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어느 사업체가 우리의 호기심을 끌거나 유혹해서 어떻게든 우리를 문 안에 끌어들였습니다.
이곳이 식당으로서 형편없는 사례라면
이미 우리는 식욕을 거의 잃었을 테고,
이곳이 훌륭한 사례라면
우리는 기대가 클 것입니다.
이미 사람들에게
정적 경험을 안겨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이 식당에서 할 경험에 대한
낙관적 기대에 차게 됩니다.
알다시피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대로
'경험의 질'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엉망일 거라고 예상하면 실제로 그럴 때가 아주 많습니다. 기대에 따라 마음가짐이나 입장이 생기면 그에 따라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할지도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고객의 기대'는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이 상업시설에 또 가질 고대할 것인가,
아니면 또 가게 될 까봐 겁을 먹을 것인가,
이 점이 중요합니다.
식당에서는 문에 들어선 다음에 벌어지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식당이나 다른 가게의 주인들이 왜 이 시점에서 생기는 문제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그 문제는 바로
'대기 시간'입니다.
대기 시간은
고객에게 기대가 생긴 뒤에
그 기대가 채워지기까지 비어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은
모든 고객은 뭔가 필요해서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장소나 그 제품이나 그 음식이나 그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급하게 굽니다.
불만을 느낍니다.
이 만남 시점에서
우리는 그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대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자부심이 작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받으면
우리는 그곳을 사랑할 것입니다.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곳은 이제 어떤 일로도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라는 존재를
정중히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종업원이 다가와 마침내 우리 주문을 받기 까지 따분한 대기실에서 (아니면 대기실도 없는 곳에서) 끝없이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배고플 그 5분은
아주 오랜 시간입니다.
우리가 배부를 때 5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고객이 앉자마자 테이블로 다가가는 직원을 두는 목적은 업주가 고객이 앉자마자 테이블로 다가가는 직원을 두는 목적은 업주가 고객을 보살피고 대접한다는 점, 고객의 위장만이 아니라 고객이라는 사람도 대접한다는 점을 고객이 느끼게 하는데 있습니다.
마치 식당에 위장만 오고
사람은 오지 않은 것처럼,
위장에만 집중하는 근시안적인 요리사나 식당주인이 많습니다.
우리는 보살핌을 잘 받으면
위장에는 무엇을 집어넣든
만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상업시설에서는
예외없이 우리의 체험을 배려하기 때문에,
즉 우리의 입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합니다.
다루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원칙은 항상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적과 동기로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의도는
고객들이 현장에서 느낍니다.
우리가 느끼는 의문은 이렇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왜 손님이 자리에 앉아 주문할 준비가 되면 지체없이 주문받는 전담직원을 두지 않았을까? 이들은 왜 스위치만 누르면 손님이 주문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작은 불을 달아 놓지 않을까? 이들은 왜 이 지극히 중요한 시점에 맨날 주방으로 사라져 버릴까? 이들은 이따가 돈 받을 때가 되면 틀림없이 또 그럴 것입니다.
체험 전체에서
가장 결정적인 두 시점을 망칩니다.
'첫 시점과 끝 시점'을 망칩니다.
우리는 서빙 받을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에 이미 짜증이 났는데, 이제 돈 낼때가 되면 또 한번 짜증이 납니다. 이렇게 해서는 지지자를 얻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간대 인간으로 종업원과 만납니다.
형식적이고 기계적이고 무신경한 종업원이 있고,
활기에 차 있어 우리가 좋아하는 종업원이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차이는 그들이 '존재하는' 정도에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있'거나 함께 있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는 종업원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 종업원에 비해 두배의 팁을 받습니다. 그러한 피드백은 팁의 형태로도 나타나고 인기와 평판, 재방문 고객의 형태로도 나타납니다.
왕족처럼 대우받는다면
우리는 그 식당을 기억하고 다시 갈 것입니다.
