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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 - 하 - 은 - 주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나라 - (신) - 한 |
진나라가 15년밖에 못 가지요. 중간에 왕망의 신나라가 잠깐 섰다가 한나라로 통일을 합니다. 시대적 배경을 보면 주나라는 은나라 말기의 혼란에서 벗어나 백성을 위한 정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건국되었고, 주 문왕은 주 무왕의 아버지이고, 주 무왕이 주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기틀이 마련되기도 전에 일찍 죽습니다. 그래서 아들 주 성왕이 어린 나이에 등극하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삼촌이 조카 찬탈하고 이런 부분이 있었는데, 주공(周公)이라고 하는, 주 문왕의 동생이자 주 성왕의 숙부이죠. 주공이 성왕을 도와 주나라를 크게 부흥시킵니다.
BC 5~6세기 정도 되면 천자의 권위는 추락하고 그 틈을 타 패권장악을 위한 제후국들이 난립하며 제후국들끼리 대립해요. 춘추시대가 ‘춘추오패’, 전국시대가 ‘전국칠웅’. 세계사시간에 다 배우셨을 건데 대립과 갈등이 극심한 혼란한 시대가 됩니다.
공자는 춘추시대에 태어나시는데 주나라의 제후국인 노나라 곡부 땅에서 태어나서 재상까지 지내죠. 그런데 스스로 주나라보다 한 시대 앞선 은나라의 후손임을 밝히죠. 자기는 동이족이다 라고 해서 자신이 동이족 예법에 따라 장례가 치러지는 모습을 꿈속에서 볼 정도로. 공자님께서는 민생 안정을 우선시하는 덕치를 뒤로 한 채 개인의 영달과 천하 통일을 목표로 오로지 약육강식을 일삼는 패권주의에 대해 눈이 감기 전까지 깊은 우려를 했어요. 세상을 덕으로써 다스려야 하는데 세상은 죽이고 죽고 혼란스럽고 이런 식으로 가니까 그래서 철환주유(鐵環周遊)로 떠나시죠. 제후 만나서 ‘정치는 이렇게 하십시오’ 이런 거를 하려고 쭉 떠나는데 누구도 이제 공자님 등용을 안 하죠. 철환주유를 하다가 어떤 과부로부터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라는 얘기를 들어요. 호랑이한테 잡혀먹는 게 낫다 이거예요. “당신 왜 읍내에서 도시에서 안 살고 산 속으로 도망쳐 와서 사냐?” “차라리 호랑이한테 잡혀먹는 게 낫지. 내려오면 가혹한 정치를 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런 식이죠.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듣고 희망을 걸기가 어려웠습니다. 공자 사후 260년 후 천하통일을 이룬 진시황제는 강력한 체제정비를 위해 정치적 반대세력 탄압하기 시작했어요. 패권정치 반대는 왕도정치거든요. 왕도정치 실현을 꿈꾸는 유가세력들을 쳐내야 되는 거죠. 유자들을 구덩이에 파서 집어넣고 경서나 경전 이런 걸 불태우고 한 분서갱유를 했지만 결국은 진시황조차도 15년 만에 망하죠. 새로운 통일국가 한나라가 한 420년 가는데, 한나라 왕조는 앞에 진나라가 어떤 식으로 해서, (망했는지 알아요) 법가, 오로지 법으로만 하고 이사, 상앙, 한비자 등이 결국은 자기가 만든 법에 의해 죽음을 당하잖아요. 덕치를 근본으로 하지 않는 정치가 오래갈 수 없음을 깨닫고, 연속적으로 이어진 전쟁 때문에 너무 피폐해졌지 않습니까? 그런 백성들의 마음을 달랠 통치철학이 필요했어요.
한 왕조는 공자의 위민(爲民)사상이 필요했어요. 자기의 통치철학으로. 왕도정치의 바탕이 되는 유교세력들에게 눈을 돌려서 국가를 오래도록 보전하려면 법치만이 능사가 아니라 왕도정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유교 지식인들과의 타협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어떤 식의 타협이였냐면 분서갱유로 인해 쓰러졌던 유생들을 사면복권시키고 경전에 옻칠을 해서 벽 속에 감춰놓은 거. 겉으로 봐선 책장인지 몰라요. 그게 나중에 발견됩니다. 이때 당시 경전들을 불태우게 했으니까. 감춰 두었던 유학경전들을 찾아내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유교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습니다.
이후 공자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이며 만세사표로 존숭되면서 ‘집대성한 성인’으로 추앙받습니다. 유교의 창시자를 공자라고 하시는데 그러나 그 앞에 사실 유가사상이 있었고, 요-순-우-탕-문-무-주공이라고 하는 역대 성인들이 있습니다. 성인들이 하셨던 부분을 공자님이 정리를 잘 하신 분인 거죠. 공자는 요샛말로 하면 정리의 달인인 거죠. 그래서 ‘집대성’했다는 표현이 공자님한테서 처음 나온 거예요. 공자를 모신 사당을 공묘라고 하고 당나라 때 왕으로 추존이 됩니다. ‘성진성문성왕’ 왕으로 추존이 돼요. 원나라 이후는 문묘라고 하고, 그 중국에 가면 곡부에 가면 공묘가 있어요. 성균관에 가면 문묘가 있습니다. 똑같은 공자님의 신위를 모신 곳입니다. 중국의 역대 황제는 공묘를 방문해서 비석세우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길 정도였어요. 서구 식민지 침탈 이후 공자는 타파해야 할 봉건적 잔존 유물로 불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1960년대 중국하면 문화대혁명이라고 해서 유교에 관한 부분을 무조건 다 때려 부수고... 그랬던 부분이 다시 되살아나는 게 2000년대에 들어서고, 2008년도 인가요? 북경올림픽이죠 ? 그때 개막식 보면 어마어마하죠. 공자를 다시 살려내죠. 그래서 북경에 공자의 동상이 크게 섰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보니깐 동상을 한쪽으로 끌어 내렸더라구요.
유교가 2천년동안 중국의 통치철학으로 오다가 공산주의로 파괴됐다가 필요에 의해 부활을 시키고 있고 전세계에 공자학당이라고 우리나라의 세종학당에서 한글 가르치고 하듯이 공자학당도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죠.
사기를 쓴 사마천은 사기 중에서 제후들의 연대기인 세가(世家)에 공자를 올려놨습니다. (공자세가) ‘천하의 임금으로부터 현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살아생전에는 영화를 누렸으나 죽으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벼슬이 없이 살았으나 300여년이 지난 지금(사마천이 쓸 때쯤이죠) 학자들의 종주가 되었으며 천자와 왕으로부터 나라 안에서 육예를 말하는 자는 공자를 절충하였으니 가히 지극한 성인이시다.’ 사마천이 사기 세가편에다 ‘지극한 성인’이라고 표시를 해 놨어요.
