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쌓듯 인생을 쌓는다
*적석산으로 산행 가는 날, 선선한 바람과 뜨겁지 않는 유월의 빛이 산 아래까지 우리를 데리고 간다. 산행을 꿈꾸지 못할 체력으로 산 밑에서 놀 궁리를 하고 떠난 여행이어서 산이 높던지 돌멩이가 많던지 별 상관없었다.
문우들과 삼삼오오 첫 초입으로 몇 걸음 옮기자 몸이 무거움을 벌써 느낀다.
여기서 머물러야 하는 시인이 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밑에서 지루하게 산행 갔다 오는 일행을 기다릴 바엔 차라리 동행이 나을 것 같아 한 걸음 두 걸음 층층이 걸음의 탑을 쌓아본다.
유월은 아이를 낳은 달이라서 그런지 태생이 약골인지 몰라도 아직 속내의를 입고 있었다.
산허리를 감아 돌자 피돌기도 시작되는지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산속에서는 부끄러움도 없어진다. 어머니 품 같은 넉넉함이 나를 감싸며 마지막 입은 허물까지 벗어놓게 한다.
내의를 벗었다. 홀가분하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또 걸음을 재촉하지만 따뜻한 문우의 끌어줌과 받쳐줌이 없었더라면 중간에 하산했을지도 모른다.
병원 다녀온 친구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잘 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상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을 듯 했다.
가다서다 반복하다보니 어느 덧 중간 쉼터에 도착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산 아래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이다.
땀을 식혀주는 바람의 정다운 말 건네기를 시작으로 점심을 먹는다. 김밥 몇 줄에 오이 서넛이지만 황제의 밥상 부럽지 않을 만큼 맛있다.
차도 한 잔 나누고 와인까지 빈속으로 밀어 넣고 보니 그제야 사람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시 낭독이 이어졌다. 가을에 지은 시편들을 여름초입에 읽으니 지난 계절이 얼마나 시인에게 아픔과 기쁨을 주었는지 마음 한쪽이 시려온다.
삶이란 이런 것일까.
떠나보내 놓고 그립다 말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참을만했다고 나중에 먼 후일에 꺼내보는 가슴 속 돌탑 같은 것, 이런 것 하나 둘 쌓아 태산을 이루는 일.
그리하여 다시 떠나가는 한 장의 낙엽 같은 것인가.
정상을 향해 젖은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돌부리에 채이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드디어 적석산 정상에 닿았다.
참 오랜 만에 무엇인가의 맨 꼭대기에 오른 것이다.
새롭다, 뿌듯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이 달콤한 맛 때문에 사람들은 산을 오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 테다.
결국 살아가는 일 자체가 달콤한 사탕 하나를 찾기 위한 여정일 뿐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내려오며 산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다며 쓸쓸한 손짓을 나에게 한다.
잘 가라, 그리고 잘 살아라.
근처 미술관에서 그림 감상도 하고 차 한 잔 나누며 문우의 정을 나눈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아도 서로가 서로의 곁을 주고 정을 주는 사이, 우리는 아마도 전생에 차돌 같은 동지가 아니었을까,
저녁을 먹고 지는 해를 따라 또 산허리를 댕강 자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생에서 좋은 길은 어떤 것인가. 누군가 물으신다면 답은 모두 자신 안에 있을 것이다.
스스로 아름다운 길이 되면 간단한 일이니까.
*적석산: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산
첫댓글 눈물이 날 만큼 따뜻합니다.
함께라는 말을
제대로 느껴봅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사진을 보니 내 안의 것들이 나오고 마네요
그래서 떠나는 것은 결국 나를 만나기 위함인가.
스스로
혼자서
각자
아름다운 길이 되면 되겠군~~ ㅎㅎㅎㅎ ~~~
회원들 모두
부디 외로움은 가지지 말고 멀리 하면서
나의 깊은 곳을 관찰하는 시간
고독의 시간을 즐기길 바랍니다
외롭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지. 인생도 내려가려면 연습이 필요할거야. 잘 읽었다.
둘다 힘든 것은 매한가지, 그래도 같이 정상의 맛을 봐서 좋았다.
건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