을 함께 멍에 지우지 말라는 것과 천을 섞어 짜면 아마도 세탁하기에 힘들기 때문에 천을 섞어 짜지 말라는 것 등이 상술됩니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옷 네 귀에 술을 달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임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절).
이스라엘은 결혼생활에서 정의를 시행해야 합니다(13-30절). 우선 이스라엘의 여인과 가정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혀져서는 안됩니다. 부인에게 누명을 씌운 남편은 벌금과 아울러 아내를 버릴 수 없고( 절), 순결을 지키지 못한 부인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간통죄도 양쪽 당사자들이 다 사형에 처해집니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강간하였는데 들판이라 소리 질러도 소용없는 경우에는 그 여자에게는 죽일 죄가 없습니다.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욕 보인 경우에는 처녀의 아버지에게 벌금을 내야 하고, 그 여인과 결혼해야 하며 평생 이혼의 권리를 상실하게 됩니다( 절). 마지막 30절은 금지된 성관계의 한 예를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근친상간을 금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의 성에 대한 생각과 행동은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신명기 23장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와 관련된 정의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총회(교회)는 거룩합니다(1-18절).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사생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암몬과 모압 사람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절). 그들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막아선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영매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돔 사람과 애굽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에돔과 애굽은 이스라엘을 미워하는데 말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들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은 거룩해야 했습니다. 군인이 몽정했으면 하루 동안 부정하고 진영밖에 나가 있어야 합니다. 변소도 진영밖에 만들어 두어야 했고 대변을 누고 나면 땅을 파서 묻어야 했습니다. 한편 이방 종이 주인을 피해 도망오면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절). 노예라고 할지라도 압제하면 안됩니다. 그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 중에서 자유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한정의 자유가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내에는 가나안의 풍요의 신을 섬기기 위한 창기와 미동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풍요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총회 중 특별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자들을 소개합니다(19-25절). 이스라엘은 자국의 ‘가난한 자들’을 잘 돌봐야 합니다. 이방인들과는 상업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만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형제에게는 이자없이 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절). ‘서원’은 강제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원해서 서약했으니 의무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자원하여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포도원과 곡식밭은 주위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예전에 시골에서 어린 아이들이 이웃의 과일을 서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호의를 남용해서 도둑질하면 안됩니다. 곡식밭에 낫을 대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매사에 거룩과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24장
이스라엘에서 여인의 위치는 어떠할까요?(1-5절) 아내가 수치되는 일이 있으면 남편은 이혼 증서를 써서 내어 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 구절을 가지고 와서 이혼에 관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이지 원래는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마 19:8). 두번째 남편도 그 여인을 버렸거나 그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는 처음 남편이 그 여인을 다시 취할 수 없습니다( 절). 이것은 여인의 권리를 위한 것입니다. 여인들은 남자들의 손에서 놀아나는 장난감이 아닙니다. 5절에서는 갓 결혼한 남자가 1년동안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이미 이런 언급이 있었지만 이 문맥에서는 결혼한 여인의 권리를 위해 언급된 것입니다.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자비의 규례들입니다(6-22절).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그의 삶의 터전인 맷돌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해가 지면 맡아 놓았던 전당물을 돌려 주어야 합니다. 하물며 유괴나 인신매매가 허락될 수 있겠습니까? 한편 이스라엘은 정결규례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조차도 문둥병에 걸렸을 때 이스라엘 진 바깥에 쫓아 내었습니다( 절). 가난한 품군의 삯은 하루를 넘기지 말고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난한 사람의 가족은 밤새 굶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그 호소를 들으시고 그 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정의와 자비의 규례를 어겼다면 연대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본인의 죄는 본인만이 당합니다( 절). 과부의 옷을 전당잡지 말아야 합니다. 밤새 떨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런 심판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비의 마음으로 객이나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밭에서 추수할 때의 경우를 말합니다. 욕심에 끌려 모든 소출을 다 거두지 말고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두어야 합니다. 룻기의 경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입니다. 과목의 열매도 다 따지 말고 남겨두어야 합니다( 절). 우리 조상들도 감나무 꼭대기의 감을 따지 않고 까치밥이라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과거에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처럼 우리도 죄의 종, 마귀의 종이었던 때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해방되고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신명기 25장
하나님 백성의 권리를 계속 언급합니다(1-12절). 재판장은 시시비비를 정확하게 가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구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재판에 의해 태형을 선고했을 경우에 죄의 경중대로 때려야 하지만 40대 이상을 때려서는 안됩니다( 절). 정의가 잔인함으로 발전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도 같은 형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곡식 터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은 품군이 정당한 삯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도바울이 바로 이 구절을 사역자들에게 적용했습니다(고전 9:9).