사마천이 말하고 있듯이 공자가 후대에 들어 학문의 종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나 남긴 저작물들 때문입니다. 역대로 공자를 ‘앞서 가신 성인을 잇고 후학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는 계왕성개래학(繼往聖開來學)이라고 하여 오히려 요순임금보다 낫다고 평가합니다. 요순임금은 태평성대라 하지만 저작물이 없었고 후학이 없었는데, 공자님은 저작물들이 있죠. 직접 집필하신 것들은 『춘추』 하나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정리하신 거죠. 그런 의미에서 대단합니다.
공자 스스로가 전술은 하되 창작은 하지 않았으며, 술이부작이라는 사자성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인사 청문회 할 때마다 맨날 얘기되는 것 중에 하나가 논문표절 뭐 이런 거 아닙니까? 인용을 했으면 어디서 인용했다, 누구 것을 정리했고 내 의견은 이겁니다. 이러면 문제가 안 될 텐데. 공자는 이때부터 진솔하게 이야기 하죠. 나는 내가 창작한 게 아니다. 성인들이 하신 말씀을 정리만 했을 뿐이다. 그래서 ‘전술을 하되 창작을 하지 않았으며 옛것을 좋아하는 것을 그윽이 우리 노팽과 견주노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성현들의 훌륭한 옛 내용이 많았기에 스스로 더 쓸 것은 없었다. 다만 중구난방으로 있었던 걸 정리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후학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걸로 공부할 수 있으니까 뭐 그런 걸로 피력을 하신 거죠.
옛날 선비는 국가로부터 녹을 받아서 살림을 꾸렸기에 벼슬이 없다면 먹고 살기가 매우 어렵죠. 공자는 젊어서 미관말직인 위리(委吏)이라는 창고지기도 했고, 종묘제사에 쓰일 가축을 기르는 축사일도 맡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나 배우기를 좋아했고 예법에 관해서 공부를 하다가 미진한 점이 있으면 주나라 도서관 사서, 지금으로 말하면 도서관 사서입니다. 노자에게 묻기도 하고 정리했어요. 그래서 노자, 도교 쪽에서는 공자님이 노자님한테 와서 수학한 거 아니냐? 그렇게 쓰기도 해요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종이로 된 책은 한나라 이후부터 있었고 일일이 필사한 죽간이 전부였어요. 책을 구하기도 어렵고 공자 당시에는 대부분이 구전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불교 쪽은 잘 모르는데 그쪽도 ‘나도 들었다’ 이런 식으로 나가죠? ‘나는 이렇게 들었다’ 그런 식으로 뭐 구전이 됐겠죠. 문헌을 정리하려면 구전되는 말만 가지고는 부족하기 때문에 공자는 평생을 두고 문헌을 정리하신거죠.
그런데 공자님이 뭘 했냐면 ‘천자가 아니면 예를 의논하지 못하며, 법도를 짓지 못하며, 글을 상고하지 못한다.’이런 말이 있어요. 나는 벼슬도 없고 그래서 이 나라 저 나라 가면서 그 나라 임금과 더불어서 어진 정치를 피려고 했는데, 결국 그게 안됐죠. 돌아와서 제자 중에 자공이라는 사람이 공자처럼 훌륭한 선생이 재야에 묻힌 게 안타까워서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으니 궤에 넣어 감춰둘까요? 좋은 값을 흥정해 팔까요?” 여기서 옥은 공자님이죠. 자공이 오죽 답답하니깐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하죠. 그러니까 공자님이 “팔아야 할까, 팔아야 할까? 나는 값을 기다리는 자이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세상에 시세에 부합하지 않고 자기를 알아주는 임금이 나올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 그런 밝은 임금이 아니라면 더불어 정치할 생각이 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더 이상 도가 전파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공자는 13년간의 철환주유를 마치고 자기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와서 시경 서경 역경 예경 악경 -악경은 현재 전하지 않습니다 – 정리하시고, 춘추는 집필을 직접 하셨죠. 사서오경에 춘추가 들어가긴 하는데 천자의 명을 받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쓴 글을 거짓말, 헛소리라고. -지금도 공언이라는 단어는 다 쓰죠- 내가 쓴 글은 공문(空文)이다. ‘빌 공’, ‘글 문’. 자신의 지위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자기 자신을 굉장히 낮춰서 말씀을 하신 거죠.
거기까지 유교와 공자님의 한 일대기를 잠깐 봤어요. <유교의 필요성과 역할>이라는 타이틀이 있는데, 유학이 그렇게 됐던 게, 그런 왕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군자(君子)가 필요했고 그래서 그 방편으로는 유교는 그 사회의 교육을 맡았어요. 유교가 그 종교인지 학문인지 상당히 애매합니다. 지금도 종교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유교 내에서도 유교는 학문이다 하고 대립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게 맞다 이런 거는 제가 말할 부분은 아니고요. 유교는 교육을 맡았고 선비가 되고 군자가 되고 성인이 될 수 있게끔 교육에 굉장한 방점을 두었죠. 인재양성방법으로는 ‘인성교육’이 중요함을 깨닫고 예전에는 ‘성학도통’이라고 해서 롤모델이 되는 스승을 받드는 학통을 중시하였습니다.
요즘도 인성교육이 잘 얘기가 되죠. 작년서부터 국회에서 통과되서 아마 인성교육이 실시된 걸로 알고 있는데, 얼마나 인성이 메말랐으면 그걸 법으로 정해가지고 할까? 역으로 생각하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면 인성을 어떠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가르쳐야 되며, 인성교육 자격증을 주기 위해서 수강료 120~150만원 받고 또 교육 시켜요. 각 종단에서도 원불교에서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성균관에서도 하고 이곳 성균관에서는 원래 하던 게 인성교육이니까. 학교서도 그렇고 요즘 제일 화두가 인성교육이예요. 원불교만의 인성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학생들... 학생들만 할 게 아니라 성인들도 인성교육은 다시 받아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타 종교와의 비교 및 특징> 이렇게 되어 있는데, 제가 뭐 전공자가 아니라서 거창하게 할 건 아니고, 유교는 사후의 영생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유교는 자기수양, 인간신뢰, 가족간의 화합, 국가의 번영 이 4가지를 통해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 유교라고 해서 거창하게 종교 그런 게 아닌, 자기 자신의 수양을 하고 인간에 대한 상하좌우의 신뢰, 가족 간의 화합, 국가의 번영 이거예요. 그걸 통해서 현실세계의 이상적인 그런 걸 실현해 보자 그렇게 하는 거죠. 유교는 일상생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을 해요. 예를 들어서 몇 가지 이렇게 해 놨는데요. 보면 『논어』 선진편 제 11장에 보면 자로(子路)라는 사람이 있는데 계로(季路)라고도 하죠. 귀신 섬기는 거를 물어봐요. 계로가 귀신섬기는 것을 여쭈자, 공자님께서 ‘능히 사람을 섬기지 못하는데 무슨 귀신을 섬기냐’ 하면서 귀신보다는 사람섬기는 것을 중시하죠. 내세보단 현세를 이야기 했죠. 또 자로가 ‘죽음이란 뭡니까?’ 공자님께서 ‘삶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하냐’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죠.