성공적이지 못한 어떤 것에 제가 짜증이 나는 것은 그것이 따분하기 때문입니다.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따분하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어떤 일이, 식당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드디어 누가 한가롭게 걸어와 관심있는 척하면서 그 유명한 질문 '이제 주문할 준비가 되셨습니까?'를 해주길 기다리는 일보다 따분할 수 있을까요? '잘 있어라! 우리는 주문할 준비가 10분 전에 되었단다'가 우리 마음속으로 스치는 대답입니다.
이것이 패스트 푸드 체인같은 차갑고 인간미없는 기업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런 곳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없습니다. 우리는 대형 수퍼마켓 체인이나 요즘의 흔해빠진 소매점에서도 같은 경험을 합니다. 제품 진열대 사이를 헤맵니다. 찾고 있는 물건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누가 종업원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하지도 않은 업체들도 많습니다. 이러면 우리는 종업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가 '직원 아닌데요' 소리만 듣고 멋쩍어야 할 가능성까지 무릎쓰고 돌아다녀야 합니다. 급기야 우리는 '이런 젠장'하고는 나가 버립니다.
우두커니 기다리게 만드는 식당에서
우리는 나가버립니다.
우리는 너무 배고프고 조급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화를 내는 까닭이
우리의 필요, 우리의 행복, 우리의 편의, 우리라는 사람의 기쁨을
그들이 경멸하는데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의 돈을 원합니다. 이점은 분명합니다. 그렇죠. 우리가 여기서 식사할 만큼 매우 배가 고프다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고객들에게 사실상 아무것도 주지 않고 돈만 뜯어내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고객들은 위장 때문에 돈을 뜯기는 셈입니다.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우리가 겪는 일은
같은 식당을 계속 이용하는데
해가 바뀌어도 메뉴가 절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요리사가
과거에 학원에서 배운 이후로 새로 요리법을 익힌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 합니다.
똑같은 메뉴만 고수하는 것은
융통성 없기,
유연성 없기,
하는 법을 다 익혀 쉬워진 일에만 붙잡혀 있기를
원칙으로 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창의성, 다재다능함, 독창성이 부족한데다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질리는지 모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일부 메뉴는 동일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일부 메뉴는 고객이 (기대로 애가 타고, 흥미롭고, 흥분되는) 신선한 경험을 하도록 끊임없이 바뀌어야 하고, 창조적이고 새로워야 합니다.
작은 동네 식당이 생각납니다. 좀 웃기는 곳이었는데, 왜냐하면 메뉴 구성이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한 과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샐러드드레싱을 주문하니 라즈베리 비네그레트가 있고 지금은 그게 다라고 했습니다. 라즈베리 비네그레트 아니면 페타 치즈라니, 하! 저는 페타 치즈 드레싱은 질색입니다. 라즈베리 비네그레트 드레싱도 질색입니다. 저는 음식취향이 아주 평범한 사람입니다. 저는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을 좋아합니다. 블루 치즈 드레싱을 좋아합니다. 이런 것이 없다면 저는 다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초콜릿광이기도 한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초콜릿광이 많습니다. 어떤 식당들은 확실히 디저트 부문에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래서 큼직하고 인상적인 디저트 상을 차려놓는데 전부 과일입니다. 저는 초콜릿을 좋아합니다. 어느 식당이 메뉴에 초콜릿이 하나도 없고, 그런 메뉴를 계속 고집할 것이라면, 저는 다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동네 식당에 갈때마다 저는 초콜릿으로 된 메뉴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애초에 사람 말을 들을 줄 알았다면 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식당 주인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몇몇 손님들은 초콜릿을 좋아해요.
어떤 손님은 진저에일과 다이어트 콜라를 좋아하고요.
블루 치즈 드레싱을 좋아하는 손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내놓으면 어떨까요?'
그렇다고 그들이 라즈베리 비네그레트 드레싱만 내놓은 덕분에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짜 위신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즈베리 비네그레트를 내놓아도 되고 그것을 특색으로 삼아도 됩니다. 그 식당은 라즈베리 비네그레트를 내놓으면 어떤 괴이한 방법으로 식당이 매우 특별한 곳이 된다면, 사회적 지위에 대한 기이하고 하찮은 생각에 바탕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들이 한쪽에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 한병을 놓아 두어도 됩니다. 허쉬 초콜릿 시럽 한 깡통이나 다이어트 펩시 한캔, 진저에일 한병을 갖다 놓는데 돈이 얼마나 들까요? 많이 들어갈까요? 그럴리가요.