한 형제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다른 형제가 죽은 자의 아내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해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형사취수(兄死取嫂)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절).” 이것은 강제적인 조항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공적으로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이렇게 ‘기업무를 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이에게 침을 뱉으며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남자의 음낭을 잡은 여인은 할례의 의미를 훼상했다고 보아 손을 찍어 버리라고 합니다( 절). 이스라엘은 언약백성입니다.
12장부터 지금까지 길게 언급한 언약의 다양한 규례들을 요약합니다(13-19절). 첫째로 정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집니다. 이스라엘은 공정한 저울추를 사용해야 합니다. 살 때는 큰 저울추를 사용하고, 팔 때는 작은 저울추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행위입니다. 둘째로 자비의 규례와 반대로 무자비한 심판이 강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친 아말렉을 천하에서 도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절).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 아말렉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진로를 방해했기에 영원한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신명기 26장
마지막으로 두 가지 특별한 예배의식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가나안을 정복한 첫 해에 드릴 감사의 예배입니다(1-11절). 이스라엘이 모든 소산의 맏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땅에 자기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절).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을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애굽의 고통과 압제로부터 건져내시고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잔치가 벌어집니다. 레위인과 나그네와 손님들을 초대하여 다 함께 기뻐하고 즐깁니다.
둘째는 가나안에 들어간 후 3년째에 드릴 기도 의식입니다(12-15절). 앞에서도 이미 말씀하셨듯이(15:28-29) 3년째에 드리는 십일조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3년째의 십일조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아룁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잊지 않고 이것을 잘 준비하여 놓았다가 가져왔다고 아룁니다. 그것들을 다른 곳에 쓰지 않고 간직했다가 가져왔다고 아룁니다. 3년째에 드리는 이 십일조는 하나님의 모든 규례에 충실하다는 표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일조를 드린 후 자신들이 결백하다고 기도했습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절).
모압평야에서 행해진 언약갱신의 내용입니다(16-19절). 이 언약갱신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실해야 할 것이 강조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어떻게 대우하실지를 언급합니다. 이 언약갱신이 독특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확실하게 약속하신 것( 절)과 하나님이 확실하게 약속하시는 것( 절)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모든 말씀을 지키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은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 뛰어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다시금 언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금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신명기 27장
본장부터 30장까지는 언약을 인허(認許)하고 인가(認可)하는 부분입니다. 27장은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언약을 인준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계승 측면에서 언약을 인준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가에 회를 바른 큰 돌들을 가져다가 그 위에 율법을 기록해야 했습니다( 절). 이 말씀대로 나중에 요단강을 건널 때 그 강바닥의 돈을 주워서 요단강 언덕에 돌을 세워서 이스라엘이 은혜로 그 강을 건넜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수 4:9).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의 백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존재합니다. 그후 에발 산 위에도 돌들을 모아서 율법을 기록해야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할 바로 그 산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은 그 산에서 돌로 제단을 쌓아 전적인 헌신을 의미하는 번제와 교제를 의미하는 화목제를 드리면서 크게 즐거워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쌓을 때는 쇠를 대지 말고( 절) 자연 그대로의 돌로 쌓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그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중적으로 돌을 쌓아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해서 누구나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직후 축복과 저주를 선언해야 했습니다. 여섯 지파는 축복하기 위해 그리심산에 서고, 나머지 여섯 지파는 저주하기 위해 에발산에 섭니다.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산입니다. 이때 레위 사람이 십계명을 구체화한 내용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포합니다. 법정에서 처벌될 수 없는 모든 교묘한 죄들이 다 열거됩니다. 가장 먼저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절)라고 레위인이 외칩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자, 성적인 죄를 지은 자, 뇌물을 받은 자 등이 거론됩니다. 마지막은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절)라고 외칩니다. 이런 저주선언에 대해 모든 백성들이 일일이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신명기 28장
