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정례법회] 청년법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됩시다!
원기 106년 01월 23일
설교 : 전성욱 교무님
타이핑 : 박준성
오늘 안도영 교우님이 원불교를 만나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변화된 내용은 무엇인지 이야기해줬습니다. 도영 교우가 교당에 온 지 2년 가까이 되어가네요. 학사에 2년째 살고 있고, 처음에 왔을 때 아기 같았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얼굴은 앳되지만, 말이나 행동을 보면 부쩍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쩍 성장한 것 같습니다. 도영 교우에게 뭘 맡겨도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이 공부하고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내용들을 강연을 통해서 이야기해줬습니다. 여러분들이 진급하는 데 도움이 될 사람이니까 도영 교우와는 여러분들이 더 친하게 지내도 되겠죠?
[예측 가능한 사람이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도영 교우 같은 사람,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자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예측 가능한 사람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단순한 사람? 착한 사람? 뻔한 사람? 임도운 단장님은 예측 가능한 단원이 좋아요? 예측 불가능한 단원이 좋아요? (예측 가능한 단원이 좋습니다) 왜 예측 가능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을까요? (예측 가능한 사람이 대하기 편한 것 같습니다) 저는 예측 가능한 사람은 믿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측 가능한 사람일까요? 일관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예측할 수 있겠죠? 그때그때 다르면 예측할 수 없겠죠. 그리고 상식적인 사람.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 소통할 수 있어야겠죠. 그런데 서로 알고 있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면 어렵겠죠. 규칙을 지키는 사람.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참 어렵습니다. 자신만의 규칙에서 사는 사람. 예의가 없는 사람.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모릅니다. 예측이 가능하려면 일관성도 있어야 하고, 상식적이고, 규칙을 지키고, 예의가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도영 교우는 이런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측할 수 있으므로 믿을 수 있습니다. 뻔한 사람이 아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속이고 싶은 사람이 아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죠. 그런데 언제 예측할 수 없어질까요? 갑자기 사람이 이상해질 때. 언제죠? 마음 안에 있는 탐진치가 올라올 때입니다. 그럴 때 예측에 벗어납니다. 거기에 끌려가죠. 거기에 바탕한 많은 감정이 일어나면 원래의 상식적이고 규칙을 잘 지키고 예의가 있고 일관성이 있는 사람에서 벗어납니다. 그럴 때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 해결하려고 하면 잘 안 됩니다. 자, 예측 가능한 사람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법회를 보고 있는데 아까 우리가 교전을 함께 봉독했습니다. 사회자가 앞장서서 읽으면서 했는데, 만약 사회자가 내 목소리만 듣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막 읽어버립니다. 띄어쓰기도 없고 숨 찰 때까지 계속 읽습니다. 그러면 함께 읽는 사람이 따라갈 수가 없겠죠? 그래서 사회자는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사회 진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행할 때 식순대로 해야 하죠? 그런데 내가 오늘 순서가 마음에 안 들어서 좀 빼야겠어요. 빼면 어떻게 될까요? 규칙을 안 지키는 것이죠. 함께해야 하는데 거기에서 이탈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년회장님이 요즘 내가 기분이 가라앉으니까 청년회 운영 방향을 공부에서 놀자로 바꾸자 생각했어요. 그러면 대중들이 혼란을 겪겠죠?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동이 왔다 갔다 한다면, 일관성이 없다면, 규칙을 안 지키고, 상식적이지 않다면 사람들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을까요? 어디로 튈지 모르죠? 그래서 아까 도운 단장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편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거든요. 저는 운전할 때 공부를 많이 합니다. 운전할 때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예측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뒤에 초보를 붙이고 있는 분들은 잘 안 따라갑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랬거든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있고 갑자기 차선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시야가 좁아서 잘 못 보거든요. 그럴 때는 양보해주고 비켜 가는 게 중요하겠죠. 그리고 신호 법규를 무시하는 사람. 어디로 꺾을지 모릅니다. 갑자기 유턴할 수도 있고 깜빡이도 없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범죄죠. 또는 졸음운전을 한다. 피해가야 합니다. 예측할 수가 없어요. 저는 택시도 잘 안 따라갑니다.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운전을 할 때는 예측이 불가능한 때도 있어서 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진심이 올라오기도 하고 욕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예측 가능하면 이용당하는 사회?]