매우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배려를 찾아 볼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배려도 전혀 없고
즉각적인 대응도 전혀 없습니다.
관찰하고 귀 기울이고
배울 수 있는 능력이나 자발성이
전혀 없습니다.
확실히 이런 기업 사람들은
현재 상황에 만족합니다.
형식적인 사업체를 소유하고 형식적인 태도로 운영하면서 형식적인 수준의 성공만 거둡니다. 이들에게는 형식적인 고객들이 와서 형식적인 환경에서 형식적인 시중을 받습니다. 이들은 삶 전체가 따분함의 수준에 있는데, 제가 보기에 그런 삶은 치명적입니다. 흔히들 탓하는 스트레스보다 따분함 때문에 죽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따분함은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고객이 전화하면 통화중이라고 하는 업체는
고객을 잃습니다.
통화 중 대기가 길어질수록
더 많이 잃습니다.
이것이 제가 뉴욕 동부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했을 때 수신전화 회선을 10개나 두었던 이유입니다. 누가 '통화하기 힘들었다'고 말만하면 저는 즉시 회선하나를 더 늘렸습니다. 어느 업체에 연락했는데 계속 통화중이어서 결국에는 '이런 젠장'하고 끊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누가 그런 업체를 필요로 하겠습니까? 그런 업체가 고객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도 차가운 기계같습니다. 아니면 누가 자기들에게 전화를 해서 화가 난 것처럼 행동합니다.
예를들어 제가 피닉스시에 있는 알루미늄 제품 제조사 몇 곳에 전화했을 때였습니다. 어떤 여자가 받았는데 제가 전화해서 거의 화가 난 것 같았습니다. '사업자 등록번호 갖고 있는게 확실한 가요?' 여자는 마치 도매업체가 실수로 소매를 했다가는 그길로 끝장이라도 나는 양 묻고 또 물었습니다.
자, 푸딩맛이 어떤지를 알려면 푸딩을 먹어봐야 합니다.
식당에서
대기시간이라는 장애물을 통과했으면
다음으로 만날 것은 음식 자체입니다.
요리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사상 최고의 셰프가 되세요.
사람들이 음식에서
그와 같은 의도를 느끼는 때는,
이상하게도 셰프가 아름다운 시각적 경험을 창출하려고
음식이 접시에 담긴 모습이나 접시가 배열된 모습에도 신경을 쓸 때입니다.
제가 아는 가게 중에 오믈렛 전문이라고 광고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평범한 오믈렛이 나왔는데, 이상히리만치 맨날 납작했습니다. 아마 파슬리 쪼가리가 들어있고 감자는 넣는 시늉만 했을 것입니다. 그 지경인데도 장사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장사가 된 것은 가게가 그 위치에 있고 아침 식사에 굶주린 손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 혹시 기회가 된다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몽생미셸섬에 가보세요. 제가 느끼기에,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작은 거리를 따라 올라가니 오믈렛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나왔습니다. 들어가니 활활 타오르는 불이 보였습니다. 높다란 요리사 모자를 쓰고 큼직한 구리 그릇과 거품기를 든 셰프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창의성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은 계란을 재빠르게 휘저었고 뭔지 모를 비밀의 재료들도 넣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쏟는 피땀 말고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오믈렛에 정말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손님들은
모두 이 모습을 보는 것으로써
창조의 전 과정에 참여를 했습니다.
오믈렛은 간단한 요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어느 손님이 주문한 오믈렛 하나의 창조과정에 장소 전체가 참여하는 듯 했습니다. 다 된 오믈렛을 보니 두께가 틀림없이 10cm는 되었습니다. 납작한 1cm 두께가 아니었습니다. 10cm 두께의 정말로 마음에 드는 창조물이었습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 오믈렛은 자부심을 가질만한 탁월한 통달의 수준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제가 납작 오믈렛 식당의 주인이라면, 제 앞에 그런 탁월한 오믈렛이 차려진다면 저는 부끄러워 죽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 몽생미셸의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오믈렛을 창조하는지 반드시 알아내려고 할 것입니다.