언약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 축복과 저주가 좌우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무조건 축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보다 저주가 더 지독합니다. 이것은 광야생활 동안의 불순종 때문에 가중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중에 왕 솔로몬도 성전봉헌식에서 자기들이 불순종하여 이런 이런 고통을 겪을 때 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저주와 진노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왕상 8장). 본문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는 이스라엘의 전 삶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축복에 대해 알아봅시다(1-14절). 이스라엘이 언약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절). 그리고 6가지 복이 임할 것입니다(3-6절).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물질적인 풍요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적들에 대한 승리, 민족들 사이에서의 명성, 계획하는 모든 일에서의 성공 등입니다. 그러면 언약에 순종하는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소극적으로는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과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절).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는 모든 것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킬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셔서 그 명령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저주에 대해 알아봅시다(15-68절). 저주의 내용이 훨씬 더 길게 많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6가지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16-19절). 저주의 구체적인 내용이 5부분으로 나누어져 소개되는데 각 부분은 전쟁에서의 패배와 조롱과 포로생활로 끝마칩니다. 첫째로 몸과 토질의 완전한 파멸을 선고합니다(20-26절). 몸에는 염병, 폐병, 열병, 염증, 학질이 걸릴 것이고, 땅에는 한재, 풍재, 썩는 재앙으로 치실 것입니다. 둘째로 모든 종류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입니다(27-37절).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수고한 것을 대적들이 다 빼앗아 갈 것입니다. 나중에 사사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 절). 셋째로 여러 종류의 저주가 후의 포로생활에 대한 ‘표적과 훈계’가 됨을 강조합니다(38-48절). 이 모든 것은 그들이 풍성하게 누리고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절). 넷째로 임박한 멸망을 예고합니다(49-57절).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절). 다섯째로 역사가 역전되어 애굽에서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이 임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58-68절).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금 애굽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이 역전됩니다.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 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적군에게 남녀 종으로 팔려 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절). 자신을 스스로 팔았기 때문에 이곳 저곳 팔려갈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범죄하면 모세언약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언약이 취소될 위기에 이릅니다.
신명기 29장
본장은 시내산 언약을 갱신하는 장면, 모압언약을 비준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요단강이 내려다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비준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경험한 놀라운 역사와 특권을 재차 소개합니다(2-9절).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 생활동안 이스라엘을 온전히 보호하셨습니다( 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행하신 시험과 기적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보고도 보지 못하는, 즉 깨닫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옷도 낡아지지 않게, 신발도 헤어지지 않게, 남들이 먹는 양식이 없어도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막는 최후의 대적,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까지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이 점령한 바로 그 땅에 정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할 이유가 도무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시내산언약을 배반했지만 이제 새롭게 갱신되는 모압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체험한 백성이라면 당연한 것입니다.
모세는 모든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세워 언약을 확증합니다(10-21절). 모세는 모든 이들을 일일이 거명합니다. 하나님과 맺는 언약은 특정인들과만 맺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시작하여 종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 전체와 더불어 맺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당대 뿐만 아니라 모든 후손들을 위한 것입니다( 절).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언약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들 때에는 그것이 독초와 쑥의 뿌리가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이 이스라엘에 붙어서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22-29절). 하나님께서 모든 재앙과 질병을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포로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방인들조차 이스라엘이 당한 비참함을 보고 물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다”( - 절)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은 결과라고 조롱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진짜로 그렇게 될까요?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에 일어날 이 일을 아신다고 하니 할 일이 없습니까?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냐고 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고 있기에 율법에 대한 순종이 이 모든 미래를 결정합니다( 절).
