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포도나무를 베어라>가 개봉했을때 왠지 모르게 포스터에서 강하게 풍기는 종교적인 냄새가 극장으로 가는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 이 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괜찮아, 울지마>가 개봉했고 이 영화도 역시 굉장히 관념적인 영화 일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포스터안에 서있는 한 청년의 눈빛 때문에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개봉 첫날 이 영화를 본 후 내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것임을 깨닳았다. 이 영화는 그리고 민병훈 감독은 겸손한 자세로 삶을 말하고 있었다.
영화는 시골 우즈베키스탄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모스크바의 유명한 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 한다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며 자신을 성공한 도시인으로 가장하지만, 사실 그는 분명한 직업도 없는것 같으며, 게다가 여러 군데서 돈을 빌렸고 이미 그의 신용은 더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비참해 보인다.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카메라는 조용히 따라간다.
처음에 이 남자는 굉장히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그를 천천히 관찰 할수록 슬픔이 느껴지며 나중에는 그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우즈베키스탄의 드넓은 평야에서 돌탑을 쌓고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키우는 닭이 아프다며 한없이 슬프게 우는 소년, 그리고 매일 아침 달걀 하나씩을 수줍게 창문위에 놓고가는 소녀의 모습들. 그 개별의 삶들을 펼쳐보여주며 영화는 너무나 작은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강변하지 않고 천천히 고민하게 만든다. 인물의 감정속으로 깊숙히 파고 들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삶을 바라볼 뿐이지만 가슴속에 와닿는 울림은 매우 절실하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고 빈 바이올린 가방을 들고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 때문 일 것이고, 더 나아가 그 나약함이 인간이기에 어쩔수 없는, 비극의 운명 비슷한 것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서둘러 고향을 떠나는 주인공은 구불구불한 길위에서 초점잃은 눈동자로 마지막으로 고향을 뒤돌아 본다. 그리고 그는 보이진 않지만 가슴속으로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은 자신만의 삶의 분량, 그 만큼의 무게를 짊어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흘려보았을 그런 것일 테다. 먹먹한 가슴으로 그의 얼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때, 영화는 조용히 다가와 등을 토닥거리며 한마디를 건네는듯 하다. '괜찮아, 울지마'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