자로가 천지자연의 이치인 귀신에 대해 묻자, 공자는 ‘한 두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신이라는 게 한 마디로 ‘뭐다’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까? 공자님이 봐도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사람 섬기는 일이나 잘해라 그런 곳에 신경쓰지 말고 사람 섬기는 것만 잘해라’ 라고 하신 거죠. 그래서 자로가 좀 더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죽음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삶이나 충실하게 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보면 어떻게 보면 염세적으로 빠질 수도 있고 우울증도 걸릴 수 있고... 공자가 삶이나 충실하라고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고 나와 있어요.
공자님의 제자 중에 자공이 ‘우리 선생님은 인도(人道)에 대해서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인이 뭐다 뭐는 뭐다 말씀은 하시는데 천도(天道)에 대해선 말씀을 별로 안 하시더라’ 이런 표현도 『논어』 공야장편에 나옵니다. 그거를 이제 주자와 정자는 – 주자와 정자는 뒤의 사람들입니다 – 그 질문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주역부분은 좀 어려우니까 건너뛰고요. 3번을 보면 주자는 ‘(자로가) 귀신 섬김을 물은 것은 제사를 받드는 바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반드시 있는 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죽기 때문에 불가불 알아야할 거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죽었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하잖아요? 불가불 알아야 할 바인데 공자님께서 설명을 안 해주신 거죠. 그 아무튼 ‘정성과 공경으로써 족히 섬기지 못하는 귀신도 섬길 수 없다. 시작을 근원으로 하여 사는 까닭을 알지 못한다면 반드시 마침으로 돌아가 죽는 까닭도 알 수 없음이라.’ 원시반종이라고 하죠. 아마 이 부분은 불교가 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윤회하고 이런 걸 그쪽과 연관이 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할 때, 그 유명과 시종은 그 이치가 없으되 다만 배움에 순서가 있어서 가히 등수를 넘지 못하므로 부자께서 – 공자를 다른 말로 부자라고도 합니다 – 묻기를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것은 기와 이를 겸하여 말한 것이 아닙니까? 주자가 말하기를 이 이치가 있으면 이 기운이 있고, 이 기운이 있으면 이 이치가 있으니 기운은 곧 둘이고, 이치는 곧 하나이니라.
이기이원론 이기일원론 뭐 이런 게 나오는데 여기서 얘기할 게 아니고 이게 나중에 조선 성리학으로 오면 율곡의 이기일원론 퇴계의 호발론 일도설 굉장히 복잡하게 치열하게 논쟁이 나가죠.
이런 부분이 그때 처음 나옵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에서 이냐 기냐 이기가 둘이냐 하나냐 이런 식의 논쟁이 간다는 얘기죠. 정자는 주자보다 앞선 사람이예요. 주자가 정자한테 많이 배웠죠. ‘낮과 밤은 죽고 사는 도이니 삶의 도를 알면 죽음의 도를 알고, 사람을 섬기는 도를 다하면 귀신이 섬기는 도를 다하니 죽음과 삶, 사람과 귀신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니라.’라고 정자는 이야기해요. 혹자가 아까 말했듯이 공자께서 자로에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공자는 이미 다 알려줬다 그거예요. ‘네가 깨달아라’ 그랬는데 자로가 깨닫지 못했다는 거죠.
아까 이 얘기는 현실세계 유교는 지극히 현실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는 거죠
‘사는 동안 인간답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죽고 난 후의 세상에 대하여 더 이상 고민 하지 말라. 지금 내가 느끼고 사는 이 세상에서 내 부모와 자식들, 이웃들에게 최선을 다해 배겨하고 존중하며 작은 행복을 느끼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 죽고 나서 어디 가서 무엇하냐.’ 이것은 지극히 유교적인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다른 종교는 내세관이 있고 구원관이 있지만 요 부분은 지극히 유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설명을 하는 거예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려보기도 합니다. ‘신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할 수도 있죠. 그러한 상상과 추론에 근거하여 인생을 조율하고 반듯하게 살아가자는 것도 인정을 해요. 그렇지만 그쪽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현실 속에 사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잘 살고 그러란 의미에서 지극히 유교는 현실주의적입니다.
이제 유교경전과는 상관이 없는건데 ‘사철가’란 민요 중에 좋은 게 있어가지고
(책자 참조)
사후(死後)에 만반진수(滿盤珍羞)는 불여(不如)생전(生前)에 일배주(一盃酒)라 →죽고나서 진수성찬 차려놓고 제사를 받는다 한들 살아생전 술 한 잔 올리는 것만 못하다. |
민요 가사가 어쩜 그렇게.. ‘부모님 돌아가신 다음에 뭔 소용이 있냐. 살아계실 때 효도해라’ 그 말과 비슷한 거죠.
그 다음에 이제 예를 하나 더 들어놨는데, 논어 옹야편 20장에 보면, 번지가 ‘안다(知)는 게 뭘 아는 거라고 합니까?’ ‘귀신을 공경하되 다만 멀리해라’ 공자님도 귀신을 부정하지 않았어요. ‘귀신을 공경하되 다만 멀리해라. 그거를 가히 지(知)라 알지니라.’ 이런 식으로 얘기했어요. 여기서 이제 지금도 흔히 쓰이는 경원시(敬遠視)라는 말, ‘아 쟤는 너무 경원시한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거예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해라’
그런 식으로 해서 <유학경전과 도맥>이라는 쪽으로 넘어가다 보면 유학의 도맥이 어떠한 식으로 나왔느냐 아마 이제 원불교도 대종사님부터 해서 맥이 있지 않습니까? 유교도 그런 도맥이 있습니다. 공자 이전에 성인들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임금 문왕 무왕 주공 요분들이 공자님이 좋아한 성인들이죠. 공자의 도맥을 누가 받느냐? 증자(曾子)가 받고 자사(子思)가 받고 맹자까지가 끝입니다. 정자, 주자는 제가 그냥 써 놓은 거고요.