신명기 30장
29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을 통해 새로운 백성을 세우셔서 온 세상을 향한 구속계획을 이어 가실 것입니다.
우선 은혜의 언약이 선포됩니다(1-10절).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죄악을 깨닫고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디에서 종살이를 하더라도 돌이키실 것이고 가나안 땅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하늘 가에 가 있어도, 바다 끝에 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흩기도 하시고 모으기도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진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올까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실 것입니다( 절). 돌아오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은 더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핍박하던 이들이 하나님이 내리시는 모든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극적인 전환과 회귀는 무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쪽의 믿음의 반응이 꼭 필요합니다.
은혜의 언약을 선포한 후 결단을 촉구합니다(11-20절).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라도 언약을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적으로 거듭 선포해 주셨기 때문에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히 가까이, 즉 입과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절).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화가 바로 눈 앞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느 쪽이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천지를 불러 증인을 삼고 있습니다( 절).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지금까지 지켜보아 왔습니다. 가나안 땅이 증인이 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가나안 족속이 우상을 섬기는 것에서도 증인이었고, 이스라엘 자손에 대해서도 증인이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생명과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은 주의 백성에게 복 주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신명기 31장
모압 언약을 비준한 후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여호수아를 세워 언약을 계승시켜 줍니다. 모압언약은 언약의 계승이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합니다(1-8절).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120세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온 이스라엘 목전에 세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확증시켜 줍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절). 모세는 하나님께서 앞서 가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후 모세는 언약의 율법을 주기적으로 공적으로 낭독할 것을 명령합니다(9-13절). 온 이스라엘은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성회로 모여 하나님의 율법을 들어야 했습니다( 절). 온 이스라엘에게 들려 주어야 합니다. ‘남녀와 어린이와 타국인’을 다 모으고 들려 주어야 합니다. 언약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 없습니다. 안식주기가 절정에 이르러 새로운 안식주기가 시작되려고 하는 시점에서 율법을 공적으로 낭독해야 했습니다. 율법과 안식이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십니다(14-23절). 두 사람이 회막으로 나아갔습니다. 모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게 되었고, 여호수아는 개인적으로 사명을 위임받았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배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계시지 않아서 그 모든 재앙이 내린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핑계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증거의 노래’를 지어 재앙과 환란 때에 그 노래가 증인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절). 모세는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그 노래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칩니다. 홍해 강변에서 부른 모세의 노래가 있었는데, 이제 새로운 노래를 배워 부릅니다.
모세는 언약의 증인들을 더 세웁니다(24-29절).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이, 하늘과 땅이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교할 것을 내다보면서 언약서를 언약궤 곁에 두어 증거로 삼고, 장로와 관리들을 모아 그 언약서를 낭독하므로 증거를 삼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이 부패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절). 너무 비관적이지 않습니까? 자기가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망가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없이는 아무 것도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경고하셨고, 그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많은 경고와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배교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신명기 32장
본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증거하는 ‘증거의 노래’입니다. 앞 장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노래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므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늘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우선 증인 호출과 서언입니다(1-6절). 하나님의 첫 창조물인 하늘과 땅이 증인으로 호출됩니다( 절). 이것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을 쭉 지켜 보았기 때문에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징계를 받을 때 증인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증인이 호출된 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실존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반석같이 진실무망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우매무지합니다. 하나님과 주의 백성이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그런 이스라엘을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회상합니다(7-14절). 이스라엘이 옛날을 기억하면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물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서부터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동안 이스라엘을 온전히 보호하셨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떨어뜨린 후 날개로 받아 훈련시키듯이( 절)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그렇게 훈련시키셨습니다. 결국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타락에 대한 예언과 저주의 선언이 잇따릅니다(15-25절).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원래 그들의 소유가 아닌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으로 인해 ‘여수룬’(신실한 자)이 살찌자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의 질투를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절).