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예수님과 그 십자가만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또한 비전의 사람 바울은 일평생을 오직 무엇만 자랑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즉 예수님만 자랑하고 그분의 십자가만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6:14 상)
사실 십자가는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각각 무엇이었습니까? 미련한 것과 거리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3) 어째서입니까? 로마인은 십자가 형(刑)을 노예에게나 적당한 죽음으로 여겼으며, 유대인도 그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3 하)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그런데도 바울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자신의 최고의 자랑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그리고 그의 자랑은 오직 누구 안에만 있다고 고백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1:31)
그는 언제까지 예수님을 자랑했으며 그분의 십자가만을 자랑했습니까? 죽는 순간까지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주후 67년 로마에서 네로 황제의 의해 참수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베드로도 이듬해인 주후 68년 네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했습니다. 아무튼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목이 잘리는 순간에도 예수님의 이름을 세 번 외쳤다고 합니다. ‘예수! 예수! 예수!’ 얼마나 예수님을 자랑했으면 죽는 순간까지도 그분의 이름을 외쳤겠습니까!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비전의 사람은 바울처럼 예수님과 그 십자가만 자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과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하고, 예수님과 십자가만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모든 비전은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하고 서로 상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그 십자가를 붙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또한 예수님과 그 십자가만 알고 자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점에 유념하면서 함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비전의 사람 바울처럼, 예수님과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또 예수님과 십자가만 자랑하고 있습니까?