유학 경전에 대해 소개를 드리면 유학경전은 송나라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고려 때가 중국의 송이죠 송나라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육예-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중심으로 공부해왔는데 사서삼경 체계가 완성된 것은 남송 때 드디어 나오네요. 이제 주자 – 주자라는 이름, 조선 성리학으로 오면서 나중에 조선조가 망할 때까지 지금도 얘기되는 것 중에 하나가 대단하신 분이지만 너무 우리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주자 성리학을 너무 맹신했다. 공리공론 논쟁만 하다가 상복을 며칠 입느니 몇 년 입느니 이 문제로 상대방을 다 죽일 정도로 하튼 폐단이 있죠. 근데 아무튼 유학으로서는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 주자가 드디어 나오는데 주자가 사서삼경체계를 완성을 해요.
자사가 공자의 손자인데 중용을 지었다고 전한다 하는 게 맞습니다. ‘자사가 중용을 지었다고 전한다’라고 표현해야 시비를 안 겁니다.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 지은이가 누군지에 대한 설들이 많아요. 자사 이후 도맥이 끊어졌다고 판단한 주자는 정자의 뒤를 이어 공자의 학문을 연구하여 『예기』 속에 들어있던 「대학」과 「중용」을 독립시켜-이게 원래 한 챕터였는데 따로 뽑아냅니다.- 『맹자』, 『논어』와 함께 사서(四書) 체계로 만들어요. 『시경』, 『서경』, 『역경』을 삼경(三經)으로 묶어서 유학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보게끔 합니다. 원불교도 경전이 있듯이 유교도 사서삼경을 반드시 익혀야할 과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죠. 유교는 청나라에 들어와서 서구문화를 만나면서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나 군대를 앞세운 서구문물에 무릎을 꿇게 되면서, 2천여 년 동안 국교로 숭상되었던 유교는 단절되고 청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공자 역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가 다시 부활하고 있으나 중국이 지나치게 자국내의 국수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어 우려스러울 뿐입니다.
<사서의 공부 순서와 구성 체계>를 쭉 해놨는데, 이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째는 주자가 『독중용법(讀中庸法, 중용을 읽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사서 중에 제일 먼저 입문해야 할 게 대학이다.’ 그 다음에 논어 맹자 중용 순으로 읽으라고 설명을 해요. 왜냐하면 그래야 이해하기 쉽다. 주자의 논리는 이거예요. 조선시대에는 대학 들어가고 중용을 읽고 맹자를 읽고 논어를 읽고 시경, 서경, 주역 순으로 공부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를 하죠. 현재는 유학체계에 의한 교육과정이 아니므로 아무거나 먼저 보고, 안보는 것보단 낫죠. ‘논어 정도는 봐야지. 유교를 믿건 안 믿건 봐야지. 세상 사는데 논어쯤은 읽어봐야지.’ 이런 식으로 해서 들어가는 것도 있는데, 밑에 경전요약소개를 보면 조선시대 성립된 사서삼경 순으로 설명을 할 겁니다.
그래서 유학경전은 성(性), 선(善), 도(道) 실천학문이예요. 유학의 목표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선을 행하여 세상의 도를 밝히는 것입니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함을 도라고 하니, 계지자(繼之者) 선야(善也) : 잇는 것은 선이고 성지자(成之者) 성야(性也)라 : 이루는 것은 성이라 『주역』 계사상전 제5장 |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고. -> 한번 밤이 되고 낮이 되고. 이렇게 돌아가는 게 하루죠. 도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이거예요. 동쪽 여기서 해가 떠서 남중하는 거죠. 그래서 해가 이렇게 지죠. 이게 낮이죠. 이게 밤이죠.이게 계속 돌고 돌지 않습니까? 한번 가면 하루가 되는 거죠. 이게 어떻게 하면 도이죠.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고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잘 나갔다 안 됐다가.
하늘의 도를 그대로 이어받는 게 선(善)이다 이거에요. 선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하늘의 뜻대로 사는 거 이게 선이지, 그게 어긋나면 불선(不善)입니다. 서양은 선악의 개념이지만 동양은 선과 불선의 개념이죠. 그 선을 이루는 것 그게 바로 성(性)이다. 계사상전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교(敎)와 학(學) (가르칠 교, 배울 학)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사귈 효(爻)와 본받을 효(效)와 효도할 효(孝) 효효효 다 똑같은 뜻이예요. 인간관계의 사귐을 중시하며, 이것을 구체화한 것이 인륜(人倫)의 도(道)입니다. 이를 익히고 깨달으며 늙어가는 과정이 유학의 인간관계다.
효(爻) 설명 - 별(丿) 삐침 별자입니다. 불(乀) 파임 불자예요. 이게 그냥 기호가 아니라 한자 뜻이예요. 양기운이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남중으로) 가죠. 양기운이 극에 달했어요 음기운이 이렇게 나오고 요런 식으로 나오는 게 이겁니다. 별(丿)과 불(乀)이죠. 이 두 글자가 엇갈리는 게 사귀는 거죠. 어디서 사귑니까? 정중앙에서 사귀게 되는 거죠.
혹시나 오늘 한번하고 안 할라고 했는데 혹시나 4월에 강의가 되면 주역 기초적인 가장 그런 부분에서 나와 있는데
예(乂) = (삐침 별자와 파임 불자의 교차) 천지 자연이 사귀기는 거고. 하나만 보면 사귈 예자가 됩니다. 음과 양이 사귀는 거죠
음에서 양으로 나오는 것과 양에서 음으로 가는 것이 천지 자연이 음과 양이 합쳐진다. 사귈 예. 누가 본받냐? 인간이. 남성과 여성, 양과 음. 천지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본받는 게 그게 본받을 효(效)예요. [영상 50분에 판서 내용 참고하심이 이해하시기 편하실 겁니다. ^^]
요렇게 쓰면 효도 효(孝)가 되는 겁니다. 천지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서 인간이 하는 게 효예요. 효입니다. 그래서 가르칠 교(敎)자에 들어가는 것도 똑같죠? 요게 요거죠? 하나만 쓰면 칠 복자(攵)인데, 학교에서 애들을 때려도 되는구나하고 오해해서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그게 아니라 격려하라는 거지 사랑의 매라고 해서 두드려 패라는 게 아닙니다. 배울 학자를 보면 똑같은 게 있습니다. 학(學)자에 보면 엑스자가 들어가 있죠? 여기서 요거하고 요거 빼봐요. 똑같죠? (엑스자 두 개) 그거를 요거 하나만 쓰면 덮을 멱(冖)자예요. 덮는다 할 때 잘못 아는 게 민갓머리라고 하고 점 붙이면 갓머리(宀)라고 하니까 도대체 이 글자가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옛날에는 갓처럼 생겼으니까. 외우기 쉬우라고 그러는 거지. 이건 덮을 멱자예요. 어리석고 몽매한 학생을 덮어서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가르치고 배우는 거 교학상장이라는 것도 똑같은 말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똑같이 성장시키는 거예요. 어쩌다 거기까지 나갔는데 이건 뭐 나중에 기회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 일음일양지의 도 설명하다 거기까지 갔네요.
