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집시 떵루앙족의 여인은 평생 처음으로 속 팬티를 얻고서 부끄러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서너 살 아이는 어디 먼 곳에서 온 파란 장화 한 켤레에 반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화면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문협의 회의를 직관하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단체이든지 회원의 절반이 참석하여 추천을 받아 수락 여부는 당사자에게 물어야 하는데
헌 신발 내던지 듯 던져버리는 자리를 왜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받아서 신어야하는지 의문이다.
서론도 없고 본론도 없는 코로나 사태라지만 해도 너무 하는 것 같아 착잡한 심정뿐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인가,
서로 방관하는 그 모습에 혀를 내두르고 싶다.
우선 임원진을 뽑기 전에 문학과 천강의 분리를 나는 누누이 말해 왔다.
지금 문제는 이것이다.
우선 일할 사람이 없다.
시간이 많아 이 일을 책임질 사람도 없다.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지 차선으로 봉사를 빌미로 참여하지 않아도 신경 쓰이고
참여하자니 시간이 부족하고 서로 눈치만 보는 격이다.
털 것은 빨리 털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존재의 가치만 따지고 처리할 사람이 없다면 이것 또한 욕심이다.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명쾌한 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고생한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그 탑을 무너뜨리기에 너무 힘이 없고 용기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령문학이 이렇게 작아지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손 놓고 볼 수가 없다.
앞장 선 길이라도 부담이 된다면 선회하거나 철회하는 것도 마땅하다고 본다.
눈치 때문에 그냥 미루어 나가기에는 이미 지친 것 같다.
천강을 따로 떼어서 맡을 분과를 두거나 아니면 군으로 돌려주는 방법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심사위원을 위촉하거나 하는 문제는 문협이 도움을 주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24호 의령문학이 나오기까지 창단 구성원으로서 부회장도 사무국장도 몇 차례 해 왔다.
숱한 날 어둔 진등재 고개도 많이 넘었었다.
당당히 축하 받으며 회장직을 역임하고 싶지 이렇게 던진 화살은 받고 싶지 않다.
불쾌하고 마음 편하지 않다.
이런 자리를 탐했더라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은 마음의 본보기, 빛이라 생각한다.
아직 빛나지 않은 마음이라 회장직을 수락하지 못한다는 점
깊이 양해를 바라며 팬티 한 장 장화 한 켤레가 소중하다는 것 잊지 않고 묵묵히
시인의 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