요즘 사회를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사회의 모습들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힘든 상황에서 더욱 믿음이 옅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제가 말씀드렸던 일관성이 있고 상식적이고 규칙을 잘 지키고 예의가 있는 모습이 마치 그렇게 살면 손해가 되고, 누군가에게 당하고 이용당할 수 있다고 마음이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에 말씀드린 적도 있는데 제가 출가할 때 어머님께서 실속 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부탁하면 다 들어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이 그런 걱정을 잘 하실 거에요. 자식들을 사회에 내놓으면서 혹시 우리 아이가 나쁜 환경이나 사람들과 만나게 될까 봐 걱정을 하시는 거죠. 근데 왜 이런 생각들이 사회에 퍼지게 되었을까. 저는 사람들의 마음에 인과의 이치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은 대로 받는 것이 명확하고 그것이 정말 사실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간다. 이것을 모두가 공감한다면 그렇게 살 수 없겠죠. 규칙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겠죠. 예의 없지 않겠죠. 그런데 인과의 이치가 사람들의 마음에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에 반대로 생각하는, 규칙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고, 일관성이 있으면 이용해먹는 마음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재해같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들은 대비할 수가 없죠.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것에 대비해 준비할 뿐이죠.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요. 마음은 살아 움직인다고 하죠. 사실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자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일관성이 있고, 상식적이고, 규칙을 지키고, 예의를 갖춘 그런 사람이 되자. 예측할 수 있어야 서로 믿을 수 있고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일 날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해서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했었던 비상식적인 정책들을 다 뒤집었습니다. 마스크도 다 쓰게 하고, 탈퇴한 환경기구도 다시 복귀한다고 합니다. 차별, 분리, 독단적인 정책들을 다 뒤집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정치를 잘 모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스를 보면서 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은 대충 알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었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죠. 갑자기 무언가를 꺼내 듭니다. 갑자기 사람을 자르죠. 저는 비상식적이고 예의 없는 행동들을 통해서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미국도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폭력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형태로 나라의 분열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나라는 미국이니까, 바이든 대통령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러한 분리, 차별, 독단, 비상식적인 것들을 바로잡고 진짜 정의롭고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는 진짜 힘 있는 모범적인 나라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을 했더라고요. 그렇다면 미국만 그런가?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저는 우리나라도 지금 사회의 모습을 보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예측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경제도, 정책도, 심지어는 법원의 판단, 지도자들의 판단도, 함께하는 우리도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모습들도 종종 보입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까 중학교 1학년 학생이 할머니를 폭행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당에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보면 너무 착하고 귀엽고 이쁜데 이런 사건을 보면 또 예측되지 않습니다. 그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정부, 국회, 검찰, 법원, 기업, 우리 종교계도 아쉬운 부분이 참 많습니다. 규칙을 따르고 원칙을 따르고 예를 따라서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잘했으면 상을 받고 보상해줘야 하는데 요즘같이 서로 힘든 시국에서는 그렇지 못한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함께 노력하고 있지만, 상식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나 판단, 실행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겠죠? 사회는 우리가 통째로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해봐야죠. 사회가 그러한 모습들을 보인다면 거기에 편승해야 하나요? 그런 모습이 아니면 우리가 바보인 것 같으니 따라가야 할까요?