잘 하지도 못하는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속해서 이어가겠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제 경전요약소개를 하면 아마 오늘 다 끝날 거 같은데요. 사서삼경을 하면서 7가지 책에 대해서 간략하게 맛보기로만 소개를 하겠습니다.
1. 대학(大學)
대학은 한마디로 말하면 지어지선(止於至善)입니다. 지어지선의 대학. 그래서 ‘착할 선’자로 대표됩니다. 대학을 공부하면은 착할 선자가 뭐냐. 착하다가 뭐냐. 지어지선이 뭐냐. 그래서 그런 부분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착할 선으로 대표되며 지극한 선에 그치는 것이 목표입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겁니다. 지은 것으로 알려진 겁니다. 지었다가 아니라. 공자로부터 노둔하다는 평가를 받은 증자예요. 왜 노둔하다는 평가를 받았냐면,
고기 어(魚)자하고 노나라 노(魯)자를 증자가 아마 구분을 못했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어유 저렇게 둔한놈’해서 그렇게 표현을 한 거 같습니다. 그렇게 노둔하다는 평가를 받은 증자이긴 하지만 대학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학을 통해 공자의 도를 일목요연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대학 1장을 보면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하며 재친민(在親民)하며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 ”
논어 첫구절을 대부분 암송하고 있듯이 이런 부분은 암송을 해주시는 게 사회생활하면 누가 물어보면 있어 보이고 대화할 때 ‘너 대학이 뭔줄 알어?’ 하면 ‘얌마 ~ 아니냐’ 이렇게 하죠.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들과 친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그침이 있느니라.’ 해서 대학의 도인 삼경령을 밝히고 있어요.
대학은 마지막장에서
차위국불이리위리(此謂國不以利爲利)요 이의위리야(以義爲利也)니라 이를 일러 국가는 이를 이로움으로 삼지 않고 의를 이로움으로 삼는다고 하니라. |
국가가 의로움을 추구해야 되지 이로움을 추구하면 국가가 굉장히 어려워지죠. 사는 사람도 어려워지고요. ‘지선(至善)의 사회는 이끗을 추구하는 사회가 아닌 의리를 추구하는 사회로,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는 먼저 스스로 내면의 밝은 덕을 닦아 이를 세상에 밝혀야 백성과 친할 수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여 함께 지선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중고등학교 때 바른생활 국민윤리 도덕 시험문제에 나왔는데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뜻도 모르고 외워가지고 글자까지 그려가면서 썼던 기억이 나는데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많이들 들어보셨죠? 그러나 격물치지성의정심은 별로 들어보시지 못했을 거예요.
수신을 하기위한 기본 전제가 이겁니다. 격물-치지-성의-정심해야 그래야 비로소 자기가 수신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수신할 수 있는 기본 전제는 안 알려주고, 수신해서 제가한 다음에 치국 평천하 한다 그러니 어떻게 수신해야 될지를 모르는 거예요. 교육현장도 그런 부분들이 안타깝죠. 시간은 없고 빨리 가르쳐야 되니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보고요.
격물은 사물의 이치를 바로잡는 거예요. 자격증(資格證) 할 때 격자 이런 식으로 쓰죠? 그래서 보통 ‘자격 격’ 이렇게 외우는데 이거는 바로잡을 격입니다.
격물하면 사물의 이치 개념파악을 확실히 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네 글자 액자에다가 크게 써서 읽고 ‘성의(誠意正心)’ 크게 해서 가훈이네 사훈이네 이러는데, 격물해야 즉 개념정리부터 분명히 해야 앎에 이르러요. 이 컵이 뭐가 컵이냐 종이는 뭐가 종이냐 탁자는 뭐가 탁자냐 개념정의가 없으면 알지를 못하는 거예요. 수신할 수 있는 전 단계가 격물해서 지혜가 이르러 가지고 정성러운 뜻, 바른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수신(修身)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야 제가(齊家)를 할 수 있고.
제가라고 하면 가정을 꾸린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간단하게도 볼 수 있지만, 3-400명 집단을 모여 사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중국 장가계 가 보셨죠? 3-400집단 모여 사는데, 이 정도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더 큰 무대에 가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거지, 자기 몸 닦아서 결혼한다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게 말도 안 되는거죠. 대학에서는 중요한 게 1장이고요.
2. 중용
그 다음이 중용으로 넘어갑니다. 중용은 딱 네 글자로 말하면, 지성여신(至誠如神)이예요. 대학이 착할 선으로 대표된다면 중용의 핵심 키워드는 정성 성(誠)자에요. 그것만 해도 돼요. 그것만 해도 50프로는 아는 거예요. 그래서 앞에서 대학을 공부해서 선이란 게 뭐냐 해서, 지선(至善)할 줄 알았으면 그 다음 중용으로 와서 잠시라도 게을리하지 말고 ‘정성 성’으로 압축되는 중용을 공부한다. 하늘로부터 이어받은 성품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선(善)이라 하였고, 그 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길이다.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잡풀이 나죠. 잡풀이 나고 위정자는 목적지에 쉽게 다다를 수 있도록 쉼 없이 닦아야 돼요. 그래서 교무님들이 쉼 없이 마음에 정신에 잡풀이 안 생기도록 닦아주시지 않습니까?
위정자들도 백성들이 그러지 않도록 쉼 없이 닦아줘야 돼요. 그래서 중용 제1장을 보면
“天命之謂性이오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하늘이 명한 것을 성품이라 이르고, 성품을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르고,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이르니라.) |
이것도 외워주면 중용 1장이 그거 아니냐? 하면 먹어주는 거죠. 중용에서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게 다 중요하지만 제 20장에 보면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는 다섯이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셋이니, 군신과 부자와 부부와 형제와 벗을 사귀는 다섯 가지는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요, 지와 인과 용 세가지는 천하에 두루 통하는 덕이니, 이것을 행하는 것은 하나이다.’ 오달도(五達道)와 삼달덕(三達德), 이것도 시험에 상당히 많이 나왔던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육사에 들어가면 지인용(智仁勇)이라고. 지금도 아마 그게 있을 것 같습니다. 육군사관학교 보면 지인용 이렇게 돼 있을 거예요.
