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던 대학 시절, 내 꿈은 별장지기였다. "왜 하고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별장지기야?" 졸업 후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는 게 중요한 숙제였던 탓에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왜 별장지기가 되고 싶었는지 잘 모른다. 그냥 빡빡한 도시의 삶이 싫었고, 경쟁 속에서 나를 소모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냥 현실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유유자적 살고 싶었다. 무심코 별장이라면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책 읽으며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안빈낙도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마치 낙향한 선비처럼.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근간에는 자연이라는 울타리가, 특히 초록의 나무가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록이야말로 눈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도 정화시키는 자연의 진수라 믿었으니까. 그중에서도 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이 들어선 숲은 인간세상과 신선세계를 이어주는 관문이다.
이 땅에는 아름다운 숲을 자랑하는 곳이 여럿 있다. 전남 화순의 연둔리 숲정이도 그중 하나다. 숲정이란 마을 근처 숲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화순 동북쪽에 자리한 동복천변 둔동마을 앞에 700여 m에 이르는 숲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면서 비보림(裨補林)으로 나무를 심어 조성한 것이 시작이라고 하니 50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부터 울창한 숲을 기대하고 나무를 심은 것은 아니다.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둔동보를 쌓고, 보가 무너지지 않도록 나무를 심은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아름다운 숲이 되었다.
숲정이를 대표하는 수종은 느티나무, 팽나무, 서어나무, 왕버들이다. 그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왕버들이다.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에 자연적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의 나무들은 사람들이 직접 심은 것이다. 마을에서는 숲정이를 보존하기 위해 지금도 조금씩 식재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숲정이에는 직경 5~20cm 정도의 나무가 72그루로 제일 많다. 이 나무들은 수령이 50년 안팎이다. 물론 직경이 1m가 넘는 고목도 많다. 이들이 숲정이의 터줏대감이다. 길게 뻗은 모습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