형편없는 식당에서 먹고 나오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 주인은 다른 데서 먹어 본 적이 한번도 없나? 잘 만든 디저트가 어떤 모양인지 모르나보지? 머리는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걸까?
성공적인 사업주는
고객을 위해 체험을 창조하기를 원합니다.
고객(과 자기자신)을 존중하고
고객이 하는 체험의 질을 존중하기에
자기가 이를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창조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고객과 나누길 원합니다.
이렇게 할 때
성공은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본성'이 우리의 유일한 고객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탁월함'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간단히 말해
탁월함은 모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탁월함은
탁월함에 대한 헌신에서 나오는 우수한 질로,
명백히 결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원인이 아닙니다.
여기서 저항하기 좋아하는
좌뇌가 또 다시 끼어들 것입니다.
'그래요 하지만 난 창조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우뇌형 인간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고 난 아닙니다. 난 창조력 상상력이 없습니다'
실제로는 이런 말 가운데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창조적 상상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창조적 상상력이 일일이 기대치를 내놓아야 그 기대치에 따라 우리가 하루 종일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창조적 상상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진정으로 창조적인 사람은
배려하고 공유하고 다정하고 참여하는 마음가짐,
타인의 경험이 어떨지 상상해
타인을 위해서 가능한 한 최상의 경험을 창조하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마음가짐에 바탕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의 제일 좋은 대체물로
많은 업체가 생존을 의지하는 것은
'싼 가격'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전혀 없으면
그들은 '싼 가격과 많은 양'에
의지합니다.
자기들이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면
그들은 차이를 메꾸기 위해
그 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윤은 결과일 뿐
이윤을 높이는 것은 진정한 이익의 원천이 아닙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통달해서,
탁월하게, 존중심을 가지고 하는 모든 일은
자동으로 이익을 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 절대다수의 비결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되
그 일을 최대한도로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종이 인형이나 가짜 수염을 만들든, 그 밖에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을 만들든 성공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자신의 의도 덕분에 그 일에 통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탁월함이란
나의 의도가 내가 진실성있게 임하는 분야에
나타난 것입니다.
진정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발휘하는 진짜 파워는
다른 사람의 인간적 속성에
진심으로 부합하는데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고객과의 관계는
고객의 인간적 속성과 맺는 것이지,
그저 고객이 요구하는 자질구레한 구매 조건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든
노래하거나 춤을 추는 사람이든 설계하고
제작하는 사람이든
진정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구매자가
항상 동일한 고객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통틀어
고객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고객이 누구인지만 알면
아무런 어려움없이
뭐든 팔거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 고객의 이름은
'인간의 본성 human nature'입니다.
외국어 코스이든, 자동차 리스이든,
우리가 어떤 서비스에 등록하거나 약정을 맺는 이유는
그 서비스가 우리 인간이 지닌 본성의 어떤 면에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은 하나 밖에 없고,
그 고객은
인간이 본성 자체입니다.
각각의 개별 고객은
특정 경우에서 인간의 본성을 대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보편적인 어떤 것입니다.
앞에서 파워는 진실로 보편적인 것을 알아보는 데서 생기지 한계있는 것에 노력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남자든 여자 아이든 인간의 본성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어느 사업주가 현재에 이를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오로지 인간의 본성입니다. 더 나은 수법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더 나은 수법이 의미있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인간적 욕구에
도움이 될 때입니다.
인정받고 중요하게 여겨지고 축하받고자 하는 욕구를
누군가 중요한 것으로
알아주는 때 뿐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저는 인색하고 탐욕스럽고 욕심많은 마음가짐과 반대하고,
트여있고 인심좋은 마음가짐을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좌뇌는 또 다시 이럴 것입니다. '그래요, 난 그런 자질들이 없습니다' 이는 또 다시 '저 밖'에 있는 것을 모방하고 애쓰는 것입니다.