하늘이 쉼 없이 운행하며 만물을 기르는 하늘은 하루도 안 쉬는 거예요. 만일 하늘이 하루 쉬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가령 해가 계속해서 해만 뜨고 달이 밤에 나와야 되는데 안 나오고 해가 계속 나오고, 또 해는 안 뜨고 달만 계속 나온다던가. 하늘이 쉼 없이 운행하면서 만물을 길러요.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와서 땅에서 모든 게 자라지 않습니까? 위정자는 하늘처럼 쉼 없는 정성 그것을 ‘지성무식(지성무식)’이라고 합니다. 무식이라고 해가지고 ‘무식하다’는 게 아니라 쉴 식(息)자입니다. 위정자도 만물을 기르는 것처럼 쉼 없이 해서 백성들을 기르고 해야하니 지‘극한 정성은 신과 같다.’ 지성여신(至誠如神)이라 하는 게 여기에 나옵니다. 약간 응용하면 ‘지성이면 감천이다’ 가 되는거죠.
저희 중학교 다닐 때, 그때는 교복도 있고 모자도 쓰고 경계할 시절이었으니깐. 저희 학교 구호가 지성이었어요. 교문 앞 돌탑에 ‘지성’이라고 딱 쓰여 있어요. 인사할 때도 ‘지성(거수경례)’ 외치고 해서 속으로 ‘인텔리전트한 사람이 되라는 뜻인가?’ 했는데 아- 지극한 정성 이런 식으로 이렇게 살아라. 그 숭고한 뜻이었는데도 중학교 때는 ‘그게 뭐지? 무조건 똑똑하다?’ 그렇게 알아들었죠. ‘쉼 없이 지극한 정성은 신과 같다’ 그래서 ‘교화는 위정자가 스스로 덕을 닦아 한결같은 정성으로 이루어야지 명령만 갖고는 불가하기에 중용이 33장까지 있는데 끝에 다시 공자 공자의 말씀과 시를 인용하여 “소리와 낯빛으로 백성을 교화함에 말단이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는 시대하고 잘 생각해서 들으시면 알아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선 누가 뭐 어쩠다 이런 얘기 안할 테니까. 위정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 백성한테 어떻게 해야 한다 이런 게 나와있다고 가르쳐주는 거죠.
‘소리와 낯빛으로 백성을 교화함에 말단이라. 시에 이르기를 “덕의 가볍기가 터럭과 같다.”하니, 터럭은 오히려 비교할 수 있거니와 상천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고 함이여! 지극하니라.’ 하늘이 하는 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듯, 그걸 본받아서 위정자도 ‘내가 뭐 어떻게 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백성들을 잘 먹고 잘살게 해라. 이런 뜻이겠죠.
3. 맹자
그 다음에 이제 맹자 – 키워드가 대학은 선, 중용은 성, 대학은 지어지선, 중용은 지성여신, 맹자 하면 왕도정치(王道政治) 이거 하면 끝난 거예요.
중용을 공부하다 보면 지나치게 내적으로만 치닫게 되므로 눈을 돌려서 바깥세상도 좀 볼 줄 알아라. 뭐 이런 식으로 해서 맹자를 공부를 시키는 거죠.
전국시대 춘추는 공자님이 활동하던 시대고 그 다음에 전국시대는 맹자가 활동하던 시기인데, 패자들에게 ‘부국강병의 진정한 힘은 인의의 정치에서 나옴’을 역설하면서 논어는 착할 선, 중용은 정성 성, 여기(맹자)에선 옳을 의를 강조하죠. 하나씩 있는거죠.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 이미 글이 있고 법도가 있음에도 “苟非其人이면 道不虛行하나니라(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도가 헛되이 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인의 도를 계승한 『맹자』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2천 3백여 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공자가 말한바 ‘바로 그 사람’ 인 맹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바로 그 사람인 거죠.
『맹자』로 인해 비로소 유학은 관념의 이상정치 사상이 아닌 현실의 실천정치에 적합한 학문이 되었다. ‘현실에 아주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학문’으로 올려놓은 거죠. 바로 그 사람이 ‘맹자가 부득의한 호변’할 때 ‘부득이 ~한다’의 ‘부득’이란 말도 맹자가 만들어낸 말입니다. 신조어의 대가인 거 같아요. 지금 우리들이 쓰는 대부분의 말이 『맹자』를 보면 엄청납니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어진 정치를 내세웠으나 그 핵심은 정전법(井田法)이라는 경세치용의 국가경영이론이다. 맹자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역사적으로 한번 다스려지면 한번 어지러워지고 나타나는 걸 알고 있기에 무차별한 약육강식의 전국시대가 종식되고 대동세상의 인정이 펼쳐지기를 희망하며 공자의 뒤를 이어 철환주유에 나섰다. 결국 맹자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철환주유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돌아와 일곱 편의 글을 썼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자리를 넘길 때 ‘윤집궐중(允執厥中)’ 한 마디를 하며 선위를 해요. ‘진실로 그 중을 잡는다.’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세 마디를 더 보태요.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사람의 마음은 언제 위태로운 거예요. 변덕이 심하고 하기 때문에 도심은 미미해요. 오직 정미롭고 한결같이 하여 중(中)을 잡아야 한다. 중심을 잘 잡아야 된다. 하면서 순임금이 우임금한테 넘겨주죠. 그런 도맥이 은나라의 탕 임금에게 오고 주나라의 문- 무 -주공, 공자로 이어져서 공자는 이를 집대성해서 ‘균(均)・화(和)・안(安)’을 도출하죠. 균은 완벽하게 평등이 아니라 어느 정도 지금처럼 상 10프로 하10프로 나머지 80프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격차를 좁히는 거죠. 지금으로 말하면 비정규직이나 부자들과 가난한 자의 차이를 최대한대로 고르게 할 수 있고, 그래야만이 화목해 화합이 돼요. 그래야만이 안정이 돼요. 집안/사회/나라가 안정이 되던 공자가 그러한 도맥을 이어 균과 화와 안을 도출했어요.
