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행
꽃샘추위에,
아득하게만 생각 들었던 봄은 이미 북한산을 점령했습니다.
그 봄을, 만지고 더듬고 부비다 보니
나를 구성한 세포가 우우 일어나 신명이 났습니다.
산과 사람이, 천지가 흠씬 봄기운에 젖었습니다.
지척에 있는 북한산을 가려면 많이 망설여집니다.
왜냐하면 인구 천만 명이 넘는 서울 사람들이
열병처럼 모두 등산 신드롬에 빠져 있어 그렇습니다.
주말이던 주중이던 이름 알려진 등산로는 완전히 시장터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현상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어디 산꾼들만이 전세를 낸 북한산일까요?
산을 통하여 건강과 정신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마음은 그래도 줄지어 오르는 사람들을 따라 간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산에도 사람들이 없는 코스가 몇 군데 있습니다.
구파발에서 송추쪽으로 연결되는 솔고개에서 시작하는 상장능선이 그곳입니다.
백운대까지 크게 활처럼 굽어져 이어지는 이 능선은
릿지 등반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여인네의 풍만한 몸매를 닮은 하얀 화강암릉이 많다는 것이
이 릿지 길의 특성입니다.
바위와 바위를 이어가다 보면, 로프 없이는 조금 망설여지는
그런 암벽이 이곳에는 지천입니다.
그런 점이 사람들의 출입을 자연스레 막고 있는 듯한데
이 능선은 조망이 일품입니다.
왼쪽으로는 사패산, 도봉산 오봉, 선인봉등이 보이고,
가야 할 앞쪽으론 인수봉, 숨은벽, 백운대등이 우뚝합니다.
산이 아름다우려면 골계미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입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산과 도봉산을 이어 가는 골계미는,
한국에 단 하나 이곳 밖에 없는 걸 작품들의 노천 박물관입니다.
바위를 잡는 손끝은 아직 차갑지만 대기는 봄이 이미 점령했습니다.
따가운 봄볕에 땀이 흐릅니다.
휘이훠이 걸으며 맞는 바람도 봄바람입니다.
잎새보다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는 착한 실눈을 뜨고 있습니다.
가지 끝에 앙증맞은 촉을 틔워 내고 있습니다.
규모가 커서 그렇지 이 능선은 경주 남산을 닮았습니다.
하얀 화강암들도 그렇고 마사토양에 잘생긴 소나무가 많은 것이
꼭 남산을 확대 해 놓은 모습입니다.
인수봉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영봉에 도착하니 4시간이나 흘렀습니다.
인수봉에는 많은 클라이머들이 붙어 있습니다.
요즈음 암벽등반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들은 아줌마 부대입니다.
꽉 조이는 타이즈를 입고 어려운 코스에도 주눅 들지 않고
전문 등반가 못지않은 기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렇게 한국의 아줌마들은 씩씩하니 보기 좋습니다.
약동하는 대한민국의 저력은 아줌마들에게서 나온다던가요?
영봉 주변에는
인수봉에서 조난사한 많은 산악인들의 추모 동판과 비석이 있습니다.
그중 몇몇은 익히 아는 사람들이기에 공연히 숙연해집니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靈峰이라 부른다던가요?
인수산장부터는 백운대에서 하산하는 사람과 오르려는 사람들로 시장통입니다.
그래도 놓칠 수 없어 오른 백운대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하산하여 꿀 맛 같은 막걸리를 퍼 넣으며 본 북한산엔
헬리콥터 한 대가 선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봄맞이 산행이 시작될 것이고
따라서 사고가 잦아지면 저 헬리콥터도 바빠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