[예측 가능한 사람의 기준]
저는 다시 이야기 드립니다.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자. 상식이 통하고, 규칙을 지키고, 예를 갖추고 일관성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그런데 상식이 다를 수 있지 않나요? 만약 여러분이 가진 상식과 다른 사람이 가진 상식이 다르다면 어떻게 판단하고 어디에 기준을 잡아야 할까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사는 걸까요? 어디로 수렴해야 할까요? 진리입니다.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 이 진리로 수렴해야 합니다. 여기서 기점을 잡고 상식, 규칙, 예를 잡아가야죠. 다시 이야기하면 인과가 기점이 되어야 합니다. 대종사님도 다른 것이 급한 게 아니고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를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것이 급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인과, 생멸 없는 도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 경우를 당해도 상식적인 사람, 규칙을 바로 세우고 지키는 사람, 예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요. 우리의 삶은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지은 것들은 지금 지나가면 끝이고, 오늘 지나가면 끝이고, 1년 지나가면 끝이고, 죽으면 끝인 것이 아닙니다. 계속 이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생멸 없는 도에요. 시작도 끝도 없는 그 바탕에서 인과로 굴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영생의 이치 속에서 인과의 이치로 살아간다. 이것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진리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에 바탕해서 상식, 규칙, 예를 갖춰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자. 진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자. 그리고 그 진리에 바탕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 그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죠. 누구를 만나도 당당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도영 교우가 원불교를 만나서를 해줘서 제가 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자. 우리 도영 교우처럼. 대산 종사님께서 이 믿음이 사람을 살린 이야기를 말씀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인데, 아들이 사람들과 같이 배를 타고 어디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풍랑을 만나서 배가 뒤집혀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다 죽었을 거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믿지 않았습니다. 맹신인가요? 평소에 바람이 세고 기후가 안 좋으면 배를 타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아들은 내 말을 믿고 배를 안 탔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아들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도 아들을 믿었고, 아들도 아버지를 믿었죠. 여러분들은 대종사님 얼마나 믿으세요? 대종사님이 법을 내주셨는데, 이 법으로 살아가면 내가 영생의 행복길을 개척할 수 있다. 이 말을 믿으세요? 얼마나 믿으세요? 이 아버지와 아들처럼 믿을 수 있으세요? 밖에서 누가 '야, 종교는 적당히 믿고 필요할 때 한 번씩 가는 거지, 생활과 분리해야 해.' 이것이 상식인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거기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 있으세요? 대종사님 법을 믿지 않으면 흔들립니다. '에이 오늘 한번 안 가고 법회 빼고 여행 가자~ 훈련이 뭐가 중요해? 그게 상식이지~ 사람 사는 거지~' 여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세요? 대종사님의 법을 확실하게 믿지 않으면 흔들립니다. 이것이 내 영생 길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대종사님은 우리를 얼마나 신뢰하실까요? 여러분들은 대종사님이 예측 가능한 범위에 들어있는 사람들인가요? 내가 이렇게 가르쳤으니까 이렇게 할 거야. 하는 사람들인가요 아니면 그때그때 다른 사람들인가요? 대종사님께서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말씀하시면서 이 진리에 바탕해서 신앙수행을 해가라. 그것이 여러분들의 지금의 삶, 영생의 삶을 보장할 것이다. 하란 대로만 해봐라. 속는 셈 치고 해보라고 하셨는데 과연 우리는 그것을 따르고 있고 대종사님의 예측범위 내에서 신앙수행을 하고 있는가. 여러분들이 각각 그런 사람이 된다면 누구나 다 서로서로 믿을 수 있을 것이고 함께하고 싶고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곳을 벗어나서도 어디에 데려다 놔도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자. 대종사님의 법을 공부해서 올바른 판단, 실행을 할 수 있는. 그래서 사회에서 보기에 저 사람은 일관성이 있고, 규칙도 잘 지키고 상식적이고 예의가 있는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자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로서로 예측 가능한, 그래서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이것이 기도문에서도 이야기한 샘물이 되어서, 여러분들이 샘물이 되어서 이 세상을 맑게 해가면 예측 가능한 사회, 세상이 되고 우리는 서로 그때부터 낙원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봅니다.
첫댓글 예측가능한 준성교우님 타이핑 수고하셨어요!
믿을수 있고 함께하고싶은 종원 교우님 감사합니다😄
@박준성(준현) 두분 뭐하세요 ㅋㅋㅋㅋㅋ
은혜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