맹자는 공자가 집대성한 학문을 체로 하여 유학사상을 <정전법과 인륜, 인정과 왕도>라는 경세치용의 통치사상으로 발전시켰다. 『맹자』가 아니었다면 유학(유교)은 수많이 명멸해간 이상주의주들의 한갓 관념론적 정치철학·사상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맹자가 등문공에게 경세치용의 정전법을 유세하였기에 ‘仁政’이 실물경제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죠.
여기서 이제 거꾸로 그렇다면 이제 유학이나 유교가 정전법을 빠뜨린 채 효제충신의 인륜사상만으로 이루어진 교리인 양 전해진 이유가 뭐냐.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사건으로 사상체계가 타격을 받아요. 그리고 한나라가 공자의 유학을 국교로 삼았지만 봉건제로 인해 효제충신을 강조하다 보니 신분질서와 기득권유지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유교가 퇴행적으로 변질된 점이 없지 않아요. 당시까지 맹자가 유학경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어요. 제자백가중의 하나로 취급받고 경전 취급을 못 받은 거예요. 이런 세 가지 원인이 있고요.
맹자가 사서삼경의 하나로 분류되면서 유학자의 필독서로 정리되기까지 송나라의 주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는데 ‘존맹파(尊孟派)’와 ‘핍맹파(貶孟派)’들이 서로 열심히 논쟁을 합니다. 핍맹파들이 맹자를 까지요. 결국은 존맹파들이 이기게 되죠. 그거를 주자가 정리를 하죠. 정리를 해서 맹자를 제자백가서에서 끄집어내서 경전의 반열로 올려놓죠. 그래서 맹자가 공자의 다음가는 아성(亞聖)이라는 식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라가죠.
맹자가 오늘날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면, 자본주의 시대가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와 비슷하거나 더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맹자가 주창한 인륜의 법도가 무너지고 위민이니 인정이니 하는 정치 덕목조차 실종된 지 오래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기득권집단에게는 오직 이끗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목소리만이 가득 차있는 것 같습니다. 이끗 찾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게 현실인 거 같아요.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살까? 이 생각만 갖고서. 맹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안 먹힐 거 같아요. 옛날 선비에 해당하는 현대 지식인은 어떠냐. 맹자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어차피 그들도 기득권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별 얘기 안 하고... 여기서 정치적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맹자 자체가 굉장히 혁명적이고 정치적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금서였었고 그랬는데, 맹자 책을 읽다 보면 재밌고 (울분) 올라올 거예요. 그거를 현실과 현 시대와 접목해서 같이 맹자를 읽다 보면, 많은 걸 생각 하게 될 겁니다. 맹자가 그렇다는 거예요. 책을 소개하는 겁니다.
뒤에 몇 권이 더 남았어요.
4. 논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공자님이 지은 책이 아니예요. 공자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제자들이 정리한 책입니다. 맹자 7편 읽은 사람은 말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맹자가 달변가, 호변가라서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 그런 의미인데 그 정도로 막힘없는 유세를 했어요. 자기도 모르게 ‘나도’하고 동조하고 자칫 말만 앞세우기 쉽지, 점잖치 못하기 때문에 신중하고 점잖게 하라고 그 때 이제 논어에 들어가죠.
‘반부논어(半部論語)’라는 말이 있는데, 北宋의 개국공신으로 재상을 지낸 趙普가 태종에게 『논어』 한 권을 두고 “반 권으로 천하를 평정하는 것을 도왔고, 이제 반 권으로 폐하가 태평성대를 이루도록 보필하겠다(昔以其半輔太祖定天下하고 今欲以其半輔陛下致太平이리라).”고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죠.
논어는 읽은 이의 인격수양과 자기계발을 위한 지침서로써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글입니다. 논어의 장점이 뭐냐면, 글이 단문이예요. 맹자는 굉장히길어요. 글이 단문이라 쉽게 읽힙니다. 짤막짤막한 단문이라 암송하면 굉장히 좋습니다. 사람이 있어보이고 들어보이고. 애독되는 듯 하나 문장의 전체 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논어를 공부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程子는 논어를 다 읽고 나서 4가지 부류가 있다고 했어요. 다 읽었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고 생각도 없고 내가 뭐했나 하는 그런 부류가 있고, 다 읽은 뒤에 그중 한 두 구절 얻고 좋아하는 자가 있습니다. ‘아 – 내가 그 논어 20장 중 1장에 나오는 거 학이시습지 – ’ 같이 한 구절 알고 나서 뭐 그런 사람도 있고, 다 읽고 나서 흐뭇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 읽고 나서 덩실덩실 춤추는 사람이 있다. 4가지로 분류를 해 놨더라고요.
三不亦乎’로 시작해 ‘三不知三無也’로 마친다. 이것만 알아도 논어를 다 끝난 거예요.1)
제1장이 끝에 호로 끝나거든요. 의문형 삼불역호로 시작해서 논어20장 맨끝2) 1장만 암송하고 있는데 맨끝도 암송하면 좋아요. ‘논어는 삼불역호로 시작해서 삼불화삼무야로 끝나지’라고 말하면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을 겁니다. 한권 다 독파를 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은 뭐냐면 천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정립해서 조화롭게 사는 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그러려면 배우고 익히면서 하늘의 명을 알고 그에 따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받들고 법도인 예를 알아야 하고 사람과 사람을 소통하하는 말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 몇 년사이에 소통이라는 것이 안 돼서, 되느니 안 되느니 해서 갑갑한 사람들 요새 많았죠? 논어 끝장에 부지어인이면 무이지인야(不知言이면 無以知人也)예요.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했어요. 논어 맨 끝장, 맨 끝 구절입니다. 논어에 결론적으로 위정자로서의 군자는 하늘이 뭇 백성을 낸 까닭을 알아야 돼요. 하늘이 왜 이런 백성을 냈는지, 이들을 안정되게 살 수 있도록 하고 늘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논어 1편서부터 해 놨는데 나중에 논어를 공부하실 때 ‘이런 뜻으로 쓴 거구나’ 알게 되실 거예요.