관대하고 배려하고 통크고, 창조적이고, 지략있고, 적응력있는 마음가짐은
모두 그 사업을 지휘하는 사람이 지닌
인간의 본성에서 자동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인간의 본성 자체의 자질이고,
따라서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위치는 어디에 있고 우리 내면의 파워 전자석은 어떻게 켜지는 것인지만 알면 됩니다.
대가를 치르고 성공을 얻으려 애쓰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성공을 끌어당길까요?
성공이 우리를 뒤쫒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가 성공을 뒤쫒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성공을 뒤쫒고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공하는 사람들은
사실 성공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고객의 돈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
이 장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도 식사를 마칩시다. 이제 계산서를 받을 시간입니다. 이때 또 한번 대참사가 벌어집니다. 계산서 줄 시간이 언제인지를 모르는 종업원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종업원들은 지금이 마침내 자기들의 이익을 실현할 시간, 즉 팁을 받을 시간이라서 일부러 주방에 숨는 것 같습니다. 종업원은 생활비를 벌고 손님은 긍정적인 기분과 호감을 느끼며 가게에서 나갈 시간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종업원들이 사라지면서 체험 전체의 성공이 아슬아슬해집니다.
약속시간이 다가올 수도 있고
연극의 시작 부분을 놓칠수도 있고
기타 등등의 사정이 있는데,
돈을 움켜쥐고는 누가 제발 이 돈좀 받아달라고 애원하면서
식당에 앉아있은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는 마지못해 우리 돈을 받기로 결정한 뒤에도 이제 그들은 또 20분동안 사라집니다. 계산서 가지고 뭘 할까요?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는 그들이 거스름돈 같은 것을 들고 복도를 뛰어나오는지 궁금해 합니다. 아니면 드디어 거스름돈을 들고 나타났는데 액면 금액이 잘못되었습니다.
예를들어 점심값이 20달러이면 그들은 50달러 지폐를 받아 거스름돈 20달러 지폐와 10달러 지폐를 가져옵니다. 서비스가 엉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씨 좋게 그들이 최소한으로 기대하는 15~20%의 팁에 해당하는 3~4달러를 남기소 싶었는데, 이제 그들은 우리가 쉽게 그러지 못하도록 성공적으로 저지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업원 팁을 떼먹고 가거나, 아니면 다시 종업원의 시선을 끌려고 애쓰며 또 다시 10분을 날려야 합니다. 종업원은 금전 등록기까지 한번더 왕복 여행을 하는데 거기선 아무도 뭐가 문제인지 몰라 끝없는 시간이 걸립니다. 드디어 종업원이 1달러짜리 5장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마치 우리가 자기에게 폐를 끼쳤다는 태도입니다. 이런 젠장,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건 당신 돈이라고, 이것도 모자라 그들은 음식값에 세금을 얹어 그 액수를 우리에게 합계 금액으로 제시하는 무례까지 보탭니다. 이제 우리는 세금에 대해서도 15~20%의 팁을 달라는 기대를 받는 것입니다.
음식값이 75달러면 계산서에 최소 15%의 팁이 청구됩니다. 그렇겠죠? 적어도 5달러의 세금이 붙으면 식사값은 이제 최소 80달러입니다. 이건 종업원이 80달러의 최소 15%를 팁으로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다음 원칙이 나옵니다.
여러모로
고객의 안녕을 책임진다.
고객의 돈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고객이 돈을 허비 하지 않도록 해야하고,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불편이나 짜증을 느끼지 않도록
고객을 보호해야 합니다.
사업체 소유자인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으려면
누가 하겠습니까?
우리가 운이 좋다면 가끔있는 '훌륭한' 직원이 할 것입니다. 그런 행동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그런 행동을 모방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존재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일련의 올바른 마음가짐들을 나타낸다면 성공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 최고 일류들이 자주 제의를 거절하는 이유입니다. 제의받은 대로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이미 끝난 결론입니다.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성공은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굳이 할 가치가 있는 일일까
또는 과연 흥미로운 일이기나 할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최고 일류들을 돈 주고 부릴 수 없을까요? 그들은 비매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 뿐입니다. 기이하게도 돈주고 부릴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에게 강력하게 끌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