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하나님은 분노하시지만 동시에 질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 파시면 이스라엘이 또한 하나님을 질투하게 될 것입니다. 왜 자기들을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 파셨냐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이제 축복에 대한 선언입니다(26-43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고 마침내 회복의 날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칠 열국의 교만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위해 보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질투도 하시고 보복도 하십니다. 이방신들이 그들이 섬기는 이들에게 반석과 같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다른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모든 열방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즐거워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온 땅, 온 세상을 염두에 두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죽음이 임박했습니다(44-52절).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이 증거의 노래를 부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임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이 노래를 가르치라고 당부합니다. 너희들이 들어가는 땅에서 영구히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노래를 부르고, 이 노래를 들려준 바로 그 날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십니다. 여리고 맞은 편 땅 모압 평지에 있는 느보 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 산에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신 광야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내가 너희를 위해 물을 내어 주어야 하겠냐?’고 분노한 죄악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절). 모세는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약속의 땅을 소유한 것에서 배제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을 그리면서 그 땅을 함께 누리고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죽으면서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으로 메어 올리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죽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누립니다.
신명기 33장
신명기에 기록된 모든 언약의 약속들은 모세의 죽음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2-5절)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그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시고 그분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절). 어떤 사본들은 이 번쩍이는 불을 ‘불타는 율법’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약백성이 되었기에 늘 주의 발 앞에 앉아 율법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축복합니다. 그들은 ‘야곱의 총회의 기업’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6-25절) ‘르우벤’은 장자의 자리를 잃었지만 계속해서 육적인 장자의 자리를 유지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르우벤을 큰 지파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유다’는 메시아의 지파가 될 것인데 그 힘으로 대적을 칠 것입니다( 절). ‘레위’는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로서 계속해서 율법을 가르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베냐민’은 안전 보장을 받습니다. 장자의 권리를 획득한 ‘요셉’은 풍성함을 자랑할 것입니다. “그는 첫 수송아지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절). ‘스불론과 잇사갈’은 사업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갓’은 광대함을 자랑할 것입니다. ‘단’은 바산의 암소 같이 풍요로움을 자랑할 것입니다. ‘납달리’는 여호와의 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아셀’은 강하고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지파들은 다 각각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어떤 관계를 누리게 될까요?(26-29절) 모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같은 분이 없습니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절). 이스라엘은 땅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샘을 터트리고 하늘은 이슬을 내릴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복된 것은 하나님이 친히 그들이 거할 처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적을 쫓으시고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만큼 복 받은 민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돕는 방패요, 영광의 칼입니다.
신명기 34장
드디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가십니다. 언약이 새로운 세대로 계승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보산에서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살 땅을 보이십니다. 그가 열두지파를 축복했고, 그들이 살 땅을 제비뽑아 나누라고 이미 말했습니다. 산 위에서 바로 그 땅을 두루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미안하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모세가 얼마나 감격스러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 자신은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모세는 그 느보산에서 죽어 묻혔습니다. 그가 묻힌 곳을 알 길이 없습니다. 시내산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홀로 그 산으로 불러 올리셨고, 그가 죽자 하나님께서 친히 매장하셨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닙니다. 당시 모세의 나이는 120세였지만 기력이 쇠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동에 의해 모세가 죽었습니다. 이것은 언약의 계승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절). 이것은 모세를 숭배하지 않게 하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모세로부터 안수받은 여호수아는 지혜의 신이 충만하게 됩니다( 절). 성령께서 여호수아에게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이 배나 더 자기에게 임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는데(왕하 2:9),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성령의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순종했듯이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렇다고 여호수아는 모세와 동일한 인물이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강력한 권능과 기사를 행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하던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목전에서 모든 일들을 행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하셨던 일들, 하나님과 맺고 새롭게 갱신한 언약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입니다. 언약에 대한 순종이 우리의 모든 삶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