5. 시경
시경 – 시경을 한마디로 하면 사무사(思無邪)입니다. 어떤 데 가면 액자에다 ‘사무사’ 딱 3글자만 써놨어요 이건 시경에 나오는 말이예요. 사람이 너무 어질기만 하면 자칫 고리타분함에 빠지기 쉬워요, 시를 지으면서 흥을 돋우고 사람이 유연할 수 있고. 옛날 가르치는 것이 시와 음악을 같이 가르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삼백(詩三百)에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면 왈사무사(曰思無邪)라. 원래 공자님 앞 시대에 시가 3000편 정도 됐었어요. 근데 공자님은 정리를 잘 하신다고 하셨죠? 이거를 3000편중에 2700편을 빼요. 공기반 소리반 이라 안 되고. 넌 빠져 해서, 핵심적인 것만 해서 311편만 압축을 시켰는데, 그게 시경이예요. 현재는 305편만 전하고 있죠. 시경을 크게 나누면 풍아송으로 나누죠. 풍은 15개국의 풍. 혹시 그 잊혀진 계절의 이용 씨가 어느 가요제 출신인지 아십니까? 국풍80, 국풍81 딱 두해 있었어요. 전두환때 여의도 광장에다 막 해놓고서 한 게 여기서 그 풍을 딴 거죠. 여기서 이용이 스타가 되죠. 여기서 쇄신하는 거죠. 바람을 새로 일으키는 거죠. 그래서 아무튼 시경은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함에 삿됨이 없다’ 이것만 딱 알면 됩니다.
6. 서경
서경으로 넘어갑시다. 서경은 통치하기인데 역사의 흥망성쇠를 공부해야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되고 역사를 알아야 어떻게 해나갈 줄 안다. 서경도 책을 소개하다보면 긴데, 서경은 역사통치학이라는 것 까지 하고.
7. 주역
주역 키워드 보면 재밌죠? ‘만학(萬學)의 제왕(帝王)’ 예 맞습니다. 주역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제왕입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단계고, 가장 어렵고, 앞서 소개한 책의 목적은 주역을 공부하기 위함이죠. 두루 많은 공부를 했으면 앞날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대한 판단과 함께 제시를 분명히 해줘야 되는데, 주역하면 점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건 동서양 막론하고 학문의 제왕이라고 하는데, 그거는 아마 원불교가 유불선 3교를 통합했으니까 나중에 공부하시는 분들은 주역을 다 공부하실 겁니다. 대종사님 보면 주역도 다 통달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 주역은 점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말이 정서 형태로 쓰여져 있어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글로만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은 도덕군자로서 여러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혹출혹처혹문혹어(或出或處或黙或語)’ – 요 8글자만 알면 됩니다. ‘혹 나가기도 하고 혹 처하기도 하고 혹 침묵하기도 하고 혹 말하기도 한다.’ 군자가 아니래도 개인이 사회생활하면서 나설 때 물러날 때 말을 해야 될 때의 상황상황을 판단하는 거지, 개인의 길흉화복을 위한 점서 – 동쪽으로 가시오 귀인을 만납니다 이런 게 아니라는 거죠.
나중에 주역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으면 잠시 하고. 오늘 간략하게나마 나중에 혹시나 여기 계신 분들이 유학 경전을 공부하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하는 생각에서 아무 자격없는 사람이 중언부언 중구난방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새겨들으실 건 새겨들으시고 편안한 자리에서 마음 나눴다 생각하시고 이런 자리 마련해주신 안암교당에 감사드리고요. 마지막에 대종사님 말씀을 써놨는데, 마음에 들어서 (책에) 넣어놨어요. 다음에 뵐 기회 있으면 뵙고 마치겠습니다.
- 질의문답 -
차명섭 : 고대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는 차명섭이라고 합니다. 저도 대한민국에 살다보니까 젊은 시절에 사서(四書)는 봐야지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몇 권 찾아서 봤거든요. 현대는 번역 잘된 책도 많다보니까 원서를 보기 보다는 번역된 책을 공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보니 유학의 진면목을 느끼지 못하는 거 같아서요. 현대인들이 유학이라든지 사서를 공부해나감에 있어서 지침이 있으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 이것도 지금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해서 옮긴 건데요. 지금도 곳곳에 서당, 학당 이런 데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이런 서점에 나오는 그런 책들은 전공하신 분들이- 교재를 내면 누가 팔리겠어요? 그걸 응용해서 하다 보니까 책들을 보면 한번 틀어서 현대에 맞게끔 한거 예요. 그런데 이거는 유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교재(원문), 이 책을 나중에 그런 책을 보면 원래는 이랬는데 이렇구나 하고 비교가 되는데 ,처음부터 번역 책 읽으면 원문이 뭔지를 몰라요.
명심보감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럼 거기에 나오는 글들이 다 명심보감에서 나오는 걸로 다 설명을 해요. 모르는 사람들이 그러나 그 책이야 말로 여기저기서 다 뽑아놓은 거거든요. 그러니 서점에 나와 있는 책보다도 그런 교재로서 공부하면 그리고 그런 서당이나 그런데 가서 배우시면 지금 저도 계속 배우고 있고, 그리고 그 공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기 와서 더듬더듬 할 정도밖에 안 되구요. 물론 그건 사람의 차이가 다 있습니다만 저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아까 질문하신 것처럼 교재 같은 건 추천을 해드리거나 선생님 책을 선물을 해드리거나 그렇게 하는 정도고. 서점 책은 교양서지 유불선을 통합해서 했을 때 유학이 있으니 유학경전을 경전답게 공부하려면 그런 책들은 교양서로만 보고 끝내야 돼요. 혹시나 답변이 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선 : 전부터 가지던 의문이었는데요. 유학은 학문으로선 잘 닦여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유교라고도 하잖아요. 제가 느껴지기에는 유교의 종교적 측면을 잘 모르겠는 거예요. 유학을 유교라고도 칭하는 이유가 어떤 데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 아까 설명할 때 언뜻 했는데 유림들 내에서도 그거 가지고 의논들이 분분해요. 저도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유교가 학문의 영역이 맞지 않는가. 현재는 7대 종단에 있어가지고 종단 역할을 하고 하는데 같이 공자의 위패 모시고 삭망분양을 하고 하는 거 보면 모시는 게 있어요. 절차나 그런 부분은 있는데 단지 타 종교에 비해 내세관도 없고 구원관도 없고 뭐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종교라고 말할 수 있나 – 어찌 보면 종교의 큰 요소를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그거 아니겠어요? 물론 경전이 있고 교주라고 할 수 있는 공자가 있고 신도도 있는데 단 하나 그런 부분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유교로 봐야 되느냐 유학으로 봐야 되느냐 유림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전공자가 아니므로 그 정도만 하겠습니다.
1) 학이편 1장,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2) 요왈 3장,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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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정인교우 거의 완벽했던 초벌 타이핑 감사합니다. ㅠㅠ 급히 올리느라 ... 3월 중순에 다시 꼼꼼히 보고 수정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ㅠ_ㅠ
감사합니다!
결혼전날 타이핑하는 신부.
대단해요 👍🏻👍🏻👍🏻
오늘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예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